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29화 (29/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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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도시 올가

우우우웅.

공간이 갑자기 떨리기 시작하더니 심하게 요동쳤다.

파지지직.

2m 정도 되는 검은 구체가 생성되더니 그곳에서부터 스파크가 일어나 사방으로 튀었다.

스윽.

봉두난발의 괴인이 그 검은 구체 속에서 걸어 나왔다.

스파크가 튀던 검은 구체는 순식간에 지름이 줄어들더니 소멸되어버렸다.

번쩍.

괴인의 두 눈에서 푸르스름한 안광이 무섭게 뻗어 나왔다.

갑자기 나타난 괴인 때문에 케르킨 부족장은 코를 손가락으로 막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씻지 않았는지 그 특유의 지독한 악취가 나서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히유… 그 속에서 한 번도 목욕을 안 한 것인가? 냄새가 너무 지독하군.”

“아… 그러고 보니 한 번도 목욕을 하지 못했군요.”

봉두난발의 괴인은 준이었다.

마법의 공간 속에서 수련을 끝마치고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악취가 장난이 아니네. 당장 나가서 씻도록 하게.”

“마법을 배웠으니 마법으로 씻어보겠습니다. 아쿠아 샤워(Aqua shower)!”

스스스.

준은 간단한 시동어만으로 마법을 시전하였다.

갑자기 쏟아지는 물방울 속에 갇힌 준의 주위로 마치 세탁기처럼 순식간에 수천 개의 물방울들이 휘돌았다. 그리고 그가 입고 있는 옷과 함께 몸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세척했다. 그 때문에 수천 개의 물방울들은 오염되어 맑았던 것이 검게 변해 있었다.

“정화(淨化,clarification)!”

스스스.

이번에도 간단한 시동어만으로 오염되었던 물방울들이 깨끗해지더니 스르르 소멸되어버렸다.

“으음… 이정도로 자연스럽게 마법을 펼치다니 놀랍군.”

“후후… 이왕 마법을 배웠는데 이 정도는 펼칠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으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정도의 응용력이라니, 놀라워.”

준은 머리카락은 그리 길지 않았다. 수련 중에 거추장스러워서 틈틈이 롱소드로 머리카락을 적당하게 잘라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마법의 공간 속에서 수련한 지가 대략 70년 정도는 된 것 같은데 7일이 지난 겁니까?”

“그렇다네. 오늘은 이곳에서 쉬고 내일 떠나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리안느 님은 어떻습니까?”

“처음에는 자네가 없어서 걱정하는 것 같더니만 이제는 조금 안정이 되었어. 특히 체력 회복을 위하여 각종 약초즙을 먹이고 과일식을 먹였더니 많이 좋아졌어.”

“아… 정말 다행이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자네, 꼭 우리의 염원인 벤겔미르를 찾아주게.”

“예, 최선을 다해서 찾아오겠습니다.”

“허허, 정말 고맙네.”

“그런데 처음에도 말씀드렸지만 어떻게 처음 보는 저에게 그런 중책을 맡기시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허허, 사실 한 가지 말하지 않은 것이 있네.”

“으음… 역시 그렇군요. 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좋아. 그럼 말해주지. 엘프 여신이신 아벨카르멘 플로렌스(Abellcarmen Florence) 님의 계시가 내려왔었네.”

“엘프 여신께서요?”

“그렇다네. 그분께서는 자네가 이 세계의 인간이 아니라고 하셨네. 맞나?”

“네. 그것은 사실입니다. 어떻게 해서 제가 이곳으로 건너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제가 있던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아직 그 방법을 모르지만 말입니다.”

“그럼 신의 아티팩트를 3개 모아보게. 그럼 방법이 생길 거야.”

“그…그게 정말입니까?”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그것을 모은다면 그 막강한 힘으로 차원의 문을 열 수 있다고 전해지네. 그러니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

“듣고 보니 정말 그렇군요. 그런데 이 세계에는 신이 직접 관여를 합니까?”

“2만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세계는 여러 신들이 자신이 창조한 종족에게 은총과 사랑을 내려주셨네. 하지만 서로 상극인 신족과 마족들이 서로 충돌하더니 신마전쟁으로까지 발전하여 이 세상이 혼란스럽게 되자, 주신께서 직접적으로 이 세상으로 건너오지 못하도록 강력한 결계를 설치하셨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렇다네. 그 이후에 신계와 마계의 그 어떤 신들도 직접 이 세상에 헌신하지 못하게 되었지. 드래곤들은 관망자이면서, 동시에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을 제거하라는 주신의 명을 받아 지금까지 행해오고 있다네.”

“하긴, 드래곤들이 가장 수명이 길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

“마법이 가장 강한 종족이 드래곤들이니, 당연하네. 그러나 그들도 직접 개입하여 왕국 하나를 절대마법으로 파괴하지는 못하도록 주신께서 명하셨다네.”

“음… 드래곤들의 마법능력이라면 일개 왕국 정도는 한 방에 멸망시킬 수 있었겠습니다.”

“그렇다네. 하지만 드래곤들도 무서워하는 게 있지.”

“그게 신의 아티팩트로군요?”

“그렇다네. 고룡급의 드래곤들도 두려워하는 게 바로 신의 아티팩트라네. 그러니 그들은 늘 인간을 주시하고 있다네.”

“드래곤들이 유희를 하는 것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네. 드래곤들은 특별한 사고를 당하지 않는다면 보통 만 년까지 살 수 있다네. 드래곤 로드 같은 경우에는 신의 권능으로 인하여 1만 3천 년을 살 수 있지.”

“정말 대단하군요. 그렇게 오래토록 살 수 있다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인간 세상에 스며들어 유희를 즐기다가 돌아가는 것이지.”

“신의 아티팩트를 소유한 드래곤이 있습니까?”

“내가 알기로는 아직까지 없네.”

“그건 왜 그렇습니까? 무려 2만 년이라는 긴 시간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만, 신의 아티팩트를 소유한 자들과 의 싸움에서 쉽게 이길 수는 없었을 것이네. 더구나 드래곤과 싸워서 소유한 자가 죽는다면 자아를 가지고 있는 신의 아티팩트는 그만의 권능으로 바로 장거리로 이동되어버리기에 그런 것 같네.”

“그래도 드래곤의 마법이라면 찾을 수 있을 텐데요?”

“그게 드래곤의 마법으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모양이네. 누구도 소유하기 전이라면 드래곤도 가능하였겠지만 말일세.”

“으음… 하긴. 그러니까 드래곤들이 오랜 세월 동안 하나도 가지고 있지 못했던 거군요.”

“그렇다네. 하지만 앞으로의 일은 어찌될지 모르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저는 이만 나가서 아리안느 님을 만나봐야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준은 케르킨 부족장의 집에서 나와 아리안느가 묵고 있는 글리아나 집으로 향하였다.

월계수 엘프 부족 마을의 광장.

수백 명의 엘프들이 모여 있었다.

중앙의 바닥에 새겨진 이동마법진 위에는 준과 아리안느, 글리아나가 서 있었다.

그런데 글리아나의 외모가 조금 바뀌어 있었다.

옆에서 준을 도우라는 케르킨 부족장의 명에 따라, 엘프 특유의 뾰족한 귀를 마법으로 변형시켜 인간의 귀와 같은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또한 남방과 바지를 입고 롱소드를 메자 날씬 하면서도 엄청난 미모를 가진 여자 용병으로 변신하게 되었다.

보우와 약간의 보석들은 마법주머니 속에 집어넣고 허리에 잘 묶어두었다.

케르킨 부족장은 글리아나에게 말하였다.

“글리아나, 옆에서 그를 잘 도와주어야 한다.”

“예, 알겠어요.”

“그럼 이동마법진을 발동시키마.”

케르킨 부족장이 마법주문을 중얼거리기 시작하자 이동마법진에서 기이한 빛이 솟아 나왔다.

츠파파팟!

이동마법진 속이 빛으로 휩싸이더니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빛이 사라진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준 일행은 드로이안 산맥 밖까지 이동되었을 것이다.

‘글리아나, 너를 믿으마.’

잠시 이동마법진을 바라보던 케르킨 부족장은 주위에 있는 엘프들에게 말하였다.

“그만 돌아가서 각자 하던 일들을 하거라.”

엘프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주위로 흩어졌다.

츠츠츠츠.

갑자기 공간이 이지러지면서 빛과 함께 세 사람이 나타났다. 그러자 빛은 소임을 다 했다는 듯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들은 준과 아리안느, 글리아나였다.

준은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낯선 곳이라 여기가 어딘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글리아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리안느만은 이곳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으음… 아리안느 님,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군요.”

“드로이안 산맥 같아요. 앞쪽은 아케비안 공작령이 분명해요.”

“으음, 2km 정도 앞쪽에 성이 있군요. 일단 그곳으로 가보는 게 좋겠습니다.”

아리안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허락했다.

성 쪽으로 다가가니 길 양쪽에 황금빛으로 물든 들녘이 펼쳐져 있었다. 온통 밀밭이었다. 너무나 풍요로운 광경에 모두의 얼굴도 평온해졌다.

“으음, 주위의 풍경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그래요. 나도 이런 건 처음 봐요.”

“…….”

준과 아리안느의 말에 글리아나는 침묵으로 대답했다.

그녀도 그렇게 느꼈지만 굳이 대답하기는 싫었다. 준과 아리안느의 다정한 모습에 마음 한구석이 끓어오르는 게, 질투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돌로 축성된 성안에는 200여 채의 집들이 있었다.

아마도 드로이안 산맥이 앞쪽에 있다 보니 몬스터 무리라도 한 번씩 쳐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어머, 윈스톤 성이에요.”

아리안느가 갑자기 외치자, 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리안느 님, 윈스톤 성이라니요?”

“이곳은 아케비안 공작령에 있는 성들 중 하나예요. 성루에 휘날리는 깃발을 보세요.”

아리안느의 말에 준은 성루를 쳐다보았다.

성루에는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이 걸려 있었다. 깃발의 바탕은 노란색으로, 원형 방패 바탕에 대거가 서로 교차되어 있는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 밑에는 마케리안 대륙어로 윈스톤(Winston)이라 쓰여 있었다.

“정말 윈스톤이라 쓰여 있군요.”

“예. 윈스톤 성에서 말을 타고 3일만 가면 아케비안 공작의 영주성이 있는 플로렌스(Florence)에 도착할 수 있어요.”

“그렇습니까?”

“일단 윈스톤(Winston)성으로 들어가 말과 마차를 구입해서 가요.”

“알겠습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준이 앞장서자 아리안느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뒤따랐고, 글리아나도 말없이 따라왔다.

성문 앞에는 스피어를 손에 쥔 두 명의 병사가 서 있었다. 그들은 걸어오는 세 사람을 발견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자는 검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기에 뮤란 대륙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 그의 뒤를 따라오는 두 여성들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병사들 중에서 우측에 있는 자가 말하였다.

“어디서 오는 길이요? 신분을 확인해야 하니 신분증을 꺼내보시오.”

“나는 켈리온 자작령의 기사 준이라고 한다. 드로이안 산맥을 넘어 오다가 몬스터 무리를 만나 일행이 다 죽고 우리만 살아남아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렇다면 신분증을 보여주십시오.”

“여기 있다.”

준은 켈리온 자작이 만들어준 신분증을 꺼내 내밀었다.

확인한 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분증은 틀림없으니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윈스톤 성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고맙네. 말이 필요한데 마시장은 어느 쪽인가?”

“성안으로 들어가셔서 오른쪽으로 3블록 가면 있습니다.”

“고맙다, 병사.”

준이 기사의 신분이다 보니 아리안느와 글리아나의 신분은 확인하지 않았다.

보통 기사나 귀족이면 수행하는 자들이 따라 다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 병사도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성안으로 들어간 준은 먼저 마시장으로 향하였다.

5, 6종의 90마리 정도의 말들이 울타리 안에 들어 있었다.

준은 꼼꼼하게 말들을 살펴보다가 고급 품종인 노페르슈롱(Nopercheron)품종의 말을 선택하였다.

노페르슈롱은 야생마와 아팔을 교배하여 탄생한 종으로, 두툼한 가슴과 곧은 등을 가졌고 체력이 강인하여 인기가 많은 말이었다.

말 주인은 준이 노페르슈롱을 선택할 것을 눈치 채고 말했다.

“아이고, 최고 좋은 품종의 말을 선택하셨군요, 기사님.”

“이 말들은 얼마나 하나?”

“이 정도의 상태라면 2골드 70실버는 받아야 합니다.”

“3마리를 구입하려고 하는데, 얼마에 줄 수 있나?”

“그러시다면 원래는 8골드 10실버인데 8골드만 주십시오. 말안장까지 드리겠습니다, 기사님.”

고개를 끄덕인 준은 돈주머니 속에서 8골드를 꺼내 내밀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기사님.”

“이봐, 윈스톤 성에서 하룻밤 묵고 플로렌스로 가려고 하는데 깨끗하고 음식 맛이 좋은 곳을 알고 있나?”

“저쪽으로 2블록 가면 뮤트라는 곳이 나옵니다. 그곳이 이곳 윈스톤 성에서는 가장 좋은 곳입니다.”

“그런가? 고맙네. 아리안느 님, 먼저 말에 오르십시오.”

“예, 알았어요.”

아리안느가 먼저 구입한 말 등에 올라탔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승마를 배웠기에 말을 잘 탔으며, 글리아나도 예전에 말 타는 법을 배웠기에 제법 말을 잘 타는 편이었다. 말을 타는 것은 준이 가장 뒤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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