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23화 (23/284)

0023 / 0284 ----------------------------------------------

제1권  켈리온 성

퍼퍼퍼퍽!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했기에 한스는 매직미사일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그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말과 함께 쓰러졌다.

한스가 감싼 덕분에 소공녀는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몸으로 매직미사일 공격을 막은 한스는 쓰러진 채 피를 내뿜었다. 충격이 상당했던 것이다. 하지만 육체를 단련한 기사라 이 정도의 공격은 견딜 수 있었다.

공격마법 한 방에 상당한 성과를 거둔 프린스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크크크, 진작 이런 공격을 할 걸 그랬나? 이젠 끝장을 내주마.”

그가 막 다시 공격마법을 캐스팅 하려는 찰나였다. 갑자기 프린스를 향해 퀘럴이 연이어 날아왔다.

“어엇, 놈이 벌써?”

한 발이나 두 발 정도의 공격이었다면 보호막으로 막을 수 있었지만 집중적으로 날아오는 퀘럴이라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가 주춤거리는 동안 준이 약 100m 전방에 나타났다.

“으… 이렇게 빨리 나타나다니… 제기랄!”

프린스는 준과 싸워 보았기에 그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도망치기로 마음먹은 그는 마지막으로 저쪽에서 떨고 있는 소공녀와 기사를 향해 또다시 매직미사일 열 발을 발사했다.

빛을 머금은 화살촉 모양의 매직미사일이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본 아리안느와 한스의 얼굴에 절망이 어렸다. 한스 혼자서 열 발이나 되는 매직미사일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부상을 입어 쓰러져 있던 쉐인과 베누아에게 먼저 매직미사일이 날아와 격중했다.

“크악, 아아악!”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온몸을 부르르 떨던 두 사람이 이내 잠잠해졌다. 한스는 이를 악물고 몸으로 아리안느를 감쌌다.

퍼퍼퍼퍼퍽!

이미 한 번 매직미사일에 맞아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다시 여덟 발이나 되는 매직미사일에 맞았기에 그 충격은 엄청났다. 플레이트 아머의 곳곳이 찌그러졌고, 연신 입에서 검붉은 피를 내뿜던 한스는 눈앞이 흐려지는 걸 느꼈다.

“으으… 끝까지 소공녀님을… 지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한스는 중상을 입고 기절해버렸다.

보통 때라면 이정도 공격에 당할 한스가 아니었지만, 기습공격 이었고 아리안느를 지키려고 몸으로 마법공격을 막은 결과 이런 중상을 입게 된 것이다.

준이 아리안느 곁에 다가왔을 때에는 프린스는 도망치고 없었다. 그는 이내 쓰러져 있는 다른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죽어 있었다. 다행이 아리안느는 별다른 부상이 없었지만, 한스는 중상을 입어 이대로 이동하기는 어려웠다.

“으으… 으윽…….”

잠시 후 기절했던 한스가 깨어났다.

“정신이 드십니까, 한스 님?”

“한스 경, 정신이 드세요?”

“으으… 소공녀님, 무사하셨군요.”

“그래요. 한스 경이 아니었다면 난 죽었을 거예요.”

“으… 준 님, 난 틀린 것 같습니다.”

“아직은 아닙니다, 한스 님.”

“말씀은 고맙지만 내 상태는 내가 잘 압니다. 더 이상 소공녀님의 짐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제 품속에 지도가 있으니 그것을 가지고 가십시오.”

“같이 갈 수 있어요, 한스 경.”

“아닙니다, 소공녀님. 제가 있으면 짐만 될 뿐입니다. 으윽…….”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한스는 다시 기절해버렸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적들이 추격해오는 상태에서 부상자인 한스를 데려갈 수는 없다. 아리안느는 밀려오는 슬픔에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소공녀님,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습니다. 어서 가시죠.”

“그래도 어떻게 한스 경을 두고 간단 말예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소공녀님께서 이곳에 남기를 바라지도 않을 겁니다.”

간곡한 준의 설득에 아리안느는 결국 준과 함께 말에 올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웃으며 식사를 했던 한스는 아리안느와 이렇게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되었다.

“소공녀님,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요.”

“알았어요. 가요…….”

물론 준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하다못해 죽은 동료들을 땅에 묻어 주고라도 떠났으면 좋겠는데 추격자들이 가까이 접근한 상태이기에 급히 떠날 수밖에 없었다.

스스스스.

준과 아리안느가 떠나고 난 자리에 검은 로브를 입은 자가 나타났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쓰러져 있는 한스에게로 다가갔다.

“흐흐, 곧 죽을 놈이군. 실험재료로 쓰기에 적당한 걸?”

그자의 손짓에 허공으로 한스의 몸이 스르르 떠올랐다.

츠츠츠츠.

갑자기 허공에 쩌억 금이 가더니 어두운 공간이 나타났다. 그의 손짓에 한스의 몸이 스르르 공간 속으로 들어가 버리자 벌어졌던 공간이 다시 닫혔다.

츠파파팟!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검은 로브를 입은 자는 사라져버렸다.

얼마 후, 이글 용병대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스를 비롯해 준과 소공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프린스, 기습공격은 참으로 잘했구나.”

“감사합니다, 대장님.”

“흐흐, 이제 소공녀에게는 그놈과 한스라는 자가 남았구나.”

“그렇습니다. 한스라는 자는 저의 매직미사일에 몇 발이나 격중되었기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좋아, 좋아. 번번이 놈에게 우리가 피해를 입었는데 이번에는 프린스의 활약으로 인해 갑갑했던 마음이 뻥 뚫리는구나. 하하하!”

“하하하! 그렇습니다, 대장님.”

“이제 소공녀와의 거리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좋아. 속히 추격해 사로잡아야 하니까 선발조 20명을 먼저 보내라.”

“예!”

이히힝, 푸르륵.

아리안느를 태우고 달리느라 말이 많이 지쳐 있었다.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계속 험한 산맥을 이동했기에 말은 더욱 힘들어 했다.

이대로는 얼마 가지 못하고 말이 쓰러지겠다고 느낀 준은 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세웠다.

곁에서 달리던 아리안느도 준이 말을 세우자 같이 멈췄다.

“소공녀님, 말이 너무 지쳤으니 조금 쉬었다 가야겠습니다.”

“예, 그러세요.”

그는 말의 고삐를 나뭇가지에 묶고는 물을 먹인 후 마법주머니 속에서 건초를 꺼내 내려놓았다. 두 마리의 말은 정신없이 고개를 처박고 풀을 먹기 시작했다.

준은 또 다른 물주머니를 꺼내 아리안느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고맙게 받아 마셨다.

“아… 시원해. 정말 고마워요.”

“소공녀님,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습니다.”

“그래요? 그게 뭔데요?”

“적들이 왜 저렇게 많은 사람을 동원해 소공녀님을 끝까지 추격하는 겁니까?”

“저를 사로잡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게 아닐까요?”

“영지병들을 동원한다면 간단한데 그렇게 하지 않고 용병들을 고용해 추격하는 것으로 봐서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리안느는 그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준이 보기에는 무언가 중대한 것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으음… 뭔가 있는 모양인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어. 혹시 귀중한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아리안느의 소지품이라고는 허리에 매달린 작은 주머니 한 개가 전부였다. 마차 안에는 옷가지를 넣은 가방도 있었지만 지금은 간단하게 입은 옷이 전부였다.

‘허리에 매달린 주머니가 전부인데 혹시 보석 종류인가? 으음… 어쩌면 보석일지도 모르겠군.’

그러나 그것도 말이 안 된다. 겨우 보석 하나를 노리고자 용병들을 대규모로 고용한다는 것은 어불성설.

사사삭!

그때였다. 풀을 밟는 미약한 소음이 일었다. 귀가 예민한 준은 추격자들이 가까이 접근했다는 걸 느꼈다.

“소공녀님, 놈들이 가까이 추격해온 것 같으니 떠나야겠습니다.”

“아직 말들이 제대로 쉬지 못했는데 또 달릴 수 있을까요?”

“그건 힘들 테니 말을 타지 않고 일단 고삐를 잡아당겨 걸어서라도 이동하는 게 좋겠습니다.”

“알았어요. 그렇게 해요.”

그들이 막 묶어 두었던 말의 고삐를 잡고 이동하려는데 뒤쪽에서 두 발의 화살이 날아왔다. 큰 위협이 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준은 양손으로 두 발의 화살을 잡았다.

“어머… 화살을 손으로?”

아리안느는 깜짝 놀랐다. 날아오는 두 발의 화살을 양손으로 잡는다는 것은 한스라도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소공녀님, 어서 나무 뒤로 숨으세요! 어서요!”

“아…알았어요.”

아리안느는 말의 고삐를 놓은 채 뛰어서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그러자 20명의 이글 용병대원들이 말을 타고 달려 나왔다. 그중 다섯이 보우를 겨누고는 화살을 쏘고 있었다.

준은 상체를 뒤로 젖히면서 화살을 전부 피하였다.

퍼퍼퍽, 이히힝!

그 바람에 화살을 맞은 말들은 구슬프게 울면서 옆으로 쓰러졌다. 부르르 떨면서 피를 쏟아내던 말들은 잠시 후 잠잠해졌다.

“아차, 말을 노렸구나!”

“방어할 시간을 주어서는 안 된다! 어서 화살로 집중 공격해!”

슈슈슈슝!

준은 보법을 밟으면서 여유롭게 날아오는 화살을 전부 피하였다. 그리고 허리에서 에이형 부메랑을 꺼내 날렸다.

끼아아아앙!

고막을 터뜨릴 듯한 굉음과 함께 회전하면서 날아간 부메랑은 선두에서 달려오는 자의 목을 절반 넘게 자르고 지나쳤다.

“끄어어억!”

준의 공격에 당한 자는 분수 같이 솟아오르는 핏물을 손으로 막아보려고 목을 잡았지만 소용없었다.

털썩.

달리던 말에서 떨어진 그자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었는지 눈을 부릅뜨고는 부르르 떨다 잠잠해졌다.

허공을 선회한 부메랑은 준에게 돌아가지 않고 다른 자에게로 날아갔다.

부메랑의 위력을 본 그는 방패를 들어 부메랑을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비행각이 크게 휘어지면서 방패의 사각으로 파고든 부메랑은 옆구리의 가죽 갑옷을 자르면서 큰 상처를 냈다.

“이…이게?”

그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비틀거렸다. 그리고 나무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말에서 떨어졌다.

파악!

준은 땅을 발끝으로 찍으면서 화살같이 쏘아져 날아오면서 허리에 꽂아 두었던 대거를 검집에서 꺼내어 휘둘렀다.

가가가각.

그 움직임이 얼마나 신속하면서도 현란한지 달려오던 자들은 순간이지만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아름다워. 아악!”

“저…저런 움직임은 처음 봐… 커억!”

순식간에 네 명의 옆구리가 쩌억 갈라지면서 피와 내장이 쏟아졌다. 그들은 말에서 떨어졌다.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준은 블링크 마법이라도 펼쳤는지 포위하려던 자들을 하나씩 따라 붙으면서 대거를 휘둘렀고, 제대로 반격도 하지 못하고 전부 말에서 떨어져 쓰러졌다. 순식간에 이글 용병대의 1개 조, 20명이 준 한 사람에게 처참하게 당한 것이다.

철컥.

대거를 다시 검집에 집어넣은 준은 아리안느에게로 되돌아왔다. 겁을 먹고 있던 아리안느는 준이 적들을 제거하는걸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나무 뒤에서 걸어 나왔다.

“말들이 도망쳤는데 어떻게 해요?”

“어쩔 수 없지요. 일단 놈들의 말을 타고 이동해야겠습니다.”

준과 아리안느가 말을 타고 사라진 후 이글 용병대가 현장에 도착했다. 그곳에 벌어진 참상을 보며 스칸디 대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프린스, 얼마나 된 것 같나?”

“대원들이 죽은 지는 약 15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20명을 혼자서 다 죽이다니…….”

“이번에는 2개 조를 한꺼번에 보내는 건 어떻습니까?”

“2개 조로 놈을 막을 수 있을까?”

“그건 힘들겠지만 거리를 좁힐 수는 있을 겁니다. 또한 놈에게는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소공녀가 붙어 있기에 보우로 그녀를 노린다면 마음대로 날뛰기는 힘들 겁니다.”

“크크크, 놈에게는 소공녀가 있었지? 좋아, 2개 조를 먼저 보내라. 우리도 최대한 녹도를 높여 추격한다.”

“예. 6조와 7조는 나를 따르라!”

6조의 조장인 헤스가 앞으로 나서자 그 뒤를 6조와 7조의 조원들이 따랐다.

이렇게 2개조 40명이 먼저 말을 몰아 소공녀을 추격하기 시작했고, 나머지 이글 용병대원들도 조별로 대형을 유지하면서 추격에 나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