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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108화 (108/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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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진이 협박받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상대에 대해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이희진에 지호는 통신기를 풀려는 것처럼 손목을 붙들며 위치 알림을 눌렀다. 이희진은 지호의 행동에 아무런 의구심도 없이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때, 알림이 가지 않고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통신기를 확인한 지호가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 보니 이쪽도 먹통이었다.

“전화, 못 쓸 거야.”

지호의 행동에 이희진은 미안한 얼굴을 했다. 방금까지 이희진과 통화를 했던 걸 떠올린 지호는 망설임 없이 이능을 사용했다.

“지호……!”

이희진은 바닥에 핏자국만 남기고 사라진 지호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주변을 살폈으나 그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너, 힘 쓰면 큰일 나! 능력 쓰면 안 돼, 지호야!”

자신을 걱정하며 소리치는 이희진의 목소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에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무리하게 이능을 사용한 탓에 풀숲에 몸을 숨길 수는 있었지만, 그리 멀지 않았다. 이를 악물며 신음을 참아 낸 대신 울컥거리며 치솟은 피가 한 움큼 흘러내렸다.

이능을 쓸 때마다 피를 토하게 되는 거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협회로만 돌아가면 힐러가 상시 대기 중이었다. 하지만, 협회로 돌아가려던 지호의 의도와 달리 그는 고작 몇십 미터밖에 이동하지 못했다. 그 대가로 폭주 때와 비슷한 수준의 통증이 정신없이 휘몰아쳤다. 그나마 다른 점은 이능을 사용하지 않으면 곧 잦아든다는 거였다.

목을 긁으며 패치를 때려던 지호는 반대편으로 내달리며 자신을 부르는 이희진의 목소리에 손을 멈췄다.

이희진이 무슨 의도로 자신에게 이런 걸 붙였는지 몰라도 패치를 떼려 하자 걱정하던 모습은 진심처럼 보였다. 하지만, 영문 모를 패치를 계속 붙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능 사용을 방해하는 패치를 떼는 것과 동시에 어떤 부작용이 생기더라도 협회로 이동하는 쪽을 택했다.

패치를 떼자 안쪽에 짧은 바늘들이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협회에 가져가자 싶어 손에 든 채 이능을 사용하려는 순간 시야가 하얗게 점멸하며 버티고 서 있을 수조차 없게 됐다.

부디 먹통인 통신기와 핸드폰의 위치 추적을 협회에서 해내길 바라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지호야, 제발! 견지호!”

점점 멀어지는 이희진의 목소리가 이제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는 걸 걱정했던 걸까 싶으면서도 자신을 속였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걱정할 거였다면 불러내지 말았어야지.’

흐릿해진 의식 속에 누군가를 향한 원망조차 흐려졌다.

* * *

견지호의 부재 하루 만에 재윤은 협회장실을 찾았다.

“견지호와 연락이 되질 않습니다.”

부술 것처럼 거칠게 문을 열며 등장한 재윤이 다짜고짜 본론부터 내뱉었다. 이미 서재윤이 협회장실로 오고 있음을 전해 들은 터라 권해성은 느긋하게 서류만 들여다봤다.

“친구를 왜 여기 와서 찾나?”

“친구 아니고 동료 에스퍼죠. 에스퍼의 위치 열람을 요청합니다.”

“관련 부서에 가서 말하면 될 일을 왜 굳이 여기까지 와서 소란인지 모르겠군.”

“당신이 막아 놨잖아.”

존대조차 날려 버린 재윤의 날 선 지적에도 권해성은 보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으며 느긋하게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야 당연하지. 고등급 에스퍼의 위치를 아무 때나 열람하게 해 두면 쓰나.”

“여유 부릴 때가 아닐 텐데요. 견지호에게 무슨 일이 있다면, 손해는 당신이 더 클 겁니다.”

“견지호라면 아주 쓸모가 많은 에스퍼라 항상 주의 깊게 보고 있었지. 여자관계가 복잡하다는 것 또한 아주 잘 알고 있고.”

“여친 정리한 지 한참 됐는데 정보가 느리시네요.”

최근 A급으로 성장해 안 그래도 높았던 인지도가 치솟아 여기저기서 러브 콜이 들어오는 재윤의 무례는 협회장에겐 귀여울 뿐이었다. 싱글거리기만 하는 협회장의 태도에 재윤이 절차를 무시할 생각으로 몸을 돌렸다.

“아침부터 활기찬 걸 보니 힘이 남아도는 모양이군. 만찬 때 보여 줄 시현이 벌써 기대가 돼.”

“지금 만찬 따위가 문제입니까? 유마로 때처럼 모른 척하실 거라면 방해나 하지 마시죠.”

이대로 정보실 문짝을 뜯어내고 멱살잡이해서라도 견지호에 대해 알아낼 기세인 재윤을 알아챈 권해성이 느긋함을 가장해 그를 붙잡았다.

“정보 하나 주지. 여친 정리했다는 그 견지호, 마지막 통화가 그 많은 여친 중 한 사람이더군.”

이건 예상 밖이었는지 재윤의 걸음이 멈췄다. 더 들어 보겠다는 듯 돌아보는 재윤을 향해 권해성은 서류 중간에 끼워진 종이 한 장을 꺼내 팔랑거렸다.

“그것도 연인들 사이에 핫플인가 뭔가 하는 걸로 뜨고 있는 무인도에서 신호가 끊겼지.”

재윤이 급하게 가져간 종이를 확인하니 지도에 위치 표시가 되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쓰레기 보듯 하던 재윤의 표정이 다소 누그러지자 권해성은 때를 놓치지 않고 밀어붙였다.

“지난주 내내 휴가를 내겠다며 떼를 썼던 걸 인력 부족을 이유로 들어주지 못했지. 불만으로 잠적한 거라 보고 있네.”

“견지호가 가벼워 보여도 자기 할 일은 제대로 해냅니다. 그 탓에 지난번에 폭주할 뻔했던 거고요. 사전 연락도 없이 갑자기 잠수를 탄다는 건 이상한 일이죠.”

“그만큼 자네 형과 권해일의 데이트가 충격이었던 게 아닌가 싶은데.”

“그건…….”

“견지호 에스퍼로서는 기회가 없으리라 여겼을지도 모르지.”

권해성의 예상은 꽤 그럴싸했기에 재윤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방치하겠다는 것은 아니니 걱정 말고. 하루는 좀 그렇고, 이틀 정도 쉬게 하고 그래도 연락을 받지 않는다면 직접 찾아가서 설득해 데려올 생각이네.”

권해성의 말에 당장이라도 지도의 위치로 향하려던 재윤의 태도가 조금 더 유해졌다.

지난주 내내 휴가를 달라며 불공평하다고 토로하던 견지호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형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정리한 여친을 다시 만나 휴가를 즐긴다는 선택지를 떠올리기 힘들었다.

권해성의 추측대로 해일과 형의 데이트 소식에 지호가 빠르게 포기한 건가 싶어 입맛이 썼다. 어쩌면 지호가 물러나 준 게 나은 상황일 수도 있었다. 다른 때라면 자세히 따져 봤을 재윤이 설득당한 건 정황이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통화 기록을 확인해야겠습니다. 녹취도 하고 있나요?”

“우리가 무슨 불법 집단도 아니고, 그런 짓은 안 하지. 안전을 위해 위치와 통화 기록만 확인할 뿐.”

이미 충분히 선을 넘었지만, 안전에 대해선 공감하는 바였다.

들어올 때와 달리 화가 누그러진 재윤이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고 밖으로 향하자 권해성의 얼굴에 한가득 떠올라 있던 웃음이 지워졌다.

가드가 문을 닫고 모니터로 재윤이 멀어짐을 확인한 후에야 권해성은 이를 갈았다.

“환장하겠군.”

견지호의 부재는 진즉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공간 이동은 일상에서도 쓰임새가 많은 이능이었다. 견지호가 폭주 직전까지 갔던 것을 알면서도 서재하에게 매일 가이딩을 받는다는 이유로 은근슬쩍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견지호의 하루 일정은 다른 에스퍼에 비해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이능이 공간 이동인 탓에 빠듯한 스케줄임에도 지각할 이유가 없었고, 항상 약속을 지켜 왔다. 그런 견지호가 핸드폰과 통신기 양쪽으로 연락이 되지 않아 추적해 보니 마지막 신호가 잡힌 건 동쪽의 무인도였다.

곧바로 추적 능력자를 포함한 여러 에스퍼를 파견했다. 견지호의 이탈을 두고 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같잖은 시위라도 하는 줄 알았더니…….”

현장을 찾은 에스퍼들은 작은 무인도를 이 잡듯 뒤져 견지호의 핸드폰과 피 묻은 상의를 발견했다. 마나 파동 측정기를 통해 포털이 닫히며 남긴 마나 잔재도 발견했다. 거기에 정체불명의 패치에 손을 댄 에스퍼가 구토하며 쓰러져 그것은 위험 물질로 분류되어 연구실에 보내 둔 상태였다. 곧 보고서가 올라올 거라 다른 서류를 살피며 기다리는 중이었다.

문제는 견지호가 사라진 경위였다. 혹시라도 유마로를 납치한 집단과 관련이 있다면 쉬쉬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당장 어떤 방법으로도 사라진 견지호를 찾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 재윤이 자리를 비우면 저녁에 예정된 만찬부터 시작해 굵직한 행사가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

“골치 아프군. 무슨 에스퍼가 이리 쉽게 납치를 당하는지.”

재윤의 앞에서는 그럴싸한 거짓말로 둘러대 이틀간의 일정에는 차질 없이 참여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사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에스퍼를 찾아내기 위해 최대한의 정보를 긁어모아야 했다.

지금도 탐지 계열 에스퍼들을 추가로 섬에 보내고 있었다. 그곳에 견지호가 사라질 상황을 만든 위험이 존재할지 모르나, B급 이하의 에스퍼 따위 어찌 되든 정보만 모으면 그만이었다.

“멍청하게 여자 꽁무니나 쫓아가서 일을 그르치나.”

답답해진 권해성은 한동안 피우지 않던 담배를 물고 필터만 잘근잘근 씹어 댔다.

* * *

“이상한데.”

재하는 오늘 하루 지나치게 조용하다고 느꼈다. 공간 이동 능력자인 견지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들렀었기에 그조차 보이지 않는 게 이상했다. 톡을 보내 봤지만, 다들 바쁜지 숫자가 줄어들지 않았다.

에스퍼들이 자리를 비우면 은근슬쩍 가이딩 테스트를 떠보던 연구원들의 접근도 없어 종일 조용하기만 했다.

평소처럼 저녁을 지어 두었지만, 저녁 시간이 지나도록 누구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 의아함이 더해져 걱정이 고개를 들 무렵, 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가 보니 온몸에 열기를 품은 재윤이 지친 얼굴로 서 있었다.

“너, 너, 뭐야? 마나가 왜 이따구야?”

해일 같은 화염계 능력자도 아닌데 열기를 모락모락 풍기며 돌아온 재윤은 닿지 않았는데도 느낄 수 있을 만큼 파동이 거칠었다.

“형, 나, 가이딩 좀…….”

“어, 그래. 알았어.”

당황한 재하는 모든 의문을 날려 버리고 눈앞의 재윤에게 집중했다. 허둥지둥 동생을 끌어안아 곧바로 가이딩을 하며 안으로 이끌었다.

한동안 재윤이 가이딩을 거부했던 전적이 있다 보니 재하는 늘 동생을 붙잡을 때 필사적이었다. 재윤 역시 이제는 재하를 거부할 수 없었다. 자신을 끌어안아 오는 형을 마주 안으며 온몸으로 스며드는 다정한 가이딩에 안도했다. 재윤이 자신에게 기대며 긴장을 푸는 모습에 끌어안은 재하의 손이 등을 두드렸다.

“으이구, 이렇게 되기 전에 날 부르지. 지호한테 부탁하면 바로 갔을 텐데.”

“견지호, 잠수 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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