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37화 (37/284)

0037 / 0284 ----------------------------------------------

제2권  도시 올가

츠츠츠.

공중에 엔틱 문양의 문이 나타났다. 드디어 준의 아공간이 생성된 것이다.

스윽.

준의 손짓에 아공간의 문이 열렸다.

아공간 속은 온통 회색이었다. 그리고 얼음이 얼 정도는 아니었지만 냉장고처럼 기온이 낮았다.

“후후후, 마법서에 나와 있는 대로 짐마차 100대 분량의 물건을 넣을 수 있겠군.”

아공간 속은 무게는 상관없지만 부피는 한정되어 있었다.

준은 마법주머니와 마법배낭 속에 넣어두었던 각종 물건들을 꺼내어 잘 분류한 다음 종류별로 아공간 속에 집어넣었다. 마법배낭 속에는 각종 무기와 골드화를 집어넣었다.

모든 것들이 정리되어 아공간의 문을 닫자 그대로 공중에서 사라져버렸다.

이제 마법의 아티팩트 대거 하나와 마법주머니가 소지품의 전부였다.

마법주머니 속에는 기사 신분패와 통행증, 천 골드, 롱소드와 바스타드소드, 빼앗았던 크로스보우와 부메랑 등 중요한 것만 넣어두었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이 되었지만 준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천왕대심공을 운용하였다. 내기를 일주천하자 몸의 피로도가 사라졌다.

아침이 되려면 2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기에 굳이 잠을 잘 필요가 없었지만, 조금이라도 자두자는 생각에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창문 틈 사이로 햇살이 들어와 방을 환하게 밝혔다.

침대에 누워 있던 준은 상체를 일으켰다.

“음, 벌써 아침이 되었어?”

나무 창을 열자 싱그러운 아침 햇살과 상쾌한 공기가 가슴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곧 인분냄새가 났기에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젠장, 아직도 적응이 잘 안 되는구나. 사람이 너무 많이 살아서 그런지 냄새가 더 지독한 것 같아. 오늘 오후에는 이곳 플로렌스를 떠나야겠어.”

준은 벗은 옷을 입고 허리에 마법주머니를 멨다. 배에는 대거를 꽂아 놓고, 마지막으로 회색로브를 걸치고 방을 나섰다.

복도를 걸어가 세면장으로 들어가니 글리아나가 세수를 하고 있었다.

“어? 일찍 일어났네?”

“네가 늦은 거야.”

“아무튼, 필요한 것을 구입한 후 오후에 이곳을 떠날 거야.”

“알았다. 나도 답답한 이곳보다는 밖이 좋아.”

“케르킨의 말대로 북쪽으로 가면 그게 있을지도 몰라.”

“…….”

글리아나는 대답 없이 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쩝쩝.

준은 글리아나와 같이 방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어젯밤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이 그리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다.

1층으로 내려온 준은 주인에게 말하였다.

“술을 좀 많이 구입하고 싶은데 지하 술 저장고를 볼 수 있겠소?”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일단 보고난 후 정합시다.”

“그렇다면 저를 따라오십시오.”

준은 주인을 따라 지하 술 저장고에 들어가 보았다.

참나무 술통이 수백 개는 되어 보였다. 한 개의 술통 높이는 115cm에 가운데 지름은 90cm, 위아래 지름은 60cm이며 무게 50kg으로 500L 용량이었다.

“손님,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이 건 한 통에 얼마나 합니까?”

“2골드는 받아야 합니다.”

“그럼 2골드로 하고 20통만 주시오.”

“허억, 그렇게나 많이 필요하십니까?”

“숙성된 술이 없는 거요?”

“아…아닙니다. 술은 충분합니다.”

“혹시 빈 통은 없소?”

“빈 통은 어디에 쓰시게요?”

“식수를 좀 담았으면 하는데?”

“아, 그러시다면 아직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술통이 있습니다.”

“그럼 30통만 주시오.”

“많이 필요하시군요? 알겠습니다. 새 술통은 한 개당 1실버이니 모두 40골드 30실버 입니다.”

준은 마법주머니 속에서 41골드를 꺼내어 내밀면서 말하였다.

“그럼 먼저 술통 20개를 가져갈 테니 새 술통은 깨끗하게 씻어서 식수를 담아주시오. 나머지는 수고비요.”

“알겠습니다, 손님.”

“어느 술통을 가져가면 되는 것이오?”

“양쪽에 있는 건 어느 것이나 상관없습니다, 손님.”

스윽.

준의 손짓에 아공간의 문이 나타나 문이 열렸다. 순간 술통 20개가 허공으로 떠올라 물이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순식간에 아공간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모습을 본 주인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법사셨군요?”

“그렇소. 식수도 당장 준비해주면 좋겠소.”

“예, 당장 처리해드리겠습니다.”

얼마 후 식수를 가득 담은 30개의 통이 준비되자, 준은 그것을 아공간 속에 집어넣었다. 그런 후 노페르슈롱의 등에 올라타고는 켈리의 집을 나왔다.

다가닥 다가닥.

급할 것이 없었기에 천천히 말을 몰아서 상점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그런 준과 글리아나가 떠나는 모습을 2층의 방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이가 있었다. 그들은 어젯밤 준과 글리아나가 식사할 때 안으로 들어온 20대 청년과 50대 노인이었다.

청년은 22살이며, 패트릭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몰락한 귀족 출신으로 금발에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쪽 뺨에 5cm 정도 되는 검상이 있었다.

노인은 53살에 패트릭의 스승이었으며 이름은 세브리노였다.

검술에도 능하면서 5서클 마법사로, 은발에 주름이 제법 많았기에 평범한 외모였지만 눈빛은 예사롭지 않았다.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노인의 입이 열렸다.

“패트릭, 너는 저들을 어떻게 보느냐?”

“예사 인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스승님.”

“잘 보았다. 저 남자는 차림새를 보니 평민이나 용병이 아니라 기사로 보인다.”

“기사라고요?”

“그렇다. 검술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마법도 사용하는 것 같구나.”

“저에게도 그리 보였습니다. 여자는 귀족 같습니다.”

“저 여자는 인간이 아닌 엘프다.”

“예? 엘프라고요?”

“그래. 마법으로 뾰족한 귀를 변형시켰지만 난 분명히 알 수 있었어. 그녀는 틀림없는 엘프 여전사야.”

“그럼 저자의 뒤를 따라가 보는 것도 괜찮겠는데요?”

“으음, 나도 왠지 운명이라는 느낌이 드는구나. 서둘러 뒤따라 가보자.”

“예, 스승님.”

야영에 필요한 짐들은 마법배낭 속에 전부 들어 있었기에 그것만 등에 메면 따로 짐은 없었다. 켈리의 집을 나온 그들은 서둘러서 준의 뒤를 추격하였다.

와글와글.

플로렌스의 시장은 수많은 상점들과 노점상들로 북적거렸다. 상인들은 큰 목소리로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려고 난리였다.

준과 글리아나는 말에서 내려 먼저 옷가게로 들어갔다. 귀족들의 고급 옷을 구입하는 게 아니었기에 평민들이나 용병들이 주로 이용하는 옷가게로 들어간 것이다. 그곳에서 10여 벌이나 구입하였는데, 특히 여행에 아주 유용한 로브가 반이었다.

“글리아나, 너도 필요한 것 있으면 골라봐.”

“난 특별히 필요한 옷은 없어. 입고 있는 옷으로도 충분해.”

“그래도 만약에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한 벌씩만 골라. 특히 로브는 여행할 때 유용하잖아?”

“그렇다면 옷 한 벌 하고, 회색로브 두 벌을 구입할게.”

“그래. 잘 생각했어.”

필요한 옷을 구입한 준은 글리아나와 함께 옷가게를 나왔다.

마침 과일 수레가 보였다. 그 속에는 각종 과일이 가득 담겨 있었는데, 종류가 10여 가지나 되었다.

‘음, 몇 가지는 내가 먹어본 과일이구나.’

준은 주인과 흥정해 수레까지 통째로 구입해버렸다.

“으음, 너무 많이 구입하는 거 아냐?”

“괜찮아.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이렇게 필요한 것을 충분하게 구입한 후 여행하는 게 좋아. 안 그래?”

“그…그건 그렇지만 이것들을 다 어떻게 가지고 가려고 그래? 마차라도 구입할 거야?”

“아니, 더 좋은 게 있어.”

츠츠츠.

보통 5서클 정도 되는 마법사라면 남들의 이목이 있기에 마법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준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기에 물건을 구입하고는 바로 아공간을 열어 그 속에다가 집어넣었다.

“아공간은 언제 생성한 거야?”

“어젯밤에 급하게 만들었지.”

“정말 대단해.”

“후후, 칭찬이지?”

“손님, 마법사셨습니까?”

“그렇소. 뭐 잘못된 거라도 있소?”

“어…없습니다.”

준이 마법을 사용하는 모습을 본 상인들은 접근하지 않았다. 상인들은 보통 사람이라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를 근본적으로 두려워하였다.

그렇게 준은 시장을 돌면서 필요한 것들이 보이면 대량으로 구입해버렸다. 야영에 필요한 천막과 담요를 비롯해 냄비 십여 개와 대형 솥, 각종 식기류까지 수십 명이 사용할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식료품 상점 안으로 들어가서는 각종 향신료와 소금을 넉넉하게 구입하였다.

“이보시오, 고기를 좀 사려는데 어디에 가면 있습니까?”

“나가시면 오른쪽에 있습니다.”

주인의 말대로 상점을 나와 오른쪽으로 보니 고기 상점이 있었다. 그곳에는 진열된 각종 고기가 많았다.

그중에서 부위별로 잘 나뉘어져 있는 소고기를 보았다. 마블링이 잘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아주 연하게 보였다.

“사료를 먹여 키우는 고기가 아니라서 부드럽고 맛있겠어.”

준은 백여 명이 한 달간은 먹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소고기를 부위별로 구입했다. 아공간 속에 넣어두면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기에 최대한 많은 양을 구입한 것이다.

보통은 살코기만 주로 구워 먹는데 비해 준은 여러 가지 소고기 요리를 만들 수 있었기에 등짝과 갈비, 등심, 양지, 사태, 등뼈까지도 저렴하게 구입하였다.

잘 먹지 않아 버리는 부위를 산다고 하자, 고기 상점 주인도 신이 나서 많이 주었다.

불고기를 해먹으려고 부드러운 살코기와 스테이크용 부위도 넉넉하게 구입하고 나왔다.

노점상들이 팔고 있는 스프와 빵도 수레째 사들였고, 각종 채소도 수레째 구입해버렸다.

엄청난 양을 구입했지만 아공간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였다.

물가가 싸기에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구입할 수 있었다. 어차피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비상시를 대비하는 편이 나을 것이기에 그리한 것이다. 비록 한꺼번에 많은 양을 구입해서 수백 골드나 나갔지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제 필요한 것들은 거의 다 구입한 것 같군. 아참, 대장간에 들러 몇 가지 더 구입하고 가야겠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대장간이 보였기에 그곳에서 몇 가지의 연장과 식칼, 단검을 구입하였다.

아공간이 없었더라면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양이었지만 아공간이 있었기에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이제 끝난 거야?”

“그래. 이제는 이곳을 떠나자.”

다가닥 다가닥.

그들은 플로렌스의 서문을 향해서 천천히 말을 몰았다.

패트릭과 세브리노도 준의 뒤를 따라 가면서 야영에 필요한 식량과 필요한 것들을 구입했다.

“스승님, 이제 이곳을 떠나려는 모양입니다.”

“너도 아공간을 보았지? 아공간을 가지고 있으려면 최소 6서클은 되어야 한다.”

“예, 스승님의 마법실력보다도 높았던 것 같습니다.”

“비록 그가 나보다는 서클이 높아도 마법은 전투마법과 생활마법, 마법진과 소환술 등 그 사용범위가 다양하단다. 다른 부문에서는 내가 더 많이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스승님.”

“우리도 야영에 필요한 것을 충분히 준비했으니 서둘러 추격하자.”

이들은 준이 타고 있는 노페르슈롱보다는 못하지만 제법 괜찮은 말을 타고 뒤를 추격하였다.

준과 글리아나는 얼마 후 성문에 도착하였고, 기사 신분패를 보이는 것만으로 손쉽게 나갈 수 있었다.

두두두두.

성문을 나선 그들은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준의 옆에는 글리아나만 있어서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기에 마음 놓고 속도를 높였다.

노페르슈롱도 그동안 제대로 달려 보지 못하였는데, 이참에 마음껏 달릴 수 있었다.

두 마리의 말이 빠르게 달렸기에 흙먼지가 제법 일어났지만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자 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면서 대지가 붉게 물들었다.

“워워… 글리아나, 석양이 너무 아름답지 않아?”

“정말 아름다워.”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이 근처에 야영을 해야겠어.”

“주위가 온통 평지이니 길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야영을 하는 게 좋겠어.”

“나도 그렇게 하려고 했어. 저기쯤이 좋겠군.”

그들은 길에서 50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큰 바위는 없었지만 제법 돌이 많은 곳이었다.

야영을 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안전이었다. 이곳은 무법천지로, 언제 어디에서 몬스터가 출몰할지 몰랐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공격해오기도 한다. 그래서 그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마법을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