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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130화 (13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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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돌아갔겠지.”

“보스가 혼자 두지 말랬는데 혼자 보냈다고?”

“다른 가이드들도 숨겨야 하는 거 아냐?”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 의견만 던지는 이들은 오합지졸다웠다. 결국 보다 못한 누군가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오, 새끼들아. 주둥이만 털지 말고 움직여!”

누군가의 호통에 그제야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켜 이리저리 흩어졌다.

바깥의 소란은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도준을 더욱 불편하게 했다. 감정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챈 탓에 좀 더 신중히 자신을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작은 창을 통해 볼 수 있었던, 재하를 향한 해일의 감정에 초조해졌다.

빌런 조직에 납치된 이상 시간은 자신의 편일 거라 여겼으나 권해일의 집착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자신처럼 미래의 일을 알고 있을 서재윤과 재하에게 집착하는 권해일, 거기에 공간 이동 능력자인 견지호가 적극적으로 이곳을 찾아내려 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었다.

인식 저하 장치는 존재 자체를 감출 뿐, 실체를 없애는 건 아니었다. 적당히 예상되는 지역에 무력을 쏟아 내면 충분히 찾아낼 수 있었다. 다만, 그러지 않았던 건 그럴 만한 가치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협회는 빌런 조직과의 뒷거래를 국민의 불안감을 부추기기 위한 수단으로 내버려 두었다. 실제로 협회에 어설픈 저항을 해 오는 게 전부였다. 이번처럼 협회 건물을 부수거나 가이드를 납치하는 대범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었다.

‘이영우가 합류해서 바뀐 건가. 아니면 서재윤과 재하가 대중 앞에 드러났기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그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조직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야욕을 드러냈다. 그 결과 가이드와 에스퍼가 납치되기까지 했다. 예전처럼 오랜 기간 방치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항상 협회의 뜻에 따르던 해일이 처음으로 목줄을 벗어던졌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시선을 뺏길 만큼 강렬한 한 방이었다. 마음 약한 재하라면 충분히 흔들릴 만한 행동이었다.

“이대론 위험하겠어.”

재하를 흔들기 위해 얌전히 잡혀 있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선수를 뺏기는 걸 보면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구속구를 푸는 건 마지막 수로 남겨 두고 싶었기에 재하가 손에 쥐여 준 반지를 손가락에 끼웠다. 천천히 마나를 움직여 보니 어떤 물건인지 짐작이 갔다.

마른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마나를 주욱 빨아 간 반지가 바람을 일으키며 능력을 발휘하기 전 마나를 회수했다. 이능 사용에 미숙한 에스퍼라면 마나를 빼앗겼겠지만, 수년 동안 매일같이 마나를 다뤄 온 자신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시 마나를 불어 넣으며 기다리자 이번에는 냉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랜덤하게 구현되는 능력 탓에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몇 번이나 마나를 회수하고 불어 넣기를 반복했다. 여러 번 시도한 끝에 반지에 오르는 뜨거운 열이 반가웠다.

원래대로라면 능력을 사용할 수 없는 감옥이었으나 아이템의 특수성과 S급 마나 보유자의 조합이 이를 가능케 했다.

“저들이 가장 우려했던 일을 현실로 만들어 주면 되겠지.”

화력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나 소파 하나만 태워도 해일이 나타난 줄 알고 기겁할 것이다. B급 에스퍼의 마나를 털어 내고도 고작 찬 바람을 불러낸 게 전부였다고 하니 마나를 밀어 넣는 김에 듬뿍 먹여 주었다.

지나치게 뜨거워지는 반지를 빼 버리고 싶어질 때쯤 창살 사이로 손을 내밀어 바깥으로 뻗었다.

뜨거운 열기에 도준이 눈을 감은 것도 잠시, 귀를 찢을 듯한 비명에 급히 바깥을 확인했다.

“아악! 부, 불이!”

“시발, 권해일이 진짜 왔나 봐!”

“물 관련 이능 있는 애들 호출해, 빨리!”

텅 비었다 싶을 만큼 넓기만 하던 휴게 공간이 시뻘건 불길로 뒤덮였다. 불법 건축물이라 그런지 소방 시설이 제대로 돼 있지 않은 탓에 시커먼 연기가 천장을 뒤덮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탈출해 재하를 찾아가려던 도준의 계획을 실행하고도 남을 만큼 지나치게 큰 불이었다.

* * *

보트 위에 선 세 남자와 구석에 찌그러져 조용히 폰을 들고 있는 한 남자는 무척이나 어색한 조합처럼 보였다.

재윤의 예상대로 1분도 채 되지 않아 해일과 함께 돌아온 지호는 흩날리는 깃털을 손으로 털어 냈다. 어색함에 시선을 흘리는 재윤을 본 해일이 먼저 말을 꺼냈다.

“걱정했습니다. 연락이 안 돼서.”

통신기마저 벗어 던졌던 터라 재윤은 할 말이 없었다.

“얘만요? 저는요?”

지호가 장난스럽게 재윤의 곁으로 다가가 해일의 시야 안에 들어섰다. 해일은 눈앞에서 펄럭이던 깃털이 지호의 어깨에 둘러진 것이란 걸 알아챘다. 며칠 안 보이던 지호의 화려한 차림에 해일은 그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견지호 에스퍼, 혹시 투잡을 하시는 거라면 협회에 보고를…….”

“아니, 아니. 이건 전 여친 취미고요.”

지호가 자신이 연예계에 진출한다고 여긴 해일의 오해를 풀기 위해 빠른 답을 내놓자 재윤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

“전 여친? 널 납치한 게 아는 사람이었어?”

“납치? 견지호 에스퍼도 납치됐었습니까? 혹시 재하는 이미 구출된 겁니까?”

지호의 납치 소식은 해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기에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있었다. 혼파망으로 치닫는 상황을 지켜보던 강광이 슬쩍 끼어들어 정리했다.

“서로 궁금하신 게 많으시겠지만, 서재하를 찾는 게 먼저 아닌가요?”

강광을 본 해일은 그가 여기 있는 이유 역시 묻고 싶었지만, 중요한 일을 우선시하기 위해 말을 아꼈다. 강광은 주워 두었던 통신기를 재윤에게 건네주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하자 재윤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

“반지가 알려 주는 방향과 강광의 탐지 이능이 가리키는 방향이 달라졌어요. 거의 다 온 것 같긴 한데 위치를 특정하기가 어려워서 허공에다 이능을 써 대야 하나 고민하던 중이었고요.”

레이더에도 잡히지 않고, 육안으로도 보이지 않는 섬을 찾아야 했다. 유일한 희망이 둘이 되더니, 이젠 서로 다른 답을 내놓는 상황이었다. 잠시 눈을 굴리던 지호가 멀리 지나가는 배를 보고 손바닥을 쳤다.

“혹시 돌아다니는 배 위치 같은 거 알 수 없나?”

“배 위치는 왜?”

“배 위치를 알려 주면 거기로 공간 이동을 할 수 있거든. 반지나 강광의 이능이 알려 주는 방향이 바뀔 때마다 다른 배로 이동하면서 계속 표시하다 보면 교차점이 나올 거 아냐.”

“……그거 괜찮은데.”

공간 이동 능력자와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 능력자가 있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이런 방법이면 굳이 떠다니는 배가 아니라 무인도라도 상관없었다.

재윤이 선장실에 가서 지도 한 장을 받아 왔다. 의욕적으로 변한 재윤은 지도의 한 점을 가리키며 목소리를 다소 높였다.

“여기쯤일 거라고 예상해. 주변에 자잘하게 무인도들이 있으니 시계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방향을 확인하면 될 거 같아.”

“이 정도야 쉽지.”

의기양양하게 웃어 보인 지호가 재윤에게 손을 내밀었다. 공간 이동을 하려는 줄 알고 재윤이 손을 얹자 지호가 손가락에서 반지만 쏙 빼 갔다.

“반지를 왜 가져가?”

“왜긴. 반지만 있으면 알 수 있는데 굳이 무겁게 너까지 이동시킬 필요 없잖아.”

타당한 말이었지만, 재윤은 강광의 어깨를 붙잡고 지도까지 챙겨 든 지호가 장난스럽게 윙크하는 모습에 당했다는 감각을 지우기 힘들었다. 순식간에 사라진 지호와 강광으로 인해 해일과 단둘이 남은 재윤은 그의 걱정스러운 눈빛에 한숨만 깊게 내쉬었다.

“혹시 견지호가 제멋대로 데려와서 곤란해지신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아닙니다. 빠져나오기 힘들었는데 무척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해일의 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정말로 협회의 일을 처리하기보다 이곳에 오길 바란 것처럼 보였다. 재윤은 해일에게 제멋대로 기대하고 실망했던 탓에 감정적으로 굴었던 일이 민망해졌다.

사과하기 위해 바로 서는 재윤에게 해일이 먼저 부탁해 왔다.

“제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재하를 구할 수 없다면 견딜 수 없을 겁니다. 돕게 해 주세요. 서재윤 씨, 당신과 재하를 위해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저야말로…… 부탁드려요. 위치를 어림짐작하게 되면 실체를 찾기 위해 물량으로 쓸어버려야 하거든요.”

자신과 해일이 붙으면 건물 몇 채쯤은 쉽게 무너트릴 수 있었다. 빌런 기지가 얼마나 튼튼한지 몰라도 보이지 않는 형체를 부서트려 알아볼 수 있게 만들 심산이었다.

“물론입니다. 화력이라면 미궁에서 얻은 아이템도 있으니까요.”

게이트에서는 굳이 필요치 않아 사용하지 않았던 아이템을 꺼내 손에 착용한 해일이 문득 지호를 떠올렸다.

“이제 보니 아이템의 디자인이 상당히 화려합니다. 견지호 에스퍼에게 어울릴 것 같지 않습니까?”

“공간 이동 능력을 증폭시켜 봤자…….”

지호의 화려한 옷차림에 대해 농담처럼 이야기를 주고받던 두 사람의 웃음이 잦아들었다. 어쩌면 찾지 못한 장소를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기대를 떠올렸다.

“돌아오면 시도해 볼까요?”

“귀속 아이템이 아니니 한번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일이 조금 더 쉬워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긴장을 풀어 주었다. 예상보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린다 싶어 통신기로 연락을 시도했으나 지호 쪽이 가진 게 없어 연락이 되지 않았다. 재윤이 자신의 통신기라도 넘겨줄걸 하고 후회하며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자니 어느 순간 굳은 얼굴의 지호가 나타났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 손의 그건…….”

지호가 내민 양손에는 한 쌍의 반지와 지저분한 옷가지가 들려 있었다. 반지는 재윤과 재하가 각각 나눠 가졌던 아이템이었고, 지저분한 옷가지는 재윤의 눈에 익숙했다.

지호에게서 건네받은 지저분한 옷을 펼쳐 본 재윤은 찢긴 데다 핏자국까지 보이자 순간 눈을 질끈 감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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