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2화 (2/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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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켈리온 성

서울 강남의 최 산부인과의원.

끼이익.

급브레이크 소리가 터지면서 최고급 세단인 검은색 벤츠 2대가 한꺼번에 최 산부인과의원의 정문에 정차했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비서가 재빨리 문을 열어주자 노인이 모습을 보였다.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이었는데, 뭐가 그리 급했던지 병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노인의 뒤를 이어 정장차림의 중년인이 뛰어갔으며, 그 뒤를 정장을 한 10여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뛰어 들어갔다.

정문 앞의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때 아닌 구경거리에 머리를 내밀고 바라보았다.

최고급 세단인 벤츠였기 때문이다.

끼이익.

갑자기 연속적으로 고급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정차하였다. 무려 50여 대나 되었다.

뒷좌석에서 내린 사람들은 모두 한눈에 보기에도 사회에서 한자리를 하고 있을 정도의 고위인사로 보였다.

그런 사람들이 병원 안으로 우르르 들어가기 무섭게 다른 차량들도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흔히 볼 수 없는 진풍경이었다.

그들의 수행원들은 화환과 꽃바구니, 풍성한 과일 바구니 등을 한두 개씩은 꼭 들고 뒤따라갔다.

개중에는 국회의원과 장ㆍ차관들의 보습도 보였고, 연예계에서 제법 인기를 누리는 탤런트나 영화배우들도 있었다.

“무…무슨 일이지?”

진풍경을 구경하던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생아실에는 조금 전에 태어난 신생아들이 많았는데, 유독 한 쌍둥이 신생아만 특별대우를 받는 듯 창가와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창문 밖에는 백두그룹의 회장인 수리와 사장인 천명, 신생아의 아버지가 된 재엽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퉁퉁 부은 눈과 함께 눈동자가 충혈되어 있었다.

귀하디귀한 육대독자가 쌍둥이로 세상에 나온 것이다.

세상 어느 부모에게 자식이 귀하지 않겠는가마는 ‘육대독자’ 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 김씨 집안은 손이 유독 귀한 집안이었다.

한 방에 쌍둥이를 출산하자 영숙은 자신의 본분을 다한 듯, 시아버지와 시할아버지로부터 축하를 받고는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남편인 재엽도 영숙의 곁에서 열심히 산후조리를 돕고 있었다. 지금은 영숙의 어깨를 안마하고 있었는데, 이마에서는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지만 너무 기분이 좋아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고 싱글벙글했다.

“여보, 정말 수고 많았소.”

“당신도 수고 많았어요.”

“내, 앞으로 더욱더 당신에게 잘하리다.”

“고마워요, 여보.”

“참, 아이들 이름도 지어놨는데…….”

“언제요?”

“흐흐흐…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워낙에 급한 성격을 가진 양반들이라 미리 지어놓았소.”

“빨리 말해 봐요. 궁금해 죽겠어요.”

“큰아들은 김창, 막내는 김준으로 지어두었소. 어때요?”

“호호, 김창, 김준! 예쁜 이름이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하하.”

준의 부모들은 특실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었고, 백두그룹의 회장 수리와 사장 천명은 신생아실 앞에서 보초를 서듯 잡인들의 출입을 경계하고 있었다.

백두그룹의 실세들이 모두 이 병원에 모여 있어서 그룹이 일시 마비가 되었지만,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 김씨 집안  사람들이었다.

준이 태어난 날에 병원에는 때 아닌 높으신 양반들이 많이 다녀갔다.

정ㆍ제계, 연예계 할 것 없이 많은 높으신 양반들이 신생아실 주위에 모여 백두그룹의 회장과 사장에게 덕담을 하고 때로는 악수를 하고 돌아갔다.

간호사들은 혹시라도 신생아들에게 소홀한 것이 있는지 다시 한 번 체크했다. 워낙 높으신 양반들이 병원에 많이 와서인지 평소보다 더 신경을 써야했다.

한바탕 높으신 분들의 행차로 원장인 최돌수는 정신이 다 없을 정도였다. 높으신 분들이 하나 둘도 아니고 아예 떼거리로 몰려 왔으니, 그 정신적인 피로감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높으신 어른들의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었기 때문에 기분이 좋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최돌수였다.

서울 강남 최 산부인과의원의 하루는 이렇게 흘러갔다.

10년 후.

쌍둥이 형제인 김창과 김준은 세월이 지나자 너무 다르게 성장했다.

형인 창은 건강하고 활달한 성격으로 주위로 부터 칭찬을 많이 받으며 성장했지만, 동생인 준은 잦은 병치레를 하느라고 얼굴과 몸이 많이 야위었다. 그래서 각종 보약을 지어 먹여보기도 했지만 큰 차도가 없었다.

성격도 형인 창이는 활달한 반면, 준은 말도 별로 없고 내성적이라 부모들은 걱정이 많았다.

준은 혼자 놀기를 좋아해 언제나 방에만 있었다.

두 달 전부터는 밖으로 나가면 저녁이 되어야 돌아오곤 했다.

하루는 영숙이 준을 몰래 따라가 무엇을 하는지 확인해보았다.

집 근처에는 아담한 야외 놀이터가 있었다.

그 놀이터의 시설은 매우 낡아서 이젠 이용하는 아이들도 없이 방치되어 있는 곳이었다. 한쪽에는 썩은 나뭇가지들이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어서 더욱 위험했다.

그런데 그런 곳에 아들이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영숙은 처음에는 지저분하고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준을 말려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일단은 지켜보기로 했다.

‘우리 준이가 위험한 곳으로 가면 안 되는데…….’

그러나 다행히 준은 위험한 놀이터의 안쪽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썩은 나무들이 방치된 곳의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서는 무엇인가를 열심히 바라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는 준을 본 영숙은 별다른 위험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저분한 것을 만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쪼그려서 무엇인가를 관찰하는 것뿐이었으니 말이다.

호기심이 생긴 영숙은 살금살금 준의 등 뒤로 다가갔다.

‘준이가 무엇을 보고 있는 거지?’

준이 보고 있는 것은 각종 벌레들이 저마다의 일들을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우리 아들 준이, 뭘 보고 있니?”

“엄마, 이것 봐.”

준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4~5cm 정도의 녹색의 사마귀 한 마리였다.

사마귀는 양 앞다리의 퇴절에 있는 예리한 가시로 귀뚜라미가 도망가지 못하게 꽉 붙잡고는 연신 귀뚜라미의 몸통을 뜯어먹고 있었다. 제 몸이 뜯겨나가는 중에도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귀뚜라미가 불쌍해 보였다.

영숙은 못 볼 것을 보았다는 듯 잔인한 모습에 진저리를 쳤다.

준은 그것이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그때 그녀는 아들 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성적이며 잦은 잔병치레로 언제나 조용한 아들 준이다. 그런 아이가 몇 시간 동안이나 한곳에 앉아서 무엇인가를 본다는 것은 대단한 인내력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겨우 열 살짜리 아이가 이런 행동을 한다는 것은 정상적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자폐증상을 조금 가지고 있는 준이었다.

그녀는 아들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아들은 초등학생이다.

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와서는 책가방을 던져놓고 근처의 공원에 쌓여 있는 썩은 나뭇가지들이 있는 곳에서만 놀았다. 그렇게 1년 동안이나 이곳에 혼자 놀러오곤 했던 것이다.

어느 날 준은 몸에서 심한 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평소에도 연약한 아이였지만, 이번에는 목숨이 위험한 지경까지 처하게 되었다.

최고의 의료진을 동원해서 겨우 큰 고비는 넘겼지만 앞으로가 문제였다.

“으으으… 엄마, 아파.”

“준아…….”

“어…엄마.”

“흐흑… 우리 아들, 또 아파?”

“많이 아파, 엄마.”

“가여운 것…….”

아파서 자신을 부르는 아들을 보는 영숙의 가슴은 찢어졌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똑같다. 자식이 아프면 어머니의 가슴도 찢어질 듯 아픈 것이다.

그날 저녁, 보다 못한 가족들은 회의를 했다.

준의 미래를 생각해서 공기 좋은 곳으로 요양을 보내자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어린 자식을 어디에서 홀로 요양시킨단 말인가?

“어디가 좋을까?”

“공기 좋은 곳이 좋지 않겠어요?”

“흠… 그럼 강원도가 어떨까? 그곳에는 친분이 있는 분이 계시니 말이야.”

“그래요? 그럼 강원도로 해요.”

준을 강원도로 데려가서 요양시키자는 결론이 확정되었다.

강원도 영월 동강의 한 야산에는 백두그룹의 회장인 수리와 친구인 한월 스님의 암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영월암’이었다.

수리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영월암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가족회의에서 말했고, 만장일치로 준을 그곳에 보내기로 했다.

강원도 영월 동강부근.

덜커덩, 덜컹.

험한 산길을 덜컹거리며 사륜구동의 외건 5대가 힘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외건의 뒤로는 흙먼지가 자욱했다.

2대의 외건에는 백두그룹의 회장 일가가 타고, 나머지 3대의 외건에는 수행원들이 타고 있었다.

한 시간을 그렇게 덜컹거리며 움직이던 차는 드디어 목적지와 가까워질 수 있었다.

더 이상 차로는 갈 수 없는 곳까지 움직인 외건 5대를 인위적으로 만든 공터에 모두 주차해둔 그들은 도보로 움직였다.

500m 정도를 걸어가자 한월 스님이 있는 영월암이 나왔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 길이 좋지 않았다. 백두그룹의 회장인 수리가 친구와 만나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인부들을 동원해 길을 넓혔기에 그나마 이 정도였다.

그렇게 해서 길이 나게 된 것이다. 비록 영월암의 근처까지 비포장이었지만 말이다.

영월암의 일주문에는 승복을 입은 지긋한 나이의 스님 한 명이 서성이고 있었다.

작은 암자에 무슨 일주문이냐 하겠지만, 그래도 있는 것이 특이해 보였다.

일주문도 백두그룹의 회장 수리가 박박 우겨서 만들어준 것이다.

한월도 처음에는 그런 것 없어도 된다고 했다. 그러나 수리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더 보기가 좋지 않겠느냐고 우기는 데는 할 말이 없었다.

일주문 앞에서 서성이는 스님은 백미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얼굴도 인자해 보이는 분으로 공경심이 저절로 일어나도록 하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한월 스님이었다.

예지력이라도 있는 것인지, 연락이라도 받은 것인지 이렇게 영월암의 일주문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백두그룹 일가도 어느새 영월암의 일주문 앞에까지 다가왔다.

수리는 친구인 한월이 나와 있자 반가워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합장을 했다.

“그간 무탈하셨소, 한월?”

“허허허허… 김 시주도 무척 좋아 보이십니다, 그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수리는 뒤에 서 있는 가족들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얘들아, 인사드려라 한월 스님이시다.”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스님?”

“허허허. 천명 시주와 재엽 시주도 오셨군요, 아미타불.”

천명은 옆에 서 있는 영숙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제 며늘아이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스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자, 안으로 드시지요.”

“잠시 폐를 끼치겠습니다, 스님.”

“폐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아미타불.”

간단하게 서로 인사를 하고는 모두 영월암의 승방으로 들어갔다.

영월암은 일 년 내내 손님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아도 채 10명도 안 되었다. 몇 달 만에 등산객들이 비를 피해 잠시 쉬었다갈 뿐인 작은 암자였다.

그런데 오늘은 한꺼번에 25명이나 찾아 온 것이다.

영월암은 강원도의 영월에 있는 곳이라 어둠이 일찍 찾아온다.

준은 앞으로 영월암에서 요양하며 지내게 될 것이다.

영월암에서의 하루는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으며, 날이 밝아오자 가족들은 준을 남겨둔 채 돌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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