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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도시 올가
다가닥 다가닥.
천천히 말을 타고 이동한 그들은 뮤트라는 곳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뮤트 앞에 말을 멈추자 출입구 옆에 서 있던 14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아리안느에게 다가와 말고삐를 잡았다.
준과 글리아나는 말에서 내려 말고삐를 소년에게 넘겨주었다.
“말에게 좋은 먹이를 먹이고, 목욕을 시켜다오.”
“예, 알겠습니다.”
끼이이이.
아리안느가 들어서자 갑자기 안이 조용해졌다. 술꾼 20여 명이 몹시 어수선하게 떠들다가 아리안느를 보고 입을 다물고 만 것이다.
꿀꺽.
어떤 이는 침까지 삼켰다.
‘저런 엄청난 미녀가!’
‘으음, 엄청나게 예쁘군.’
흔히 볼 수 없는 엄청난 미녀였기에 술꾼들의 눈이 커질 만 했다.
그 뒤에 들어온 글리아나를 보고는 침까지 주르륵 흘렸다. 일시적으로 사고가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아리안느도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한 미녀인데, 글리아나는 미의 여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스윽.
준이 마지막으로 들어서면서 끈적끈적한 기운을 느꼈다.
‘이…이것들이 감히 누구에게?’
화가 치민 준이 살기와 무시무시한 안광을 뿜어대며 술꾼들을 노려보자 모두들 고개를 돌려버렸다. 바 속에 들어가 있던 주인도 살기에 주눅이 들어 몸을 떨었다.
“이봐, 깨끗한 방 있나?”
“예. 몇 개나 필요하십니까?”
“2인실 하나와 1인실 하나를 주게.”
“아, 알겠습니다.”
“목욕 후 식사를 하고 싶은데 방으로 가져다 줄 수 있나?”
“예, 스테이크 요리와 샐러드로 올리겠습니다.”
“싱싱한 과일과 술 두 통도 준비해주게.”
“아, 알겠습니다. 당장 준비해드리겠습니다. 로안, 이분들을 206호실과 202호실로 안내해드리거라.”
“예, 저를 따라오십시오.”
로안이라는 소년이 앞장서자 준 일행은 그 뒤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206호실은 2인실이라 침대가 두 개 놓여 있었으며, 방도 상당히 깨끗한 편이었다.
“음, 이 정도면 나쁘지 않군요. 쉬십시오.”
“준 님도 들어가셔서 쉬세요.”
“조금 있다가 식사가 나올 겁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예, 고마워요.”
준은 로안의 안내를 받아 202호실로 향하였다.
그때, 근육질의 노예들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물통을 들고 와서 206호실로 들어가 안에 마련되어 있는 목간통에 뜨거운 물을 붓고 나왔다.
아리안느와 글리아나가 목욕할 물이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자 준이 문을 열어주었다.
그들은 방에 마련되어 있는 테이블에 요리를 차려 놓고 나갔다.
쩝쩝쩝, 와사삭.
준은 스테이크와 샐러드를 먹었다. 그런 후 바구니에 담겨 있는 과일을 집어 후식으로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포옹!
배가 든든해지자 술통의 마개를 열었는데, 경쾌한 소리가 났다.
“크흠흠, 좋구나.”
술 향기가 기막히게 좋았다. 황금색 빛깔에 꽃향기도 은은하게 나는 게 마음에 들었다.
주우욱.
한 모금 마셨더니 그윽했는데, 알코올 도수가 스카치위스키보다는 약간 떨어지는 30도 정도 되는 것 같았다.
한편, 206호실의 아리안느와 글리아나도 목욕을 마치고 나와 식사부터 하였다.
아리안느는 스테이크 요리를 먹기 시작하였고, 글리아나는 엘프라 육식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샐러드와 과일만 맛있게 잘 먹었다.
그녀들은 처음에는 약간 어색하였지만 같이 식사를 하며 서먹하던 사이가 조금씩 풀어지고 있었다.
마침 술이 한 통 있었기에, 아리안느가 마개를 따 잔에 부었다.
쪼르륵.
주우욱.
아리안느는 한잔 마셔보더니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한잔 주세요.”
“글리아나 님도 술을 드셔보셨어요?”
“예, 저도 가끔씩은 마시곤 했답니다.”
“그렇다면 한잔해보세요. 맛있어요.”
쪼르르.
술을 마신 후 글리아나는 활짝 웃었다.
“음, 무슨 술인지는 모르겠지만 향기롭고 맛있네요.”
“그렇죠? 한잔 더 하실래요?”
“주세요.”
그렇게 그녀들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한 통을 다 마셨다.
둘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안 그래도 목욕을 하고 난 후였기에 미모가 더욱 빛났다.
“글리아나 님은 아름다우신데 어떻게 하다가 여전사가 되셨어요?”
“우리 월계수 엘프 부족은 다른 엘프 부족들보다 전사가 많았어요. 어릴 때부터 보고 자라다 보니 저도 자연스럽게 보우를 쏘고, 검술과 마법을 익히면서 전사가 되었죠.”
“아아, 저는 보시다시피 연약해서… 정말 글리아나 님이 너무 부럽네요.”
“듣기로는 인간족의 귀족 중에서도 상위귀족인 공작의 따님이라던데, 어쩌다가 멀리까지 온 거예요?”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
아리안느가 자세한 것을 밝히지 않자 글리아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밤이 깊어지자 기름 등잔불이 꺼졌다. 아리안느와 글리아나는 각자 침대에 누워 잠에 빠졌고, 준은 자신의 방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명상에 들었다.
스윽.
그때였다.
202호실과 206호실의 나무 창문으로 조심스럽게 흑의를 입은 자가 접근하더니 대롱을 꺼내 불었다.
후우욱.
미세한 분말가루가 방 안으로 퍼지기 시작하자, 그자들은 환약을 하나씩 꺼내어 씹어 먹었다. 그리고 나무 창문을 손쉽게 소리 없이 열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흐흐흐, 잠들었겠지?”
“넌 누군데 허락도 없이 창으로 들어오느냐?”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으면서 202호실로 들어온 흑의인은 준의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허억, 잠들지 않았다니! 젠장!”
흑의인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배에 사선으로 꽂아 두었던 대거를 꺼내 휘둘렀다.
상체를 뒤로 젖히면서 가볍게 피한 준이 빠르게 스트레이트를 먹였다.
퍼억!
강펀치를 맞은 흑의인은 비틀거리더니 곧 주저앉았다. 중심이 흔들려 더 이상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넌 누구냐!”
“흐흐흐, 척 보면 알아야지. 에잇!”
흑의인이 또다시 대거를 휘두르면서 공격해왔지만 그런 어설픈 공격에 당할 준이 아니었다.
짜악.
준이 휘두른 손바닥에 뺨을 맞은 그는 2m를 훨훨 날아 떨어졌다. 입가가 찢어져 피가 흘러내리는 걸로 보아서는 제법 충격을 많이 받은 모양이었다.
“이렇게 강할 줄이야…….”
쉬이잇,
퍼억!
어느새 접근한 준이 그자의 배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끄으으, 쿨럭!”
땡그랑!
대거를 떨어뜨리면서 동시에 배를 움켜쥐던 그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면서 그대로 고꾸라졌다.
“이제는 말할 텐가? 아님 좀 더 맞고 말하겠나?”
“끄으, 말하겠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좋아, 들어보고 결정하겠다.”
그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랬다.
그들은 성으로 들어올 때부터 준 일행을 주시하였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성을 두 명이나 데리고 마시장에 들러 비싼 고급 품종인 노페르슈롱을 3마리나 구입하고는 다른 곳보다 조금 더 비싼 뮤트에 묵는 걸로 보아 돈이 제법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준은 이런 어설픈 놈들까지 설친다는 사실에 기가 막혀 웃음이 나왔다.
채채챙, 파팍!
그때 준의 귀에 금속음이 들렸다.
“으음, 206호실에도 놈들이 들어온 모양이군. 네놈의 동료들이 몇 명이나 되느냐?”
“뮤트 밖에서 대기하는 동료가 두 명이며, 202호실과 206호실에는 각각 한 명씩 들어왔습니다.”
“으음, 206호실로 앞장서라. 어서!”
“아…알겠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준의 살기가 담긴 눈빛에 공포를 느낀 그는 연신 살려달라고 하면서 준의 명령대로 움직였다.
206호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기름 등잔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아리안느는 침대에 앉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으며, 글리아나는 롱소드를 꺼내들고 서 있었다. 흑의인 한 명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걸로 봐서는 글리아나에게 당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피가 없는 걸로 봐서 죽이지는 않고 기절만 시킨 것 같았다.
“글리아나, 아리안느 님을 지켜줘서 고마워.”
“동료인데 당연히 지켜줘야지. 그곳에도 놈들이 들어 왔었나?”
“보시다시피 이렇게 끌고 왔지. 이놈들이 방에 불어 넣은 것은 마취제와 수면제가 섞인 가루인데, 괜찮아?”
“그렇게 위험한 독은 아니었지만 해독마법으로 간단하게 해독했어.”
“잘했어. 이제 놈들의 동료들을 끌어들여야겠군.”
준의 눈빛을 받은 흑의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창으로 고개를 내밀어 동료들을 손짓하였다.
두 명의 동료들은 창으로 들어오다가 깜짝 놀랐다. 준이 노려보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차창!
흑의를 입은 두 명은 롱소드를 꺼내 들었지만 준의 상대는 아니었다.
준은 어느새 그들에게 접근하여 배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끄으으…….”
“커억!”
그들은 각각 단발마의 비명을 지르면서 상체를 웅크리더니 하체에 힘이 빠져 주저앉았다.
준이 신문해본 결과 이들은 모두 윈스톤 성의 자경대원들이었다.
윈스톤 성은 드로이안 산맥 끝자락에 위치해 있었기에 지리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한 아케비안 공작은 성을 쌓고 성주로 기사를 임명하여 관리해오고 있었다.
평민이 약 1,500명, 유민과 노예가 약 500명 정도 되며, 병사는 50명에, 성주는 기사였다. 또한 자경대는 약 500명으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윈스톤 성은 어린아이와 노인까지 포함하면 약 3천 명 정도가 살고 있는 셈이었다.
한밤의 소동으로 인해서 주인까지 깨어나 달려왔다.
“이…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이놈들이 방에 침입하여 강도짓을 하였다.”
“으음, 어디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다행히 없다. 하지만 숙녀가 겁에 질렸다.”
“으음, 이놈들은 자경대에 넘길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흥, 이놈들도 자경대인데 무슨 소리냐?”
‘허억, 자경대원인 게 밝혀졌어!’
“그럼 자경대를 부르겠습니다.”
“당장 불러라.”
“예, 알겠습니다. 로안, 로안!”
“예, 주인님.”
로안이 주인의 호출에 즉시 달려왔다.
“너는 속히 뛰어가서 자경대를 불러오너라. 어서!”
“알겠습니다, 주인님.”
로안이 자경대원을 부르러 뛰어갔다.
뮤트의 주인은 사건을 무마하려다가 오히려 일만 더 커졌다는 것을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무장한 자경대원 20명이 몰려왔다.
자경대원들은 동료 넷이 무릎을 꿇고 있는 걸 보고는 대충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상대는 남자 하나에 여자 둘뿐이었기에 죄를 뒤집어씌웠다.
“너는 누구인데 자경대원을 이렇게 만들었느냐?”
“뭐라? 이놈들이 방에 침입하여 강도짓을 하였는데 무슨 엉뚱한 소리냐?”
“흥, 그건 말도 안 된다. 자경대원이 왜 강도짓을 하겠느냐?”
“후후, 살다 보니 이런 경우도 있구나. 그럼 내가 이들을 아무런 이유 없이 이렇게 만들었다는 말이냐?”
“그…그거야 신문해보면 알겠지.”
“너무 기가 막히니 말이 안 나오는구나. 당장 이곳의 성주를 불러라.”
“이…이놈이 어디에서 감히 성주님을 오라 가라 하느냐?”
“그럴 만하니까 하는 거다. 너는 뭐하는 놈이냐?”
“흥, 나는 자경대 제 2조장인 월슨이다.”
“가만히 보니까 이놈들도 전부 한패인 모양이구나.”
“말로는 안 되겠군? 저놈을 사로잡아라! 어서!”
우르르.
자경대원들이 무기를 꺼내들고 준을 포위하였다.
사건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지만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