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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9화 (9/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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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켈리온 성

해가 서쪽으로 많이 넘어가 두 시간 정도면 해가 사라질 시간이었다.

그때까지도 열심히 경공술을 발휘해서 앞으로 나아가던 준은 나무위에 내려서더니 잠시 쉬면서 가지고 있던 황금색 과일을 쪼개어 먹었다.

“으… 정말 지긋지긋한 숲이야. 도대체 언제 이 숲이 끝날까?”

사사삭, 사삭.

갑자기 들려온 풀숲을 헤치는 소리가 준의 이목에 걸렸다.

“으응? 뭐지?”

나무 사이에서 모습을 보인 것은 멧돼지였다. 그런데 준이 알고 있는 멧돼지와는 큰 차이를 보였다. 거의 황소만 한 크기였다.

“저…저렇게 큰 멧돼지는 처음 봐.”

스윽.

약간 놀랐지만 이내 품속에서 부메랑을 꺼내들었다.

“안 그래도 단백질이 부족했는데 잘됐어. 오늘 저녁은 저 멧돼지로 해야겠군.”

준이 노리는 것도 모르고 멧돼지는 코를 킁킁거리면서 먹을거리를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쉐에에엑.

허공을 가르면서 무엇인가가 날아오는 소리에 멧돼지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가가각.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온 부메랑은 순식간에 멧돼지의 목을 가르고 되돌아갔다.

휘리릭, 처척.

준이 되날아온 부메랑을 손가락으로 붙잡았을 때였다.

멧돼지의 목에 줄이 생기더니 이내 피를 내뿜으면서 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스윽, 슥슥.

땅으로 내려온 준은 날카로운 날을 가진 부메랑으로 사냥한 멧돼지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제거하였다. 그리고 곳곳에 칼집을 내고 주변에서 나뭇가지를 잘라와 멧돼지를 끼웠다.

마른 풀과 마른 나무를 준비해 오른손 바닥에 마른 풀을 조금 쥐고 비비자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화르르르.

미리 쌓아두었던 나무 아래에 불이 붙은 풀을 집어넣자 불은 금방 활활 타올랐다.

지글지글.

멧돼지 고기가 먹음직스럽게 익어가면서 바닥에 기름이 떨어졌다.

스윽.

“룰룰루… 쩝쩝, 오랜만에 고기를 먹어보는군.”

양념도 안 되어 있었지만 고소한 맛과 담백한 맛을 즐기며 고기를 뜯어먹었다.

숲의 밤은 빨리 찾아온다.

준이 멧돼지 고기를 구워먹고 있을 때는 날이 벌써 어두워진 뒤였다.

활활활.

충분히 준비해둔 장작을 모닥불 위에 던져 넣자 불길이 더욱 거세게 타올라 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준은 천왕대심공을 운용하였다.

숲속의 밤은 몬스터들의 천국이다.

멧돼지의 피 냄새를 맡은 몬스터들이 준이 있는 장소로 몰려오고 있었다. 사방에서 밀려오는 몬스터들이라 준의 이목에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으음… 피 냄새를 맡은 모양이군.”

준은 심안을 일으켜 상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동쪽과 남쪽에서 두 발로 걸어 다니는 40마리의 돼지 무리가 무기를 손에 들고 접근하고 있었으며, 서쪽에서는 신장이 4m가 넘어 보이는 엄청난 근육질의 괴상하게 생긴 동물이 한손에 몽둥이를 들고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또한 북쪽에서도 4m 정도의 몸을 가진 녹색 괴물 세 마리가 접근 중이었다.

준은 몬스터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었지만, 이것들은 오크와 트롤, 오우거였다.

스윽.

자리에서 일어난 준은 부메랑을 꺼내 손에 쥐었다.

가장 먼저 나타난 몬스터는 남쪽에서 접근한 오크 무리로 10마리였다.

“취익… 인간 먹이다… 취익.”

걸어 다니는 돼지가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을 하는 걸 듣고 준은 깜짝 놀랐다.

“으음… 말하는 돼지라니! 도대체 이곳은 어디일까?”

“취익… 인간 먹이를 잡아라… 취익.”

나무 몽둥이를 손에 들고 있던 두 마리의 오크가 준에게 달려왔다.

피리리릭.

준의 손에서 날아간 부메랑은 회전을 하면서 접근하던 두 마리 오크의 목을 자른 후 되돌아왔다.

순식간에 두 마리의 오크가 쓰러지자 오크 무리는 눈이 커졌다.

“취익… 모두들 조심해라… 취익.”

오크 무리가 자신을 포위하면서 접근하자 준은 땅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퍼퍽.

준의 발차기에 배와 가슴을 맞은 오크 두 마리는 5m 정도를 날아가 떨어졌다.

입에서 녹색 피를 내뿜으면서 부르르 떨던 오크 두 마리는 잠잠해졌다.

갑자기 권법가로 돌변한 준은 공력을 주입하여 휘두르는 손에 장난치듯 가볍게 내쳤다.

준의 일장을 맞은 오크들은 훨훨 날아가 떨어졌다.

꾸엑, 케에엑.

비명과 녹색피를 내뿜으면서 쓰러지는 오크 무리는 준의 상대가 아니었다.

열 마리나 되던 오크 무리는 순식간에 모두 쓰러져 있었다.

준은 오크의 무기 중에서 쓸모없어 보이는 무기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중 약간 녹이 쓸었지만 롱소드와 바스타드소드 한 자루씩을 수거했다.

“호오? 아쉬운 대로 이 검들은 쓸모가 있겠어.”

준의 등 뒤로 30마리의 오크 무리가 몰려와 포위하였다.

그러나 이미 한 번 겨루어본 오크들은 준의 상대가 아니었기에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콰콱.

“상대가 안 되는 것들이 몰려왔군. 좋아 마음껏 몸을 풀어야겠어.”

준은 두 자루의 검을 땅바닥에 꽂아놓고는 순식간에 오크와의 거리를 좁히더니 양손바닥으로 오크들의 가슴을 밀었다.

장난 같은 준의 동작에 오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간을 그냥 먹잇감이라 생각하고 있는 오크들에게 있어 준의 이런 행동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곧 이것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취에엑, 케엑.

준의 손바닥에 밀린 오크들은 7m 정도를 훨훨 날아가 떨어졌다.

입에서는 녹색피를 내뿜었고, 가슴에는 손바닥 자국이 나 있었다.

준은 손과 발에 공력을 주입해 마음껏 휘둘렀고, 오크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날아가 떨어졌다.

오크들은 그리 약한 몬스터가 아니었으나, 이건 아예 상대 자체가 안 될 정도였다.

채 오 분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30마리의 오크들이 모두 쓰러졌다.

쿠워어어어!

오우거가 엄청난 포효를 내지르면서 나타났다.

신장이 무려 4m는 넘어 보이는 오우거는 한 손에 거대한 몽둥이를 들고 있었는데, 한 방 잘못 맞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즉사할 것 같았다.

“으음… 어디에서 이런 괴물이?”

오우거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준을 발견하고는 몽둥이를 휘둘렀다.

콰쾅!

흙덩이가 사방으로 튀면서 구덩이가 생겼지만, 이미 준은 그런 어설픈 몽둥이 공격에 당할 사람이 아니었다.

뒤로 튕기듯 물러나던 준은 손바닥을 활짝 펴면서 면장을 날렸다.

퍼억, 쿵쿵쿵.

가슴에 일장을 맞은 오우거는 뒤로 세 걸음이나 물러나게 되었다.

그것만 보아도 준의 면장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알 수 있었다.

쿠워어어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던 오우거는 몽둥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콰쾅!

하지만 그런 공격에 당할 준이 아니었다.

화가 치민 오우거는 이성을 상실했는지 무자비하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준은 미꾸라지처럼 잘도 피하였다.

쉬이잇, 퍼억!

준의 발차기에 오우거는 우측 종아리를 맞고 휘청거렸다. 허공으로 도약하면서 준은 회전 돌려차기로 오우거의 배를 차버렸다. 너무나 빠른 공격이었기에 미처 방어를 하지 못한 오우거는 뒤로 넘어졌다. 오우거는 준이 더 강하다는 것을 인정했는지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면서 그와의 거리를 벌렸다.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서는 괴물을 꼭 죽일 이유는 없었기에 준도 그대로 서 있었다.

이때, 북쪽에서 나타난 세 마리의 트롤들은 이미 준과 오우거가 대결하는 것을 보았기에 더 이상 다가오지 않고 주위에 쓰러져 있는 오크를 뜯어먹었다.

“음… 배가 고파서 접근한 모양이군.”

준은 땅에 꽂아두었던 두 자루의 검을 쥐고는 나무 위로 도약해 사라져버렸다.

그제야 물러서 있던 오우거도 다가와 오크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트롤과 오우거가 싸우면 오우거가 이긴다.

그러나 오늘은 트롤이 세 마리나 되었기에 오우거가 이기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죽은 오크가 40마리나 되었기에 굳이 서로 싸울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서로 거리를 두면서 오크를 뜯어먹었다.

워낙 많이 먹는 상위 몬스터들이라 오크 한 마리를 뜯어먹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오우거와 트롤은 오크를 다섯 마리나 뜯어먹고 나서야 배가 부른지 더 이상 먹지 않았다. 그래도 욕심이 있어서 양손에 오크 한 마리씩을 끌고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하위 몬스터들이 몰려들어 죽어 있는 오크를 뜯어먹다가 남은 것을 입에 물고는 사라져버렸다.

40마리나 되던 오크는 그렇게 사라졌다.

나무 위로 올라선 준은 등을 기대면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밤하늘엔 초록색으로 물든 달과 붉은색의 달이 거리를 두고 떠 있었다.

“이…이럴 수가! 달이 두 개였다니…….”

처음에 깨어난 동굴만 해도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세상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밤하늘에 떠 있는 두 개의 달을 보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래… 이것이었어.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되는군.”

큰 나무들과 끝없이 펼쳐져 있는 숲, 사냥했던 멧돼지, 두 발로 걸어 다니면서 괴상한 말을 하던 돼지와 엄청나게 큰 괴물들까지… 이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준이 살았던 세상과 다르지 않고는 이런 것들이 가능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슈슈슈슉.

준은 바람을 가르면서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경공술을 발휘해서인지 평지에서 최고속도로 달리는 말보다도 빠른 속도였다.

빼곡한 나무 사이로 빠르게 나는 듯 달리면서도 앞을 가로 막는 게 있으면 허공으로 도약해 나뭇가지를 차거나 하면서 질주했다. 대단한 모습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젠 경공술에 익숙해서인지 양손을 허리 뒤로 한 상태에서도 빨랐다.

“음… 오늘이 숲을 가로지른 지 6일째 되는 날이다. 언제까지 달려야 이 숲이 끝날까?”

숲은 넓어도 너무 넓었다.

숲을 둘러보는 게 아니라 그냥 한쪽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데도 이렇게 넓으니 가히 숲의 바다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준은 숲을 가로지르면서 그냥 달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익힌 무술을 복습하면서 천왕대심공을 운용하였기에 날이 갈수록 기가 몸속에 충만해졌다. 그렇다보니 날이 갈수록 심안의 한계치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콰콰콰콰.

“으응? 물소리가 큰 것으로 보아서는 폭포가 가까이에 있는 것 같은데.”

준은 방향을 약간 틀어 물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렸다.

“아… 이런 웅장하고 멋진 폭포가 있었다니…….”

계곡 사이에서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는 거센 물줄기는 시원했다.

며칠간 씻지도 못하였기에 땀에 찌든 준은 옷을 벗고 물에 들어갔다.

“아, 시원하다.”

몸을 씻은 뒤 입고 있던 옷도 물에 적셔 잘 빨아 바위 위에 펼쳐 놓았다.

스윽, 슥슥.

부메랑을 먼저 꺼내 무디어진 날을 돌에 갈았다.

오크에게서 입수한 롱소드와 바스타드소드에는 녹이 제법 많이 슬어 있었기에 돌로 날을 잘 갈았다.

“음… 날에 묻어 있던 녹을 제거하니 쓸 만하군.”

준은 옷이 마를 동안에 특별히 할 일도 없었기에 검술 연습이나 하기로 했다.

휘휘휙, 파라라락.

아직 그리 익숙하지 않은 두 자루의 검이었지만 그것을 휘두르면서 점차 익숙해져갔다.

우우우웅.

롱소드의 검날에 약간의 떨림이 느껴지면서 푸르스름한 검기가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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