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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134화 (13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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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 내의 정보를 최대한 파악해 두고자 살금살금 돌아다니던 재하는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튀어나오는 걸 보고 급히 영우의 방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유마로를 빨리 깨우는 게 나을 듯싶었다.

영우가 봐도 모를 정도로 조금씩 가이딩을 하려 했지만, 능숙해진 탓에 어깨까지 시커멓게 변색하였던 흔적은 어느새 팔꿈치 위로 내려와 있었다. 자신에게 정신이 팔린 영우가 유마로를 살피지 않아 다행이었다. 제 색을 찾기 시작한 팔을 보며 흐뭇해하는 것도 잠시,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재하의 마음이 급해졌다.

“일단 유마로를 깨우는 게 낫겠어.”

정말로 해일이 자신을 구하러 왔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탈출하려면 유마로가 의식을 찾는 편이 여러모로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어째서 잠들었는지 몰라도 막연하게 폭주 상태를 벗어나면 깨어날 것 같았다.

유마로의 양손을 잡기 위해 그의 몸 위에 올라탔다. 못된 소리만 골라 하던 때는 못생겨 보였는데 얌전히 잠든 얼굴을 보면 평범하게 순한 데다 아직 앳된 느낌이 남아 있었다. 양손을 잡아 가이딩을 흘리자 빠르게 흡수됐다.

점점 더 바깥이 소란스러워지자 가이딩 속도를 올리기 위해 고개를 숙여 이마를 마주 댔다. 그래도 동생에게 못된 말을 한 놈에게 2차 가이딩까지는 해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고작 닿는 부위가 늘어난 것만으로도 느릿하게나마 눈에 보일 만큼 색이 빠지기 시작했다.

“불이야! 통제실에 불이 났어!”

“씹, 창고도 불탄다는데?”

해일이 도착했음을 바깥의 소란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약속을 지키는 남자의 다짐은 이렇게나 든든했다. 그러면서도 재윤의 소식을 전혀 알지 못해 불안하기도 했다.

“빨리 일어나, 유마로.”

손바닥을 더욱 바싹 밀착하며 의식적으로 가이딩을 더 밀어 넣었다. 그간의 연습이 효과가 있는지 재하의 간절함대로 빠른 가이딩이 이어졌다. 대신 그만큼 재하의 부담이 커졌다.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히고, 팔다리가 조금씩 떨려 왔다.

얼마나 집중했을까.

문밖에서 실랑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중 익숙한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여기 맞아?”

“고등급 에스퍼님들은 속고만 사셨나. 들어가 보면 알 거 아닙니까.”

“제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신중한 해일의 목소리와 달리 문 열리는 속도는 주저 없이 빨랐다. 문을 열면 보이는 건 자료가 산처럼 쌓인 책상과 침대였다. 그 옆의 책장을 끼고 돌아야만 또 다른 실험 장소에 있는 유마로와 재하를 볼 수 있었다. 다행히 해일은 지나치지 않고 안까지 들어와 재하를 발견했다.

침대 위에서 땀이 맺힐 만큼 최선을 다해 가이딩 중인 재하는 다행히 다친 곳 하나 없이 무사했다. 걱정과 달리 온전한 재하의 모습에 해일은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재하.”

“와, 해일 형. 진짜 구하러 오셨네요?”

원래대로라면 쑥스럽거나 감동적인 재회여야 했다. 하지만 유마로를 가이딩 하느라 어정쩡한 자세로 해일을 본 재하는 힘든 와중에도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나도 왔어요, 선배.”

“수고했어. 나중에 가이딩 해 줄게.”

“에이, 누가 보면 제가 가이딩 때문에 선배 구하러 온 줄 알겠어요.”

섭섭해하는 지호의 장난스러운 반응에 재하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해도 되는 상황인가 싶어 눈을 굴리는데 해일의 등 뒤로 우르르 나타난 가이드들을 보고 감탄했다.

“헛, 벌써 다 구하신 거예요?”

“이번에 납치된 가이드분들은 다 찾은 것 같습니다.”

“자, 잠시만요. 조금만 더 하면 유마로 가이딩이 끝나긴 하는데…….”

탈출을 목전에 두고 개인적인 거부감으로 2차 가이딩을 피하느라 시간을 끄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재하가 눈 딱 감고 유마로의 입술을 노려보는데 무슨 상황인지 바로 파악한 가이드들이 먼저 나섰다.

“저희가 같이 할게요.”

“유마로 에스퍼는 효율이 좋더라고요.”

해일의 등 뒤에 서 있던 가이드들이 전부 달려들어 와 유마로의 손이며 팔, 드러난 상체까지 빈틈없이 손을 올렸다. 먹이를 발견한 잉어 떼 같아서 무섭다는 생각이 들 만큼 다닥다닥 붙어 동시에 가이딩을 하자 팔뚝에 머물러 있던 검은 그을음이 순식간에 손목 아래로 사그라들었다.

동시 가이딩이 이렇게 잘 먹히는 경우는 드물었다. 많은 이들과 상성이 좋은 유마로는 가이딩 부족으로 힘든 일이 사실상 없어야 했다. 이번에 탈출해서 돌아가면 유마로와 페어가 되고 싶어 하는 가이드도 많을 것이다. 벌써 눈도장을 찍으려고 적극적으로 유마로를 챙기기까지 했다.

적극적인 가이드들의 태도에 재하는 이들이 가이드 룸에 있던 가이드가 아니라는 걸 알아봤다.

“다른 가이드분들은 밖에 있나요?”

“구출한 가이드는 여기 있는 분들이 전부입니다. 주도준 에스퍼 역시 찾아야 합니다.”

재하가 해일에게 이전에 잡혀 온 가이드에 대해 언급하기도 전, 얕은 신음이 들려왔다.

“으음…….”

“유마로 에스퍼가 깨어났어요.”

재하의 예상대로 잠들어 있던 유마로는 폭주 위험이 풀릴 만큼 가이딩이 되자마자 의식을 차렸다.

“왜…… 다 모여 있어요?”

“유마로 에스퍼, 일어날 수 있겠어요?”

“다리에 힘이…… 왜 이러지…….”

다만 오랜 기간 누워 있어서 그런지 깨어나서도 상황 파악이 느리고, 일어나는 걸 힘들어했다. 탈출에 도움이 될까 싶어 열심히 깨웠지만, 막 눈뜬 사람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였음을 깨달았다.

“얘는 제가 챙길게요. 일단 탈출부터 하죠.”

견지호가 유마로를 등에 업는 걸 본 재하는 해일에게 부탁했다.

“해일 형, 도준이가 어디 있는지는 알아요. 그리고 구해야 할 가이드가 더 있어요.”

“알겠습니다. 위치를 알려 주면 제가 구해 오겠습니다.”

“아뇨, 제가 길을 아니까 같이 가요.”

“아닙니다. 재하는 견지호 에스퍼와 함께 탈출해 주세요. 머지않아 불이 번질 겁니다.”

해일은 재윤의 지시대로 기지 내를 빠르게 살펴 주요 시설에 불을 냈다. 동시에 빌런으로 보이는 이들을 족족 잡아 가이드의 위치를 파악하고 견지호와 함께 탈출로를 확보했다. 그 과정에서 유효한 포털을 발견한 터라 다른 곳까지 불이 옮겨붙기 전 재하를 탈출시키는 것을 우선시하려 했다.

“그럼 더 길을 아는 제가 가야 빨리 길을 찾죠. 가까우니까 같이 움직일게요.”

해일은 재하의 안전에 대해서라면 조금의 불안이라도 줄이고 싶었지만, 먼저 앞서 나가는 재하를 쫓으며 지호를 돌아봤다.

“뒤를 부탁합니다.”

“저도 선배를 부탁할게요.”

기지 전체에 적용 중인 인식 저하 장치 탓인지 지호의 공간 이동은 제한적으로만 가능했다. 기지 내에서 지호가 직접 본 장소로만 이동이 가능했다.

인원수가 좀 되다 보니 공간 이동을 하는 대신 직접 움직여 멀어지는 지호가 보였다. 이렇다 할 무력이 없는 지호의 이능 탓에 불안했지만, 오는 길에 만난 빌런은 전부 제압해 둔 터라 일단 재하에게 집중했다.

하필 헐렁한 셔츠 차림이라 달릴 때마다 넉넉한 품이 팔랑거려 평소보다 더 작게 느껴졌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안 그래도 심했던 보호 본능이 커졌다.

“재하, 지금이라도 견지호 에스퍼에게 가세요.”

“길은 단순한데 복도가 여러 개라서요. 설계를 누가 한 건지 몰라도 예상하기 힘든 동선이 많아요.”

“에스퍼는 가이드가 가까워지면 존재를 느낄 수 있습니다. 방향만 알려 주시면 제가 찾을 수 있습니다.”

“도준이도 데리러 가야 해요. 구속구 때문에 이능도 못 쓰거든요.”

재하의 걱정을 해일은 이해했다. 그래서 더 강하게 말하지 못하고 재하를 따르는데 등 뒤에서 마나 파동이 느껴졌다. 망설임 없이 돌아서며 응집한 불덩어리를 날리자 허공에서 연기로 변했다. 빠르게 주변을 살피자 지나쳐 온 길 옆에서 다시 파동이 느껴졌다.

“해일 형?”

“가십시오. 금방 쫓아가겠습니다.”

상대의 이능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재하가 곁에 있으면 위험해질 수 있었다. 지금은 재하를 보내는 게 맞았다. 재하 역시 상황을 파악하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재하가 멀어지자 해일의 손에 위험할 정도로 일렁이는 불꽃이 피어올랐다.

“전부 태워 버리기 전에 앞으로 나오는 게 좋을 겁니다.”

해일의 경고에도 상대는 몸을 숨긴 채 마나만 흘려 내고 있었다. 이 정도면 위험한 기세는 아니었기에 해일은 빠르게 처리하고자 화력을 올리기 시작했다. 천장이 녹아내릴 정도의 화력도 해일에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주인을 해치지 않는 불이 주변을 모두 태울 기세로 타올랐다.

“으아, 데겠어.”

해일을 걱정하던 재하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열기에 누굴 걱정한 거냐 하고 당황하며 더욱 열심히 내달렸다. 정신없이 달린 덕에 금세 가이드 룸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가이드들이 서서 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바깥의 소란 탓에 불안했겠다 싶어 재하는 그들을 향해 손짓했다.

“빨리 나와요. 지금 탈출할 거예요.”

그러나 재하의 재촉에도 모두 꼼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두운 낯빛으로 고개를 숙이는 이들마저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우울해 보이는 그들을 보고 재하가 안으로 들어섰다.

“왜 그래요? 어서 서둘러야 해요.”

가장 가까이 서 있는 송서림에게 다가간 재하는 그의 얼굴에 드리운 우울함에 더욱 당황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정작 대답은 멀찌감치 서 있는, 고개 숙인 가이드에게서 들려왔다.

“그냥…… 죽어 버릴래요.”

“그, 그게 무슨 소리예요? 에스퍼들이 우리를 구하러 왔는데 왜 지금 포기하려는 거예요?”

“저흰 어차피 방해되잖아요. 고작 D급 가이드인데.”

구하러 온 재하에게 미약한 적의를 보이는 가이드마저 있었다.

“서재하 가이드님하고 다르니까요. 고작 저는…… 저희는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아요.”

기지에 나타난 협회 에스퍼가 구출하려는 대상이 누구인지 이들은 알아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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