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31화 (31/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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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도시 올가

“흥, 이놈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안 되겠군.”

화가 치민 준은 보법을 밟으면서 자경대원들에게 스트레이트를 먹였다.

퍼퍼퍼퍽!

“크억!”

“으악! 살려줘!”

털썩!

준이 너무 빨리 움직였기에 제대로 상황 판단을 하지도 못한 채 자경대원 6명이 배를 움켜쥐면서 고꾸라졌다.

나머지 대원들의 눈이 커졌다.

쉬이잇, 퍼퍼퍼퍽!

부드럽지만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준이 움직이면서 스트레이트를 먹이자, 자경대원들은 미처 방어도 하지 못하고 우수수 쓰러졌다. 눈 몇 번 껌뻑거릴 정도의 짧은 시간에 자경대원들이 전부 쓰러지고, 남은 것은 월슨 하나였다.

“이…이게…….”

월슨은 자신의 눈으로 보고서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쉬이잇.

준이 마치 고무줄처럼 주욱 늘어나는 것 같더니 어느새 월슨 앞에 이동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배에 스트레이트를 연타로 먹였다.

“끄으으!”

털썩!

준의 주먹이 워낙 강펀치였기에 월슨은 비명을 지르면서 고꾸라졌지만 기절하지는 않았다.

뮤트의 주인과 로안은 눈이 커졌다. 준 혼자서 20명의 자경대원들을 간단하게 처리하는 걸 보고는 공포에 질린 것이다.

“로안, 너는 다시 뛰어가 자경대원들을 불러 오너라.”

“예, 알겠습니다.”

분위기를 파악한 로안은 즉시 뒤돌아 달려갔다.

“주인은 이자들을 묶어서 1층으로 끌고 오고, 너는 차를 가져와라.”

“예, 알겠습니다.”

뮤트 주인이 눈짓을 하자 노예들이 끈으로 자경대원들을 전부 묶어 1층으로 데려왔다.

노예 한 명이 김이 모락 피어오르는 따끈한 차를 가져와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아리안느 님, 차 한잔하십시오.”

“예, 고마워요.”

준과 아리안느, 글리아나는 의자에 앉아 태연하게 차를 마셨다. 그들의 앞에는 끈에 묶인 자경대원들이 꿇어 앉아 있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자경대원 100명이 무장하여 몰려왔다. 그들은 뮤트를 포위하였다.

가죽갑옷을 입고 허리에 롱소드를 맨 백인대장 올거가 자경대원 5명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스윽.

올거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1층 한쪽에는 무릎을 꿇은 자경대원 20명과 흑의인 4명이 있었다. 뮤트 주인과 노예들이 서 있었고, 준 일행은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네가 자경대원들을 묶었느냐?”

“너는 누구냐?”

“나는 자경대장인 올거라 한다.”

“나는 켈리온 자작님의 기사 준이라 한다.”

스윽.

준은 품에서 기사 신분패를 꺼내보였다.

올거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일개 자경대원이 감히 기사에게 강도짓을 했으니 쉽게 넘어갈 사건이 아니었다.

‘으음, 멍청한 것들. 내 이럴 줄 알았어. 재수 없게 기사를 건드리다니. 젠장!’

“기사님이셨군요. 그런데 왜 자경대원들이 전부 묶여 있는 것입니까?”

“흥, 저기 흑의를 입고 있는 놈들이 방으로 들어와 강도짓을 하다가 붙잡혔는데, 자경대원들이 나타나 오히려 나를 강도라 덮어씌우더군.”

“예? 그…그럴 리가요?”

“성주를 만나고 싶으니 당장 모셔 와라.”

“성주님을요?”

“그렇다. 여기에는 귀족의 따님께서 계신다. 저놈들 때문에 많이 놀라셨다.”

“알겠습니다. 페튼은 어서 가서 성주님을 모셔 와라.”

“예, 알겠습니다.”

페튼이라는 자는 뮤트를 떠나 말을 타고 성주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두두두두.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조용하던 곳에서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왈칵.

뮤트의 문을 열고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한 성주가 들어섰다. 그의 뒤로는 가죽갑옷을 입은 10명의 병사가 서 있었다.

“누가 나를 찾았느냐?”

“내가 성주를 찾았소.”

윈스톤 성의 성주인 움베르토 탈리가 고개를 돌려 준을 쳐다보자, 준도 그를 쳐다보았다.

40대 초반의 나이에 머리는 금발이며, 구레나룻이 멋졌다. 호탕한 기사의 모습이었다.

“자네는 누군가?”

스윽.

준은 그에게 기사 신분패를 꺼내보였다.

“나는 켈리온 자작님의 기사 준이라 하오.”

“켈리온 자작님의 기사? 그런데 이곳까지 무슨 일로?”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경대원이 강도짓을 했다는 게 중요하오.”

“으음, 그럼 저기에 있는 자경대원들이 모두 강도짓을 했다는 말인가?”

“아니오. 흑의를 입은 4명이 강도들이오. 신고를 받고 온 자경대원 20명이 오히려 나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기에 저렇게 한 것이오.”

“으음, 그럴 리가 없다.”

“흥, 자신의 수하라 감싸는 것이오?”

“뭐라? 말을 함부로 하지 마라.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서 그러는 거다.”

“흥! 이렇게 증거가 있는데 오해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그건 조사해보면 알게 되겠지.”

“탈리 경, 그럴 것 없어요.”

가만히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아리안느가 로브의 후드를 벗으면서 말하였다.

아리안느의 얼굴을 본 탈리는 눈이 두 배나 커졌다.

“아…아리안느 소공녀님께서 이곳에는 어떻게?”

“탈리 경, 나를 알아보기는 하는군요?”

“허억! 소공녀님, 제가 어떻게 소공녀님을 모를 수 있겠습니까? 안 그래도 공작각하께서 걱정을 많이 하시고 계십니다.”

“흥, 저자들이 감히 나에게 강도짓을 하였는데,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하죠?”

“저놈들을 당장 성으로 끌고 가 감옥에 집어넣어라! 어서!”

“예, 성주님.”

탈리의 명을 받은 그들은 신속하게 그자들을 끌고 사라졌다.

탈리는 아리안느를 보며 비지땀을 흘렸다.

“소공녀님, 여기에 계실 것이 아니라 성으로 가시죠.”

“더 이상 여기에서 묵기 힘들게 되었는데 잘되었군요. 가요.”

아케비안 공작령은 소왕국이나 마찬가지였다. 공작이 임명한 귀족들도 상당하며, 일개 성주를 맡고 있는 기사 탈리는 가장 낮은 귀족인 남작에도 못 미치는 신분이었다.

소공녀는 아케비안 공작령에서만큼은 공주나 마찬가지의 높은 신분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소공녀을 보고 알아서 기는 게 당연했다.

성주를 따라 아리안느와 준, 글리아나는 윈스톤 내성으로 향하였다.

성주가 머무는 내성이라서 그런지 뮤트보다는 모든 면에서 화려했다.

“소공녀님, 일단은 시간이 늦었으니 쉬시고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그래요, 탈리 경.”

“그런데 옆에 있는 분은 누구신지?”

탈리는 인간 같지 않은 아름다움을 가진 글리아나를 보며 말했다. 이에 아리안느가 대답하였다.

“나의 신변을 경호해주는 사람이에요.”

“아, 그러시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럼 편안하게 쉬십시오.”

준은 아리안느와 같은 방에 있을 수 없어서 맞은편 방에서 하룻밤 머물게 되었다.

아리안느와 글리아나는 푹신한 침대에 누워 다시 잠을 청하였고, 준은 잠이 올 것 같지 않아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었다.

어두웠던 창문 너머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아리안느와 글리아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였고, 명상에 들어 있던 준도 눈을 뜨고는 가부좌를 하느라 굳어진 몸을 스트레칭으로 풀어주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자 준이 대답하였다.

“기사님, 아침 식사가 준비 되었습니다. 성주님께서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았다, 곧 나가마.”

원래 준은 말을 낮추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어차피 이곳은 신분 사회이기 때문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말을 낮추어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말을 낮추기로 했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자 하인이 준을 기다리고 있다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내해다오.”

“예, 알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준은 하인을 따라 복도를 걸어갔다.

하인이 우측에 있는 직사각형의 거대한 문을 열어주었다.

긴 테이블의 가운데 의자에는 아리안느가 앉아 있었으며, 우측에는 글리아나가, 좌측에는 윈스톤 성의 성주이면서 기사인 탈리가 앉아 있었다.

“어서 오세요, 준 경.”

“편안하게 쉬셨습니까?”

“예, 푹 잤어요.”

“그러셨다니 다행입니다.”

“식사를 해야 하니 자리에 앉으세요.”

“예, 알겠습니다.”

준이 자리에 앉아 하녀들이 요리사가 만든 식사를 가져와 테이블에 차렸다.

은 접시에 놓인 20여 가지의 요리는 제법 신경을 썼는지 푸짐했다.

우물우물.

준은 식사 예법은 잘 몰랐지만 소리 내지 않고 눈치껏 식사를 시작하였다. 글리아나는 육류는 피하고 되도록 채소와 각종 과일과 샐러드로 식사를 했다. 탈리는 대식가인지 제일 먼저 고기를 뜯어 먹기 시작하더니, 각가지의 요리들을 맛있게 먹어치웠다.

그들은 말없이 오직 먹는 것에만 집중하였다.

빈 접시가 치워지자 이번에는 향기로운 차가 테이블에 놓였다.

그제야 탈리가 입을 열었다.

“소공녀님,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수하들이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실례를 범했습니다.”

“아니에요. 나의 신분을 밝히지 않아서 그렇게 된 일이니 그만 잊어버리세요.”

“감사합니다, 소공녀님. 그런데 왜 제가 있는 내성으로 통보하여 들어오지 않으셨습니까?”

“플로렌스로 급하게 돌아가야 했기에 그냥 여관에서 묵고 떠나려고 했어요.”

“아, 그러셨습니까? 소공녀님, 어젯밤에 제가 공작각하께 마법통신으로 보고를 올렸습니다.”

“잘했어요, 탈리 경.”

“플로렌스에서도 소공녀님을 모시기 위해서 기사단이 출발 하였을 테니 그들이 도착할 때까지 여기에서 머무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아니에요. 우린 아침을 먹고 바로 출발할 거예요. 중간에서 그들을 만나게 되겠죠.”

“음,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그럼 기병 50명을 지원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까지 신경써주다니, 고마워요.”

“아…아닙니다, 소공녀님. 당연히 그 정도는 도와드려야죠.”

“그건 그렇고 어제 강도짓을 한 자들과 자경대원들은 어떻게 처리할 거죠?”

“어떻게 처리하면 좋으시겠습니까?”

“나의 신분을 모르고 한 일이니 죽일 필요까지야 있겠어요? 다만 한동안은 혹독하게 훈련이나 시키세요.”

“하하, 감사합니다. 녀석들에게 혹독한 훈련을 시키겠습니다.”

“윈스톤에는 요즘에도 몬스터들이 쳐들어오나요?”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1년에 3, 4번은 쳐들어오곤 합니다.”

“영지민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써주세요.”

“소공녀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묵묵히 식사를 마친 준은 주방에 들러 5명이 10일간 먹을 식량과 물을 비롯해, 채소와 과일까지 넉넉하게 준비해 마법자루 속에 집어넣었다.

내성의 광장으로 나오니 가죽갑옷을 입은 기병 50명이 말을 타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리안느와 글리아나는 여행객들이 입는 회색로브를 겉에 입고 말을 타고 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준은 어제 구입했던 고급 품종의 말인 노페르슈롱의 등에 올랐다.

기병 25명이 먼저 앞장서서 이동을 시작하였고, 그 뒤를 아리안느와 글리아나, 준이 뒤따랐으며, 뒤쪽에도 기병 25명이 따라왔다.

그렇게 그들은 내성을 벗어나 윈스톤 성의 성문까지 이동하였다.

굳게 닫혀있던 성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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