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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95화 (95/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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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같아선 가장 지키고 싶은 건 ‘동생 네놈이다!’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방금 알게 된 마지막 단계 이야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됐다.

분위기가 어색해지기 전, 재윤이 먼저 움직였다.

“권해일 에스퍼 너무 기다리게 하지 말고 가 봐.”

“안 그래도 옷만 갈아입고 갈 거였어.”

“아, 맞다. 잠시만 기다려, 형.”

대충 손에 잡히는 대로 입으려던 재하는 갑자기 재윤이 방으로 들어가자 의아해했다.

“뭔데?”

“이걸로 갈아입어.”

대뜸 옷을 꺼내 오는 재윤의 행동에 재하는 깊은 한숨과 함께 받아 들었다.

“이제 옷까지 내 맘대로 못 입냐?”

“에스퍼랑 가이드가 단둘이 외출하는데 불안하잖아. 마음 같아선 가드랑 다른 에스퍼도 붙이고 싶지만…… 데이트인데 그럴 수는 없지.”

“불안한 거랑 옷 골라 주는 게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네.”

데이트 때문에 이 바쁜 와중에 휴가를 받아 내는 해일이나 그런 해일을 응원하는 동생이나 다 어이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동생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머리는 복잡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다만, 페어가 정해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어도 확 와닿지는 않았다. 깊이 생각했다간 당장 도망치고 싶어질 것 같아 애써 정보를 구석으로 밀어 두었다.

그러나 막상 재윤이 내민 옷을 펼쳐 본 재하는 어이가 없어져 헛웃음이 났다.

“야, 데이트 가는데 방어 슈트를 왜 주냐?”

“기능성이니까 입고 가라는 거지.”

“근데 이번 건 위아래 한 벌짜리다?”

무드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의상 선택이 외박은 안 된다는 무언의 압박처럼 느껴졌다. 대체 동생의 생각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싶으면서도, 일단 몸에 대 보니 점프 슈트처럼 보이는 방어 슈트가 자신을 정비공처럼 보이게 했다.

“정말 이걸 입고 가라고? 데이트라며?”

“귀여워, 형.”

“아, 씹…….”

순간 험한 말이 나올 뻔했지만, 재하는 간신히 삼키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러고 레스토랑에 들어가라고? 나보고 쪽팔려 죽으라는 거냐?”

“드레스 코드 있는 데는 아닐 거야.”

“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괜찮아, 형. 에스퍼랑 가이드가 함께 있는데 옷차림으로 뭐라 할 사람은 없어.”

하긴, 배우 뺨을 쌍 싸대기 날릴 것처럼 빛나던 권해일과 정비공 옷차림을 한 자신이 식사하면 한쪽으로 시선이 쏠릴 것이다. 이해한 재하가 입고 있던 바지를 훌렁 벗어 내자 재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굳어 버린 재윤의 반응에 방어 슈트에 발을 넣던 재하가 미간을 찌푸렸다.

“왜? 뒤집어 입기라도 했냐?”

“전부터 생각했는데, 형은 너무 무방비해.”

“또 뭐가? 넌 요즘 사사건건 너무 트집 잡는 거 아냐?”

“형, 진짜…… 내가 그렇게 설명했는데도.”

재윤은 양손에 얼굴을 묻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가이드가 결국 어떤 상황까지 내몰리게 될지 알려 주었다.

그나마도 자신이 알고 있는 일 중 최소한만을 알려 준 거였다. 진실을 털어놓자면, 페어를 맺지 않은 가이드는 비상시에 차출당하게 된다.

과거, 협회를 믿고 제멋대로 구는 에스퍼가 엉망진창이 된 몸으로 돌아오면 힘없는 가이드는 매번 희생당해야 했다. 폭주 전의 에스퍼를 상대하게 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견지호나 자신의 경우 형과 매칭률이 높아 2차 가이딩이나 오랜 접촉으로 해결된 거지만, 다른 에스퍼와는 그 이상의 가이딩을 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었다.

회귀했어도 이것만큼은 막을 방법이 없었다. 페어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불문율만이라도 지켜질 수 있도록 못 박아 두는 게 최선이었다.

‘가이드가 늘어난 덕에 페어도 늘어날 거고. 그럼 좀 나아지겠지만…….’

협회장의 탐욕과 예측하기 힘들어진 빌런 조직의 움직임, 거기에 예전보다 빨라진 게이트의 등장으로 아무리 에스퍼와 가이드가 모이고 있다고 해도 돌발 상황에 취약했다.

이런 미래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음을 형이 알게 된다면, 형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임을 알고 고민하다 희생하는 길을 택할 수 있었다. 형의 희생정신이 투철해서라기보다,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다.

‘형은 사람이 너무 착해.’

재윤은 이 일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함을 알았다. 자칫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음을 언급했다가 형이 다른 가이드나 에스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는 최악의 상황과 맞닥뜨릴 수 있었다.

차라리 남자끼리 데이트하는 일에 경악하고 좌절했다가 일단 약속이니까 나가 보자며 어리숙하게 행동하는 지금이 훨씬 나았다.

달라진 세상에서도 여전히 태연한 형을 보면 다행이었지만, 조금은 자각해 줬으면 싶었다.

“형,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이렇게 막 다 벗고 그러지 마.”

“다 벗기는. 티셔츠 입고 있었잖아. 설마 동생 앞에서 엉덩이 까고 있을까 봐 그래?”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입었다, 입었어. 하여간 이상한 데서 까탈스럽다니까.”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며 웃는 형의 반응에 재윤은 형의 청순한 뇌에 제대로 경각심을 심어 줘야 함을 느꼈다.

“견지호 앞이었어도 이랬을 거야?”

“갑자기 개호는 왜?”

“시도 때도 없이 형한테 달라붙잖아. 견지호 앞에서도 이렇게 막 벗고 그럴 거냐고.”

“그야 당연히…….”

“잘 생각해 봐, 형.”

평소 상상력이 부족한 편이던 재하는 재윤의 경고에 답을 하려다 말고 눈을 굴렸다.

떠올려 보자. 소파에 앉아 있는 게 재윤이 아닌 지호였다면 어땠을까.

이미 소파가 아닌 자신에게 달라붙어 치근덕거리고 있을 것이다. 일단 발로 밀어내겠지만, 끈질기게 달라붙어서는 맨다리가 예쁘네 뭐네 말도 안 되는 칭찬으로 닭살 돋게 했을 게 뻔했다.

“……징그러워.”

“……형, 뭘 상상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정도라고 생각하고 주의해 줘.”

“오케이. 그런데 넌 어차피 상관없잖아. 너랑 있을 때라도 좀 편하게 있게 해 주라.”

재하의 한숨에 재윤은 더 경고할 수가 없었다.

자신도 경계해 달라고 말하기엔 방어 슈트를 허리에 걸친 채 상의를 훌훌 벗어 버리는 형의 믿음을 막을 수 없었다. 원래도 좋은 피부였지만, 가이드가 되고 나서는 더 좋아졌는지 형광등 아래에서조차 매끈하니 저절로 눈이 가기에 재윤은 고개를 숙였다.

부스럭대며 옷을 갈아입고 시간을 확인한 재하가 화들짝 놀라 밖으로 뛰어나갔다.

“으악, 늦었다! 갔다 올게!”

“어, 어. 잘하고 와.”

“저녁은 냉장고에 있으니까 꺼내 먹고.”

“난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놀다 와.”

“자식, 기특하긴. 레스토랑 음식 맛있으면 좀 싸 올게. 형님만 믿고 기다려라.”

재하의 머릿속엔 데이트의 ‘데’ 자도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재하가 허둥지둥 빠져나가자 소파에 앉아 손을 흔들던 재윤의 웃음이 지워졌다.

해일이 형에게 데이트 신청을 할 거란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몇 번이고 붙잡고 싶어지는 마음을 다잡고 웃으며 응원하느라 기력이 다할 지경이었다. 지금도 조금만 방심하면 반지에 마나를 불어 넣게 될 것 같아 차라리 빼 둘까 싶다가도 불안해서 그러지도 못했다.

‘하나만 하자, 진짜.’

형을 지킨다. 형에게 필요한 사람을 곁에 둔다.

“차라리 바쁜 게 낫겠어.”

재윤은 두 사람이나 빠진 공백을 채우기 위해 움직였다.

아무렇지 않게 굴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재하는 주차장까지만 가드 하겠다며 쫓아온 이천오에게 웃는 얼굴로 손을 내밀려다 멈칫했다. 이전에는 쉽게 가이딩을 해 주려고 했었지만, 가이딩 시현 때 알게 된 부작용 정보로 인해 선뜻 손을 내밀기가 어려워졌다. 이천오는 어정쩡하게 내민 재하의 손을 보고 가볍게 고개를 숙여 왔다.

“괜찮습니다. 저와 맞는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받겠습니다. 무리하지 마십시오, 서재하 가이드님.”

“무리는 아니지만…… 그…….”

재하는 이걸 물어도 되는지 망설였다. 매일 가이딩 하는 세 사람에게도 묻지 못한 걸 가드인 이천오에게 물어도 되는가. 혹시 이거, 갑질 아닌가 싶어 망설이다 주차장에 도착해 버렸다. 이천오는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권해일을 발견하고 내리지 않은 채 인사했다.

“돌아오실 때 연락해 주시면 마중 오겠습니다.”

“저녁 먹고 올 거니까 이천오 씨 볼일 보셔도 돼요.”

“훈련실에 있을 테니 불편해하지 말고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이천오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혼자 남은 재하는 주차장을 돌아볼 것도 없이 혼자 빛나고 있는 해일을 쉽게 찾아냈다.

먼지 한 톨 보이지 않는 검은색 스포츠카 앞에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수려한 남자가 그림처럼 서 있었다. 여기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권해일의 이름을 연호하며 달려들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집 앞에서 봤을 때보다 더 눈길을 끌었다. 긴장한 것처럼 해일이 숨을 들이켜서 흉부가 가볍게 들썩이자 이쪽이야말로 황송해서 산소 호흡기라도 물어야 하나 싶어질 지경이었다.

자연스레 자신이 입고 온, 점프 슈트처럼 보이는 방어 슈트에 눈길이 갔다. 당장이라도 다시 뛰어 올라가 옷을 갈아입어야 할지, 진심으로 나 같은 걸 공략하려는 거냐고 물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안 그래도 오래 기다린 해일을 더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여기서 옷 때문에 지체하는 건 진짜 데이트라도 하는 것 같아 당당하게 굴자 싶었다. 부러 과장되게 손을 번쩍 들며 해일에게 뛰어갔다.

“해일 형, 늦어서 죄송, 으악!”

“재하!”

어색함을 풀고자 과장된 행동을 한 탓에 방지 턱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당연히 차갑고 딱딱한 지하 주차장 바닥과의 아이 콘택트를 예상했으나, 보인 건 천장의 조명이었다.

“어?”

“하아, 괜찮습니까?”

“엇…… 해일 형, 순간 이동도 할 줄 알아요?”

분명 몇 미터는 떨어져 있었는데 바닥으로 넘어지는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해일이 코앞에 있었다. 뺨이 닿은 곳 역시 바닥이 아닌 해일의 탄탄한 흉부였다.

“아닙니다. 재하가 다칠까 봐 순간적으로 속도가 난 것 같습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놀라셨죠? 제가 좀 덤벙거려요. 고쳐야 하는데…….”

“재하는 그대로가 좋습니다. 다치지 않도록 지켜 드리겠습니다.”

“하하…….”

한없이 진지한 해일의 답에 재하는 더더욱 어색해졌다. 어설프게 만들어 낸 웃음에 입꼬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오늘 외출이 상당히 힘들어질 거라는 걸 새삼 깨달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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