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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111화 (11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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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리 가요, 선배!”

여유롭기만 한 영우의 행동에 재하의 초조함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재하의 필사적인 외침에도 당사자인 이천오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능으로 만들어진 그물은 점점 더 무게를 더해 이천오가 버티고 서는 것만도 상당한 부담이었다.

이천오의 등에 장난치듯 구슬을 문지르던 영우의 손이 척추 한가운데를 꾹 눌렀다. 아무리 육체 강화계라고 해도 섬뜩해질 위치였다.

“일단 세 번 정도 강도를 조절하면서 실험해 볼게.”

“하지 마세요! 이천오 씨, 피해요. 제발!”

불안으로 덜덜 떨리는 재하의 외침에도 이천오는 꿈쩍도 하지 않고 감싸고만 있었다. 그물과 함께 굴러 빠져나간다면 다소 다칠지언정 영우에게선 멀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다치는 사람 중 재하가 포함되어 있기에 이천오는 움직일 수 없었다.

이천오의 단단한 각오에 재하는 필사적으로 몸을 틀고 팔을 뻗어 간신히 영우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재하야, 너, 이러면 손 다쳐.”

“지금 내 손이 문제예요? 사람을 터트리려고 하면서!”

“터트리진 않을 건데. 나 못 믿니, 재하야?”

“사람을 칼 달린 그물로 묶어 놓고 폭탄으로 협박하는데 어떻게 믿어요? 빌런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잖아요.”

날 선 재하의 반응에 영우가 움직임을 멈추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푸훗, 무슨 오해를 하는 거니. 우린 너희와 뜻을 이루는 방식이 다른 것뿐이야. 사람을 이유 없이 다 죽이고 다니진 않아.”

“선배가 사람을 터트린 걸 제가 봤는데요.”

“아, 그때는 재하를 너무 만나고 싶었는데 계속 방해했고, 지금도…… 음, 그러네. 비슷한 상황이긴 하구나.”

답을 주던 영우의 손에서 구슬 부딪치는 소리가 더 들려왔다. 엄하게 자극한 건가 싶어 재하의 불안감이 커졌다.

“이영우 님, 시간이 너무 지체되고 있습니다. 곧 포털이 열릴 겁니다.”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니?”

가짜 가드의 걱정에 영우는 손을 거뒀다. 두어 걸음 물러나자 가짜 가드들이 이천오에게로 손을 뻗었다. 가짜 가드들의 이능은 그물 생성과 중력 증가로, 낮은 등급이었지만, 두 이능이 합쳐지자 이천오의 발밑이 푹 꺼질 만큼 무게가 더해졌다.

“읏…….”

“이천오 씨?”

이천오는 꿋꿋하게 버텼지만, 그를 끌어안은 재하의 팔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계속해서 무게가 더해진 그물의 커다란 가시가 강화된 이천오의 몸을 파고들어 피가 줄줄 흘러나온 탓이었다.

“그, 그만해, 그만해요!”

재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 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이 상황이 미칠 것 같았다. 아무리 이천오에게 가이딩을 쏟아부어도 등급 이상으로 강화가 될 리 없었다.

이대로라면 과다 출혈로 의식을 잃을 게 뻔했다. 이천오는 의식을 잃더라도 재하를 놓지 않을 각오였지만, 가짜 가드와 영우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기다릴 뿐이었다.

“이천오 씨, 날 좀 놔줘요. 내 몸인데 내 맘대로 하게 좀 놔 달라고요.”

“불안하시겠지만, 버티셔야 할 때입니다.”

“내가 무서운 건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다치는 거예요.”

재하는 이천오의 충성심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피투성이가 되도록 끝끝내 자신을 지켜 내려고만 하는 이천오가 답답하고 미안했다. 설득이 먹히지 않으니 마나가 끊긴 반지에 대고 재윤의 이름을 끊임없이 속삭이는 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서재하 님을 지켜 드려야 하는데…….”

“내 걱정은 그만하고, 정신 놓으면 안 돼요.”

“죄송……합니다.”

단단하게 버티고 섰던 이천오의 몸이 흔들렸다. 그러면서도 재하를 안고 버티려 했지만, 과다 출혈로 힘이 빠진 몸은 무거운 그물을 치운 가짜 가드가 발로 밀자 쉽게 허물어졌다.

“이천오 씨? 이천오 씨!”

이천오가 무너진 자리에 웅크린 재하의 몸은 피투성이여도 상처는 손등의 조금 긁힌 흔적뿐이었다.

“이런, 재하가 더러워졌잖니. 하여간 요령 없기는.”

“죄송합니다, 이영우 님.”

가짜 가드들을 타박하며 냉큼 재하에게 다가와 일으키는 영우의 눈은 즐거움만이 가득했다. 이천오를 향한 걱정 가득한 재하의 시선에 영우는 손을 뻗어 턱을 잡아 돌렸다.

“재하야, 날 걱정해야지.”

재하가 턱이 잡히고도 이천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자 영우는 그를 안아 들고 걷기 시작했다. 너무도 쉽게 성인 남자를 가뿐히 안아 드는 에스퍼의 남다른 체력에 재하는 저항할 수조차 없었다.

“친구랑 가족뿐 아니라 고작 가드까지 걱정하다니, 재하 넌 앞으로 외출 금지야.”

이게 무슨 개소린가 싶은 영우의 말에 재하는 무어라 답할 기운도 없었다. 허물어진 이천오의 커다란 몸 아래로 꾸역꾸역 흘러나와 웅덩이를 이루는 핏물이 소름 끼치게 두려웠다.

제발 누구라도 이천오를 도와주길 바라며 벽에 붙어 선 직원과 가드를 쳐다봤지만, 아직 바닥에 깔린 수많은 검은 구슬로 인해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여전히 굉음이 들려오고 있어 에스퍼가 이곳에 오려면 한참은 걸릴 것 같았다.

강당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재하의 몸이 움찔거리자 영우는 가볍게 허리를 토닥였다.

“실수는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렴. 세 번이나 실패할 수는 없어서 꽤 공을 들였으니.”

가짜 가드가 문을 열자 방 안을 가득 채운 포털이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걱정과 불안으로 지나온 길만 바라보던 재하가 놀라 돌아볼 만큼 짙은 마나를 뿜어내고 있었다.

“여, 영우 오빠.”

포털을 설치하느라 집중하고 있던 우양희가 영우를 보고 반가워하며 달려오다 피투성이의 재하를 보고 물러섰다.

다른 때라면 조잘거리며 달라붙었을 우양희의 경계에도 영우는 개의치 않고 재하를 보듬으며 포털에 발을 디뎠다. 우양희 역시 재하를 불편해하면서도 영우의 곁에 붙어 움직였다.

“포털 처음 타는 거면 어지러울 수 있으니 눈 감는 게 좋아.”

영우의 입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말이 나오자 우양희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영우가 막 포털로 들어서려는 순간, 강한 바람이 휘몰아쳐 오다 한순간에 멈췄다. 몸집이 작은 우양희는 영우를 잡지 않았다면 날아갔을 만큼 강한 돌풍이었다.

바람이 밀려온 곳을 바라보자 영우에게도 제법 익숙한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늦어서 미안해.”

“도준아…….”

멀리 서 있는 도준을 발견하자마자 재하는 굳었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차라리 잡혀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반쯤 자포자기했던 마음이 방어 능력자인 도준을 보자 간절함으로 바뀌었다. 구해 달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데도 안도감에 오히려 몸이 떨려 왔다.

“재하 너, 많이 다친 거야?”

“아냐, 안 다쳤어. 나 대신 이천오 씨가…….”

포털을 향해 달려오는 도준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재하를 감싸려 만들어 낸 방어 막이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 허공에 벽처럼 펼쳐져 버렸다. 상황을 알아챈 영우는 부드럽게 웃으며 우양희에게 물었다.

“어떠니?”

“괘, 괜찮아요. 포, 포털은 다른 이능이 주, 중……첩 안 돼요.”

우양희가 보란 듯이 앞쪽으로 손을 뻗어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는 방어 막을 통통 두드려 보였다.

“대충 3m쯤 되나 봐. 고생해서 등급을 올린 보람이 있구나. 대단해.”

“헤, 헤헤…… 여, 영우 오빠도 느, 능……력 멋져요.”

우양희의 말대로 도준이 사용한 방어 막은 포털로 인한 절대 영역 탓에 재하에게 닿지 못했다. 포털의 몇 미터 앞에 벽처럼 세워진 방어 막은 주변을 에워싸는 게 전부였다. 이렇게 해 봤자 그들이 포털에 들어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어서 가자. 재하 좀 씻겨야겠어.”

“오, 빠 들어가면 바……로 다, 닫을게요.”

도준이 바로 앞까지 왔는데도 영우의 행동은 느긋하기만 했다. 가짜 가드들이 포털에 들어갈 때마다 가볍게 일렁이는 푸른 마나를 향해 영우가 움직이자 도준이 제안했다.

“저도 데려가세요.”

“도준아, 그러지 마.”

막 포털에 발을 들이던 영우는 뜬금없는 도준의 말에 멈춰 섰다. 이어진 재하의 다급한 만류에 떨떠름한 얼굴로 도준을 돌아봤다.

“우리가 바보로 보이니? S급 수호자를 본거지에 데려가게.”

“마나 제어 장치, 만들지 않았나요?”

도준의 담담한 질문에 영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최근에 영우가 연구 팀에 합류한 덕에 개발이 지지부진하던 물건 하나를 완성했다. 에스퍼에게 직접 착용시킬 수 있는 이능 봉인 장치에 대한 정보가 벌써 협회 측에 흘러 들어갔다는 사실이 꺼림칙했다.

흘러내린 안경을 치켜올리며 우양희를 바라보자 그녀 역시 놀란 눈으로 영우를 바라볼 뿐이었다.

“흐음…… 하긴, 쥐새끼가 조직에 없으리란 법은 없지.”

조직 내부 기밀을 알고 제안해 오는 도준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영우가 망설이는 사이, 우양희가 불안해하며 그의 팔을 붙잡았다.

“가, 강당 쪽, 포……털, 다, 닫혔어요.”

위험하면 자동으로 닫히게 설정해 둔 포털이 닫혀 버렸다. 이제는 정말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S급 에스퍼의 마나를 가지고 노는 건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었다. 제 발로 걸어 들어오는 재료를 마다하기엔 너무 아까운 기회였다.

“좋아. 그럼 이걸 착용하렴.”

영우는 품에서 반달 모양의 장신구를 꺼내 흔들어 보였다. 도준이 무의미한 방어 막을 치움과 동시에 장신구가 날아들었다.

“양손에 하나씩 차.”

“도준아, 그러지 마. 차라리 도망쳐.”

재하의 애원에도 도준은 시키는 대로 장신구를 착용했다. 넓은 팔찌처럼 생긴 두꺼운 장신구를 손목에 채우고 다른 손목에도 마저 채우는 순간 양 손목이 붙으며 마나가 정지하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갑작스러운 상실감에 도준의 눈빛이 흔들리자 영우가 만족스러워하며 웃었다.

“마나가 움직이질 않을 거야. 이능을 사용할 수 없다는 의미지.”

“도준이한테까지 이럴 필요 없잖아요.”

재하의 버둥거림에도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 영우는 태연하게 그를 보듬으며 도준을 위해 포털에서 한 걸음 비켜 주었다.

“그 상태로도 괜찮으면 포털로 들어가렴.”

잠시나마 표정이 지워졌던 도준이 덤덤하게 포털로 걸어가자 재하가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를 불렀다.

“도준아, 제발 그러지 마. 왜 나 때문에 너까지 희생하는 건데!”

“괜찮아. 혼자보다 둘이 나을 거야.”

포털로 들어서기 전 도준이 보인 다정한 미소에 재하는 속이 상해 미칠 것 같았다. 어떻게든 자신을 혼자 보내지 않으려 위험을 감수하는 도준을 말릴 방법이 없었다.

“선배, 저만 데려가면 되잖아요. 제가 뭐든 할게요. 도준이는 내버려 둬요!”

재하가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지만, 영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무력함에 화가 났다. 덤덤히 포털 안으로 사라지는 도준의 등을 보며 재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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