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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91화 (9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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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하든? 야, 그건 아니지.”

위치 추적까지는 만일을 대비하는 거니 이해할 수 있지만, 자신이 하는 행동까지 전해진다는 건 과했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반지를 빼려던 재하는 이어진 재윤의 말에 멈칫했다.

“형이 원할 때 내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어.”

“……네 위치를?”

“상호 작용이라고 했잖아. 평소엔 그냥 액세서리처럼 끼고 다니고, 서로의 위치나 상황을 알고 싶으면 마나를 불어 넣으면 돼.”

“그럼…… 어차피 난 못 쓰는 거네. 이게, 어디서 약을 팔고 있어?”

이능을 쓸 수 없는 재하 쪽에서는 사용할 수 없기에 재윤의 상황을 알 수 없었다. 굳이 알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일방적으로 재윤만 확인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못마땅해하며 반지를 빼려는 듯 손가락을 잡는 재하의 행동에 재윤이 다급히 손을 잡아 왔다.

“정말 위급할 때 아니면 안 쓸게.”

재윤의 제안에 재하가 고개를 꺾으며 거만하게 되물었다.

“예를 들면?”

“형이 전화를 안 받거나…….”

“야, 안 받을 수도 있지. 부재중 뜰 때마다 뭐 하는지 확인하겠다는 거냐?”

“위험할 수도 있잖아.”

“요리 중이면? 샤워할 때도 폰 가지고 들어가라고?”

“영상이 공유되는 건 아니고 소리만…….”

재하의 째려봄이 심해지자 재윤의 목소리도 점점 작아졌다.

“그럼…… 통신기랑 전화가 다 안 될 때만 확인할게.”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지금 같은 경우, 지호가 없었다면 재하를 찾을 방법이 없을 수도 있었다. 이런 귀한 아이템을 나누어 가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게임에 익숙한 재하가 모를 리 없었다.

잠깐 사생활 침해 쪽으로 기울었던 사고가 이성을 찾았다. 귀한 아이템을 얻자마자 냉큼 자신에게 넘긴 재윤의 배려를 깨닫고 고마운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뻗대며 펴고 있던 손가락을 슬그머니 구부리자 재윤에게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고마워, 형.”

“뭐, 나야말로 고맙…….”

“너무하세요, 선배. 첫 키스도 동생분이랑 하더니 커플 반지까지 하는 건 선 넘었죠.”

갑자기 끼어든 지호의 발언에 재하는 선 넘는 건 키스 쪽이 아닌가 싶었다.

“넌 인공호흡도 첫 키스로 치냐? 그리고 커플 반지라니. 아이템 한 쌍을 나눠 가진 거지.”

“사람들은 그걸 커플 반지라고 부르거든요, 선배. 저랑은 약속도 안 지키시고.”

“약속?”

“2차 가이딩 해 주신대 놓고 계속 모른 척하시잖아요.”

“필요해지면 해 줄게.”

2차 가이딩을 해 달라며 매달리는 지호는 장난스럽게만 보여서 밀어내는 재하 역시 부담이 없었다. 재윤이 보기에도 서운함을 장난으로 드러내는 행동이었기에 제재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견지호, 형을 데리고 게이트 입구로 가 줘. 아이템 사용해 보게.”

“알았어.”

지호는 바닥에 던져둔 도준까지 챙겨 재하와 함께 공간 이동을 했다.

재윤은 손에 낀 반지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 계획한 것보다 더 좋은 아이템을 얻었다. 미궁을 만난 건 불행이 아닌 행운이었다.

“권해일 에스퍼는 어떤 아이템이 나왔나요?”

해일에게 질문하며 반지에 마나를 불어 넣자 즉각 소음이 쏟아져 나왔다.

― 아오, 개호 새끼! 너, 진짜!

― 사고였어요, 선배.

― 사고라면서 왜 처웃고 있는데?

― 그거야 선배랑 첫 키…….

― 닥쳐! 그냥 뽀뽀! 아니, 사고!

대체 몇 초도 되지 않는 사이 무슨 일이 터진 건지 들려오는 두 사람의 대화에 재윤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함께 듣고 있던 해일은 손등을 내보이며 재윤의 질문에 답했다.

“감정에 따른 이능 증폭 아이템입니다.”

“감정……이요?”

해일의 손목에서 손등까지 문양으로 이루어진 장신구 아이템이 붉은빛을 냈다. 의아해하는 재윤의 시선에 해일은 평소처럼 덤덤하게 손을 뒤집어 이능을 사용했다. 순식간에 피어오른 불길이 평소보다 훨씬 강하고 뜨거워 재윤은 무의식중에 뒷걸음질 쳐야 했다.

“가벼운 불꽃을 피우고 싶었는데 감정의 영향을 받으니 화력이 증가하는 것 같습니다.”

무심해 보일 만큼 편안한 어조였지만, 해일의 기분은 최악이거나 매우 화가 났다는 의미로 보였다.

“아이템이 감정에 따라 색이나 빛이 변하는 거 같으니 상세한 내용은 일단 우리만 알고 있죠.”

“그러겠습니다.”

견지호가 재하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짐작이 될 수밖에 없는 대화 탓에 해일은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했다. 해일은 재윤의 앞이라 솔직히 드러냈지만, 내심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것이 조금 민망했다. 그러나 해일의 걱정과 달리 재윤은 웃고 있었다.

“서재윤 씨, 기분 좋아 보입니다?”

“네, 권해일 에스퍼가 오늘따라 친근하게 느껴져서요.”

“그……렇군요.”

“형의 일에 진심이 되어 주세요. 제가 권해일 에스퍼를 형이라고 부를 수 있게.”

재윤이 하는 말의 의미를 해일은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그간 재하를 위해 여러 에스퍼를 주변에 두었던 재윤의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제가 부끄럽다고 여기는 감정이 재하의 곁에 있는 데 도움이 되나 봅니다.”

“평소에는 협회를 대표하는 에스퍼 권해일로 있어 주세요. 형과 있을 때만 지금처럼 감정에 솔직해지셨으면 하는 거니까.”

다소 어색한 감정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재윤은 형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말할 수 있었다.

여전히 반지에서 들려오는 형의 짜증과 이제 빌기 시작한 지호의 애원에 재윤은 마나를 더 불어 넣었다.

“돌아와, 견지호.”

― 왓, 뭐야. 반지가 무전기였어?

“당장.”

― 알았다고~

재윤은 반지가 끌어당기듯 한쪽으로 향하려는 걸 느끼며 이런 식으로 위치를 특정함을 알게 됐다. 정확도는 얼마나 될지 알아보기 위해 돌아온 지호와 함께 형에게 향했다.

게이트 입구로 돌아오니 얼굴이 벌게진 형이 생수로 입을 헹구고 있었다. 그사이 도준을 챙겼는지, 바닥에 깔린 옷 위에 눕혀져 있었다.

갑자기 거리가 좁혀지자 반지가 빛을 내며 더욱더 강하게 형 쪽으로 이끌려 갔다.

“형.”

“어어, 왔냐?”

“견지호 때려 줄까?”

어린애 같은 말에 재하도 지호도 깜짝 놀랐다. 함께 이동한 해일만이 여전히 붉은빛을 내는 장신구를 쓰다듬었다.

잠시 망설이던 재하가 반짝이는 재윤의 반지를 보고 그걸로 들었다는 걸 알아챘다. 쪽팔렸지만 재하는 어깨를 쭉 펴며 손가락을 뚝뚝 꺾었다.

“아니, 내가 패 줄 거야.”

“선배, 이미 때리셨잖아요.”

지호가 억울해하며 뒤통수를 문질러 보였지만, 아프지 않았다는 걸 모두가 알았다.

“내 손만 아팠지. 나무 막대기가 어딨더라.”

“으아, 잘못했어요. 그런데 정말 실수였다고요. 공간 이동 하자마자 발밑에 돌이 있을 줄 알았냐고요.”

“에스퍼의 신체 능력이면 돌 위에서도 균형을 잡았어야 하는 거 아냐?”

“주도준까지 업고 선배 넘어지지 않게 끌어안은 상태에서 무슨 재주로요!”

이번엔 정말 억울했는지 지호가 목소리를 높이자 재하 역시 장난치는 걸 그만두었다.

“그건 그래. 그럼 이걸로 2차 가이딩 퉁칠게.”

“진짜…… 너무해…….”

지호가 세상 다 잃은 얼굴로 추욱 늘어지자 상황이 종료되었다.

재하는 여전히 민망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재윤을 보며 손을 까닥거렸다.

“후딱 다녀와. 가이딩 필요하면 바로바로 날아오고.”

“형, 위험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게이트를 나가.”

지척에 있는 게이트 입구를 보며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안 그래도 그러려고 여기 자리 잡은 거잖냐.”

“마나 파동 측정기 두고 갈 테니까 혹시 여기서 소리가 나거나 하면 바로 나가.”

“느린 신호는 F급 마수 같은 잡몹, 신호가 빨라질수록 고등급이거나 그에 가깝다는 거. 그 정도는 나도 알아. 빠른 신호가 들리면 튈게.”

바로 재하가 답을 내놓자 재윤 역시 안심할 수 있었다. 무조건 보호하는 대상으로 보아 왔지만, 형은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니었다. 할 수 있는 만큼 하려고 했다. 실제로 게이트 입구 주변은 황량할 만큼 너른 평지였고, 보이는 위험은 없었다. 상시 드나들 수 있는 게이트이기에 위험도는 현저히 낮았다.

망설이는 재윤을 지호와 해일이 붙잡았다.

“빠르게 처리하고 돌아오면 되지.”

“필요하다면 던전 안을 전부 태워 버리겠습니다.”

던전 하나에 하루 이상 시간을 잡은 건 재하와 동행하기 위해 넉넉하게 잡은 일정이었다. 재하를 게이트 앞에 두고 갈 거라면 더 빠르게 해결할 수 있었다. 단지 재윤은 이게 올바른 판단인지 걱정스러웠다.

“어서 가. 그래야 빨리 돌아올 거 아냐.”

“응, 금방 다녀올게.”

재하의 가벼운 타박에 재윤은 그제야 발을 뗐다.

세 사람이 바람만 남기고 사라지자 재윤은 곧바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오, 발목 아파 죽는 줄 알았네.”

지혈도 됐고, 감각이 없던 발목의 상처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감각이 돌아오더니 이젠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아 다행이지만, 아무렇지 않게 서 있으려니 힘들었다.

카트에 갖춰진 구급상자를 꺼내자 웬만한 의약품은 다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지혈은 됐으니 소독약 뿌…… 끄아으아우!”

소독약이 주는 통증에 비명을 지르던 재하는 잠든 도준을 보고 소리를 삼켜 냈다. 필사적으로 부글거리는 상처에 손부채질을 하던 재하는 얌전히 잠들어 있던 도준의 눈이 천천히 떠지는 걸 보고 사과했다.

“아, 미안. 깼어?”

눈을 뜬 도준은 멍해 보였다. 미궁의 시험 중이었다는 걸 모르는 재하는 단순히 깊이 잠든 줄 알았던 도준이 일어나자 반갑게 웃어 주었다.

“갑자기 일어나려면 힘들잖아. 좀 더 누워 있어.”

친숙하면서도 다정한 재하의 목소리에 도준의 눈이 도르르 굴렀다.

재하와 눈이 마주친 도준은 자신을 보고 환하게 웃는 친우의 얼굴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뭐야. 도준이 너, 잠 덜 깬 거 완전 티 나.”

햇살을 닮은, 티 한 점 없이 밝은 재하의 미소가 온전히 자신에게 향함이 의아했다.

한때는 항상 보아 왔던 웃음. 하지만 언제부턴가 억지로 시키지 않으면 일그러진 미소나마 보기 힘들어졌었더랬다.

제 손으로 부서트리고 꺾어 버렸던 재하와의 관계가 거짓말처럼 예전과 같은 온화한 분위기로 바뀌어 있었다.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면서 망가트려서라도 손에 넣고자 깨트리고 부서뜨렸었다. 한데도 그런 자신을 향해 거리낌 없이 다가와 웃는 재하가 신기하기까지 했다.

기억 속에서조차 흐릿해진 미소는 제법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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