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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125화 (125/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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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전, 백마혁은 영우가 행한 지나친 보복에 대해 주의를 주고자 숙소를 찾았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재하에게 닿아 가이딩을 경험한 백마혁은 계속해서 그 감각이 잊히지를 않았다.

파도처럼 몰려오는 시원한 바람 같은 가이딩은 지나치게 기분을 좋게 해 엉뚱한 곳에 열이 오를 정도였다.

‘가이딩이라는 게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인 줄은 몰랐지.’

납치한 가이드와 접촉했을 때, 쥐꼬리만 한 가이딩은 입맛만 버리는 감각이었다. 낮은 등급의 에스퍼라면 몰라도 고등급에 속하는 자신에겐 형편없었다. 같잖은 가이딩을 받느니 파트너인 사해라에게 평소처럼 이능을 부탁해 안정을 취하는 게 낫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섣부른 판단은 재하와의 짧은 가이딩 이후 뒤집혔다. 파트너와 함께 머무는 개인 룸으로 돌아온 후에도 어떻게 해야 재하와 따로 시간을 가질 수 있는지 고민했다.

하필 이영우가 아끼는 가이드라 문제였다. 영우가 재하를 데려오기까지 얼마나 집착했는지 알기에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공유할 방법을 떠올려야 했다.

“골치가 아프군.”

영우가 조금만 쓸모없었어도 고민하지 않고 취했을 텐데 아쉬울 지경이었다. 언제나처럼 자신을 위해 이능을 사용하려는 사해라를 거부하면서까지 백마혁의 고민은 깊어졌다.

다행히 핑곗거리는 금세 생겼다.

기지 내에서 사용하는 통신기 너머로 아이템 관리자의 억울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 보스, 이영우 그 새끼 좀 어떻게 해 주세요.

최근 들어 가장 많이 듣는 말이었기에 백마혁의 한숨이 깊어졌다.

“이영우가 쓰는 건 최대한 지원해 주라고 했잖냐.”

― 저도 그래서 웬만하면 넘어가려고 했죠. 그런데 당장 내일부터 출장 나가야 하는데 장신구 아이템을 싹 쓸어 가니 저라고 수가 있겠습니까.

“몇 개만 남겨 달라고 하지.”

― 제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폭탄 구슬만 몇 개 남겨 놓고 갔다고요!

다른 이의 말은 듣지 않는 이영우이기에 백마혁이 찾아가 사용하지 않는 건 회수해 달라는 관리자의 연락이었다. 백마혁은 이걸 기회라 여겼다.

바로 튀어 나가려던 백마혁은 문득 제 옷차림이 신경 쓰였다. 흰 가운 따위를 입은 이영우의 품에 안긴 티셔츠 차림의 서재하, 두 사람 모두 한창때라 그런지 존재만으로도 파릇파릇하니 눈길이 갔다.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이영우의 숙소로 향하던 백마혁은 바삐 어디론가 향하는 영우를 목격했다. 방향을 보아 연구실 쪽이었고, 영우가 한번 틀어박히면 상당 시간을 보낸다는 걸 아는 백마혁의 얼굴에는 짙은 미소가 떠올랐다.

숙소에 도착해 문을 열자 아직 온기가 남은 침대 위에 아이템들이 장난감처럼 널려 있었다. 찾아온 이유로 삼은 아이템은 챙기지도 않고 백마혁은 재하를 찾기 위해 집중했다. 기척 없는 숙소에 기감을 펼치자 멀지 않은 곳에서 고양이처럼 소리도 없이 살금살금 걸어가는 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을 쫓는 이가 있다는 걸 알지 못한 재하는 인적 없는 복도를 발소리조차 죽인 채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영우에게 끌려 이리저리 돌아온 길이었지만, 열심히 봐 둔 덕에 제대로 돌아갈 수 있었다.

감옥으로 향하던 중 가이드가 갇혀 있던 방에 도착해 귀를 기울이니 조용했다. 약속대로라면 오늘도 휴식을 취할 수 있을 터였다. 다행히 약속이 지켜지는구나 싶어 안도하면서도, 혹여나 누군가와 마주칠까 불안해진 재하의 걸음이 빨라졌다.

핸드폰도 없다 보니 시간조차 알 수 없었다. 조용한 실내 공간은 조명으로 인해 일정한 빛을 품고 있었기에 더더욱 알기 힘들었다.

복도 끝에 다다르자 걸어온 길과 달리 인기척이 느껴졌다. 서둘러 움직이던 재하는 잠시 멈춰서 심호흡했다. 이제 모퉁이 하나만 돌면 로비처럼 넓은 공간이 드러나는데 그곳을 지나야만 감옥에 도달할 수 있었다.

‘감옥은 원래 눈에 띄지 않게 깊이 숨겨 둬야 하는 거 아닌가?’

한량처럼 늘어져 있을 빌런들이 자신을 보고 얌전히 있을 확률은 극히 낮았다. 가이딩을 설명하느라 소년을 통해 시범을 보일 때만 해도 말이 통할 것처럼 보였지만, 순번을 정해 가며 가이드를 착취하는 이들이기도 했다.

‘여긴 협회가 아니야. 우습게 보이는 것 정도가 아니라 몸을 다칠 각오도 해야 해.’

힘으로는 절대 피할 수 없는 에스퍼의 악력에 속수무책으로 몸이 눌리던 감각이 생생했다. 저를 지키기 위해 묶인 채로 필사적이었던 도준이 아니었다면 패닉에 빠졌을 것이다.

재하는 고개를 치켜들고 어깨를 폈다. 당당하게 굴면 자신을 제지해야 하나 망설일 수 있었다. 도준을 만나면 좋지만, 만나지 못하더라도 감옥 안에 반지를 떨어트리기만 해도 목적은 달성하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다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그런 재하의 생각과 달리 멀찌감치에서 백마혁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재하를 발견한 백마혁은 동그란 머리든 드러난 목이든 어디라도 쓰다듬고 싶어 손끝이 근질거렸다. 다 보이는 숨바꼭질은 기대감만 증폭시켰다.

어디를 가나 싶어 소리 내지 않고 뒤를 쫓았다. 그러다 휴게 공간으로 들어서기 직전 멈춰 선 재하가 손을 꼼지락거리는 걸 더는 지켜보기만 할 수가 없었다. 꼼지락거리는 손가락 사이로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겹치며 손을 잡았다.

“?!”

인기척도 없이 접근한 누군가로 인해 소리가 튀어나올 뻔한 걸 간신히 참아 낸 재하가 돌아보자 영우에게 귀신처럼 화를 내던 백발의 중년인이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혼자 돌아다니면 위험하지 않나, 가이드 군.”

자신을 가이드로만 인식한 백마혁의 호의는 손부터 잡는 행태에서 눈치챌 수 있었다. 다행히 의식적으로 가이딩을 차단하고 있던 터라 따뜻한 온기만이 전해졌다. 이에 백마혁의 굵은 눈썹이 꿈틀거리며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윽!”

“놀랄 거 없네. 갓 각성한 애송이 에스퍼도 아니고, 힘 조절 하나 못해서 가이드 손을 해 먹을까 봐.”

다행히 재하가 일반인 수준임을 감안했는지 다치지 않을 정도였지만, 상대에 대한 정보가 단편적이다 보니 그로서는 겁먹은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불안해하는 재하를 본 백마혁은 그의 어깨를 팡팡 치며 끌어당겼다.

“나는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어린것들이 타고 넘으려 들어도 웬만하면 귀엽게 잘 봐주는 호인일세. 특히 가이드 군처럼 중요한 인재라면 편히 말해도 돼.”

재하의 상황을 어림짐작한 백마혁은 계속해서 자신을 관대한 사람인 양 포장했다.

“영우랑은 선후배 사이라며. 어쩌다 보니 납치해 온 것처럼 돼 버렸지만, 정붙이면 다 고향이고 집인 게지.”

애초에 납치가 목적이었으나 백마혁은 아닌 척 말을 섞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재하가 가려던 휴게 공간으로 발을 들였다.

로비로 삼을 만한 넓은 공간이었지만, 숨겨진 빌런 조직에 외부인이 방문할 일은 없어 자연스레 에스퍼들의 놀이터가 돼 버렸다.

“보, 보스?”

“으억, 안녕하십니까!”

소파에 늘어져 있던 에스퍼들이 백마혁의 등장에 다들 빠릿빠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질서라고는 없어 보이던 이들이 대장을 앞에 두곤 예의를 차릴 줄 아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백마혁은 가볍게 고개를 까닥여 인사를 받아 주곤 재하에게 집중했다.

“가이드 군, 이름이 뭐라고 했지? 서. 서 뭐였더라…….”

“재……하요.”

“오, 그래. 서재하 군, 아까도 말했듯이 혼자 다니면 위험하네. 요놈들이 나한텐 자식 같아서 자유롭게 지내라 내버려 뒀더니 다들 참을성이 없어져서 말이야.”

자식 같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죽어 나가도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었다.

“물론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지게 할 걸세. 아무래도 고등급 에스퍼를 제대로 가이딩 할 수 있는 가이드는 귀하니까.”

모여 있는 에스퍼들을 향해 서재하가 고등급 에스퍼인 자신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확실하게 못 박았다.

에두를 것도 없이 모두를 향한 경고였다. 워낙 화통한 백마혁의 목소리는 모두의 귀에 쏙쏙 들어박혔다.

“에이, 우리가 뭘 어쩐다고 그러세요.”

“TV에까지 나와서 특별한 가이드라고 하는 걸 봤는데, 귀하게 대접하는 게 맞죠.”

안 그래도 재하는 납치된 다른 가이드와 반응부터가 달랐다. 겁먹은 기색 없이 가이딩이 잘되는 방법을 직접 언급하며 손을 내미는 재하를 함부로 대하기 애매했다. 게다가 백마혁과 함께 나타난 점이 다른 때와 다르다는 걸 확신케 했다.

“어디 보자, 그럼 누굴 가드로 붙여 줄까.”

백마혁은 주변을 쓱 둘러봤지만, 휴게 공간에 늘어져 있던 이들이 빠릿빠릿하게 서 있어 봤자 하나도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백마혁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재하가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저기요.”

“음?”

재하는 백마혁을 말려야 했다. 도준을 만날 때 다른 에스퍼가 곁에 있으면 아이템을 전달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자신에게는 무르게 구는 편인 에스퍼들이 도준에겐 쉽게 폭력을 쓰기에 동행하고 싶지 않았다.

재하의 조심스러운 행동에 방금까지 찡그렸던 백마혁의 얼굴이 의도적으로 펴지며 웃음을 만들어 냈다.

“바라는 거라도 있나?”

“가드는 필요 없어요. 잠깐 친구만 보고 돌아갈 거예요.”

“호오, 에스퍼를 친구라 부르는군.”

백마혁의 반응에 재하는 자신이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어떤 식으로 문제가 될지 몰라 덜컥 겁이 나려 했다. 하지만 이미 걱정할 일투성이였기에 하려던 말을 마저 꺼냈다.

“영우 선배에게 아이템도 받았으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아이템?”

재하가 의도적으로 영우의 존재와 아이템을 언급하자 백마혁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그를 위에서 아래로 살폈다. 재하가 주머니에 넣어 둔 반지 중 하나를 꺼내 내밀자 받아 본 백마혁이 입꼬리를 올렸다.

“이거 참, 쓸 만한 걸 잘 골랐군.”

화내는 기색도 없이 재하의 손을 잡아 반지를 끼워 주던 백마혁은 여전히 가이딩이 되지 않는 것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빠른 시일 안에 나를 좋아하도록 해, 서재하 군.”

“……아저씨, 저한테 왜 이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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