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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142화 (완결) (14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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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망한 얼굴의 해일이 재하를 바라보았다. 정작 재하는 재윤의 등짝을 때리려다 실패하고 엎어져 신음했다.

“으윽…….”

“재하, 괜찮습니까?”

그 모습에 정신을 차린 해일이 재하를 챙기려는 것과 동시에 재윤이 먼저 다가가 재하를 품에 끌어안았다. 끙끙대는 재하를 끌어안은 붕대 감은 팔이 절실함을 더해 해일은 뻗었던 손을 거둬들이려 했다. 한데 그런 해일을 향해 재하가 손을 내밀었다.

“손 주세요. 그러다 쓰러지시겠어요.”

손등에 수액 주삿바늘이 꽂힌 재하의 하얀 팔은 유달리 더 약해 보여 해일은 차마 손을 뻗을 수 없었다.

“재하야말로 쉬어야 할 때입니다.”

“손 주세요, 해일 형.”

재윤까지 나서서 재촉하자 망설이던 해일이 손을 내밀었다. 평소보다 거친 감촉에 해일이 눈짓으로 의문을 표하자 재하가 눈을 굴리며 모른 척했다. 드러난 재하의 얼굴이나 손에 긁힌 듯한 상처가 많았다. 고작 이틀이었지만, 재하가 겪은 고생을 짐작할 수 있어 해일은 미안함을 느꼈다.

“더 빨리 찾으러 가야 했는데, 미안합니다.”

“안 그래도 묻고 싶었어요. 해일 형뿐 아니라 재윤이한테도.”

재윤에게 안긴 채 해일의 손을 잡은 재하의 질문에 두 사람은 귀를 기울였다.

“이전에 납치된 가이드는 왜 구하러 가지 않았어요?”

해일은 조금 당황했지만, 재윤은 의외로 차분했다. 해일에게 잡히지 않은 재하의 다른 손을 제 손바닥에 얹은 재윤은 지호에게 돌려받은 반지를 끼워 주었다.

“어? 이거 어떻게 찾았어? 영우 선배가 가져갔을 텐데.”

“그 새끼가 그랬을 줄 알았어.”

같은 반지를 낀 손이 겹치자 해일의 시선이 자연스레 따라갔다. 아이템을 나누어 낀 것뿐이지만, 재윤의 품에 안겨 손을 겹친 재하의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몸이 아픈지 얕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재윤에게 기대앉아 편안해하는 재하를 보는 내내 해일은 심장이 욱신거림에도 보기 좋다고 느꼈다.

“빌런 기지는 인식 저하가 걸려 있어서 위치를 특정할 수 없었어. 유마로와 가이드가 납치됐지만, 특정 아이템을 발견하기 전까지 찾을 방도가 없었고. 그런데…… 형이 납치되어서 그나마 위치를 알 수 있게 된 거야.”

재하의 납치를 언급하는 재윤의 목소리가 떨렸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듯, 자신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비비는 그의 행동에 재하는 간지러움과 함께 동생의 불안을 느꼈다. 그래서 밀어내는 대신 반지 낀 손을 도닥였다.

“찾을 수 없어서 말을 안 해 줬구나. 그것도 모르고 다들 오해할 뻔했어.”

“응. 당장 방법도 없는데 형이 걱정할까 봐 말 못 했어.”

금세 풀어진 분위기에 재하가 문 쪽을 힐끗거리다 조심스레 물었다.

“그리고 그…… 이천오 씨는 무사해?”

납치되기 직전까지 자신을 보호하던 이천오가 무사한지 궁금하면서도 묻기 망설여졌다. 혹여나 잘못되었다면 그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기에 두렵기도 했다.

“이천오 씨가 마음에 들어? 협회 나갈 때 가드로 고용할까?”

“으이구, 직장 그만두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아? 그것도 너처럼 얼굴 팔린 에스퍼가 어딜 가려고. 게다가 이천오 씨 월급은 무슨 돈으로 줄 건데?”

재윤의 반응에 이천오가 무사하다는 걸 알아챈 재하는 안심하면서도 현실을 직시하라는 듯 재윤을 타박했다.

재하와 대화할 때면 철부지 어린 동생이 된 것 같아 재윤은 자꾸만 말문이 막혔다. 재하의 말과 달리 재윤이 협회를 떠난다고 하면 데려가려는 길드들이 줄을 섰다. 아직 어중이떠중이만 모아 둔 신생 길드들이 고액의 연봉과 갖은 혜택을 들이밀 게 뻔했다. 하지만 재윤은 현실을 설명하는 대신 재하의 타박에 못 이긴 척 형의 가벼운 꿀밤에 머리를 비벼 댔다.

“형, 나도 가이딩 부족한데.”

“와, 노양심도 정도껏 이어야지. 그렇게 해 놓고 가이딩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와?”

“그거야 급한 불만 끈 거잖아.”

“아오, 입 좀. 그 입 좀 다물어.”

찰싹찰싹 반지 낀 손이 재윤의 입술을 두드리는 걸 보며 해일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재하.”

“아, 넵. 가이딩에 집중할게요.”

“재하, 좋아합니다.”

잔잔하면서도 가벼운 고백에 재하는 어떤 반응도 하지 못했다. 재윤만이 재하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서재윤 씨. 아니, 재윤아.”

재윤이 해일을 친근하게 불러 주었듯 해일도 재윤에게 친밀감을 드러냈다.

“네, 해일 형.”

“너도 좋아해.”

“무슨 개호 같은 소릴 하시는 거예요?”

상상도 못 한 해일의 발언에 재하가 놀라 쳐다보자 해일의 웃음이 크게 터져 버렸다. 누가 봐도 성공적인 농담을 던지고 유쾌하게 웃는 모습이었기에 재윤과 재하도 덩달아 웃어 버렸다.

형을 위해 모든 걸 내던지며 필사적으로 달려온 재윤. 동생의 희생 아래 두려움도 모른 채 다정함을 간직한 재하. 두 사람이 끝끝내 서로를 위하는 모습에 해일은 형제의 행복을 빌며 알싸한 통증을 잊었다.

* * *

빌런 아지트를 불태운 일은 무척이나 과장되어 퍼져 나갔다. 서울을 날려 버릴 폭탄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소문부터 세뇌 전파를 내보내기 직전이었다와 같은, 실제로 준비하지 않은 일들이 조작된 증거와 함께 방송을 타며 협회의 입지를 공고히 하는 데 일조했다.

그 과정에서 재윤과 재하의 협회 이탈 소식이 전해졌다. 협회는 당연히 거짓 소문에 휩쓸리지 말라며 자리를 따로 마련했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1세대 고등급 에스퍼의 독자적인 활동을 약속했다.

협회에 속해 있긴 하나 독자적인 권한을 가진다는 건 지원은 받되 결정권은 개인에게 있다는 의미였다. 물론 여론에 떠밀리는 일이 생길 수도 있지만, 재윤은 그 정도에 밀리지 않으니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가이드와 가이딩을 시작한 지호와 달리 재하가 아니면 가이딩 효율이 지독하게 나쁜 해일에겐 형제가 협회에 남아 주는 일이 감사했다. 해일은 협회의 공식 활동에 참여하면서도 재윤과 공동 길드장이 되어 길드의 주요 일정 또한 놓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길드의 주요 일정이란, 재윤이 기억하는 신규 게이트 우선 진입과 재하의 안전을 함께 도모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신규 게이트 중 재윤과 해일이 함께해야 할 만큼 큰 건은 드물었기에 재윤의 일정은 한가롭기까지 했다. 시간 대부분은 재하의 안전을 위해 곁을 지켰다.

“형 얼굴 보기가 너무 힘들어졌어.”

납치 후 경계심이 생기지 않았을까 했던 형은 오히려 활동적으로 변했다.

매일 구출된 가이드를 찾아가고, 외부의 만남 요청에도 가이드와 관련된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임했다. 게이트 외의 장소에서 가이딩 요청이 있으면 여간해선 직접 참여했고, 현장에서 신입 가이드들을 챙기느라 하루를 아무리 쪼개 써도 시간이 모자랐다.

‘이천오와 따로 통신을 주고받긴 하지만.’

위험하지 않은 센터에서마저 따라붙는 자신을 보다 못한 형이 축객령을 내린 후에야 이천오에게 뒤를 맡기고 숙소로 돌아왔다.

센터 안에서의 안전을 믿게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강화된 마나석 덕에 협회 안에선 S급조차 이능을 쓰기 힘들어졌다. 보강된 협회는 이전보다 튼튼해졌고, 체계가 잡혀 갔다.

사해라도 협조적이라 납치된 가이드들의 끔찍한 기억을 희석하거나 원하는 방향으로 도움을 주고 있었다.

“늦어서 미안. 밥은 먹었어?”

“설마 이 시간까지 저녁도 안 먹은 거야?”

숙소로 돌아온 재하가 목까지 채운 제복 단추를 풀며 일어서려던 재윤에게 그대로 몸을 내던졌다. 익숙하게 받아 안자 자신의 손을 잡아 자연스레 가이딩을 시작하는 재하의 행동에 재윤은 미간을 찌푸렸다.

“난 됐으니까 밥부터 먹어.”

“아냐. 너 가이딩만 해 주고 다시 나가 봐야 해.”

“어디 가는데? 같이 가.”

“괜찮아. 이천오 씨도 같이 움직일 거니까.”

재하가 자신의 안전에 민감한 재윤을 밀어낸다는 건 이동 장소가 협회 내부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늦은 시간에 움직이려는 재하의 행동을 재윤은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오늘 스케줄은 더 없잖아. 갈 거면 같이 가.”

“음…… 너, 도준이 싫어하잖아.”

재윤은 도준을 언급하는 재하에게 이전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신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였다.

“이젠 괜찮아. 어차피 떠날 건데…… 아, 그게 오늘이구나.”

수호자의 해외 진출 소식으로 인해 연일 협회의 무능함 때문에 귀한 인재를 뺏긴다는 의견과 다양한 에스퍼의 교류로 인해 방치된 몇몇 게이트를 닫을 수 있는 기회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다행히 트레이드할 해외파 에스퍼의 금발과 금빛으로 빛나는 방패가 만들어 낸 화려함은 대중의 눈을 사로잡았다.

큰 잡음 없이 도준을 해외로 보낼 수 있게 된 재윤은 더욱더 너그러워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지막 헤어지는 순간을 두 사람만 만나게 둘 만큼은 아니었다.

결국, 재윤을 달고 도준이 떠나는 길을 배웅하러 나온 재하는 제복도 갈아입지 못하고 옥상으로 향했다.

상대측 방어 능력자가 협회에 도착한 후에 도준이 떠나기로 되어 있었기에 그는 대기 중이었다.

이미 1층 바깥으론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기자와 차량이 가득했고, 허공을 수놓을 뻔한 드론은 에스퍼 협회의 특수성을 인정받아 접근이 금지되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대 덕에 옥상은 조용했다. 가드와 협회 직원들이 줄을 맞춰 서 있는 것과 달리 도준은 잠든 도림을 안고 편히 앉아 있었다. 지호 역시 그 옆에 앉아 하품하다 재하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다 도림을 대신 안고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도준은 제게 다가오는 재하가 보인, 웃고 있음에도 섭섭함이 드러난 표정을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지켜보았다. 재하의 뒤로 어김없이 따라붙은 이천오와 재윤이 보였지만, 오늘만큼은 재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재하는 그런 도준을 보며 장난스럽게 웃으려다 어색하게 굳어지더니 이내 미간마저 구기며 입을 꽉 다물었다. 아쉬움과 서운함이 금방이라도 습기를 불러올 것처럼 재하의 눈이 흔들렸다. 오가는 말이 없어도 재하가 보인 감정은 너무도 뚜렷했다.

신뢰와 우정을 기반으로 한 깊은 친밀감. 진실을 모르기에 보일 수 있는 신뢰였지만, 그마저도 너무 귀했다.

“헬기가 곧 도착할 거야. 미리 알려 둔 인원수가 아니면 착륙하지 않는다니까…… 어서 들어가, 재하야.”

도준의 손짓에도 재하는 물러서지 않고 입술만 깨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감정이 흘러넘칠 것 같아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재하를 두고 가자니 당장이라도 무르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한 행동과 의도가 잔재처럼 남아 있었기에 아무리 깊이 후회한다 한들 곁에 남아 있을 수 없었다.

재하가 자신의 손을 놓고 다른 에스퍼에게 향할 때마다 들썩이는 감정은 지독한 소유욕이 사라진 게 아님을 깨닫게 했다. 곁에 있어서는 욕심을 낼 것이 분명했기에 재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서재하 가이드님, 이제 가셔야 합니다.”

멀리서 헬기 소리가 들려오자 이천오가 재하에게 물러설 것을 권했다. 재하는 뒤로 물러서기 전, 도준의 손을 붙잡았다. 언제나와 같은 다정한 가이딩이 짧게나마 도준의 숨통을 트이게 했다.

“재하 너, 이러다 쓰러져. 가이딩 함부로 하지 마.”

“내 걱정은 됐고, 1년이면 금방이야. 몸 다칠 일 없겠지만, 그래도 조심하고. 건강하게 돌아와.”

뻔한 인사말을 전하는 재하의 눈에 결국 습기가 가득 찼다. 도준은 저리도 다정하고 깊은 감정을 잃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재윤이 재하를 감싸 안듯이 도준에게서 떼어 내 멀어졌다. 이제 정말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 * *

이들의 모습을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아지트가 에스퍼들의 침입으로 엉망진창이 되던 때, 우양희와 함께 탈출한 이영우였다.

“수호자가 진짜로 가는구나.”

“영우 형, 저랑 멀어지면 들켜요.”

“이런, 깜박했네. 고마워, 준우야.”

휑한 건물 위임에도 정체를 들키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인식 저하 능력자인 준우 덕분이었다.

준우의 이능 범위는 그리 넓지 않았다. 빌런 아지트를 세운 장소의 특수성 덕에 마나가 넘쳐 난 데다 마나 증폭기를 이용해 섬 하나를 통째로 감출 수 있었지만, 섬을 벗어나자 몇 미터 정도밖에 이능을 사용할 수 없었다.

기껏 영우가 탈출시켜 주었는데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에 절망할 뻔한 것도 잠시, 그런데도 영우가 칭찬하고 고마워하자 시간 대부분을 의식 없는 상태로 이능을 유지해야 했던 준우는 크게 기뻐했다.

다들 당연시한 자신의 힘을 칭찬해 주는 영우가 좋았다. 그와 이름 한 글자가 같은 것도 기쁠 지경이었다. 학대당하는 줄도 모르고 아지트를 유지해 온 어리바리한 이능력자는 작은 호의에도 필사적이었다.

우양희는 자신의 자리가 위협받는 것 같아 시간이 걸리는 포털을 굳이 이 자리에 설치했다.

“드, 들키면 포털 타요. 이, 인원…… 제한 걸었, 어요.”

“그새 포털까지 만들었구나. 양희도 고마워.”

영우는 자신에게 애정을 갈구하며 맴도는 두 사람의 쓸모가 크다는 걸 알았다. 자신이 보인 작은 호의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건 의아했지만, 자신 역시 재하가 그를 걱정하며 손을 내민 순간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고작 한 번의 걱정, 한 번의 접촉이었다. 그 쉬운 걸 재하 이전에는 누구도 자신에게 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에게 자신이 그런 존재가 됐다는 게 상당히 기분 좋았다. 항상 텅 비어 있던 속을 몽글몽글하게 채워 주는 감각은 다른 에스퍼들을 계속 지켜봐야 하나 고민하게 했다.

어차피 수호자가 떠나면 언제든 기회는 생기리란 확신이 들었다. 재하라면 자신을 거절하지 않을 테니 계획을 세워 천천히 접근하면 될 일이었다.

지금은 자신의 강행군을 따르느라 꾀죄죄해진 두 사람과 함께 당분간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양희야, 제주도에 포털 설치해 뒀다고 했지? 흑돼지 먹으러 갈까?”

“블랙 피그요?”

“아니, 진짜 흑돼지.”

흑돼지와 블랙 피그의 차이를 모르는 준우와 그것도 모르냐며 의기양양해진 양희는 또래를 만나 소심함을 벗은 듯 활기차졌다. 그런 둘과 함께 영우는 보모가 된 듯한 기분으로 포털에 올라탔다. 인식 저하 이능이 지워지며 영우의 모습이 드러났지만, 협회 옥상에 내려앉는 헬기에 집중하느라 알아채는 이가 없었다.

각자의 바쁜 시간이 흘러가며 아무도 잠들지 못한 밤이 깊어져 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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