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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92화 (9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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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한 표정의 도준이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재하도 마주 웃었지만, 자다 깨서 그런 건지 평소 도준의 순한 이미지와 달리 어딘지 모르게 냉소적으로 보였다.

예전에는 잘 때 깨워도 실실 웃던 도준이었으나 에스퍼가 된 후로 수면 부족이라 숙면을 방해당하면 짜증이 날 수도 있었다.

“일어나지 말고 더 자.”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도준은 게이트 안에 재하가 있는 게 의아했다. 종종 가이드를 데려오겠다며 농담을 던지기는 했어도 실제로 게이트 안까지 끌고 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도준이 미래의 기억에 매몰되어 생각에 잠기자 재하가 걱정스럽게 물어 왔다.

“갑자기 바닥이 훅 꺼진 건 기억나?”

“바닥……?”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고개를 터는 도준의 행동에 서둘러 달려온 재하가 그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야, 막 움직이지 마. 혹시 떨어지다 머리라도 부딪친 거면 어쩌려고.”

도준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기며 이리저리 확인하는 재하의 눈이 신중했다. 드러난 상처 없이 혹이라도 났나 싶어 머리를 조심스럽게 만져 가는 재하의 행동은 다정했다.

명령하지 않으면 먼저 다가오는 일도 없던 재하가 스스로 다가와 거리낌 없이 저를 만지고 또 안심하는 게 신기하면서도 만족스러웠다.

“혹은 없는 거 같은데…….”

안심하며 손을 떼는 재하의 손목을 붙잡는 손이 거칠었다. 반사적으로 손을 빼낼 거라 짐작하고 강하게 쥔 손목은 피할 생각도 없는지 도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그대로였다.

“도준아?”

“더.”

“어?”

“더 찾아 봐.”

“자식이, 형님을 못 믿고 말이야.”

장난스럽게 투덜대면서도 재하는 다시 도준의 머리를 꼼꼼히 확인했다. 혹시 몰라 드러난 목이나 손까지 하나하나 확인하는 재하의 신중한 얼굴을 빤히 보면서 도준은 지금 자신이 환각 상태인지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환각이라면 이렇게나 확실한 감각이 주어질 리 없었다.

만지는 손길은 투박했지만, 그래서 더 친구였던 시절의 재하를 떠올리게 했다. 혹여나 상처를 놓칠세라 몇 번이고 조심스럽게 살피는 손길은 우정이라 해도 애정이 느껴졌다.

“혹시 막 울렁거리거나 어지러워?”

도준을 살피는 재하의 진지한 얼굴에 걱정이 묻어났다. 그 얼굴에 키스를 퍼붓고 싶다고 생각하며 도준은 목까지 더듬는 재하의 손길에 눈을 감았다.

“안 되겠다. 너, 일단 좀 누워 봐.”

도준이 가만있자 머리와 등을 끌어안다시피 해서 눕히는 재하의 행동이 어설펐다. 재하의 손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미약한 가이딩이 이어져 갈증이 일었다.

미궁에서 기억이 덧씌워진 도준은 이쪽의 기억보다 미래의 기억이 선명했다. 가이딩이 부족한 적이 없다 보니 몸에 느껴지는 무거움이 불쾌했다.

도준이 습관처럼 허리를 끌어안자 휘청이며 몸 위로 쓰러진 재하의 얼굴이 그의 뺨을 스쳤다. 당연히 입을 맞추려고 잡아당긴 터라 화들짝 놀라 밀어내는 재하가 생소했다.

“아, 깜짝이야. 너, 지금 나랑 일 칠 뻔한 거 아냐?”

“일?”

“오늘 일진 진짜 왜 이러냐.”

재하가 툴툴거리며 허리를 감은 도준의 팔을 툭툭 두드렸다. 당연히 풀어 줄 거라 믿는 재하의 가벼운 행동에 도준은 팔을 풀지 않고 빤히 쳐다보았다. 여느 때와 달리 재하는 두려워하거나 불편해하는 대신 고개를 기울이며 이리저리 살펴 왔다. 그러더니 냉큼 자신의 손에 제 손을 겹치곤 몸에 힘을 뺐다. 방금까지 피하려던 재하가 편안하게 자신의 옆에 드러누워 버리는 상황이 황당할 지경이었다.

“가이딩이 필요하면 말을 하지. 하여간 다들 일중독이야.”

거의 도준의 몸에 반쯤 걸쳐진 재하는 다른 때라면 민망해했을 자세에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울퉁불퉁한 맨바닥보다야 친구 놈 몸을 쿠션 삼는 게 이득이었다. 민망하거나 쪽팔린 건 이미 한 달 내내 가이딩을 하며 매우 익숙해졌다.

도준의 손바닥을 통해 느끼지는 마나 파동이 거칠었다. 다른 손은 허리를 끌어안은 도준의 손등에 겹쳤다.

“꼭 이 자세로 해야겠냐? 양손 잡기 쪽팔려서? 난 이게 더 부끄러운 거 같은데.”

오늘따라 말수가 적은 도준을 대신해 재하는 혼자 묻고 답하면서도 가이딩을 위해 최대한 손을 꼼꼼하게 겹쳤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다정한 가이딩에 도준의 눈이 느릿하게 깜박였다.

자신이 알던 가이딩이 아니었다. 재하를 안을 때면 언제든 저항 없이 빨아들여지는 가이딩에 만족스러웠다. 착취든 강탈이든 상관하지 않았다. 가이딩이 필요 없을 때조차 매번 쥐어짜 내듯 끝까지 가이딩을 해 오던 재하였다.

이렇게 안정적인 가이딩이 된다? 나쁘지 않다. 나쁘지 않지만…….

“어?”

도준이 가볍게 움직인 것뿐인데 재하는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울퉁불퉁하게 등이 배기는 감각에 재하가 눈을 찡그리며 사과했다.

“윽, 생각보다 엄청나게 배기네. 미안, 방석으로 써서 더 아팠지?”

“천진한 것도 귀엽지만…….”

“어?”

표정 없는 도준의 내려다보는 눈이 이상하리만치 차갑게 느껴져 재하는 조금 긴장해 버렸다. 눕혀지며 들린 방어 슈트 아래로 드러난 복부에 도준의 손이 올라왔다.

“확인해야겠어.”

“뭐, 뭘?”

“네가 살아 있는지.”

여전히 내 것이 맞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차분하다 못해 차가운 도준의 목소리에 재하는 오히려 한숨을 푹 내쉬었다. 거기에 웃기까지 하자 도준은 방어 슈트 안으로 밀어 넣던 손을 멈췄다.

“어휴, 악몽을 꿔도 꼭 그런 걸 꾸고 그러냐. 이왕이면 돼지꿈이나 꾸지.”

재하가 양손을 벌리며 손끝을 까닥였다. 누가 봐도 이리 오라는 제스처에 도준이 가만있자 재하가 몸을 일으켜서는 도준을 양팔로 꽉 끌어안았다.

이건 또 뭐 하는 수작인가 싶어 가만있는 도준의 등을 재하가 팡팡 두드렸다. 처음엔 장난처럼 조금 세게 두드리던 손이 토닥이다 이내 다정하게 쓸어 주었다.

“아주 멀쩡해. 따끈따끈하지? 체온도 다 느껴지잖냐.”

민망하긴 했지만, 정신을 못 차리는 친구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이 정도였다.

“근데 너 또 근육이 늘었다? 에스퍼 되면 근육도 자동으로 생기고 그래? 물 근육 동지가 사라지다니, 슬프네.”

장난스럽게 흑흑거리면서도 도준이 안심할 때까지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계속해서 등을 두드려 주었다.

도준은 누군가 자신의 등을 이런 식으로 위로하듯 토닥여 주는 게 얼마 만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자신의 손으로 쥐었다 파괴했던 관계가 거짓말처럼 되돌아와 있다는 게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드러난 허리를 손바닥으로 쓸어 만지며 끌어안을 때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두려워하며 덜덜 떨던 재하가 간지럽다며 끌어안은 팔에 힘을 꽉 주었다.

‘달라.’

다르다, 이건. 자신이 알던 재하와 달랐다. 아니, 자신이 알던 예전의 서재하였다.

“아오, 등에서 손 좀 빼. 손 시리냐? 차라리 핫 팩을 줄게. 내가 준비성 철저한 거 알지?”

친숙한 재하의 태도가 기꺼우면서도 촉촉하게 땀이 오른 피부를 더 느끼고 싶었다.

“간지럽다고, 진짜.”

옆구리를 쓰다듬자 신음이 아닌 웃음을 터트렸다. 재하의 웃음에 도준 역시 웃을 수 있었다.

몸을 비틀면서도 끌어안은 손은 놓지 않는 재하가 신기했다. 그만큼 자신의 악몽따위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도준은 재하의 몸을 더듬던 행위를 멈추고 끌어안는 데 집중했다. 어쩌면 이대로 죽 지내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재하를 깊이 끌어안는데 가까운 장소에 마나가 응집되더니 세 사람의 에스퍼가 나타났다.

방식을 보니 순간 이동 현상이었고, 게이트에 함께 들어올 만한 인물이면 뻔했다.

죽일 듯이 노려보는 서재윤은 익숙했으나 서늘한 시선을 보내는 권해일은 조금 의외였다. 그는 항상 불손한 눈빛을 할지언정 대놓고 적의를 드러낸 적은 없었던 협회의 개였다. 거기에 견지호는 이동 수단 외의 접점이 없었던 인물이었건만 이쪽을 보곤 후다닥 달려와 재하의 등 뒤에 달라붙었다. 그 탓에 견지호를 코앞에서 보게 된 도준은 저절로 미간을 찌푸렸다.

“선배, 또, 또! 바람은 피워도 되는데 공평하게 해 달라고 누누이 말했잖아요.”

“누가 바람을 피워? 뭐 눈엔 뭐만 보인다더니. 떨어져라.”

“데이트 약속해 줘요. 안 해 주면 던전 셔틀 안 할 거예요.”

“와, 이제 일하는 걸로 협박하는 거 봐.”

지호와 티격태격하던 재하가 도준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재윤을 돌아봤다.

“아무래도 도준이 병원 가 봐야 할 거 같아. 얘가 멍한 데다 반응이 늦어. 악몽도 꾸는 거 같고.”

“그러자. 형 발목도 보여야 하고.”

재윤의 말을 들은 도준은 고개를 숙여 재하의 발목을 확인했다. 이제야 너덜너덜해진 바짓단과 피투성이인 발목이 눈에 들어왔다.

도준의 멍한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며 그가 재하의 발목을 붙잡아 올렸다.

“우악!”

갑자기 발목을 잡혀 들린 재하의 몸이 젖혀지는 걸 지호가 붙잡아 줬다. 도준은 신경도 쓰지 않고 상처를 확인했다. 자잘한 톱날 같은 것에 마구잡이로 긁힌 듯한 상처에 피딱지가 잔뜩 앉아 있었다. 큰 상처는 아니었다. 에스퍼 병동에 가면 순식간에 나을, E급 힐러만 있어도 충분한, 아무것도 아닌 상처였지만, 자신과 함께 있었는데도 상처를 입었다는 게 용납되지 않았다.

표정이 사라진 것뿐인데도 서늘한 분위기를 풍기는 도준이 냉기를 풀풀 날리며 질문을 던졌다.

“누가 내 가이드를 흠집 냈지?”

도준의 달라진 말투에 재윤은 간신히 가라앉혔던, 과거가 돼 버린 미래의 기억이 떠올랐다. 저도 모르게 손에 이능을 끌어 올릴 뻔한 순간, 재하가 팔꿈치를 들어 휘둘러 보였다.

“파란 사마귀인데 내가 저세상으로 보내 줬지.”

재하의 팔꿈치에 묻은 마수 체액을 본 도준의 서늘한 표정이 한순간에 스위치가 켜진 듯 바뀌었다.

“하하, 정말이구나.”

“당연하지. 내 발목을 이렇게 해 놨으니 제대로 복수해야지.”

환하게 터져 버린 도준의 웃음에 재하 역시 마주 웃었다.

재윤은 한순간 끓어오르던 분노를 삼키며 재하를 일으켰다.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는 도준은 언제 웃었냐는 듯 웃음기가 사라졌다. 가면이라도 쓰듯 툭 끊기는 감정이 기이했으나 모두 재하를 보느라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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