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35화 (35/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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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도시 올가

“틀림없구나.”

“예, 이곳까지 가져오느라 무척 힘들었어요.”

“당연히 그랬을 거다.”

“그런데 제가 가져올 거란 걸 도적들이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건 조금만 생각해봐도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란다.”

“어…어떻게요?”

“아리안느야, 너도 생각해보아라. 네 오라버니인 렉스가 수련 도중에 마나가 뒤틀리면서 사실상 폐인이나 마찬가지인 상태가 되어 침대에 누워 있지 않느냐. 또한 켈리온 자작에게 최근에 레드드래곤의 드래곤하트를 입수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건 다들 뜬소문이라 생각하고 있었잖아요?”

“그렇지만 사실로 믿고 있는 자들도 있게 마련이야. 마나가 뒤틀려 폐인이 되면 마나석이나 드래곤하트 같은 물건이 아니고선 치료가 되지 않는다.”

“그건 그렇지만…….”

“안다. 어쨌든 그런 귀중한 물건을 아무에게나 의뢰할 수도 없는 일이고 해서 네가 직접 켈리온 자작에게 갔다 온 것이 아니겠니?”

“오빠를 구하는 일인데 제가 갔다 오는 게 당연해요.”

“안다, 네 마음. 그렇기에 도적놈들이 곳곳에서 너를 사로잡으려고 한 것이지. 레드드래곤의 드래곤하트를 노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

“아빠, 이곳으로 되돌아오기까지 힘들었지만, 준 경이 아니었더라면 돌아오지도 못했을 거예요.”

“아, 그 뮤란 대륙인 말이냐?”

“그…그걸 아빠도 알고 계셨네요?”

“켈리온 자작에게서 그에 관한 보고를 듣긴 들었단다. 그에게는 내가 별도로 성의를 표할 테니 걱정 말거라.”

“우리가 그 사람을 거두는 건 어때요?”

“뮤란 대륙인을 말이냐?”

“예, 검술실력도 뛰어나지만 마법까지 익혔어요.”

“하긴, 켈리온 자작에게서 이미 기사의 신분증까지 받았다고 하니 짐작이 되는구나. 하지만 출신이 불분명하니, 그게 걱정이구나.”

“그건 그렇지만, 그 사람은 제 목숨도 구해주었어요.”

“음, 그렇게까지 이야기한다면 적당한 자리를 한번 찾아보마.”

“고마워요, 아빠.”

“일단 드래곤하트가 들어왔으니 신관과 마법사를 불러 너희 오라버니를 치료하고 보자꾸나.”

“예.”

아리안느보다 세 살이 많은 렉스는 1년이 다 되도록 침대에 누워 있었다.

렉스가 누워 있는 방에 아케비안 공작과 아리안느가 들어서자 병수발을 들던 하녀 5명이 일제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공작은 하녀장인 멜리나에게 말하였다.

“멜리나, 렉스의 상태는 어떤가?”

“어제와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조금 전에 잠드셨습니다.”

“으음, 알았다. 너희들은 잠시 밖에 나가 있거라.”

“예, 공작각하.”

멜리나와 하녀들은 공작에게 인사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아케비안 공작은 소드익스퍼트 중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던 아들이 침대에 누워 있는 걸 보니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이제 곧 치료가 될 것이라 생각하니 이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는 잠들어 있는 아들의 손을 이불 속에서 꺼내어 잡아주었다.

아직 깊은 잠에 들지 않았는지 렉스가 눈을 떴다.

“아들아, 내가 잠을 깨운 모양이구나.”

“아닙니다, 아버지.”

“누가 왔는지 보겠니?”

렉스는 아버지의 옆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고는 환하게 웃었다.

“오빠, 반가워요.”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생아, 돌아왔구나.”

“네, 오빠. 이제 곧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을 거예요.”

“그…그럼 그것을 가져온 거니?”

“네, 이제 신관과 마법사가 오면 바로 치료해줄 거예요.”

“아, 내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너무나 고맙다, 아리안느.”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오빠.”

“아니다. 너무 고맙구나. 오라비가 제대로 널 보살펴주지도 못했는데…….”

주르륵.

아리안느는 눈물을 흘리면서 상체를 숙여 렉스를 껴안았고, 그는 힘겹게 손을 들어 아리안느의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잘 돌아왔구나, 아리안느.”

“그래요, 오빠.”

“이번 여행에서 많은 것을 얻은 것 같구나.”

“그렇게 보여요?”

“그래. 몇 달 전의 네가 아닌 것 같아. 훨씬 성숙해진 것 같구나.”

아리안느와 렉스가 다정하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을 때 방 안으로 두 사람이 들어왔다.

“공작각하, 저희들을 찾으셨습니까?”

“어서들 오시오.”

화려하고 중후한 대신관 복장을 한 지오반니 대신관과 6서클 마법사 아스틴이었다.

아케비안 공작령은 왕국 안에 있는 소왕국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기에 대신관과 고위 마법사를 곁에 두고 있었다.

“아리안느가 드래곤하트를 가져왔으니, 렉스를 치료할 수 있지요?”

아케비안 공작의 말에 지오반니 대신관이 먼저 대답하였다.

“허허허. 그것만 있다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각하.”

“그렇습니다, 각하. 대신관의 신성력과 제 회복마법이라면 충분합니다.”

“알겠소. 그럼 이것을 줄 테니 당장 치료해주시오.”

아케비안 공작은 보석함을 지오반니 대신관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든 대신관은 마법사 아스틴을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녀들은 방 안으로 들어와라.”

“예, 대신관님.”

멜리나와 하녀들이 다시 들어왔다.

“하녀들은 즉시 렉스 님의 옷을 전부 벗겨라.”

“예, 대신관님.”

하녀들이 재빨리 움직여 침대에 누워 있는 렉스의 옷을 전부 벗겼다.

“너희들은 잠시 뒤로 물러서 있거라.”

“예.”

멜리나와 하녀들이 침대에서 물러나자 대신관은 레드드래곤의 드래곤하트를 렉스의 가슴에 올려놓고는 물러났다.

그런 후 그는 성직자의 신성력을 펼쳤다.

“위대하신 벨리카 신이시여, 당신의 종으로서 부탁드리옵니다. 연약한 종들을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큐어 디지즈(Cure disease)!”

츠츠츠.

기이한 빛이 대신관의 양손에서 흘러나와 드래곤하트 속에 스며들었다. 질병을 치료하는 신성력이었다.

드래곤하트에서 훨씬 밝은 빛이 흘러나와 렉스의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은 지오반니는 아스틴을 쳐다보았다. 아스틴은 그런 대신관의 눈빛을 마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오반니 대신관,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이제는 제가 나설 차례군요.”

렉스 앞으로 걸어간 아스틴은 양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리고는 양손을 천천히 가슴 위로 치켜들면서 외쳤다.

“마나를 숭배하는 자가 말하노니 나의 의지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리커버리(Ricovery)!”

츠츠츠.

6서클인 아스틴이 9서클의 절대마법이라는 회복마법을 펼쳤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드래곤하트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마법적인 수식은 알고 있었지만 9서클의 절대마법이라 6서클의 실력으로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드래곤하트의 막대한 마나가 그걸 가능하게 해줄 것이었다.

대신관의 신성력에 9서클의 절대마법까지 펼쳐지자 렉스의 전신은 눈부신 빛으로 휩싸였고, 얼마 후 스르륵 빛이 줄어들더니 소멸해버렸다.

눈부신 빛만 아니었다면 별반 달라 보일 것도 없이 그렇게 치료는 끝이 났다.

레드드래곤의 드래곤하트는 처음보다 절반 크기로 줄어들어 있었다.

아스틴 마법사는 렉스의 가슴에 올라와 있는 드래곤하트를 집어 아케비안 공작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공작각하, 이제 모든 치료가 끝났습니다. 그러니 이 드래곤하트를 잘 간직하십시오.”

“수고하셨소이다. 그런데 왜 렉스가 깨어나지 않는 것이오?”

“그건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곧 깨어날 겁니다.”

그때 눈꺼풀이 힘겹게 떠지면서 렉스가 깨어났다.

“렉스야, 이제 정신이 드느냐?”

“예, 몸이 편안해졌어요.”

“렉스 님, 1년 동안 침대에 누워계셨으니 갑자기 무리하면 안 됩니다. 며칠간은 영양식을 먹으면서 체력을 회복하시면 예전의 건강한 몸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정말 고맙소, 아스틴 경.”

“지오반니 대신관의 신성력이 없었더라면 힘들었을 겁니다.”

“지오반니 대신관, 정말 고맙소이다.”

“허허, 치료가 되었으니 정말 다행입니다. 며칠만 지나면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예, 이제는 하나도 아프지 않아요.”

“지오반니 대신관과 아스틴 경, 정말 수고 많았어요.”

“아…아닙니다. 이 모든 게 드래곤하트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공작각하.”

“그래도 두 분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공작각하.”

“내 벨리카 교단에 섭섭하지 않게 기부금을 낼 것이고, 아스틴 경에게도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마법연구를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재정지원을 해주겠소.”

“감사하옵니다, 공작각하.”

“감사드립니다, 공작각하.”

아케비안 공작이 렉스의 손을 잡아주고는 밖으로 나가자, 아리안느와 지오반니 대신관, 마법사 아스틴도 뒤따라 나갔다. 하녀들만 계속 이곳에 남아서 렉스의 수발을 들 뿐이었다.

준과 글리아나는 대기실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셀카 집사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말하였다.

“공작각하께서 집무실에서 기다리십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알겠소.”

준이 대답하자 글리아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셀카 집사의 뒤를 따라 긴 복도를 이동하자 드디어 공작의 집무실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가 공작각하의 집무실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똑똑.

셀카 집사는 먼저 노크를 한 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곧 다시 나와 손짓을 하면서 말하였다.

“지금 만나시겠답니다.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고맙소. 그럼.”

준이 안으로 들어가자 그 뒤를 글리아나가 따라 들어갔다.

아케비안 공작의 집무실은 대리석으로 치장되어 있었으며,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불빛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거대한 집무실 책상 위에는 서류 더미가 쌓여 있었는데, 공작이 앉아서 그것을 보고 있었다.

집무실의 벽에는 그림이 몇 점 걸려 있었으며, 조각품도 눈에 띄었다.

엔틱 가구와 테이블이 가운데 놓여 있었다.

준과 글리아나가 가만히 서 있자 공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서류를 보느라 늦었구려. 우선 소파에 앉으시오.”

“예, 감사합니다.”

준이 대답하면서 먼저 소파에 앉자, 글리아나도 말없이 준의 옆자리에 앉았다.

이윽고 서류를 검토 중이던 아케비안 공작이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왔다.

공작은 180cm의 키에 65kg 정도로 호리호리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금발에 얼굴의 이목구비가 뚜렷해 잘생긴 편이였으며, 특히 맑은 눈동자와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나이는 40대 후반으로, 중후한 멋을 내뿜는 사람이었다.

아케비안 공작이 가운데 소파에 앉으면서 준과 글리아나의 얼굴을 보고는 순간 눈빛이 번뜩이다가 거짓말처럼 부드럽게 돌아왔다.

“내가 듣기로 이번에 아리안느를 위험에서 구해주었다던데, 맞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외모를 보니 뮤란 대륙인 같은데?”

“그렇습니다.”

“뮤란 대륙에서 이곳 마케리안 대륙으로 건너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올 수 있었소?”

“제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라 부모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준이 지어낸 이야기를 시작했다.

준의 부모가 대해양에서 해적선에 납치되어 항해하다가 폭풍우를 만나 배가 난파되었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운 좋게 이곳 마케리안 대륙으로 건너올 수 있었다. 내륙으로 떠돌다가 정착한 곳이 고요의 숲 끝자락이었고, 그곳에서 몇 달 후 태어난 것이 준이었다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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