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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110화 (110/142)

110

쿵. 쿠웅.

건물 전체가 울릴 만큼 커다란 굉음이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이 시간쯤이면 가이드 특별 수업이 진행되고 있을 강당 건물 쪽이었다. 재하 역시 참여하고 싶었지만, 정규 수업 외에는 숙소에 있어 달라는 재윤의 요구에 따라 포기했었다. 강당 쪽으로 향했던 재하의 시선이 불안하게 흔들리며 영우에게 돌아왔다.

“서, 선배, 혹시 저 소리…….”

“응, 맞아. 우리 쪽 애들이 가서 분탕 치고 있는 거야.”

너무도 당당한 영우의 웃는 얼굴에 재하는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영우는 자신이 벌인 일들을 자랑스럽게 떠벌렸다.

“가이드 수업이라길래 폭탄 몇 개 터트리고 재하만 빼 오려고 했는데, 네가 안 보인다잖니. 또 놓칠 수 없어서 내가 직접 너한테 온 거야.”

등 뒤의 비상구는 그새 도착한 가짜 가드들이 막고 있었다. 이천오는 상대적으로 폭탄이 적어 보이는 동선을 확인하며 재하를 꽉 붙잡았다. 비장한 이들과 달리 영우는 해맑을 정도로 가벼운 미소로 물어 왔다.

“그쪽, 육체 강화계 각성자?”

이천오는 대답하는 대신 아슬아슬한 동선을 최대한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벽을 박찰 기세로 다리에 힘을 주었다.

“재하 옆에 있는 걸 보니 맞겠지.”

영우의 손끝이 살짝 움직이는 듯싶더니 이천오 옆의 폭탄 하나가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이천오가 반사적으로 재하를 안은 채 뒤로 물러나자 가짜 가드들이 이능을 사용했다. 저들도 에스퍼였다는 것에 놀랄 틈도 없이 허공에 나타난 그물이 이천오의 위로 떨어졌다.

“위!”

재하의 말 한마디에 이천오는 피하던 방향으로 몸을 굴렸다. 바닥에 보이는 수많은 폭탄 위를 구르게 되었지만, 평소 꾸준한 자료 조사를 통해 영우의 폭탄에 대한 정보를 숙지하고 있었다. 폭탄의 주재료는 게이트 내핵으로 추정되었기에 이 많은 폭탄이 진짜일 리는 없었다.

이천오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바닥을 구르는 와중에 재하를 품에 안아 보호하는 동안 그의 몸에 부딪히고 깔린 검은 구슬은 잠잠했다.

“겁이 없네?”

태연한 영우의 감상과 함께 이천오가 다시 달리기 위해 일어서는데 이번엔 코앞에서 그물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날카로운 가시들이 박힌 그물을 보게 된 이천오는 반사적으로 등을 돌려 재하에겐 닿지 않게 했다.

“크윽!”

통증을 무시하고 그물을 걷어 내기 위해 한쪽 팔을 휘둘렀으나 오히려 가시가 깊이 박혀 들며 행동에 제약이 생겼다. 짧은 시간 동안 묵직한 그물이 겹겹이 이천오의 위로 덧씌워졌다. 그 와중에도 이천오는 그물을 끌고 움직여 단단한 벽과 자신의 사이에 재하를 감출 수 있었다.

“함부로 돌아다니다 재하가 다치겠어.”

재하를 걱정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 영우의 목소리는 느긋하기만 했다.

이천오는 등에 박힌 그물이 지나치게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그러나 문제 될 건 없었다. 품에 감추듯 보호한 재하에게서 은은하게 이어지는 가이딩 덕에 얼마든지 버틸 수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조금만 버티면 지원이 올 겁니다.”

이천오에게 완전히 덮인 상태로 시야가 차단된 재하는 정신이 없었다. 폭탄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이천오에게 안겨 시야가 휙휙 바뀌었고, 허공에서 갑자기 나타난 그물에 놀라 소리친 뒤로 데굴데굴 구르고 눌리느라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었다.

괜찮다는 답을 하기 위해 간신히 고개를 들던 재하는 이천오의 어깨를 찢고 드러난 날카로운 가시를 발견했다.

“이천오 씨, 어깨가!”

“괜찮습니다. 제 이능 아시잖습니까. 이대로 버티면 됩니다.”

그제야 재하의 눈에 그물이 엮인 곳마다 날카로운 가시들이 박혀 있는 게 들어왔다. 묵직해 보이는 그물이 계속해서 생겨나 이천오를 내리눌렀다. 그때마다 강화된 이천오의 몸조차 버텨 내지 못하고 피를 흘려 냈다.

이능으로 만들어진 그물은 일반적인 것과 달리 에스퍼를 감싼 채 점점 옥죄어 왔다. 이천오가 재하에게 닿지 않게 버티는 사이, 영우가 검은 구슬을 밀어내며 다가왔다.

“재하에게 더러운 게 묻잖니. 좀 비켜 주지 않을래?”

지척에서 들리는 상냥한 영우의 목소리에 재하는 소름이 끼쳤다. 여전히 타인을 대할 때 무생물 대하듯 감정이 결여된 영우의 반응은 자신에게 향할 때만 달라졌다. 그 간극이 더 소름 끼쳐 재하의 몸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듣지 마십시오. 곧 에스퍼가 도착할 겁니다.”

침착한 이천오의 목소리에 재하 역시 마음을 다잡으려 했지만, 그물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바싹 붙어 선 영우가 재하만 바라보며 다정하게 속삭였다.

“재하야, 얘, 너한테 거짓말하는 거야.”

뜬금없는 영우의 말에 재하가 쳐다보자 그의 미소가 더 진해졌다.

“통신기도 폰도 못 써. 마나 제어기도 꺼 두었고.”

이천오도 알고 있었다. 비상계단을 뛰어내릴 때부터 협회 안인데도 몸 안에 도는 마나가 자유로웠다. 통신기 역시 불통이라는 걸 알았지만, 이 소란 통에 에스퍼든 지원이든 오지 않을 리 없었다. 설령 오지 않는다 해도 이천오는 끝까지 재하를 지킬 생각뿐이었다.

“시간 끌어 봤자 아무도 안 와. 온다 해도 가이드가 모여 있는 강당으로 가겠지.”

“제가 지킬 겁니다. 그러니까…… 서, 서재하 가이드님?”

영우의 말에 흔들림 없이 다짐하던 이천오는 제 손에 손가락을 얽어 오는 재하의 행동에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재하는 통신기가 먹통이 됐다는 소식에 재윤에게 받은 반지를 통해 상황을 알릴 생각뿐이었다. 꼼꼼하게 이천오의 손가락이 반지에 닿게 한 후 영우에게 들리지 않게 반대쪽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마나 좀 써 주세요.”

하지만 아무리 작게 말해 봤자 지척에서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영우에게 들리지 않을 리 없었다. 미리 받아 둔 재하의 주변 인물 정보에 이천오의 내역은 그리 길지 않았다.

육체 강화가 주요 이능이었지만, 어쩌면 다른 게 더 있어 주의를 기울여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영우의 눈에는 이천오의 손을 꼭 잡고 얼굴을 가까이 붙인 재하의 행동이 거슬렸다.

“재하야, 나 보라고 이러는 거야? 질투하라고?”

영우의 손안에서 잘그락거리며 검은 구슬이 굴렀다.

“영우 선배.”

“응, 그래. 나 왔어. 이제야 날 제대로 봐 주는구나.”

언제 불쾌했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그물에 달라붙는 영우의 얼굴에 상처가 생겼다.

“선배, 떨어지세요.”

“날 걱정하는 거야? 좋아. 계속 걱정해 줘, 재하야.”

더욱 바싹 붙으며 상처 입는 걸 두려워 않는 영우의 여전한 행동에 재하는 부디 반지를 통해 재윤에게 전달되길 바라며 질문을 하면서 상황을 알렸다.

“로비에 폭탄을 깔고 강당에 모인 가이드들을 위험하게 만든 이유가 뭐예요?”

“위험하진 않을 거란다. 가이드를 노리는 애들이 많거든.”

영우의 말투가 워낙 상냥해 안심해야 하는지 불안해해야 하는지 헷갈리려 했다.

“통신기도 못 쓰게 하고, 마나 제어기는 또 어떻게 끈 거예요?”

“재하를 만나려고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면 깜짝 놀랄걸.”

영우는 바로바로 답을 해 주었지만, 질문에 맞는 답은 해 주지 않았다.

반지를 통해 재윤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걸 보아 자신의 의도대로 듣기만 하는 듯했다.

“제가 따라가면 이 소란을 멈출 건가요?”

“나는 재하랑 돌아갈 거야. 그 외엔 관심 없어.”

이 모든 상황을 자신 하나로 종료할 리 없었다. 어찌 보면 지금 상황은 영우의 단독 행동처럼도 보였다. 재하는 자신을 끌어안은 이천오의 팔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끼며 마음을 다잡았다.

“선배, 떨어져 주세요.”

“재하야, 내 손 잡자.”

그물 사이로 들어온 영우의 손이 재하의 손등 위로 겹쳤다. 그와 동시에 영우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오랜만에 느끼는 재하의 가이딩이 기분 좋았다. 이천오가 재하의 손을 당겨 품 안으로 감추자 영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선배, 영우 선배.”

“응, 재하야.”

이천오를 노려보던 영우의 눈이 상냥하게 바뀌며 재하에게 향했다.

“선배 손 잡을게요.”

“서재하 가이드님!”

“응, 어서 잡아 줘.”

활짝 펼쳐지는 영우의 손을 보지도 않고 재하가 먼저 요구했다.

“잡을 테니까 물러서 주세요.”

“물러서면 어떻게 손을 잡아?”

“그물도 치워 주세요. 이천오 씨 안전이 보장되면 선배의 손을 잡을게요.”

재윤이 상황을 알아채고 돌아오거나 도와줄 에스퍼가 올 때까지 다른 사람들의 안위마저 요구할 수는 없었다. 저를 지키려 피 흘리는 이천오의 안전만이라도 보장받고 싶었다.

재하의 요구에 영우는 망설임 없이 다른 손에 들린 검은 구슬을 내밀어 보였다.

“이걸 저 사람이 삼키면 들어줄게.”

“선배, 미쳤어요?”

연기할 것도 없이 재하의 입에서 바로 튀어 나간 말에 영우가 조금 놀란 것처럼 눈을 깜박이다 사르르 웃는 얼굴을 만들어 냈다.

“전엔 미숙해서 바로 터졌지만, 이젠 화력과 시간을 조절할 수 있어. 재하가 다칠 일은 없을 거야.”

“선배!”

“서재하 가이드님, 범죄자와 타협 같은 건 없습니다. 듣지 마십시오.”

그물에 덮여 움직이기 힘든 상황에서도 이천오는 재하를 더욱 품으로 끌어 들이며 보호했다.

“곧 올 겁니다. 그러니까 버티면 됩니다.”

까득.

영우의 손안에서 구르던 검은 구슬끼리 눌리고 부딪치며 수상한 소리를 냈다.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던 재하는 영우의 손이 이천오의 등으로 향하는 걸 보고 허둥지둥 손을 뻗었다. 그물에 스치며 상처가 나는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손을 휘젓는 재하의 행동에 영우의 눈웃음이 진해졌다.

“귀여워, 재하야. 무의미한 일에도 필사적인 햄스터 같아.”

“그거 치워요, 선배!”

재하의 손이 닿지 않는 위치에 손을 얹은 영우는 손바닥 아래에서 느껴지는 검은 구슬을 지그시 눌렀다.

“육체 강화계는 얼마나 단단해질 수 있는지 궁금하긴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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