소설리스트

허리케인-39화 (39/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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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도시 올가

스스스.

수분이 공중의 한곳으로 모이면서 작은 물방울을 형성하더니 점점 커졌다.

스윽.

준의 손짓에 의해 공중에 떠 있던 물방울이 금속 욕조에 떨어지면서 물을 채웠다. 마법이 소멸된 것이 아니기에 계속 물의 양은 늘어났고, 이내 욕조 가득 물이 채워졌다.

“아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

“그래. 이렇게 물이 가득 채워지면 옷을 벗고 들어가 씻으면 되는데, 땀과 먼지가 묻은 몸을 깨끗하게 씻기 위해서는 비누라는 걸 쓰면 아주 도움이 돼.”

“비누?”

“그래. 이것이 바로 비누라는 거야.”

준이 예전에 만들어두었던 비누를 꺼내어 보여주었다.

향긋한 장미향이 나는 비누였기에 글리아나는 향기를 맡고 좋아했다.

“크흠, 향기가 너무 좋아.”

“그럴 거야. 장미 오일을 넣어서 만들었거든.”

“이것은 어떻게 쓰는 거야?”

“간단해. 그냥 물에 몸을 적신 후에 이것을 문지르면 거품이 나거든? 그걸 온몸에 문질러서 물로 씻어내면 땀과 먼지가 깨끗하게 제거돼.”

“아아. 이 정도 마법이면 낮은 서클이라 힘들지도 않겠네?”

“맞아. 목욕이 끝나고 나서 더러워진 물에 정화마법을 펼치면 다시 깨끗해질 거야. 그걸 한쪽에다가 버리면 돼.”

“호호, 알겠어. 그럼 준이 먼저 씻어. 난 나중에 씻을게.”

“그래. 그럼 천막 밖에 나가 있어. 나 먼저 씻을게.”

“알았어.”

글리아나가 천막 밖으로 나가자 준은 옷을 벗고 욕조 속에 들어가 깨끗하게 씻었다.

“룰루, 이 정도면 목욕은 끝난 것 같아. 이젠 더러워진 물을 정화하는 일만 남은 건가? 나의 의지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정화(淨化, Clarification)!”

츠츠츠.

더럽던 욕조 속의 물이 잉크가 번지듯 점차 맑아지기 시작했다.

준은 욕조 밖으로 나와서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깨끗하게 닦았다. 그러고는 아공간 속에 넣어두었던 새 옷을 꺼내 갈아입고 천막 밖으로 나왔다.

모포 위에 앉아서 길 건너편에 야영한 자들을 바라보던 글리아나가 고개를 돌렸다.

“벌써 끝난 거야?”

“그래. 이젠 들어가서 씻어.”

“준 덕분에 좋은 걸 배웠어. 고마워.”

“그렇게 생각해줘서 내가 더 고맙다. 네가 목욕할 동안에 나는 아침 식사를 준비할게.”

“자꾸 신세만 지는 것 같아. 미안해.”

“이 정도로 뭘, 신경 쓰지 마.”

준은 약해진 모닥불에 장작을 몇 개 더 집어넣었다.

활활활.

다시 거세게 불길이 타오르자 준은 물이 들어 있는 냄비를 두 개 올리고 물주전자도 하나 올렸다.

먼저 말에게 과일을 먹인 다음, 물주전자에 물이 끓어오르자 찻잎을 넣었다. 그때 옆의 냄비에서도 물이 끓어오르자 고기의 잡냄새를 잡아주는 향신료를 조금 넣고는 소고기 덩어리를 집어넣었다. 또 하나의 냄비에 물이 끓어오르자 미리 준비해두었던 물에 불린 쌀을 집어넣어 밥을 했다.

얼마 만에 먹게 되는 밥인지 감격스러웠다. 그렇기에 준은 많은 기대를 가졌다.

플로렌스에서 우연히 곡물상점의 쌀을 보고는 기뻐서 40kg 짜리를 10자루나 구입했었다.

준은 간이 테이블 위에 빵과 술 한 통, 깨끗하게 씻은 과일을 준비하고, 잘 삶아진 소고기를 얇게 잘라서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 수육을 맛있게 먹기 위해서 소스를 담은 그릇을 놓고, 뜸을 다 들인 냄비의 뚜껑을 열었다. 하얗게 익은 쌀밥이 맛있게 보였다.

“쩝, 정말 맛있겠다.”

그때 글리아나가 목욕을 끝내고 걸어 나왔다. 촉촉한 피부와 머릿결이 더욱 눈부셨다.

“글리아나, 너무 아름다워.”

“고…고마워.”

글리아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자, 요리가 다 되었으니 앉아서 식사하자.”

“오늘은 어떤 요리야?”

“이것은 밥이라는 것이고, 이건 소고기를 삶은 거야. 맛있을 테니 먹어봐.”

글리아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접시에 담겨 있는 밥과 수육에 소스를 조금 뿌린 후 먹어보았다. 육식을 잘 안하는 글리아나였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는 맛이 좋아서 잘 먹었다.

쪼르르.

준은 두 개의 술잔에 술을 부어서 글리아나에게 내민 후 자신도 한잔 마셨다.

“아침부터 술을 마시는 건 그렇지만 이렇게 식사를 하면서 하는 한두 잔 정도는 소화를 돕기 때문에 좋아. 마셔.”

“고마워.”

글리아나는 준과 같이 있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점점 부드러워졌다.

둘이 한창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는데, 결계 앞으로 패트릭과 세브리노가 다가왔다. 결계가 설치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접근하지는 않았다.

밥을 떠먹던 준은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오?”

“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식수 좀 얻을 수 있을까요?”

“그거면 되겠소?”

“보니까 준비한 요리가 많으신 것 같은데 좀 얻어먹을 수 있을까요?”

“뭐, 어려운 것도 아니니 좀 나누어드리겠소.”

준은 쟁반에 빵과 과일, 밥과 소고기 수육을 담았다.

두둥실.

그의 손짓에 의해 공중으로 쟁반과 가죽 물주머니가 떠올랐다. 공중을 가로질러 천천히 날아간 쟁반과 가죽 물주머니가 패트릭의 앞에서 멈추자, 그는 그것을 받아 들었다.

“먹고 쟁반과 가죽 물주머니는 되돌려주시오.”

“예, 고맙습니다.”

패트릭과 세브리노가 자신들의 야영지로 되돌아가더니 준이 준 음식과 식수를 먹고 마셨다.

“스승님, 그자가 우리를 경계하는 것 같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접근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식수와 음식을 나누어주지도 않았을 거야.”

“그…그건 그렇지만…….”

“일단 서로 안면을 익혔으니 자연스럽게 접근하면 된다.”

“음, 그런데 그자의 옆에 있는 여자는 너무 예쁘던데요?”

“마법으로 귀를 줄였지만 미모는 정말 대단하더구나.”

“아침부터 목욕을 했는지 몸에서 장미향이 나던데요?”

“너도 그걸 맡았느냐? 엘프라는 걸 알지만 너무 매력적이더구나.”

“그자가 부럽기는 처음입니다.”

쩝쩝쩝.

“음, 곡물에 소고기를 삶아서 얇게 자른 것에다가 소스를 뿌린 것 같은데 고기가 아주 연하면서도 맛있구나.”

“예, 요리 만드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 것 같습니다, 스승님.”

“그래. 빨리 먹고 그와 다시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예, 스승님.”

준과 글리아나는 요리를 음미하면서 천천히 먹었기에 이제야 다 먹었지만, 패트릭과 세브리노는 목적이 있었기에 빨리 먹고 나서 쟁반과 가죽 물주머니를 가지고 왔다.

“쟁반과 가죽 물주머니를 가지고 왔습니다.”

“빨리 가져왔군요.”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어디까지 가시는 길입니까?”

“우리는 대륙을 여행 중인데 지금은 올가(Olga)로 가는 길이오.”

“아, 아케비안 공작령의 북부 도시인 올가말이군요. 저희들도 그곳으로 가는 길이니 합류해도 되겠습니까?”

올가는 성스러운 땅이라는 의미였다.

준이 고개를 돌려 글리아나를 바라보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글리아나가 그러자고 하니 같이 갑시다.”

“아, 저분이 글리아나셨군요. 너무 미인이십니다.”

“그렇죠? 나는 준이라 합니다.”

“저는 패트릭이라고 하며, 이분은 저의 스승님이신 세브리노 님입니다.”

“그렇군요. 곧 이곳을 떠나야 하니 물건을 수거한 후 길에서 만나죠.”

“그러죠. 스승님, 가시죠.”

세브리노는 패트릭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 야영지로 돌아갔다.

준은 천막과 각종 물건들을 수거한 후 아공간 속에다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펼쳐두었던 결계를 해제하는 것으로 야영을 마무리했다.

다가닥 다가닥.

노페르슈롱에 오른 준과 글리아나는 천천히 말을 몰아서 길로 접어들었고, 세브리노와 패트릭도 야영했던 물건들을 수거한 후 말에 올라타고 길로 나왔다.

이렇게 해서 이들은 도시 올가를 향해서 말을 타고 달리기 시작하였다.

끝없이 펼쳐진 평야를 여유롭게 달리면서 준은 옆에서 나란히 달리고 있는 패트릭, 세브리노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럼 패트릭은 오이란트 왕국의 동쪽에 있는 베른 왕국 출신이군요?”

“예, 아버지는 작은 영지를 가지고 계셨던 남작이었습니다. 옆에 계신 스승님께서는 제가 어릴 때부터 영지에 살면서 마법연구를 하셨는데, 저에게 마법과 학식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3년 전 갑자기 이웃 영지에서 싸움을 걸어와 싸우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때 돌아가셨고, 가문은 몰락해버렸기에 어쩔 수 없이 스승님과 함께 그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많이 힘드셨겠군요.”

“힘들었지만 스승님이 옆에 계셨기에 잘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베른 왕국을 벗어나 이웃 왕국인 이곳 오이란트 왕국으로 몸을 피하게 되었죠.”

“그럼 어디로 가려고 하는 것이오?”

“지금은 올가로 가고 있지만 최종 목적지는 이곳 오이란트 왕국의 북쪽에 있는 러셀 왕국입니다.”

“러셀 왕국?”

“예, 오이란트 왕국의 북쪽 국경을 넘어 들어가면 외가의 자작 가문이 아직 남아 있거든요.”

“음, 그렇군요.”

패트릭은 준에게 자신의 신상에 관한 이야기는 대충 해주었지만 가장 중요한 목적은 말하지 않았다.

그건 바로 패트릭의 어머니가 보관해온 양피지에 새겨진 지도였다.

패트릭이 어릴 때 그의 어머니는 무릎에 패트릭을 앉히고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외가인 자작가문 영지에 누가 머물렀는지는 모르지만 지하에 비밀 던전이 존재하고 있었다 한다. 패트릭의 어머니가 우연히 책을 읽다가 그 속에서 발견한 양피지로 인해 알게 되었는데, 수백 년이 지난 것이라 대략적인 지형만 나와 있었다. 하지만 단번에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자작가문의 여자가 함부로 비밀 던전 탐험을 하러 갈 수 없었기에 그냥 양피지를 가지고 시집을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 양피지만으로는 어디인지 알 수 없으므로 어머니가 자세하게 지명과 주위 지형을 보충해두었으며, 그걸 패트릭에게 선물로 주면서 언제고 시간이 나면 그 비밀의 던전을 탐험해보라고 했었다.

가문이 몰락한 지금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었기에 스승과 함께 그 비밀 던전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세브리노 님은 도시 올가에 대해서 알는 것이 있습니까?”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올가는 아케비안 공작령의 북부 도시로 25만 명이 살고 있을 정도로 크며, 인근에 금광과 철광석 광산, 암염 광산이 있기에 아케비안 공작령의 주요 수입원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아, 광산이 3곳이나 있으면 엄청나겠는데요?”

“그렇습니다. 또한 인근에는 끝없이 펼쳐진 로렌시아 평야가 있기에 엄청난 밀을 생산하고 있지요. 그것이 가능한 것은 로렌시아 강이 있기 때문입니다.”

“로렌시아 강이 그렇게 큽니까?”

“준 님은 아직 로렌시아 강에 대하여 잘 모르시군요?”

“예. 설명 좀 해주시죠.”

“로렌시아 강은 마케리안 대륙의 북부 끝에 있는 쿠단 산맥에서 발원하여 그 일부는 북쪽으로 흘러 아이스랜드로 갑니다. 남쪽으로는 모르칸 제국을 가로질러 흐르면서 드라비아 왕국, 페드린 왕국, 켈로 왕국, 러셀 왕국을 거쳐 오이란트 왕국을 가로 질러 계속 남쪽으로 흘러가 결국 대해양에 도달하는 대륙에서 가장 긴 강입니다.”

“아, 로렌시아 강이 그렇게 크고 긴지는 몰랐습니다. 사실 저는 몬스터들의 천국이라는 고요의 숲의 초입에서 지금까지 살았기에 강은 한 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어쨌든 이 강으로 인해서 강의 인근에는 밀농사를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군요.”

“그건 그렇고. 글리아나 님은 제가 보기에 엘프 같은데, 맞습니까?”

“으음, 알고 계셨군요?”

“예, 마법이 느껴져서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귀에 마법이 걸린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음, 사실입니다. 이번에 나와의 인연이 있어서 이렇게 같이 여행하게 된 것이죠. 엘프인 채로 그냥 다니면 여러 가지로 곤란한 점이 있을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저렇게 귀에 마법을 걸어 인간처럼 보이도록 한 것입니다.”

“그랬었군요.”

준은 왼쪽에서 말을 타고 이동 중이던 글리아나를 쳐다보면서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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