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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102화 (10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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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접촉의 감상은 ‘뜨겁다.’였다. 화염계 능력자답게 한껏 불을 사용한 해일의 체온은 무척이나 높았다.

“읏…….”

부드럽게 겹쳐 온 입술의 감촉과 달리 따끔거릴 정도의 강한 마나 파동이 전해졌다. 게이트 안을 모조리 불태워 버릴 만큼 이능을 사용한 터라 맞닿은 입술로 전해지는 해일의 마나 파동이 거칠었다.

갑작스러운 해일의 접촉에 재하의 머리는 바쁘게 돌아갔다.

처음에는 데이트 운운하며 가까이 오기에 설마 키스하려는 건 아니겠지? 하는 아주 짧은 의문이 스쳐 갔지만, 막상 닿은 입술을 통해 전해지는 거친 파동이 가이딩의 필요성을 알려 주었다.

손만 잡아서는 시간이 걸릴 테고, 레스토랑 영업시간 내에 돌아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효율을 위해 2차 가이딩을 해 오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흘러가던 재하의 사고의 흐름은 부드럽게 뺨을 감싸 오는 뜨거운 손에 의해 고개가 기울어지며 더욱 깊이 입 맞춰 오는 해일의 행동으로 인해 멈춰 버렸다.

가이딩이라기엔 지나치게 깊은 접촉이었다. 뺨을 감싸던 손이 귀를 스치며 목을 끌어당기자 자연스럽게 고개가 꺾이며 맞물린 입술이 벌어지고 더욱 긴밀하게 접촉했다.

입술을 입술로 물어 오는 사이, 따끔거리던 통증이 잦아들었다. 2차 가이딩이라 그런지 짧은 접촉임에도 아플 정도로 튀던 파동이 금세 가라앉았다. 이 정도면 이제 손으로 가이딩 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 재하는 고개를 뒤로 물리려 했다. 그러나 목을 끌어안은 해일의 손은 재하의 미약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해일은 이능을 남용하면서도 재하와의 접촉을 기회로 삼으려 했다. 한껏 들뜬 분위기를 타 재하에게 밀어붙이듯 키스하면서도 거절한다면 가이딩을 핑계 대려 했다.

평소의 해일이라면 결코 하지 못했을 행동이었으나 오늘 하루 한결 가까워진 재하와의 거리를 좀 더 좁히고 싶은 욕심에 조금은 억지를 부리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재하가 밀어낸다면 밀려날 각오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재하는 해일을 밀어내지 않았다. 이에 용기를 얻은 해일은 맞물린 입술을 벌리며 좀 더 깊은 접촉을 시도했다.

용기를 낸 해일과 달리 재하는 미끄러우면서도 뜨거운 살덩이가 입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빠르게 가이딩을 차단했다.

이 정도로 가이딩이 진행됐으니 돌아가는 동안 손을 잡고 있으면 어느 정도는 파동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재하가 가이딩을 차단했는데도 해일은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뺨과 목을 끌어안으며 더욱 깊은 입맞춤을 이어 갔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가이딩이 아니었다. 뜨겁고, 민망하고, 손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몰라 허공에서 허우적거렸다. 호흡이 가빠지며 폐가 힘겹게 부풀었고, 심장이 벌떡거리며 자기 좀 신경 쓰라는 듯 쿵덕거렸다. 입 안을 뜨겁게 데우는 상대가 해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으면서도 얼굴에 열이 오를 만큼 당황스러워 정신이 없었다.

재하에게서 아무 반응도 돌아오지 않자 해일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재하?”

“푸하― 하아…….”

해일이 조금 떨어지자마자 얕은 숨을 크게 터트린 재하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해일은 재하의 반응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거절하지 않았지만, 허락한 것도 아니었던 건가 싶어 해일은 혼란스러웠다.

해일이 가까운 곳에서 빤히 지켜보는데도 재하는 시선을 맞추지 못했다. 손등으로 입술을 누르며 숨을 고를 뿐이었다. 열이 오른 듯 새빨개진 얼굴만 보면 착각하게 될 것 같아 해일은 재하에게서 손을 떼고 시트를 붙잡았다.

여전히 눈을 맞추지 못하고 비스듬히 구석을 바라보는 재하의 반응은 키스에 부끄러워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재하가 보이는 혼란에 해일은 열렬히 바라보던 시선을 내렸다.

“미안합니다, 재하.”

허락받았다 여겨 주저 없이 행동했으나 일방적인 감정이었음을 알아채고 사과했다.

“제가 착각한 것 같습니다. 불쾌하게 했다면…….”

“네? 아닌데요?”

어쩔 줄 몰라 하며 시선을 피하던 재하가 빠르게 부정했다.

“불쾌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래서 더 곤란하거든요.”

사과하던 해일이 되레 놀랄 만큼 재하는 주저 없이 답했다.

“가이딩 하면서 남자끼리 포옹도 간신히 하게 됐는데 뽀뽀까지 하는 건 좀 힘들죠. 당연히 싫어야 하는데 방금 건 싫은 것까지는 아니고, 그냥 이상해요.”

“제가 너무 들떴던 것 같습니다. 충동적으로 행동한 건 사과하고 싶습니다.”

해일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지어지는 걸 본 재하는 입술을 감추듯 누르고 있던 손을 내렸다.

“해일 형, 진짜 눈치 없다.”

“미안합…….”

“제가 설명했죠? 포옹도 힘들었다고. 그런데 형이랑 뽀…… 아니, 솔직히 말해서 키스요. 했는데요, 안 싫다고요. 남자끼리 뽀뽀도 질색인데 안 싫다고 말하는 거잖아요.”

해일은 혼란스러운지 조용히 재하의 말을 곱씹었다. 해일의 어색한 미소가 조금씩 밝아지는 걸 보며 재하는 슬쩍 몸을 뒤로 물렸다.

“지금 우리는 데이트 중인 거고, 분위기가 좋았던 것도 맞고요. 약간의 오해는 있었던 거 같지만, 키스할 수도 있죠. 그래도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요. 뭐든 더 하면 과부하 올 것 같거든요.”

“재하가 긍정적으로 생각해 줘서 기쁩니다.”

“그럼 우리 근처 편의점이라도 가서 컵라면이라도 먹어요. 배고파 죽겠어요.”

“그럼 레스토랑으로 돌아갈까요?”

“아뇨, 아까 마지막 골목 꺾을 때 편의점 있었거든요. 거기 가요.”

재하의 태평한 제안에 해일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트에서 친구끼리의 외출로 마무리되는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해일의 잘못된 판단으로 이루어진 키스로 인해 분위기가 어색해질 뻔한 걸 재하가 솔직하게 감정을 털어놓으며 적당히 마무리 지어 준 상황이었다. 해일은 재하가 풀어낸 분위기를 이어 가고자 운전석으로 향했다.

마침 게이트가 무사히 닫혔는지 협회 직원과 중급 에스퍼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있던 재윤과 잠깐 눈이 마주쳤다.

“게이트 닫혔으면 재윤이도 데려갈까요?”

데이트는 정말로 이제 끝났구나 싶어 해일은 한결 편안해진 기분으로 재하의 손을 붙잡았다.

“해일 형?”

갑자기 손을 잡아끄는 해일의 행동에 재하는 설마 이번엔 손등 쪽인가 싶어 몸이 굳었다. 하지만 해일은 재하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붙잡고 마나를 불어 넣고 있었다.

“서재윤 씨, 라면 드시겠습니까?”

― ……그걸 왜 저한테 물어요?

“가까운 곳에 편의점이 있다는데 생각 있으시면 함께 이동할까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 ……그 차 2인승 아닌가요?

갑자기 편안해진 분위기에 해일이 마음만 앞섰구나 싶어 망설이는데 재윤의 타박이 이어졌다.

― 그리고 굳이 아이템을 이용해서 이야기할 만큼 급했나요?

“야, 어차피 쓰라고 준 아이템인데 수다를 떨든 심부름을 시키든 내 맘이지.”

사용한 건 해일이지만, 재하가 편을 들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재윤이 어깨를 으쓱하는 게 보였다.

― 다들 편의점 이야기에 눈빛이 변했다고.

그제야 재윤의 주변에 있던 에스퍼들이 사바세계의 음식을 열망하며 뜨거운 눈빛을 보내고 있음을 알아챘다. 아무래도 중급 에스퍼들은 현장 투입 가능성이 높다 보니 훈련 강도가 높았다. 센터에 묶여 훈련에 매진하느라 외출도 못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반지 아이템을 통해 공개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바람에 훈련 내내 구내식당 밥만 먹던 중급 에스퍼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재윤을 바라봤다.

― 먼저들 가세요. 여기 에스퍼들이 가면 편의점 습격할 거 같으니까.

― 우와! 서재윤 에스퍼님 만세!

― 컵라면에 스팸 넣어도 돼요?

― 빨리 정리할게요!

반지를 통해 들려오는 소란에 해일이 슬그머니 손을 떼자 이내 조용해졌다. 재하는 재윤에게 조금 미안했지만, 큰일은 아니었기에 가볍게 넘겼다.

“그럼 저희 먼저 가죠. 배고파 죽겠어요.”

“알겠습니다.”

해일이 차를 돌린 후 한 손으로 핸들을 잡자 재하가 자연스레 빈손에 손을 겹쳤다. 해일이 힐끗 재하를 보자 태연한 답이 들려왔다.

“가이딩 부족하잖아요. 돌아가면서 틈틈이 잡으면 꽤 회복될 거예요.”

잠시 닫아 두었던 가이딩을 풀어 내자 익숙해진 부드러운 감각이 스며들어 해일은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재하.”

“저도 고마워요. 드라이브도 하고, 재밌는 일도 많았고.”

해일과의 하루는 지나치게 길게 느껴졌다. 지루하냐고 하면 오히려 반대였다. 하루를 이렇게 알차게 쓸 수도 있구나 싶어 신기할 지경이었다.

숙소에서 가이딩 할 에스퍼를 기다리기만 하다 종일 다양한 경험을 하니 피곤하면서도 보람찼다.

손을 통해 이어지는 가이딩을 하며 재하는 조금 전 해일과의 키스를 떠올렸다. 당황스럽기는 해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는 게 신기했다. 어느새 이렇게나 타인과의 스킨십이 익숙해졌구나 싶으면서도 정말 누구라도 상관없어진 건지 고민스러웠다.

어쩌면 오늘따라 더 멋지게 보인 데다 친밀하게 구는 해일이라서 거부감이 없었던 건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 이상은 도저히 상상이 되질 않았다. 상상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당장은 생각만큼 나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는 걸로 타협하며 생각하기를 미뤄 두기로 했다.

편의점에 도착해 컵라면이며 삼각김밥을 두 개씩 집는 재하를 보며 해일이 미안해했다.

“배가 많이 고팠군요.”

“네, 정말 배고팠어요.”

페어에 대한 고민을 미뤘더니 마음도 편해져 두 개씩 집어 온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고민도 없이 먹어 치웠다. 달걀에 핫바까지 연달아 해치우던 재하는 자신의 식욕이 늘었음을 확신했다.

가이딩 후 잠도 쏟아졌지만, 식욕도 왕성해졌다. 그에 비해 살이 찌진 않았으니 다행이지만, 근육을 늘리려면 운동을 해야 하는데 잠을 이기기 힘들었다.

잔뜩 배가 부른 재하는 그제야 해일의 앞에 쌓인 빈 봉투를 보고 의아해했다.

“해일 형, 포x몬 스티커 모으세요?”

“아닙니다. 필요하면 드리겠습니다.”

“저도 딱히 모으는 건 아닌데 왜 밥은 안 먹고 빵만 드시나 해서요.”

“아, 습관이 돼서 빵을 골랐나 봅니다.”

해일의 대답에 재하는 뒤늦게 이유를 알아챘다. 쉼 없이 불려 다니는 해일이 끼니로 때우기 편리한 건 식거나 불지 않는 빵이나 과자 같은 거였다.

뭉클해진 재하는 해일의 손을 붙잡으며 가이딩 하는 겸 다짐했다.

“앞으로 점심때 맞춰서 가이딩 핑계 대고 오세요. 점심이라도 든든하게 챙겨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재하.”

한없이 멋지게만 보였던 에스퍼가 짠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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