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32화 (32/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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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도시 올가

두두두두.

준 일행은 그제야 약간의 속도를 높여 달리기 시작했고, 흙먼지가 일었다.

폭이 12m 정도 되는 넓은 길이 잘 닦여져 있었기에 이동하는 게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다만 험한 길이다 보니 흙먼지가 많이 일었다.

석양이 질 때까지 그렇게 달리다가 그들은 한적한 풀밭에 야영을 하게 되었다.

기병들은 말에서 내려 각자 야영 준비를 서둘렀다.

모닥불을 지피고 비를 올린 뒤 물을 부었다. 한쪽에서는 천막을 치고 말들을 묶어놓을 말뚝을 땅에 박았다.

준은 마법자루 속에서 장작을 꺼내어 잘 쌓고는 그 사이사이에 마른 풀을 꽂았다. 그러고는 나뭇가지 하나를 손가락으로 비볐다.

화르르륵.

내공을 일으켜 나뭇가지에 불을 피우더니 장작 속에 집어넣었다.

활활활.

밤은 제법 쌀쌀한 편이었지만 이렇게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자 기분 좋은 훈훈함이 느껴졌다.

준은 녹색 빛깔의 풀들이 돋아나 있는 풀 위에 모포를 두 장 깔고는 그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아리안느는 하루 종일 말을 타고 이동하다 보니 몸이 많이 피곤해서 천막 속에 들어가 누웠다.

글리아나는 아리안느 옆에 앉아 있으면서도 두 눈은 준을 관찰하였다.

‘왜 저렇게 어려운 자세를 취하고 앉아 있는 걸까?’

눈까지 감고서 생각에 든 준은 한참동안 똑같은 자세를 유지하였다.

보글보글.

기병들이 끓인 스프는 구수한 냄새를 사방에 퍼뜨렸다.

스프가 맛있게 끓여졌는지 침을 삼키는 자들도 보였다.

50명의 기병들 조장인 칸다는 기병 두 명을 이끌고 아리안느가 머물고 있는 천막으로 다가와 말하였다.

“소공녀님, 식사를 가져 왔습니다.”

“그쪽에 내려놓으세요.”

“예. 커슨, 저쪽에 내려놓아라.”

“예.”

커슨은 사각 쟁반을 한쪽에 내려놓고 천막 밖으로 나갔다.

“소공녀님, 시키실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알았어요.”

칸다 조장이 물러가자 아리안느와 글리아나는 기병들이 가져온 쟁반을 내려다보았다.

빵과 스프, 샐러드와 과일 세 가지였다.

준에게도 기병들이 식사를 가져와 내려놓았다.

기병들도 십여 명씩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했다.

쩝쩝쩝.

10일치 식량을 준비했던 준이지만 기병들이 저녁 식사를 가져왔기에 따로 준비하지 않고 그걸 맛있게 먹었다.

식사가 끝이 나고 향긋한 차를 한잔 마신 준은 더 이상 특별히 할 일이 없었기에 대거 한 자루를 마법주머니 속에서 꺼내었다. 화려하게 장식된 대거가 아닌, 평민들이나 용병들이 쓰는 중급의 대거였다.

스으윽.

검집에서 나온 대거는 날이 잘 서 있었다.

준은 마법주머니 속에서 작은 유리병 하나와 깃털펜을 꺼내었다. 그러고는 유리병 뚜껑을 열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액체를 깃털펜으로 찍어서 룬문자와 기이한 도형을 칼날에 빼곡하게 그렸다.

츠츠츠.

황금색 룬문자와 도형들이 빛을 내면서 사라졌다.

대거 칼날 한쪽 면을 다 그린 후 이번에는 뒷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거의 양날의 면에 빼곡히 룬문자와 도형이 새겨졌지만 이내 모두 사라졌다.

준은 유리병 뚜껑을 잘 닫은 다음 깃털펜을 같이 마법주머니 속에 넣고는 기이한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대거에서 황금색 빛이 내뿜어지면서 준의 손바닥에서 허공으로 스르르 떠올랐다.

기이한 마법 주문을 약 10분간 외우다가 멈추자, 그제야 대거에서 흘러나오던 황금색 빛이 사라지면서 스르르 다시 준의 손바닥에 내려앉았다.

그냥 평범해 보이는 대거였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준이 대거에 마법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후후후, 나의 첫 아티팩트가 완성되었어. 실험해보면 좋겠지만 눈들이 많으니 다음에 해야겠군.”

준은 대거를 배에 사선으로 꽂아두고는 가부좌를 틀고 다시 명상에 들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 밤이 깊어졌다.

아우우우우!

갑자기 늑대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굶주린 늑대 무리가 인간의 냄새를 맡고 파도가 밀려오듯 몰려왔다.

늑대 울음소리에 기병들은 졸다가 깨어나 긴장하면서 무기를 꺼내들었다. 아리안느와 글리아나도 선잠이 들었다가 깨어났다.

“늑대가 몰려오니 무기를 들어라.”

“늑대다, 늑대!”

“각자 맡은 곳을 지켜라.”

조장인 칸다의 말에 기병들은 무기를 꺼내 들고 각자 맡은 위치로 이동했다.

준은 늑대들이 불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야영지를 중심으로 30m 정도의 큰 원을 그리듯이 8곳에 장작을 쌓아서 불을 붙였다.

활활활.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면서 칠흑같이 어두웠던 주위가 환해졌다. 그러자 냄새를 맡고 접근하던 늑대 무리가 주춤하면서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하였다.

크르르.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던 늑대들은 옆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어슬렁거렸다.

준은 이 세상으로 건너온 후 처음 늑대를 보았는데, 이전의 세상에서 보던 늑대들보다 몸집이 두 배는 훨씬 넘어보였다.

“으음, 이렇게 큰 늑대들은 처음 보는군. 마치 사자 같아.”

늑대는 힘센 동물로, 머리가 넓적하고 다리는 건장하고 길며, 우람하면서도 좁은 어깨를 하고 있었다. 갈색 털을 가진 늑대들은 몸길이가 2.5m에 꼬리까지 포함하면 4m가 넘어보였으며, 몸무게는 적어도 120kg은 넘게 나갈 듯했다.

수는 약 60여 마리로 보였으며, 늑대 무리 중에서도 회색 털을 가진 늑대가 유독 눈에 띄었다.

갈색 털을 가진 늑대들보다 몸집이 배 가까이 되었으며, 눈빛이 번뜩이는 게 무시무시해 보였다.

이히힝!

말들이 늑대를 보고는 겁을 집어먹고 울면서 불안해했다. 몇 명의 기병들이 그런 말들을 진정 시키느라 진땀을 흘렸다.

큰 몸집에도 불구하고 늑대들은 선천적으로 불을 두려워하다 보니 쉽게 야영지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늑대들을 죽여야 한다. 쏴라!”

조장인 칸다의 명령에 보우를 늑대에게 겨누고 있던 기병 10명이 일제히 화살을 쏘았다.

투투투퉁!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며 밤하늘을 날아갔다.

늑대들은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한두 발도 아니고 무려 열 발이나 되었기에 그중에 세 발이 늑대에게 격중되었다.

까울!

케에엥!

늑대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지만 죽지는 않았다. 오히려 늑대들의 화만 부추긴 꼴이 되고 말았다.

“계속 쏴라!”

“예, 알겠습니다. 쏴라!”

투투퉁!

또다시 화살이 날아오자 영악한 늑대들이 재빨리 피하였기에 화살은 모두 빗나가버렸다.

“이…이런 제기랄! 모두 피해버렸어.”

크르르, 컹컹!

늑대들의 대장인 회색늑대가 울부짖자 갈색늑대들이 화살의 사정거리 밖으로 물러났다.

보우를 들고 있던 기병들도 보우를 내리고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

늑대들은 풀밭에 앉아 앞다리를 앞으로 내뻗으면서 하품을 하였다. 상황을 모른 채 그 모습만 보았다면 아주 한가로워 보일 풍경이었다.

기병들은 언제 늑대들이 공격해 올지 몰라서 긴장했기에 피로가 급격하게 밀려왔다.

그렇게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밤이 깊어지자 8곳의 모닥불이 점점 약해졌다. 주위가 온통 풀밭이고, 8곳에나 모닥불을 피웠기에 준비된 장작이 더 이상 없었다.

크르르릉.

회색늑대가 먼저 일어나 으르렁거리자 갈색늑대들도 모두 일어나더니 야영지를 향해 달려왔다.

“어엇? 늑대들이 달려온다! 쏴라!”

투투퉁.

화살이 속도를 내면서 달려오던 늑대들에게 날아갔지만 늑대들은 머리와 몸을 흔들면서 피하였다.

늑대들이 너무 가까이 접근하였기에 기병들은 어쩔 수 없이 허리에 메고 있던 검을 꺼내들고 달려 나갔다.

슈가각, 파팟!

컹컹, 깨갱!

기병들과 늑대들이 서로 뒤섞이면서 싸우기 시작했다.

날쌔고 도약력이 뛰어난 늑대들에게 물린 기병들 몇 명이 피를 흘리면서 쓰러졌다.

회색늑대의 활약은 눈부실 정도였다.

“소공녀님, 천막 밖으로 나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니 절대로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아…알겠어요.”

“글리아나, 옆에서 소공녀님을 지켜줘.”

글리아나는 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준은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아리안느를 글리아나에게 맡기고  앞으로 나섰다.

세 마리의 갈색늑대들이 연약해 보이는 아리안느를 향해 달려오자 준은 늑대들의 앞을 가로 막으면서 대거를 뽑아들었다.

“늑대 불고기를 만들어버리겠어. 체인 파이어(Chain fire)!”

화르르.

쇠사슬처럼 불의 사슬이 대거의 칼날 끝에 형성되었다.

촤르르르.

마치 리본체조 할 때 쓰는 리본처럼 허공에 길게 늘어난 불의 사슬은 무려 20m가 넘었다.

스윽.

준의 손짓에 따라 불의 사슬이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달려오던 늑대는 그것에 살짝 스쳤을 뿐인데도 온몸에 불이 붙었다.

케에엥!

늑대는 비명을 지르면서 풀밭에 뒹굴었지만 불은 꺼지지 않고 계속 늑대를 불태웠다. 그렇게 몇 초 지나지 않아 그 늑대는 검게 타버렸다.

털썩.

세 마리의 갈색늑대가 허무하게 불타버렸다.

준은 경공을 시전해 격전지로 뛰어들었다.

“뒤로 물러나라! 어서!”

준의 외침에 늑대와 싸우던 기병들이 불의 사슬을 보고는 눈이 커지며 뒤로 물러나자, 준은 마음껏 불의 사슬을 휘둘렀다.

캐깽!

여기저기에 있던 늑대들이 몸에 불어 날뛰다가 불에 타 쓰러졌다.

영원할 줄 알았던 불의 사슬은 5분간의 유효시간을 다 소비하고 소멸해버렸다.

불의 사슬에 겁을 집어먹고 물러서던 늑대들이 다시 준에게 달려들었다.

“훙! 번개 맛 좀 봐라. 체인 라이트닝(Chain lightning)!”

파지지직!

대거의 칼날 끝에서 번개가 뻗어 나와 늑대를 덮쳤다.

케엥, 컹!

마법의 번개를 맞은 늑대들은 부르르 떨다가 쓰러졌다. 감전되어 쇼크사한 것이다.

순식간에 준 혼자서 그렇게 늑대 15마리를 처치해버렸다.

“우와, 기사님 혼자서 대단하시다!”

“저…저런 무기는 처음 봐!”

기병들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준은 피식거렸다.

“후후후, 대거에 새겨진 두 가지의 공격마법은 사용해보았으니 이제 마지막 마법을 펼쳐봐야겠군.”

츠츠츠츠.

대거의 칼날 끝에 마법으로 형성시킨 투명한 칼날이 15m나 늘어났다. 신기한 것은 그 칼날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투명술 마법으로 인해서 칼날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20cm 정도 되는 대거의 날만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바로 대거의 무서운 점이었다.

크르릉, 컹컹!

회색늑대의 울음소리에 갈색늑대들이 다시 달려들자, 준은 대거를 휘두르면서 검술을 펼쳤다.

커엉!

갈색늑대는 도약한 상태에서 몸통이 두 동강나버렸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쉬쉬쉭, 파팟!

준은 보법을 밟으며 전진하면서 마음껏 스테이크 검술을 펼쳤고, 제법 거리가 있었지만 늑대들은 보이지 않는 마법의 칼날에 의해 다리나 머리, 몸통이 잘리면서 쓰러졌다.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 수준이었다.

회색늑대가 울부짖었을 때는 이미 20마리가 넘는 갈색늑대가 쓰러진 후였다.

살아남은 갈색늑대는 겨우 14마리였다.

회색늑대는 살기를 담은 눈빛으로 준을 노려보고는 뒤돌아 도망쳤고, 갈색늑대들도 대장늑대를 따라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칸다 조장.”

“예, 기사님!”

준의 호출에 칸다가 뒤쪽에서 뛰어왔다.

“죽은 기병들과 늑대들을 한쪽에 모아라.”

“예, 알겠습니다.”

기병들은 죽은 동료들과 죽은 늑대를 한곳에 모았다.

죽은 기병들을 한곳에 모으자 19명이나 되었기에 살아남은 기병들은 죽은 동료들을 내려다보면서 침울함을 감추지 못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피해가 많았다.

기병들이 땅에 묻어주어야 하는데 변변한 기구가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을 때, 준이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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