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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104화 (10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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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재하였다면 소름 끼치거나 불쾌감이 생겨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저 부드럽고 얇은 피부가 닿으면서 여느 때보다 섬세한 촉감이 느껴질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친밀하게 느껴지는 접촉임을 인지할 수 있었다.

지호가 보인 질투심은 이해할 수 없지만, 왜 자꾸만 2차 가이딩이나 키스를 하려고 하는지는 조금 이해가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입술의 감각에 집중하는데 지호의 몸이 바싹 달라붙었다. 허리와 등을 끌어당기며 뒤로 몸을 기울이는 통에 넘어질 것 같은 두려움이 지호를 붙잡게 했다. 긴장으로 힘이 들어간 몸이 지호와 맞붙자 떨어져야 하는데도 넘어질 것 같아 쉽지 않았다.

불편한 자세에 신경 쓰는 사이, 어느새 입술이 벌어지며 더욱 긴밀한 접촉이 이어졌다.

‘뭐야, 이건?’

지호와의 접촉은 몇 번 경험하지 않은 키스 중에서도 가장 능숙했다. 정말이지 혀가 다른 생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신기하게 움직여 댔다. 징그러운 것 같으면서도 특별한 사이가 아니면 서로가 닿을 리 없는 말랑거리는 살덩이가 부딪치고 뒤엉키며 정신을 쏙 빼놓았다.

입 안을 간질이다가도 도망치듯 빠져나가고는 이내 다시 얽혀 들었다. 입 안이 간질거릴 만큼 지속해서 자극하면서도 제 쪽으로 오라는 듯 자꾸만 얽혀 들었다. 몇 번은 이끌려 가기도 했지만, 퍼뜩 정신을 차리고 제자리로 돌릴 때면 그보다 빠르게 얽히며 다시 끌려갔다.

가이딩이라면 가이딩이었고, 키스로 치면 지나치게 질척거리는 행위였으나 재하에게는 열이 오르는 경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쩌면 지호의 도발에 이끌려 조금 경쟁심이 생긴 것일 수도 있었다. 거부감조차 잊고 이끄는 대로 열중하는 사이, 맞붙은 지호의 입술 끝이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눕혀질 것처럼 기울었던 몸이 번쩍 들렸다.

이게 어디서 힘자랑이냐 따질 틈도 없이 허공에 들린 채 지호에게로 쓰러지듯 몸이 기울었다. 지호의 셔츠 위로 미끄러진 손이 허우적거리다 등을 붙잡았지만, 자세가 허물어져 지호의 팔 힘에 의지한 채 떠 있었다. 허공에서 지호에게 키스를 퍼붓는 것처럼 기울어진 자세가 민망해 필사적으로 어깨를 잡고 고개를 들자 생글거리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너, 너 이 새끼.”

“선배가 쓰러질 거 같아서요. 소파로 갈까요?”

“가긴 어딜 가. 다 했으면 내려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제 시작인데.”

“뭐 인마?”

“아직이에요, 선배. 조금만 더요.”

야살스럽게 웃는 후배의 얼굴에 펀치를 먹여 주고 싶은 걸 꾹 참은 건 입술에 남아 있는 간질거리는 감촉이 나쁘지 않아서였다. 여우에게 홀렸나 싶을 만큼 순순히 지호와의 2차전을 소파에서 시작했다. 이미 가이딩이 필요 없어질 만큼 안정된 파동에도 물러서지 않는 지호의 키스가 한참이나 더 이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지호의 손이 방어 슈트를 벗기며 후드 티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것에 정신을 차린 재하가 뒤늦게 밀어냈다. 갑자기 휘두른 재하의 팔꿈치에 턱을 스쳐 맞은 지호는 그다지 아프진 않았지만, 거절당한 상황에 아픈 척을 했다.

“아파요, 선배.”

“야, 뭐 하냐?”

여전히 한 손은 재하의 후드 티 안에 넣은 채로 맞은 턱을 문지르던 지호가 슬그머니 양손을 들어 보였다.

“하하, 분위기를 타다 보니 본능적으로 그만.”

“분위기 탄 김에 이제 좀 꺼져라.”

여전히 키스의 여운이 남아 벌게진 얼굴임에도 짜증이 잔뜩 묻어난 재하의 표정에 지호가 바싹 엎드렸다.

“선배, 잘못했어요.”

역시 물러날 때를 아는 자의 빠른 반응이었다.

“다음 주까지 가이딩 받기 싫으면 계속 버티고 있든가.”

단호한 재하의 말에 지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소파 옆으로 비켜났다. 지호가 비켜 주자마자 재하는 구르듯 벗어나 욕실로 향했다.

차가운 물에 한참을 세수하며 재하는 방금까지 달라붙어 있던 지호와의 일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입술이 간질거릴 만큼 지호의 키스 테크닉은 상당히 괜찮았다.

‘겁내 잘하네.’

거울 속 벌게진 얼굴을 보니 자괴감마저 들었다.

‘왜 안 싫지? 어? 고작 세 번 만에 남자랑 키스하는 게 익숙해진 거야? 나, 그런 놈이었어?’

동생을 포함해 벌써 세 번째 남자와 키스한 거였다. 엄밀히 말하면 세 번째라 익숙해진 것도 아니었다.

해일과의 일은 분위기를 타서 괜찮았을지 모르나 지호의 경우는 워낙 장난스럽게 달라붙는 식이라 불편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어찌나 현란하게 움직여 대는지 홀린 듯 따라가기까지 했다.

당황, 혼란. 그렇다고 종일 여기에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어 문을 열자 시무룩한 지호가 보였다.

“선배…… 그렇게 오래 입을 헹굴 필요는 없잖아요.”

“그런 건 아니고, 세수만 했어.”

민망해서 퉁명스럽게 답하자 냉큼 달려온 지호가 젖은 얼굴에 버드 키스를 퍼부어 댔다.

“아오, 좀. 개도 아니고. 얼굴에 침 묻어.”

“에이, 묻는 것 정도로 뭘 그러세요. 이미 서로…….”

“시끄러워. 닥쳐. 꺼져라, 좀.”

빠르게 밀어내는 재하의 손짓에 지호는 아쉬워하면서도 손을 뗐다. 여전히 붉은 얼굴과 입술을 문지르며 신경 쓰는 걸 보아 여지가 있어 보였지만, 지호는 일단 멈췄다. 조금 전 입맞춤으로 재하가 키스 자체에는 반응했을지 몰라도 자신에게는 별다른 생각이 없다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안 가냐?”

손을 까닥거리는 재하의 여유로운 태도에 지호는 조금 씁쓸하게 웃어 버렸다. 재하의 경계심이 내려가는 만큼 불안해지면서도 진심으로 밀어붙이면 밀리는 선배가 귀여운 한편, 여전히 저의 진심을 바람둥이의 익숙함으로 가볍게 넘기는 모습이 뼈아팠다.

“선배는 제 과거를 후회하게 만들어요.”

평생 남을 부러워한 적 없는 자신이 권해일을 부러워하게 만들었다. 주도준의 위치였다면 더 쉽게 재하의 신뢰와 애정을 얻었으리라 상상하게 만들었다.

“저, 포기 안 해요, 선배.”

“뜬금없긴. 좀 가라고.”

쪽.

기습 뽀뽀에 미간만 찌푸리고 닦아 내지 않는 재하의 변화가 기꺼우면서도 감정의 온도 차이가 확실하게 느껴져 속이 쓰렸다.

“선배, 정말 나쁜 남자는 선배 같은 사람을 말하는 거예요.”

“왜 갑자기 욕을 하냐?”

황당해하는 재하에게 지호는 살짝 찌푸린 얼굴로 웃어 보였다.

“선배가 정말 질이 나쁜 게, 동성 간의 연애나 사랑은 생각도 못 하면서 배려심은 쩐다는 거예요.”

재하의 배려심은 에스퍼들을 가이딩 하면서 드러났다. 접촉을 불편해하면서도 할 수 있는 이상을 해 왔고, 긴급 상황에서는 일단 뛰어들고 봤다. 그렇게 계속해서 접촉하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같은 성별이기에 있었던 본능적인 거부감조차 잦아들 정도였다.

“와아…… 개호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 이상하지만, 피곤하니까 일단 잘란다. 너도 가서 자.”

재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정말로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재하의 태도에 지호는 방금까지 뜨거웠던 소파에서의 일을 곱씹었다.

해일이 거부당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지호는 재하에게 더욱 친밀하고 깊은 키스를 시도할 수 있었다. 실제로도 재하는 몸에 손을 대기 전까지 숨결조차 강탈할 듯 입 안 깊게 얽히는 키스를 전부 받아들여 주었다. 그래서 더 진도를 나가 보려 했던 건데, 역시나 재하는 재하였다. 그렇게까지 받아 주면서 결국 배려였다니.

“선배의 그런 점이 사람을 미치게 해. 기회 같거든요.”

지호의 혼잣말은 재하에게 닿지 않았다. 지호 역시 재하를 긴장시키거나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오늘은 여기서 물러서기로 했다.

기회는 언제든 만들 수 있으리라 여기며.

* * *

“오빠, 나, 어린이집 갈래.”

“도림아, 그러지 말고 바다 보러 갈래?”

“우웅, 물고기 많이 봤어.”

어제 다녀온 수족관이 바다를 보는 것보다 즐거웠는지 도림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놀이공원 갈까? 솜사탕도 먹고.”

“사람 너무 많았어. 친구들이랑 놀래.”

주말에 다녀온 유원지에서 도준을 알아본 직원이 배려해 주었음에도 도림은 잔뜩 지쳐 버렸다. 도준 역시 도림을 다시 만난 기쁨에 온전히 동생에게 애정과 관심을 쏟으면서도 며칠 만에 함께하는 삶이 당연해져 버렸다. 처음의 애틋함과 걱정, 기쁨은 이내 잔잔한 일상이 되었다. 도림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일도 절대 놓지 않으리란 다짐과 달리 품에서 떼어 놓는 게 힘들지 않았다.

“그럼 저녁에 오빠가 데리러 갈게. 다른 사람은 절대 쫓아가면 안 돼. 다른 데 가도 안 되고.”

“재하 오빠도?”

“……재하는 당연히 되지.”

서재하는 미래에도 지금도 도준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도준은 도림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주변을 꼼꼼히 살핀 후에야 엘리베이터에 오를 수 있었다.

“이제 무얼 할까…….”

도준이 도림을 위해 얻은 긴 휴가는 일주일도 되지 않아 무용지물이 돼 버렸다. 이대로 휴가를 더 즐길 수도 있지만, 달라진 현재를 알아보는 것도 좋을 듯싶었다. 기억 저 밑에 현재의 기억도 분명 존재하지만, 수면 위로 떠올리면 지금 가진 미래의 기억이 사라질 것 같아 굳이 끌어 올리지 않았다.

도림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며칠간, 도준은 이곳이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에스퍼들은 제법 다들 듬직하게 히어로 노릇을 하려 했고, 가이드들은 다들 눈이 초롱초롱한 새내기 같았다.

무거워진 몸 상태도 그렇고, 주변에서 호의나 두려움이 아닌 호기심과 흥미 위주인 시선을 보낼 때면 이곳이 자신이 머물던 곳과 다르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 좋았다. 도림이 살아 있는 것도, 재하가 여전히 친구라는 사실도 믿을 수 있었다.

이곳은 분명 달랐다. 나쁘지 않았다. 이미 한번 망가진 마음이 되돌아오진 않았지만, 여동생이 재잘대는 걸 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그리고 서재하.

‘내 것이었는데.’

핸드폰을 통해 접한 가이드 서재하의 소식은 우스울 정도였다. 감히 다른 에스퍼와 염문설을 뿌리고 다니질 않나, 흥미 위주의 기사가 실리지를 않나. 엉망진창이었다.

한편으로는 영상이나 기사 속에 보이는 어색한 웃음이나 다른 이와 즐겁게 지내는 재하의 생명력 넘치는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도림이 살아 있고, 자신이 재하를 내버려 뒀다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재하의 기록을 확인하던 도준의 손끝이 화면을 톡톡 건드렸다.

“고작 B급이라…….”

재하의 가이드 등급은 도준이 기억하기로는 마지막 테스트 때 S급이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의 재하를 다시 만나 직접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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