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3화 (3/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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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켈리온 성

짹짹짹.

산새 두 마리가 나뭇가지에 내려앉아 지저귀더니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는 아침이었다.

영월암의 뒷방에는 준이 피곤한지 잠에 취해 있었고, 한월은 어느새 새벽 공양을 마치고 승방에서 참선 중이었다.

영월암은 40대 후반의 공양주 보살 1명과 승적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20대의 젊은 스님 1명이 있었는데, 모두 해봐야 3명뿐이다.

그런 영월암에 식객이 하나 더 늘었다.

오전 8시가 되었을 때, 준은 잠에서 깨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하게 침상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와 강원도 영월의 오염되지 않은 공기를 힘껏 들이켰다.

“푸하…….”

깨끗한 공기는 너무 상쾌했다.

“안녕?”

뒤에서 들린 소리에 준은 고개를 돌렸다.

머리카락을 자른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푸르스름한 머리색의 까까머리 젊은 스님이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스님.”

“안녕.”

“스님은 이곳에서 사시는 거예요?”

“그래… 네 이름이 김준 맞지?”

“어? 어떻게 제 이름을 아세요?”

“응, 주지스님께 들었어. 많이 아프다며?”

“예, 이곳에 있으면 안 아플 거래요.”

“그렇구나. 반갑다. 나는 일현이야.”

“일현? 법명이 좋네요.”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하하하.”

“일현 스님은 이곳에서 뭐하고 지내세요?”

“한월 스님께 가르침을 받는단다.”

“가르침? 그게 어떤 건데요?”

“글쎄, 그게 뭐라고 해야 네가 이해를 할까?”

“일현 스님이 모르면 누가 알아요? 바보 같아.”

“하하하, 바보라… 어쩌면 난 정말 바보일지도…….”

김준과 일현이 이렇게 첫 만남을 갖고 있을 때 승방 안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현아, 거기서 뭐하고 있느냐? 떠오라는 물은 어쩌고?”

“아…아차, 잊고 있었구나. 예, 스님 지금 바로 가지고 갑니다. 가요.”

일현은 재빠르게 시원한 물 한 사발을 뜨더니 조심스럽게 승방 안으로 들어갔다.

호기심에 준도 일현을 따라 승방 안으로 들어갔다.

승방 안에서는 한월이 정좌를 하고 있었는데, 감았던 두 눈을 뜨자 눈빛이 번뜩이다 사라졌다.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사람이었다.

일현은 떠온 물 한 그릇을 한월에게 내밀고는 마주보는 곳에 방석을 깔고 앉았다.

준도 일현 옆의 방석에 앉았다.

“으음… 준이는 이리로 오너라.”

“예, 스님.”

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월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오른손을 내밀어 보거라.”

“예, 스님.”

준이 오른손을 한월 앞으로 내밀자, 한월은 솥뚜껑 같은 손으로 준의 손을 덥석 잡고는 두 눈을 감고 진지하게 진맥을 했다.

준은 한월이 의사들처럼 자신의 아픈 몸을 진맥한다고 생각했다.

‘흐음…….’

한월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준은 내성적인 성격인데다 아팠지만 머리는 매우 총명했다.

남들보다 1년 일찍 학교에 들어가 이제 겨우 10세로, 초등학교 4학년.

지금은 몸이 아파서 학교에는 다니지 못하고 집에서 병 치료를 했다. 늘 집에 있으면서 책 보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얼마 전에는 고등학교 3학년 정규과목의 교과서를 구입해 읽곤 했다.

그런 모습이 가족들에게는 더 큰 아픔으로 다가왔다.

형인 창도 또래들보다 뛰어났지만, 준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준이 건강했다면 가족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살았을 것이다.

영숙은 아들 준이 좋아하는 책을 거의 300여 권이나 가지고 와서 승방 한쪽에 놓아두고 떠났다. 영월암에서 얼마나 보내게 될지 몰라 일단 이렇게 비서들을 동원해서 가지고 온 것이다.

10세 아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하루에 10여 권이나 되는 책을 읽는 준이었다.

공기 좋은 영월암에서 병이 낫기만을 기대하며 요양을 한다는 것을 엄마에게 들었다. 그래서 자신은 쉽게 나을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준이었다.

한참을 진맥하고 있는 한월의 얼굴은 심각했다.

준의 몸은 매우 불안정했다.

기경팔맥이 서서히 막혀 죽음에 이르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태아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는 모든 기경팔맥이 상통해 있다가 태어나면 화식을 하면서 점차적으로 모든 팔맥들이 상통하지는 않는다.

한월은 준이 10세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총명하다는 것을 들은 뒤라 이해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기경팔맥에 대해서 설명을 시작하였다.

“내장과 직접 관계된 십이경맥과 교차되면서 운행하는 경맥을 기경이라 한다. 몸의 좌우에 여덟 개씩 있으며 그 작용과 순환의 부위에 따라 이름이 지어졌다. 이것이 기경팔맥이니라. 준아, 기의 뜻이 무엇인지 아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스님.”

“기는 ‘단독’이라는 뜻이다. 기경팔맥 상호 간에 밀접한 음양의 관계가 있다. 여덟 개의 기경 가운데 임맥과 독맥은 자기의 독립된 경혈을 갖고 있지만, 다른 여섯 개의 기경은 십이정경 사이에 있으며 자기 부속의 경혈을 가지지 않는다. 십이정경과 임ㆍ독맥을 합쳐 십사정경이라 부르기도 한다.”

“어려워요.”

“처음 듣는 것이 많아서 그럴 것이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들어두어라.”

“예, 스님.”

“그럼 계속하겠다. 기경팔맥은 각각 하나의 통혈을 갖고 있어 그 대표혈은 맥을 조절하고 그곳을 치료해야만 기경팔맥들이 조절이 된다. 기경팔맥의 특징은 그 이름에 표현되어 있다. 독맥의 ‘독’자는 모두를 감독한다, 독촉한다는 뜻이다. 머리, 목, 척추 등 인체의 정 중앙을 순행하여 전신의 양경을 총감독하므로 양맥의 바다라 부른다.”

“양맥의 바다라고요?”

“그렇단다. 그리고 임맥의 ‘임’자는 담당한다, 맡는다는 뜻이다. 머리, 가슴, 배 등 인체의 정중앙을 순행하여 전신의 음경을 맡는다고 하여 음맥의 바다라고 한다.”

“음경은 음맥의 바다?”

“다음으로 충맥이 있다. 충맥의 ‘충’자는 중요한 길목이라는 의미가 있고, 순환 경로가 밑에서 위로 올라가기만 한다. 십이경맥의 중요한 길목에 있다하여 경락의 바다라 하지.”

“이번에도 바다예요?”

“쉽게 얘기하자면 그렇단다. 일단은 한번 들어본다고 생각하거라.”

“예, 스님.”

“다음으로는 대맥이 있는데, 대맥의 ‘대’자는 허리띠와 같이 묶는다는 뜻이며 배꼽을 중심으로 한 바퀴 몸 주위를 돌아가며 음양의 여러 경맥을 다 묶는다. 그리고 양교맥과 음교맥의 ‘교’자는 민첩하다는 뜻과 발뒤축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발뒤축이라고요, 스님?”

“그렇단다. 이 두 맥은 발뒤축에서 시작하여 한 가닥은 안쪽으로 올라가는데 이것을 음교맥이라 하고, 다른 한 가닥은 바깥쪽으로 올라가는데 이것은 양교맥이라 한다. 이 두 맥은 인체의 운동기능 유지와 눈을 뜨고 감는 것을 주관한다.”

“예.”

‘허헛, 녀석. 일단은 지루해도 나중에는 지금 설명해주는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가를 알게 될 날이 있을 게다.’

잠시 생각을 하던 한월은 준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는 말하였다.

“조금 지루할 테니 일단 조금 쉬었다가 하자꾸나.”

“예, 스님.”

이렇게 해서 그들은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방을 나왔다.

일현과 준은 마루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면서 휴식을 취하였다.

“스님의 말씀이 어려웠지?”

“네, 처음 듣는 말이라 이해를 못하겠어요.”

“그럴 것이다. 하지만 한 번 정도는 잘 들어볼 필요가 있어.”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호오? 그런 생각을 가졌다니 대단한데?”

“그게 대단한 거예요?”

“그럼. 열 살짜리 아이가 그런 생각을 가지기가 쉽겠어?”

“웅.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일현 스님.”

“하하, 녀석. 이제 좀 쉬었으니 다시 들어가 볼까?”

“예, 일현 스님.”

방 안으로 들어가니 한월은 두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는 다시 눈을 뜨며 설명을 시작했다.

“커험… 잘 쉬었느냐?”

“예, 스님.”

“그럼 다시 설명을 시작하겠다. 기경팔맥 중 이번에는 양유맥과 음유맥을 설명해주도록 하겠다. 양유맥과 음유맥의 ‘유’자는 얽어맨다는 뜻이다. 모든 음경을 얽어매는 것을 음유맥이라 하고 모든 양경을 얽어매는 것은 양유맥이라 한다. 참고로 기경팔맥의 설명은 편작이 지은 팔십일난경을 보면 잘 나와 있다.”

“편작은 의술에 뛰어난 사람 아닌가요?”

“그렇단다. 편작은 기경팔맥에 대해 설명하기를 ‘맥 중에는 기경팔맥이 있고 십이경에 구속되지 않는다. 기경은 양유와 음유가 있으며, 음교가 있고, 충맥, 독맥, 임맥, 대맥이 있다. 이것은 모두 8개이며 모두 경에 속해 있지 않는다. 그럼으로 기경팔맥이라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단다.”

“휴… 스님, 기경팔맥이라는 것이 인체에 아주 중요한 것이군요.”

“그렇지. 기경팔맥은 대단히 중요하다. 만일 그 경맥이 넘치게 되면 모든 경맥을 복구할 수 없게 된다. 명심하거라, 준아.”

“예. 스님.”

“어렵고 생소하겠지만 이왕 시작한 것 기경팔맥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하마.”

“예, 스님.”

“기경팔맥의 유주는 이렇다. 독맥은 최고 아래 부분에서 시작하여 피부를 타고 위로 올라가 풍부에서 뇌로 들어간다. 임맥은 중극 밑에서 시작하여 위로 올라가 모제를 타고 배 안, 눈 근처와 혀로 들어간다. 충맥은 기충에서 시작되어 족양명과 같이 병행해서 배꼽 옆으로 올라가서 가슴까지 가서 흩어진다. 대맥은 계늑에서 시작해 신체를 옆으로 한 바퀴 돈다. 양교맥은 발꿈치에서 시작해 안쪽 복사뼈 위로 올라가 인후에 오른 뒤 충맥과 관통한다. 양유ㆍ음유맥은 신체를 유지시키는 경맥이다. 쌓인 것이 넘쳐서 되돌아올 수 없을 때 그 넘친 경맥들을 조절하는 경이다. 그러므로 양유는 모든 양경이 모인 데서 출발하고 음유는 모든 음이 교차하는 곳에서 시작된다.”

“간단하게 설명해주시니 조금은 알겠습니다.”

“허허… 녀석도. 다음은 기경팔맥의 특징에 대해서 알려주마.”

“예, 스님. 이젠 조금은 알 것 같으니 설명해주세요.”

“그러자구나. 기경팔맥의 특징은 이렇다. 정경과 달리 일정한 운행순서가 없으며, 인체를 상하로 직선운행, 경사로 운행, 옆으로 운행하기도 한다.”

‘휴우… 어려워.’

“이번에는 기경팔맥의 순행에 대하여 설명해주도록 하겠다. 독맥은 윗잇몸인 인중과 콧마루에서 이마와 정수리인 백회로 올라가 뇌 속에 들어간다. 그런 다음 뒤통수인 풍부와 척추를 따라 내려갔다가 꼬리뼈 밑인 장강을 지나 항문을 돌아 회음에서 임맥에 연결된다.”

“…….”

“임맥은 생식기와 항문사이에서 시작하여 음모가 난 부분으로 올라가는데, 뱃속으로 관원을 지나 인후에 갔다가 턱으로 올라가 아랫잇몸과 얼굴을 돌아 눈으로 들어간다.”

“…….”

“충맥은 아랫배(胞中)에서 시작하며, 대맥은 옆구리 밑에서 시작하여… 다음은 음교맥으로… 발 안쪽 복사뼈 아래서 시작하여 복사뼈 안쪽 위를 지나 양백에 이른다. 경락은 기혈이 운행되며 인체의 모든 곳에 에너지와 필요한 영양을 운반하는 통로이다. 경맥은 낙맥보다 굵고 곧게 가며, 보다 깊은 곳에 분포되어 있는 인체의 기본 줄기이다. 낙맥은 경맥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로 가늘고 짧고 옆으로 퍼져나가며 얕은 곳에 분포되어 있다. 낙맥은 열다섯 개의 낙맥이 있으며 낙맥에서 갈라져 나간 것을 손낙맥이라 한다. 알겠느냐?”

“예, 스님.”

“기경팔맥과 십이경락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는데, 조금이라도 기억은 할 수 있었느냐?”

“예, 스님 쉽게 설명해주셨기에 대부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뭐? 그걸 기억한다고?”

“예, 스님.”

‘뛰어나다는 일현도 처음에는 기경팔맥과 십이경락을 장장 한 달이나 반복하고서야 겨우 알게 되었는데, 열 살의 어린아이가 한 번 듣고 그 어려운 것들을 다 외운다고 말하다니.’

“으음… 그럼 내가 설명해주었던 것을 한번 말해보거라.”

“예, 스님.”

준은 전혀 막힘없이 줄줄 기경팔맥과 십이경락에 대해서 말하였다. 이에 일현과 한월은 무척 놀라고 말았다.

“그…그래, 장하다. 정말 장해.”

총명하다는 것은 아이의 부모로부터 전해 들었지만 도무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준이 기경팔맥과 십이경락을 모두 설명하자 믿을 수밖에 없었다.

“허허… 기재야, 기재.”

일현도 너무 놀라 자신이 입을 벌리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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