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20화 (20/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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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켈리온 성

스스스스.

회색 로브를 입은 자가 기이한 빛과 함께 나타났다.

“크으으, 젠장!”

한쪽 무릎을 꿇은 그는 고통스러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응급처지를 해서 잘린 오른팔에서는 피가 더 이상 흘러나오지는 않았지만 고통스러웠다.

“크크크, 이놈… 반드시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이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적당한 곳을 찾았다. 작은 동굴 이었는데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동굴 속으로 들어간 그는 품속에서 무엇인가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황금으로 코팅된 방석이었는데 룬문자와 도형이 새겨진 이상한 물건이었다.

방석에 앉은 그는 회색 로브를 벗었다.

60대의 노인이었다.

흰 머리에 잔주름이 많고 광대뼈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턱까지 뾰족해서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인상이었다. 또한 두 눈이 주욱 찢어져 있어서 더욱 날카롭게 보였다. 거기에다가 상체는 갈비뼈가 튀어나온 것이 보일 정도로 깡마른 모습이었고, 피 묻은 오른팔이 보기 흉하게 잘려 있었다.

그가 방석에 앉은 뒤부터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투명한 막이 형성되어 최소한의 방어력은 갖추게 되었다.

그는 고통스러워하면서 기이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마에서 땀이 흐를 정도로 정신을 집중하면서 중얼거리는 주문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그러자 잘린 오른팔에서 검은 연기 같은 것이 스르르 기어 나오더니 팔의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도 기이한 주문을 계속 중얼거렸고, 검은 연기는 점점 사람의 살과 비슷한 색으로 변하였다.

스스스슷.

놀랍게도 오른팔이 생성되었다.

트롤도 아닌 인간이 재생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게 기이하게 느껴졌다.

손가락을 움직여보던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크크크크, 잘렸던 팔이 다시 재생되었구나. 나 블루투스가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것 같으냐? 이놈, 이번에는 반드시 내손으로 죽여 버릴 것이다.”

크워어어어.

팔이 재생되어 기분이 좋았는데, 갑자기 거기에 찬물을 끼얹듯 포효가 터졌다.

블루투스가 고개를 돌려 밖을 쳐다보았더니 거대한 갈색 불곰 한마리가 화를 내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의 보금자리인 동굴을 차지했다고 그러는 모양이었다.

“크크크, 안 그래도 기력이 많이 떨어졌는데 저놈으로 보충하면 되겠구나.”

크워어어.

불곰이 포효를 터뜨리면서 동굴로 달려왔다. 날카롭게 튀어나온 발톱이 무시무시했다. 곰은 앞발을 강력하게 휘둘렀다.

터텅.

투명한 보호막이 펼쳐져 있었기에 거센 공격은 모두 튕겨져  버렸다.

이에 흥분한 불곰이 양 발을 마구 휘둘렀지만, 보호막이 약간 출렁거릴 뿐 깨어지지는 않았다.

“좋은 먹잇감이야. 홀드 퍼슨(Hold Person)!”

스스스.

갑자기 갈색 불곰이 포박당해 꼼짝도 하지 못하였다.

크워어어.

당황한 불곰은 포효를 터뜨렸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때 블루투스의 한 손이 보호막 밖으로 튀어나와 불곰의 머리를 붙잡았다.

츠츠츠츳.

불곰의 에너지가 블루투스의 손을 통해 고속으로 빠져 나갔다.

불곰은 몸부림치고 싶었지만 움직이지 못하였고,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에너지가 모두 빠져나가 늙어버렸다.

털썩.

불곰은 허무하게 쓰러져서 잠시 부르르 떨다가 잠잠해졌다. 생체 에너지가 모두 몸 밖으로 빠져나가서 죽어버린 것이다.

그에 반해 블루투스는 60대 노인의 모습에서 40대의 모습으로 젊어졌다.

“크크크… 이제야 활력이 느껴지는군. 기다려라, 내가 간다.”

동굴 안에 있던 물건을 정리한 블루투스는 플라이 마법으로 가볍게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저편으로 날아갔다.

드로이안 산맥으로 들어온 준 일행은 길이 험해서 이동속도가 많이 느려졌다.

말을 몰아 달리기에는 경사가 높고, 사람이 다니지 않아서인지 길도 없었다.

없는 길을 만들면서 앞으로 나아가려니 어쩔 수 없이 천천히 말을 몰면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아앗, 악!”

주우욱.

아리안느가 미끄러졌다. 일어나려고 하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난 괜찮으니 계속 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무척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다시 일어나 절뚝거리면서도 이동을 하였다.

안 그래도 느린 속도로 이동 중인데 더욱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하고 멈추어야 했다. 아리안느의 발목이 심하게 부어올랐기에 더 이상 걷기에는 무리였기 때문이다.

베누아가 그녀의 가죽신을 벗기고 발목을 주물러주었다.

“아악, 아아아!”

아리안느가 너무 고통스러워하자 베누아는 손을 멈추었다.

“소공녀님, 발목이 너무 심하게 부어서 더 이상 걷기에는 무리입니다.”

“준 님, 일단 여기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한스의 말에 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습니다. 너무 무리하게 움직이는 건 좋지 않으니까요.”

그들은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물주머니의 물을 나누어 마셨다.

날씨는 무더웠으며, 길은 아주 험해서 이동이 쉽지 않은 드로이안 산맥이었다.

얼굴이 굳어진 한스는 옆에 앉아 있는 준에게 말하였다.

“큰일입니다. 이런 속도라면 열흘이 아니라 보름이 걸리겠는데요?”

“날씨가 무덥고 길이 험한 것만 해도 힘든데 밤에는 몬스터가 나타날 것이고… 적들도 기회를 보고 있을 텐데…….”

“과연 이 드로이안 산맥을 무사히 넘을 수 있을지…….”

“한스 님, 저는 반드시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죄송합니다. 힘이 되어도 모자랄 판에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닙니다. 누구든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쉬게 되었으니 간단하게나마 요기라도 하고 이동하도록 하죠.”

“저도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아무래도 배가 든든해야 힘이 나지 않겠습니까?”

준은 마법주머니 속에서 먹을 것을 꺼내 일행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안 그래도 땀을 많이 흘리고, 지치고, 허기졌는데 마침 적당한 때에 준이 내민 음식에 기운이 샘솟았다.

푸드득.

작은 새 한 마리가 저편에서 날아와 나뭇가지에 내려앉았다. 새는 준 일행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두 눈이 붉게 물든 게 보통의 산새 같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일행 누구도 작은 산새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리안느 일행을 추격 중이던 이글 용병대가 마침내 드로이안 산맥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모두 말을 타고 있었기에 이동속도는 제법 빠른 편이었다.

프린스는 수정구를 꺼내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흐흐흐, 정말 잘되었구나.”

프린스의 얼굴에 웃음이 생기자 대장인 스칸디가 쳐다보았다.

부대장인 쇼칸이 성질이 급해서 먼저 말했다.

“프린스, 무슨 일이냐?”

“아리안느 소공녀가 발목을 다쳐 쉬고 있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길이 험한 드로이안 산맥이니 조금만 방심해도 이런 사고가 일어나죠. 3시간 정도의 거리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이 정도의 거리는 언제든 마음만 먹는다면 따라 잡을 수 있습니다.”

“대장님, 오늘밤 기습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쇼칸, 너무 서둘지 마라. 소공녀 옆에는 무서운 놈이 붙어 있으니까 말이야.”

“놈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우리를 당하지는 못합니다.”

“비록 내가 방심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 한 놈을 당하지 못하고 대원이 절반 넘게 죽었다.”

“쇼칸 부대장님, 저, 프린스의 생각에도 지금 공격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일단 드로이안 산맥에 들어왔으니 2일 정도는 더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어차피 소공녀가 부상을 입어 이동속도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속도라면 15일이 걸려도 드로이안 산맥을 통과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으음… 그렇다면 프린스의 말을 믿어 보도록 하지.”

“고맙습니다, 부대장님. 소공녀 일행은 모두 여덟이며, 그중에서 기사 한스와 기병 두 명, 문제의 그놈과 글 선생 한 명.그래봐야 겨우 다섯입니다. 이틀 정도만 지나면 많이 지칠 것입니다. 그때 공격한다면 큰 피해 없이 소공녀를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하하하. 쇼칸, 프린스의 말이 맞네. 우린 느긋하게 추격하면서 체력을 비축하면 돼. 일단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대장님. 이곳에서 잠시 휴식하도록 한다!”

부대장 쇼칸의 말에 이글 용병대원들은 말에서 내려 그늘진 곳에 흩어져 물을 마시는 등 휴식에 들어갔다.

조금 쉬었다고는 하지만 아리안느는 아직 걷기에는 무리였다. 그래서 일단 말에 태워서 천천히 이동하였다. 일행에게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숲의 밤은 빨리 찾아온다.

날이 저물었기에 사방이 제법 탁 트인 곳을 정해 야영을 시작하였다.

활활활.

모닥불이 거세게 타올라 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한낮의 뜨거움과는 다르게 숲의 밤은 제법 쌀쌀했다.

그러나 모닥불을 피워서인지 따뜻했다.

준은 쉐인에게서 이동하는 틈틈이 마케리안 대륙어의 기본을 익혔는데, 지금은 그것을 완벽하게 외우고 간단하게나마 대화를 나누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준 님, 상당히 빨리 익히시는군요.”

“하하, 쉐인 님의 가르침 덕분에 빠르게 익힐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그저 설명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준 님이 열심히 공부하셨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칭찬하려는 게 아니라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일행은 끓인 물로 차를 타서 나누어 마셨다.

밤이 더욱 깊어지자 사방에서 몬스터나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한스 님은 소공녀님 곁을 지켜주십시오. 전 나무 위에서 경비를 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준은 한스를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나무 위로 도약해 크로스 보우를 꺼내 들었다.

모두 처음에는 몬스터나 동물의 울음소리에 긴장했지만 차츰 익숙해졌다. 그렇게 하나둘씩 잠에 빠졌지만 준은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천왕대심공을 익히면서 생겨난 심안의 능력 때문에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고 해도 대낮같이 볼 수 있었다.

스윽.

준은 크로스 보우의 줄을 잡아당겨 한곳을 겨누더니 쏘았다.

투웅.

나직하게 발사음이 터지고 날아간 퀘럴은 남쪽에서 접근하던 고블린에게 날아갔다.

퍼억!

끼에엑!

고블린의 머리에 퀘럴이 명중되자 비명을 지른 고블린은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인간의 냄새를 맡고 접근하던 고블린 무리는 모두 30마리였는데 그중 한 마리가 퀘럴에 맞아 쓰러졌다. 고블린 무리는 순간 주춤거렸다. 그때 또다시 퀘럴이 날아와 다른 고블린을 쓰러뜨렸다. 고블린 무리는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명사수의 손을 피할 수는 없었다.

7마리가 퀘럴에 쓰러지자 고블린 무리는 뒤돌아 도망쳐버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에게서 빼앗은 크로스 보우는 역시 뛰어난 무구였다.

이번에는 동쪽에서 오크 다섯 마리가 접근했지만 모두 크로스 보우의 퀘럴에 맞고 쓰러졌다.

끄워어어어!

동남쪽에서 오크의 피 냄새를 맡고 접근한 몬스터를 보고는 준은 흠칫거렸다.

4m에 육박하는 녹색 괴물은 험악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손에는 거대한 나무 몽둥이를 들고 있었으며, 나무와 풀을 헤치면서 잘도 다가왔다.

스윽.

준은 이번에도 크로스 보우를 겨누고는 퀘럴을 발사하였다.

녹색 괴물은 거대한 신장을 가진 몬스터라고는 믿어지지 않게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는 몽둥이를 들어 날아오는 퀘럴을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퀘럴은 나무 몽둥이의 옆을 스치면서 팔에 박혔다.

쿠워어어어!

가죽이 질겨서인지 관통하지는 못하고 깊게 박혔다.

고통스러워 포효를 지른 몬스터는 트롤이었다.

트롤은 팔에 박힌 퀘럴을 잡아 뽑았다. 녹색 피가 흘러나왔지만 상처는 곧 아물었다.

화가 치민 트롤은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200m가 넘게 떨어진 나무위에 있는 준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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