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뭔가 되게 조용한데?’
재윤에게 집중하는 사이, 도준의 기침 소리가 사라졌다. 인기척마저 느껴지지 않아 마치 세상에 단둘만이 남은 것 같았다. 혹시나 하고 힐끗 확인해 보니 정말로 세 사람 다 보이지 않았다.
자리를 피해 준 건가 싶어 안도하는 잠깐의 시간조차 집중하라는 듯 재윤의 손이 재하를 붙잡고 끌어당겼다. 집중하기 싫어도 닿은 곳마다 찔린 듯 아파 와 온 신경이 쏠렸다.
재윤의 손이 닿은 재하의 허리도 맨살이어서 가이딩이 이어졌다. 그러고 보니 간신히 손끝만 움직이던 재윤이 자신을 끌어안을 만큼 움직일 수 있게 됐다.
효과가 있구나 싶어 재하는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손을 놓게 된 김에 재윤의 맨살을 찾아 더듬다 꽉 잠긴 제복 탓에 목까지 올라왔다. 손으로 감싸기 좋았지만, 목을 조르는 것처럼 돼 버린 자세에 손 위치를 바꿔 목선을 감싸듯 쥐었다.
재윤의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기울이며 눈으로 피부를 살폈다. 적극적으로 가이딩을 쏟아부은 덕인지 재윤의 턱까지 올라왔던 검은 그을음이 흐릿해진 것처럼도 보였다. 목을 잡았던 손으로 턱을 쓰다듬어 확인하는 재하의 행동을 재윤이 오해했는지 목을 끌어당기는 바람에 입맞춤이 깊어졌다.
‘아파 죽겠네, 진짜.’
접촉이 깊어지고 긴밀해질수록 전기가 통과하는 것 같은 고통도 심해졌다. 그 와중에도 달라붙어 엉키는 혀의 움직임이 농밀해 얼굴에 열이 올랐다. 허리를 안은 재윤의 손은 폭주 부작용으로 딱딱하게 굳었음에도 자신을 쓰다듬기까지 했다. 다른 때라면 손등을 두드려 치워 내게 했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더 붙어야 할 때였다.
‘에스퍼는 고통에 강한가?’
자극에 반응하는 재윤의 행동은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했다. 그래도 조금 전까지 말도 제대로 못 하던 재윤이 이 정도로 움직인다는 게 다행이었다.
여전히 아슬아슬한 파동은 위험했기에 재하가 최대한 맨살을 붙이며 집중하는데 천장에서 물이 쏟아져 내렸다.
“뭐야?”
갑작스러운 물벼락에 놀라 가이딩이 흔들리자 허리를 끌어안은 재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윽!”
뒤늦게 작동하기 시작한 스프링클러가 사방으로 물을 뿌려 대기 시작했다. 이미 소강상태에 접어든 불은 미약한 연기만을 뿜어내고 있어 금세 진압됐다.
문제는 재윤의 위에서 가이딩을 하던 재하였다. 쏟아지는 물줄기에 머리와 옷이 푹 젖어 들었다. 피 웅덩이에 누워 있던 재윤 역시 젖기는 마찬가지였다.
얼굴로 줄줄 흐르는 물 탓에 재하는 가이딩을 하며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재윤, 읍. 자, 잠깐. 흐읍!”
재하가 숨 쉴 틈을 찾아 입술을 떼려 할 때마다 재윤의 입술이 따라붙어 다시 겹쳤다. 이러다 호흡 곤란으로 죽겠다 싶어 목을 잡고 있던 손을 올려 입술 사이에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부드러운 입술을 뭉개며 떨어트려 놓은 손가락 사이로 숨이 흩어졌다.
“후아, 숨 좀 쉬자, 숨 좀.”
가쁘게 숨을 쉬는 재하를 빤히 바라보는 재윤의 눈빛이 평소보다 흐릿하게 보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힘겨워할지언정 재하를 바라보는 눈은 또렷했었다. 재윤의 상태가 심각해지는 건가 싶어 재하는 위가 욱신거릴 만큼 긴장했다.
“야, 정신 차려. 정신 놓으면 안 돼.”
재하는 재윤을 걱정하면서도 자신의 손가락을 핥으며 가볍게 물어 오는 그의 행동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 어떻게든 가이딩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처럼 보였다. 아프지 않을 정도로 손가락을 물어서는 입 안으로 끌어 들이려 했다.
재하는 재윤을 빠르게 살폈다. 턱까지 올라온 검은 그을음은 흐릿해진 것 같으면서도 여전했다. 딱딱하게 굳어 갈라진 팔은 물에 젖어 핏물을 뚝뚝 흘려 냈다.
이대로 가이딩을 하는 건 좋지 않아 보였다. 자신 역시 얇은 셔츠 한 장으로 찬물을 맞아 가며 버티는 건 무리였다. 그렇다고 근육으로 똘똘 뭉친 단단하고 무거운 재윤을 다른 곳으로 끌고 가기엔 방해물이 많았다.
“내 말 들려? 일어설 수 있겠냐?”
“형…….”
흐릿해진 눈이 재하에게 고정되며 선명해졌다. 재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윤을 일으키려 했다. 다행히 재윤은 움직이기 힘들 텐데도 재하의 의도대로 몸을 일으켰다.
“미친놈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그런지 소방 장치도 미쳤나 봐. 이제 와서 물을 뿌리고 난리냐.”
재하는 투덜대면서도 한 손으로는 재윤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은 재윤의 옷 안으로 둘러 접촉을 놓치지 않았다. 재윤 역시 몸을 기울여 재하의 뺨이나 목에 얼굴을 비비며 달라붙어 왔다.
벽이 뜯기고 천장 일부가 무너진 곳에서 겉보기에도 멀쩡해 보이는 곳은 감옥뿐이었다. 아무래도 에스퍼를 가두기 위해 보강해 둔 덕이었다.
감옥 안에 들어서자 바깥과 달리 깨끗했다. 피 웅덩이라든가 쏟아지는 물도 없어 쾌적하기까지 했다.
‘침대가 원래 있었나?’
모포가 전부였던 것 같은 감옥에 놓인 침대를 보자 재윤을 질질 끌고 오다시피 하느라 고생한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재윤아, 침대 보이지? 저기 좀 눕자.”
아무래도 견지호 때처럼 밤새 끌어안고 있어야 할 것 같아 조금이라도 푹신해 보이는 쪽으로 움직였다. 철퍽하며 바닥을 적시는 물 자국에 재하는 잠시 망설이다 이내 각오를 굳힌 듯 재윤의 뺨을 두드렸다.
“재윤아, 딱 하나만 하고 쉬자.”
흐릿한 재윤의 눈을 보며 재하는 계속 뺨을 두드렸다.
“옷 벗어.”
재하의 말에 재윤은 주저 없이 제복 앞쪽을 잡아 뜯어냈다. 재하가 당길 때는 꿈쩍도 하지 않던 단추가 재윤의 손에는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그 힘이 부러워 가자미눈을 하고 째려보다 비틀거리며 손을 뻗는 재윤의 행동에 한 발 물러섰다. 다시 닿으면 절대 떨어지지 않을 걸 알기에 자신도 셔츠를 벗을 생각이었다. 몇 개 되지 않아 금방 풀 것 같았던 단추는 젖은 탓에 자꾸만 손에서 미끄러졌다.
“아오, 바쁘니까 더 안 되네. 잠깐만, 금방 벗을게.”
품이 큰 셔츠였기에 머리 위로 벗으려 했다. 하지만 그런 재하의 시도는 재윤의 손길에 두 쪽 난 셔츠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무산됐다.
옷이 이런 식으로 찢길 수도 있나 어이가 없어 쳐다보는 사이, 젖은 몸이 서로 맞닿았다. 어색하거나 기분 나쁠 틈도 없이 닿은 곳마다 보이지 않는 스파크가 일듯 통증과 가이딩이 이어졌다.
“으, 잠깐만. 아직 바지가…….”
말을 하다 말고 재하는 입을 다물었다. 물에 푹 젖은 옷은 다 벗는 게 맞는다는 걸 알면서도 홀랑 벗고 몸을 겹치는 건 아무래도 저항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자칫 재윤이 힘으로 바지를 두 쪽으로 만들 것 같아 불안했다.
재하가 신중히 고민하는 사이, 자연스레 입술이 붙으며 깊은 키스로 이어졌다. 아주 조금이지만 통증이 줄어든 키스에 안도하면서도 간헐적으로 눈물이 찔끔 날 만큼 날카로운 파동을 느낄 때면 뒷목이 뻐근해졌다.
아마도 재윤은 자신보다 더 큰 고통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교육을 통해 접한 지식은 재하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곳은 빌런 아지트였다. 언제든 빌런들이 자신들을 발견할 수 있음을 상기한 재하는 망설임을 버렸다.
재윤이 직접 벗으면 좋겠지만, 혀를 놓아주지 않는 딥한 키스를 받는 도중에 말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간절하게 매달려 오는 재윤을 받아 주며 손을 내려 허리 부근을 더듬었다. 어설픈 움직임에도 제복과 함께 지급된 벨트는 부드럽게 풀렸다.
이제 젖은 바지만 벗기면 된다 싶어 지퍼를 찾아 손으로 더듬는데 뭔가 이상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지만, 야생에서 포식자와 마주치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은 시선이 느껴졌다. 그것도 바로 코앞에서.
“왜, 왜 그렇게 봐?”
말을 할 수 있을 만큼만 떨어진 재윤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래 봤자 코앞이라 입술이 스칠 만큼 가까웠다.
“재윤아?”
재하의 의문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재하가 판단할 틈도 없이 재윤에게 안겨 침대에 눕혀졌다. 이불이 더럽혀진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 것도 잠시, 언제 벗겨졌는지 알 수 없는 젖은 옷가지들이 입을 수 없는 형태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침대 머리맡에 잘 개어져 있는 이불이라도 끌어오려던 재하는 양손을 겹치며 입을 맞춰 오는 재윤의 행동에 꼼짝도 할 수 없게 됐다.
침대에서 편하게 가이딩을 하려던 건 맞지만, 재윤으로 인해 휘몰아치듯 이어진 접촉은 재하를 낯 뜨겁게 만들었다.
‘적어도 속옷은 입고 있으려고 했다고!’
물에 푹 젖은 탓에 찝찝하긴 했겠지만, 홀딱 벗고 부둥켜안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 여겼다. 지금처럼 재윤의 탄탄한 근육 하나하나를 매일 먹고 자느라 말랑해진 몸으로 느끼고 싶지 않았다.
‘돌아가면 운동한다. PT 받아야지.’
민망해서 조금이라도 피할라치면 재윤이 필사적으로 온몸을 붙여 와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포기하고 얌전히 있을까 싶다가도 가이딩을 열망하는 재윤의 몸은 점점 더 단단해져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자신을 압박해 왔다.
마구 들쑤시며 고통만 주던 가이딩은 접촉 면적이 늘어나자 전신으로 고통이 분산되며 조금씩 편안해졌다. 어쩌면 마나를 억제하는 감옥 덕일지도 몰랐다.
고통이 줄어들자 아프기만 하던 키스가 다르게 느껴졌다. 말캉거리고 부드러운 감촉이 신경 쓰였다.
입술을 잘근거리거나 숨마저 삼켜 버릴 듯 고개를 기울인 채 허겁지겁 해 오는 키스는 재윤의 목마름 때문이었다. 재하에게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기자 낯 뜨거운 부드러움에 열이 오르고, 부드러운 감각에 휩쓸려 혀가 얽혔다.
재윤의 손은 어느새 재하의 몸을 만지고 더듬어댔다. 아직 딱딱하게 굳은 손이 여린 살을 움켜쥘 때면 아프기도 했지만, 아직 가이딩이 한참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했다.
재하는 재윤의 절실함을 밀어내지 않기 위해 오히려 끌어안았다. 재하의 포옹을 허락으로 받아들인 재윤의 숨이 거칠어졌다.
“형.”
드디어 떨어진 입술에 호흡이 쉬워졌다. 또렷해진 재윤의 목소리가 반가웠던 것도 잠시, 재하는 묵직하게 아래를 눌러 오는 단단한 감촉에 모든 신경이 집중됐다.
“야, 너 왜…….”
“재하 형.”
“자, 잠깐. 스톱.”
설마라며 방심할 상황이 아니었다. 갈급해진 숨과 함께 열이 올라 발갛게 달아오른 재윤의 눈가가 가볍게 젖어 있기까지 했다. 폭주의 영향인 건지, 아니면 가이딩의 부작용이 뒤늦게 생긴 건지 재윤이 흥분하고 있었다.
“잠깐만 진정하고. 일단 가이딩에 집중…… 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