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5화 (5/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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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켈리온 성

“그래. 중단전이 열리게 하기 위해서는 다시 깨달음이 없고는 오를 수 없는 단계이지. 중단전의 초입에 들면 극명하게 나타나는 증상이 있는데 전해져 오는 얘기로는 환골탈태(換骨奪胎)가 이루어진다고 한단다.”

“한월 스님, 환골탈태가 뭐예요?”

“환골탈태(換骨奪胎)란 뼈를 바꾸고 태를 빼앗는다는 뜻이지만, 무인의 경지를 말할 때에는 육신이 다시 재구성되어 무술을 익히기에 가장 적합한 신체로 변하는 것을 말한단다.”

“아… 사람이 그런 게 가능해요?”

“믿기 힘들지만 사실인 것 같구나. 어쨌든 중단전에도 하급, 중급, 상급 ,대성의 단계가 있지. 이런 경지는 글로써는 표현이 잘 되지 않는데 그건 깨달음의 경지이기 때문이란다.”

“아…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요, 한월 스님.”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런 중단전의 경지는 인간으로서는 오를 수 없는 경지이자 신인의 경지라 말하지. 정도에서는 현경의 고수, 마를 심봉하는 자들에게는 탈마의 경지라고도 한단다. 훗날 무인들이 추정하기로는 태극권을 창시한 무당파의 장삼봉 진인이나 다른 다섯 분들이 중단전의 상급에 접어들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단다. 하지만 정확한 것은 아무도 모른다.”

“아… 한월 스님, 정말 그럴까요?”

“글쎄다. 나도 전해져오는 말만 듣다보니 자세한 건 모르겠구나. 상단전의 마지막 단계인 대성의 단계는 공식적으로는 아무도 도달한 이가 없다 한다. 단지 마의 하늘인 천마대제와 소림사의 달마대사, 이렇게 두 분만이 중단전의 대성단계에 들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중단전의 대성단계를 생사경의 경지(생과 사를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경지)라 하는데, 도교에서는 신선, 무인들에겐 꿈의 경지라 할 수 있지. 무인들은 이론적으로는 하단전과 중단전처럼 상단전도 이런 단계가 있지 않을까 하고 이름을 지어놓은 것이다. 아무도 그런 경지에 가본 자가 없으니 어떻다고 말하기는 참으로 어렵구나. 이것만 보아도 상단전의 경지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알겠지?”

“예, 한월 스님. 정말 무의 끝은 없는 것처럼 멀고 높게만 느껴지네요.”

준은 풀이 죽은 듯 힘없이 대답했다.

한월은 그런 준을 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어린아이는 어린아이인가?’

준의 어린 마음속에는 희망이라는 것이 싹트고 있었다.

무적육인들도 성취한 경지라면 자신도 가능하다는 희망이었다. 자신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천재이지 않은가?

한월은 준을 보며 말했다.

“오늘날에는 옛날처럼 내공을 연마하는 무인들이 그렇게 많지 않단다. 과학에 많이 의존함으로써 무공을 힘들게 연마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자 자연히 각종 무공들이 절전되어 버렸지.”

“그…그럼?”

“현재 남아 있는 것들도 어려워 쉽게 익힐 수 없는데다가 힘들게 몇 십 년을 토굴이나 산속에서 무공을 수련하는 사람들도 극소수라 할 수 있단다. 열심히 내공을 연마해도 하단전의 하급 수준이고, 그 정도의 내공을 연마한 사람들이라 해도 총 앞에선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총이요?”

“그래. 기공수련을 해서 하단전의 중급만 되어도 총알 정도는 피할 수 있을 것인데…….”

“사람이 정말 총알을 피할 수 있어요?”

“물론 가까운 거리거나 등 뒤에서 기습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마주보고 있을 때는 피할 수 있단다.”

“그런 사람이 정말 있을까요?”

준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녀석, 의심은. 내가 6. 25전쟁 당시에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사실이다.”

“어디서요?”

“그곳이 지리산 부근이었지, 아마?”

그렇게 한월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젊었을 때 우연히 지리산 부근을 지나고 있을 때였지. 삼베옷을 입고, 머리카락이 길어 줄로 묶었는데 말총머리였단다. 지금으로 치면 기인이라 볼 수 있지. 그 기인의 5m 앞에는 두 명의 북괴군이 서 있었는데 한 명은 권총을 겨누고 있고, 한 명은 따발총을 겨누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200m 정도 떨어져 있었기에 작게 서로 주고받는 말들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 서로 몇 마디를 하더니 갑자기 장교처럼 보이는 북괴군이 권총으로 그 기인을 쏘았지. 기인은 고개만 살짝 옆으로 움직이면서 너무나 쉽게 총알을 피해버렸다.”

“그…그래서요?”

“이에 당황한 북괴군의 장교는 권총을 그 기인의 가슴에 겨누고는 연속으로 4발을 발사했지. 이번에도 그 기인은 몸을 조금씩 움직여 너무나 쉽게 총알을 모두 피해버렸어. 그러자 따발총을 겨누고 있던 북괴군도 당황하더니 총알을 발사했지. 20여 발을 그렇게 순식간에 발사했지만 그 기인은 어느새 4, 5m는 족히 될 것 같은 높이로 도약하고는 허공에서 무엇인가를 뿌렸어.”

“우와… 그렇게 높이 도약했어요?”

“그래. 직접 보고서도 믿기 힘들 정도였었지. 어쨌든 두 명의 북괴군은 치명상을 입은 듯 비명을 터트리더니 쓰러졌단다. 그 기인은 쓰러져 있는 두 북괴군을 살피지도 않고 그대로 가던 길을 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꼭 도깨비한테 홀린 것 같았던 나는 쓰러져 있던 북괴군에게 다가가서 그들을 살펴보았어. 얼굴은 파리했고, 즉사한 상태였단다.”

“왜 죽었어요?”

“쓰러져 있는 북괴군을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얼굴에 솔잎이 세 개씩 박혀 있었단다. 모두 치명적인 사혈이었어.”

“한월 스님, 정말 솔잎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거예요?”

“휴… 나도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는 것을 처음 보았다. 훗날 내가 무예를 익히자 그 기인이 하단전의 중급 정도의 실력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럼 그 후에는 그 기인과 마주치지는 않았어요?”

“그날 이후 그 기인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다.”

“스님, 그 기인이 하단전의 중급 실력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세요?”

“허허허, 그것이 궁금하더냐? 내가 바로 하단전의 중급이기 때문이지.”

“예, 스님이요?”

“믿지 못하는 게로구나. 어디 그럼 한번 보여줄까?”

“예, 보여주세요. 빨리요. 궁금해요, 스님.”

준의 독촉에 한월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똑같은 것을 보여줄 수도 있지만, 그럼 재미가 없으니 방 안에 있는 것으로 해볼까?”

한월은 한쪽에 놓인 종이 한 장을 들었다.

일현은 무언가 알고 있는 듯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준은 앞으로 일어날 일이 무척이나 궁금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준아, 이 얇은 종이를 던져 저 벽에 박히게 할 수 있다면 믿겠느냐?”

“정말이요? 정말 그렇게 하실 수 있으세요?”

“허허허, 그럼 한번 보려무나.”

한월은 손에 쥐고 있던 종이 한 장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튕기자 허공을 가로지르면서 빠르게 날아가 벽에 격중되었다.

퍼억.

아직도 힘이 남아 있었는지 종이가 부르르 떨렸다.

준의 눈이 커졌다.

“우와… 저…정말 종이가 벽에 박혔어!”

준은 자신의 두 눈으로 목격하고도 믿을 수 없었는지 종이를 만지면서 확인까지 했다.

열 살 소년은 이렇게 놀라워하면서 기공술에 푹 빠져버렸다.

“준아, 이것이 몸속에 내력을 쌓는 기공술의 힘이다. 너도 내일부터 배워볼 테냐?”

“정말요? 그래도 돼요, 한월 스님?”

“되고말고. 그럼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아침부터 수련 하자구나.”

“예, 스님,”

짹짹짹.

영월암의 마당 한쪽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 가지에 산새가 내려 앉아 지저귀더니 날아가 버렸다.

아침이 밝아오자 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월의 방으로 들어갔다.

한월의 승방에는 일현도 있었다.

승방 안에서 녹차를 마시고 있던 중 준이 들어온 것이다.

준은 방석이 깔린 곳에 앉았다.

한월은 준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 밤사이 아프지는 않았느냐?”

“예, 스님. 어젯밤에는 하나도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잘 수 있었습니다.”

“다행이구나. 오늘부터 정식으로 기공술을 연마하게 될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간단한 절차가 있단다.”

“절차요?”

“그렇단다.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

“알았어요. 그럼 절차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한월 스님.”

“좋다. 문파를 너에게 정식으로 소개해주마.”

“이곳에도 무림과 같은 문파가 있어요?”

“그렇단다. 현재까지는 일현이 유일한 제자이니라.”

“그럼 두 분만 있는 문파네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우리 문파는 이천 년 전부터 전승되어오고 있으니까.”

“이천 년 전부터요?”

“그렇단다. 네가 우리 문파에 정식 제자로 입문하고 나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지. 내 제자가 되겠느냐?”

준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한월 스님.”

“그럼 우선 나에게 아홉 번의 절을 하거라.”

“아홉 번이오? 알겠습니다, 스님.”

준은 정성을 다해서 절을 시작해 아홉 번을 끝마쳤다.

한월과 일현은 그런 준을 대견하게 생각했다.

“그럼 이제 네 사형인 일현에게도 한 번 절하거라.”

“예, 한월 스님. 아니, 사부님… 사형, 절 받으세요. 사제인 준이 인사 올립니다.”

“그래, 준 사제.”

준은 사형인 일현에게도 한 번 절을 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한월은 자신들의 내력을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우리 문파의 이름은 천왕문이라 한다. 문파가 창건된 지는 이천 년 정도 되었단다. 천왕문을 창건한 분은 현이라는 외자의 이름을 가지고 계셨는데, 문파의 이름이 천왕문이다 보니 제자들이 그분을 말할 때에는 천왕이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20명의 제자로 시작되어, 금강산의 깊은 산속에서 오직 수련에만 정진하였다. 제자들도 그것에 대해서는 일체 불만이 없었지. 그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입문하였기 때문이란다.”

“아… 대단하신 분들이시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단다. 천왕문은 특이하게도 다른 문파들처럼 큰 전각을 짓고 생활하는 게 아니라 산속의 동굴이나 움막을 짓고 오직 무예수련에만 몰두하는 그런 문파였느니라. 천왕 조사님은 혼인을 하지 않으셨지만, 제자들은 수련하던 중 속세로 내려가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해오곤 하다가 하나씩 혼인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천왕문 주위에는 작은 마을이 형성되었지. 그들이 아이를 낳으면 천왕문에 입문시키곤 하였어. 그러니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입문하는 제자들의 숫자가 늘어나 수백 명이 되기도 하였지만, 전쟁이 일어나면서 참전하여 이름을 떨치거나 죽기도 했단다.”

“아… 그런 일이…….”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적으로 입문하는 제자의 수가 줄어들어 백 명이 넘지 않게 되었으며, 겨우 그 명맥만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단다. 그러나 오랜 세월 이어져 오다보니 전각도 생기고 마을도 형성되었지. 그러다가 약 4백여 년 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왜군들이 조총을 앞세우면서 쳐들어와 천왕문이 불타면서 피난을 떠나게 되었단다.”

“아… 임진왜란…….”

“그 당시 61대 문주였던 조휘라는 분께서는 팔도를 떠돌다가 마침내 자리를 잡으셨는데 그곳이 어디인지 아느냐?”

“음… 혹시 영월암이 아닙니까?”

“하하하, 똑똑하구나. 그렇단다. 강원도 영월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것이 영월암이었느니라.”

“그 뒤 천왕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조휘 문주님은 피난 중에 팔도를 떠돌다가 거두어들인 세 명의 제자들과 함께 영월암을 짓고 생활을 시작했지만 날이 갈수록 문파의 번영은 기대하기 어려웠단다. 성공(정신수양)과 명공(신체단련)을 병행해서 산속에서 수십 년이나 힘들게 보내야만 하니 누군들 도망가지 않겠느냐? 무술을 익혀 이름을 떨치길 바라고 이곳에 들어왔지만 힘든 수련을 견디지 못하고 모두들 떠나간 것이다. 천왕문에서 몇 년간 수련을 한 자들은 나름대로 도장을 열기도 해서 그럭저럭 생활을 영위했지만, 무림문파가 어디 우리뿐이더냐? 그래서 우리 천왕문은 점차 무림에서 사라졌고, 지금까지 겨우 두 명의 제자만으로 이어져 내려오게 되었단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스승님.”

“그렇단다. 천왕문의 역사는 이렇게 길었지만 유명무실해졌다고나 할까? 어쨌든 나는 천왕문의 83대 문주이고, 보는 바와 같이 일현이와 준이 네가 유일한 제자이니라.”

“아…….”

“이젠 천왕문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것을 알려주도록 하마.”

준은 기대어린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러나 한월이 꺼낸 것은 겨우 책 세 권이었다.

‘뭐야, 겨우 세 권이 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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