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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도시 올가
글리아나는 아리안느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던 아리안느는 글리아나가 주는 각종 과일로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내민 각종 약초의 즙을 마시면서 서서히 체력을 회복하였다.
한편, 준은 케르킨이 마법으로 형성한 마법의 공간 속으로 들어갔다.
마법의 공간은 회색빛 하늘에 메마르고 건조한 땅에 황무지를 연상시키는 세상이었다. 공기는 있으며 기온이 따뜻하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새벽 같은 날씨였다.
“아무리 마법의 공간이라고는 하나 이렇게 삭막한 곳이 있다니…….”
두리번거리면서 마법의 공간을 살펴보니 넓이는 약 5km 정도 되어보였다. 한쪽에는 케르킨이 그동안 저술한 책과 각종 마법서적들이 수천 권이나 책장에 꽂혀 있었다.
“으음… 난 엘프어와 엘프 문자를 모르니까 이것을 활용하라고 했었지?”
스윽.
준은 케르킨이 마법의 공간속으로 들어갈 때 준 반지를 꺼내어 살펴보았다. 그렇게 특별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손가락에 끼었다.
책장 속에서 책을 하나 꺼내어 살펴보았다. 역시나 처음 접해보는 엘프의 고유 문자였다.
츠츠츠.
갑자기 반지에서 기이한 빛이 솟아 나오다가 사라졌다.
신기하게도 책에 쓰인 엘프 문자가 모두 해석되었기에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마법의 능력이구나. 정말 대단해.”
마법에 관한 기초 서적으로, 예전에 켈리온 성의 서점에서 구입한 마법의 기초 서적과 유사한 점이 많았다.
“으음… 마법의 기초 서적을 구입했지만 시간이 없어서 익히지 못했어. 그러니 이번에 그것들도 함께 배워 두는 게 좋겠군.”
그렇게 해서 준은 우선 ‘마법총요’ 라는 책부터 ‘마나와 마나고리 생성방법’, ‘백마법과 흑마법’, ‘원소마법’, ‘신성마법과 드래곤 마법에 관한 진실’ 이라는 책까지 모두 5권을 배워 나갔다.
시간은 흘러 마법의 기초를 알게 된 뒤부터는 마법의 습득이 빨라졌다. 마법의 원리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일단 심장 옆에 마나고리를 생성시켜 대자연에 분포되어 있는 마나를 이용하여 행하는 게 마법이었다.
무술을 익힌 자들은 하단전에 쌓은 기를 가지고 펼치는데 비해 마법사들은 심장부근에 마나고리를 만들어 몸 밖의 풍부한 마나를 이용한다는 게 근본적으로 달랐다. 마법사의 능력은 마나고리를 몇 개나 만들 수 있는가에 따라 정해졌다.
준은 농축되어 있는 하단전의 기를 이용해 심장 옆에 마나고리를 만들어보았다. 처음에는 잘되지 않았지만 마음과 의지를 움직인다는 점에서는 거의 유사하였기에 그리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다.
“으음… 마법과 기공수련은 다른 면도 있지만 겹치는 부분도 있었구나.”
준이 이 세상으로 건너올 때 몸에 흡수된 혼돈의 기운은 몸속 깊은 곳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나고리를 형성시킬 때는 스르르 움직임을 보이더니 마나고리 속에 그 일부가 흡수되는 것이 아닌가?
준은 잘 모르고 있었지만 이는 기존의 마법사에게는 없는 특이한 현상이었다.
혼돈의 기운이 일부 흡수된 마나고리가 하나 형성되자 준은 1서클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마나고리의 개수가 늘어났다.
가부좌를 틀고 천왕대심공을 운용해 심법을 수련하는 한편, 엘프의 마법서를 읽으면서 마법도 동시에 익혀 나갔다.
이 마법의 공간 속에는 오직 자신뿐이었기에 남의 방해를 받지 않아서 수련하기 정말 좋았다.
“매직미사일(Magic Missile).”
츠츠츠.
굵은 창보다는 가는 형태의 미사일이 허공에 형성되어 그가 쏠 때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매직미사일은 시야에 보이는 것은 뭐든지 알아서 찾아가 맞출 수 있으며, 쏘기 전까지는 지속 시간이 끝날 때까지 마법사를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실제적인 형체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손에 잡히지 않는데, 그건 마치 빛과 같아서 그렇다.
게다가 목표를 놓치는 일은 결코 없으므로 목표물은 어떻게든 타격을 입게 되는 공격마법이다.
1서클일 때에는 한 개나 두 개 정도 생성되며, 레벨이 올라갈 때마다 2개씩 늘어난다. 각각의 매직미사일은 서로 다른 목표를 겨냥해서 쏠 수도 있다.
분명히 마법서에도 그렇게 쓰여 있었다.
헌데 지금 준은 마나고리가 7개로, 마법서에 적힌 대로 말한다면 7서클의 마법사 경지였다. 따라서서 매직미사일이 최고로 많아도 15개는 넘지 않아야 되는데 20개나 되었다.
“으음… 분명 마법서대로라면 매직미사일이 15개를 넘지 않아야 되는데 20개나 되다니… 내가 수식을 잘못 계산했나?”
스윽.
매직미사일은 준이 가리킨 곳으로 날아가 격중되었다.
콰콰쾅.
폭음이 엄청나게 터지면서 흙덩이가 허공 높게 튀어 올라 흩어졌다.
“으음… 위력도 마법서보다는 훨씬 강력한 것 같아. 그럼 아예 매직미사일을 더 많이 형성시켜볼까?”
마법서에는 분명 마법의 서클이 높으면 높을수록 같은 마법을 시전하더라도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고 되어 있었다. 다만 너무 수량을 늘리게 되면 그 위력이 현저히 줄어든다고 했지만 일단 한번 실험해보기로 했다.
“마나여, 의지로써 말하노니 이루어지게 하소서. 매직미사일(Magic Missile)!”
츠츠츠츠.
신기하게도 허공에 매직미사일이 무려 100개나 형성되었다.
스윽.
준의 손짓에 매직미사일이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가 땅에 격중되었다.
콰콰쾅.
흙가루가 허공으로 튀어 올라 사방으로 흩어졌다.
“으음… 생각했던 것보다는 매직미사일의 위력이 그리 줄어들지는 않았구나. 아예 좀 더 수량을 늘려볼까?”
마법은 수학 공식도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준은 독학으로 공부를 많이 했었기에 나름대로는 수학에도 조예가 있었는데, 이를 적용하자 마법을 시전하는데 캐스팅 시간이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매직미사일을 마법사가 시전하는 데 1분이 걸린다고 가정하면 준은 5초 정도면 되었다. 배워두었던 수학 공식이 아주 유용했다.
“원래 그런 것인지, 누군가가 임의로 약간 틀리게 마법 수식을 써 놓았었기에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할 수 없도록 아주 교묘하게 해놓았구나.”
그렇다.
마법의 종주라는 드래곤이 엘프에게 마법을 일부 가르쳐주었을 때부터 이렇게 약간씩 틀리도록 해놓았던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엘프가 마법을 익혀도 드래곤에게는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엘프는 천 년 정도를 살며 태생적으로 자연과 동화하면서 사는 종족이기에 나은 편이었지만, 인간은 수명이 짧았기에 잘못된 마법서의 영향으로 수준이 가장 낮았다.
또한 마법사들은 아집으로 물들어서 오랫동안 내려오는 방법을 부정하지 못하였기에 마법의 발전은 더욱 기대하기 어려웠다.
낮은 서클일 때에는 그나마 나았지만, 서클이 5서클 이상 올라갔을 때에는 정도에서 약간만 어긋나도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했다. 따라서 감히 다른 방법을 시도해보지 못하였다.
그리고 드래곤들은 드래곤하트라는 것이 있었기에 용언마법 까지도 마음껏 펼칠 수 있었지만, 인간에게는 그것이 없었으므로 대체 방안으로 만든 것이 마나고리였다.
그러니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마법으로는 드래곤을 이길 수 없었다.
오직 검술로 단련된 오러 블레이드만이 드래곤의 두꺼운 피부를 자를 수 있었기에 드래곤들이 소드마스터를 경계하는 것이다.
준이 7서클의 마법적인 능력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인간 마법사는 절대로 드래곤과의 마법 대결에서 이길 수 없겠어. 나또한 이런 식이라면 절대 마법으로는 드래곤을 이길 수 없겠지. 후후… 하지만 난 이 세상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기에 방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야.”
준은 마법의 약점을 보완할 방법을 찾아내었다.
예를 들어 파이어볼 같은 마법을 펼친다고 하면, 그 속에 숨겨진 다른 공격마법을 펼치는 것이다.
그냥 펼치는 게 아니라 다섯 번 생성할 것을 한 번에 고농축하여 생성하게 되면 단순하게 계산해도 다섯 배 정도의 위력을 보일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일단 파이어볼 수식을 약간 변형시킨 후 마나만 집어넣는 게 아니라 약간 다른 내공, 즉 기를 절반의 비율로 접목시킨다. 그러면 아무리 드래곤이 디스펠 마법을 시전해도 마법이 잘 소멸되지 않도록 막는다.
속성이 완전하게 상극이면 힘들겠지만 비슷하거나 서로 융합이 잘되는 속성의 마법을 이렇게 펼치게 되면, 상대방은 처음에는 단순한 파이어볼 마법이라 생각했다가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당황할 것이다.
약해 보이지만 그 속에 숨겨진 위력이 강력한 공격마법에 당한다면, 아마 상대방은 막대한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하루 이틀, 사흘…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자 아리안느는 몸은 편하였지만 정신적인 면에서는 아주 불안해졌다.
“아… 5일이나 되었는데 준 님을 한 번도 보지 못하였어.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아리안느는 준과 약속하길 7일간만 이곳 엘프 마을에서 머물겠다고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허락하였는데, 그날 이후 준을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물어보려고 해도 엘프들은 개인생활에 바쁜 것인지 도통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함께 머물고 있는 글리아나의 얼굴도 보기 힘들었다.
글리아나는 월계수 엘프부족에서 가장 용맹하다고 알려졌다. 실제로도 보우를 쏘는 솜씨나 마법에서도 가장 앞서는 전사였다. 그런데 하찮게 여겼던 인간족에게 수모를 당했다 생각하니 그 분노를 없앨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롱소드를 가지고 수련에 임하였다.
쉬이잇, 파팟.
그녀는 바람 소리가 일어날 정도로 롱소드를 휘두르면서 검술을 펼쳤다.
초식이 날카롭고, 펼치는 것마다 동작이 깨끗한 게 보통 솜씨가 아니었다.
흔히 엘프들은 보우를 잘 다룬다고 알려졌지만 월계수 엘프부족은 그런 면에서는 다른 곳의 엘프들과는 달랐다.
보우를 쏘는 것은 기본이고, 마법과 검술 수련도 해야 부족의 전사로 인정받았다.
그렇기에 월계수 엘프부족은 다른 곳의 엘프부족의 전사들보다 배나 강력했던 것이다.
“아… 케르킨 부족장님께서는 왜 그 준이라는 인간족과 단독대면을 하신 것일까?”
무척 궁금하고 답답했지만 직접 케르킨 부족장에게 물어볼 수는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우우우웅.
떨림을 보이면서 롱소드의 검날에 푸르스름한 검기가 맺혔다.
인간족의 기사들이 검술에 능하게 되면 형성된다는 그 검기였다. 이처럼 검에 마나를 불어 넣을 수 있는 검술의 경지를 소드익스퍼트라 칭한다.
글리아나의 경지를 보니 푸르스름한 검기가 시리도록 짙어 보이는 게 소드익스퍼트 중급을 넘어 거의 상급에 다다라 있었다.
쉬이잇, 파파팟.
그동안 수련이 부족했다고 생각한 글리아나는 해가 지도록 지독하게 검술연습을 하고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아리안느는 방 안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가 글리아나가 돌아오자 다가와 말을 걸었다.
“물어볼 게 있어요.”
“말해 봐요.”
“준 님은 어디에 있는 건가요? 한 번도 볼 수가 없어서요.”
“나도 잘 모르겠어요. 케르킨 그날 이후 부족장님의 집에서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혹시 잘못된 것은 아니겠죠?”
“흥, 그런 생각은 하지 말아요. 우리 월계수 부족이 그렇게 경우가 없는 부족은 아니니까요.”
“아… 미안해요. 다만 걱정이 되어서…….”
“케르킨 부족장님께서 7일간 집안에 머물다가 나올 거라고 했으니 이제 2일 남았어요. 조금만 더 기다려 봐요.”
“예… 아, 그리고 아침과 저녁으로 주시는 약을 먹으니까 몸이 많이 좋아졌어요. 고마워요.”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군요. 그 사람이 올 때까지는 잘 먹고 몸조리 잘 하세요.”
“예. 고마워요, 글리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