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89화 (89/142)

89

얼마 가지 않아 재하는 어깨를 툭 치는 느낌에 돌아보다 나뭇가지 위에 올라선 팔뚝만 한 사마귀를 보고 굳어 버렸다. 파란색 사마귀는 레드 맨티스의 하위종인 블루 맨티스라 위험도가 극히 낮았으나 일반인과 다름없는 재하에겐 위협적일 수 있었다.

“사마귀?”

블루 맨티스가 다시 앞발을 휘둘러 재하의 목을 공격했다. 이제 보니 앞발로 재하를 공격했다가 방어 슈트에 가로막혀 재차 공격해 오는 상황이었다.

“으악!”

비명과 함께 손에 든 나뭇가지를 휘두르자 블루 맨티스가 멀리 날아가다 날개를 펼쳤다. 사마귀에게 날개가 있든 없든 재하는 또 달려들까 봐 나뭇가지를 앞세웠다. 다행히 블루 맨티스는 먹잇감이 커서 힘들다고 판단했는지 재하의 발밑에 있는 새끼 블랙 피그에게로 달려들었다.

“야!”

반사적으로 발로 걷어찬 타이밍이 맞아 블루 맨티스는 날아갔지만, 짧은 순간 재하의 발목과 운동화에 날카로운 상처를 만들어 냈다.

“쓰읍, 저거, 되게 날카롭잖아?”

상황을 파악 못 한 새끼 블랙 피그가 멈춰 선 재하의 발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런 둔함으로 야생에서 어찌 살아남았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러다 문득, 재하는 주변 풀이 초록색이 아닌 푸른빛을 띠고 있는 걸 알아챘다. 걸어오는 동안 자연스럽게 색이 바뀌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영역이 달라진 모양이었다.

“너,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냐?”

아마도 새끼 블랙 피그가 살던 곳은 이런 위협이 없지 않았을까. 상처 하나 없는 동글동글한 얼굴에 순진한 까만 눈망울을 보면 팔뚝만 한 사마귀 같은 건 없었을 것 같았다.

블루 맨티스는 아직 거리를 유지하며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날카로운 앞발을 슬슬 움직이는 게 언제든 달려들 것 같아 재하는 주저앉은 새끼 블랙 피그를 안고 뒷걸음질 쳤다. 생각보다 무거워 휘청했지만, 언제든 휘두를 각오로 나뭇가지를 앞쪽으로 내민 채 한참을 뒷걸음질한 끝에 사마귀와의 눈 맞춤이 끝났다.

망설일 것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묵직한 새끼 블랙 피그를 품에 안고 필사적으로 달린 끝에 금세 초록빛으로 가득한 풀숲으로 돌아왔다.

“아오, 무거워.”

바닥에 내려놓자 잠시 멍하니 있던 새끼 블랙 피그가 항의라도 하듯 꾸꾸거렸다. 재하의 품에 안겨 정신없이 둥실거렸던 게 불편했는지 손을 뻗자 뒤로 물러섰다.

“어휴, 그래. 가라, 가. 너까지 챙길 상황이 아니다.”

가볍게 말했지만, 진심이었다.

다시 안을 것처럼 양손을 뻗자 새끼 블랙 피그는 휙 하니 뒤돌아 풀숲 안으로 뛰어들었다. 부러 뒤를 쫓는 것처럼 수풀을 나뭇가지로 툭툭 치자 안쪽에 있었는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멀어졌다.

혼자 남자 홀가분함보다는 목이 뻐근해지도록 긴장감이 올라왔다. 생수를 한 모금 마시고 경계선을 따라 걸으며 지금 든 나뭇가지보다 더 튼튼해 보이는 걸 찾아 눈을 바삐 굴렸다.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숲은 재하가 걸을 때 밟는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나 긴장으로 거칠어진 숨소리만이 들리는 게 전부였다. 풀벌레 소리나 새소리조차 없어 점점 기분이 나빠졌다.

처음 눈 뜬 장소에서 있어야 했을까. 하지만 그러기엔 다른 사람들이 걱정됐다.

물론 그들 모두 자신보다 뛰어난 체력과 특별한 이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혹 의식을 잃거나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재하는 필사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불안한 상황이 떠올라 걸음이 빨라졌다.

손목의 통신기는 여전히 먹통이었고, 길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었던 건, 숲과 숲의 경계선이라 그런지 두 종이 섞이지 않고 거리를 두기에 위험 요소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경계를 넘는 동안 자신만 보고 졸졸 따라온 새끼 블랙 피그가 참 둔하구나 싶었다.

‘일단 여길 따라가면 마수를 만날 확률은 거의 없다는 거지.’

갑작스럽게 결정된 가이드의 동반 소식에 교사가 찾아와 속성으로 게이트 지식을 짧게나마 배워야 했다. 실상은 가이드를 위한 방어 슈트를 일반인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고치느라 시간을 끌기 위해서였지만, 재하는 그 덕에 홀로 떨어진 지금 불안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교사는 짧은 강의를 하면서도 에스퍼가 지켜 줄 테니 이런 건 다 형식적인 거라고 했다. 재하도 그간 지켜지는 처지라 어느 정도 수긍하기는 했다.

“너무 안일했어.”

가이딩이라고 해도 손을 잡거나 끌어안는 것뿐, 그로 인한 피로로 깊이 잠드는 일상에 재하가 특별히 알아야 할 건 없었다. 세상이 달라졌는데도 지인들의 보호 아래 지나치게 편안한 생활에 젖어 있었다.

에스퍼가 가는 곳에 가이드도 함께하는 이번과 같은 일이 앞으로도 이어진다면, 지식은 필수였다.

‘몸도 좀 단련해야지.’

나뭇가지로 팔뚝만 한 마수 하나를 후려쳤다고 손바닥이 저릿저릿했다. 제대로 된 무기도 필요했다. 쉼 없이 걸어 나가는 동안 속성으로 배운 몇 가지를 떠올렸다.

“맨티스의 약점은 목이라고 했지.”

뒤에서 공격해 목을 끊어 내는 게 주요 공략이라고 했지만, 블루 맨티스를 후려칠 때 느껴진 단단함과 순식간에 날아들던 모습을 떠올리면 목이고 뭐고 야구공 쳐 내듯이 하는 것만도 벅찼다.

“돌아가면 공부 좀 해야지.”

그동안 필요를 못 느끼기도 했고, 주변 사람들의 과보호에 일상을 유지하는 데에만 신경 써 왔다. 이제 충분히 익숙해졌으니 바뀐 세상에 적응해야 했다.

하다못해 이번처럼 끌려와 멀뚱거리느니 마수 도감이라도 들고 와야 했다. 어차피 공부나 과제는 익숙했다.

현실적인 생각을 이어 가자 긴장은 사라졌지만, 이상하리만치 식은땀이 흐르고 피곤해졌다.

잠깐만 쉬자 싶어 바위에 걸터앉아 생수병을 꺼내는데 아이보리 스니커즈에 레드 무늬가 화려함을 더했다. 단색 스니커즈에 붉은 물이 수상할 정도로 흠뻑 들어 재하는 황급히 바지 자락을 들췄다. 발목에서부터 흘러나온 피가 신발까지 적시고 있었다.

“언제 이렇게…… 아!”

새끼 블랙 피그에게 덤벼들던 블루 맨티스를 걷어찰 때 따끔한 느낌이 있었다. 꽤 아팠지만, 도망치는 동안 통증이 사라져 별것 아닌 줄 알았다. 하지만 흠뻑 젖은 신발을 보면 결코 가벼운 상처가 아니었다.

“이렇게 피를 흘렸는데 몰랐다고?”

어이없어하며 발목을 붙잡는데 피부에 감각이 없었다. 멀쩡하게 걸어온 걸 보면 마비는 아니었다. 상처 주변을 눌러 보자 딱 상처 근처까지만 감각이 없었다.

배낭을 뒤져 외출 시 습관적으로 넣어 둔 밴드를 찾아냈다. 밴드를 덕지덕지 붙이고 손으로 눌러 지혈했다. 밴드 바깥으로 붉게 스며 나오는 피를 보니 식은땀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니, 맨티스한테 다치면 출혈 효과가 있다고 알려 주셨어야죠.”

급히 가져온 방어 슈트가 후드 티처럼 생긴 상의뿐이라 전신 슈트에 비해 쪽팔리지 않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했다.

발목을 누르며 조용한 주변을 살피는데 녹색으로 가득한 공간에 푸른색 사마귀의 존재가 두드러졌다. 언제부터 따라왔는지 고민할 것도 없었다.

처음부터 쫓아왔을 것이다. 상처 입은 걸 모르는 사냥감이 돌아다니다 쓰러지길 기다리는 것처럼 보여 소름이 끼쳤다.

“와, 황금 거북이보다 파란 사마귀가 더 무섭네.”

사람들이 재앙이라 부르던 거대한 존재보다 지금만큼은 사마귀 마수가 더 공포였다.

언제까지고 계속 걸을 수는 없었다. 지금도 꽤 피로했다. 계속 걷다 보면 결국 자야 할 때가 올 텐데 그때까지도 블루 맨티스가 쫓아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마주 보고 있을 수도 없었다.

혹시 과자를 주면 정신이 팔리지 않을까 싶어 배낭 안에서 돌아다니는 비스킷 몇 조각과 육포를 블루 맨티스 쪽으로 던져 봤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바닥의 나뭇잎을 앞발로 들어 갉기에 사실 초식인가 싶어 자세히 보니 피 묻은 잎이었다.

“너랑 끝장을 봐야 하는 거구나.”

재하의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재윤이 했던 것처럼 후드 티를 죽 잡아당겨 길이를 늘였다. 무릎을 세워 후드 티 안으로 숨기자 번데기처럼 훌륭하게 몸을 감출 수 있었다. 후드도 뒤집어쓰고 최대한 조여 눈만 남겼다.

구부린 자세로 바위 위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직 정신이 있을 때 자는 척하며 반응을 봐야지, 정말로 피곤할 때 이러다 깜박 잠들기라도 하면 발목이 사라질 수 있었다.

한참을 꼼짝 않고 있자 지켜보던 블루 맨티스가 움직였다. 꽤 크기가 있는데도 낙엽이나 나뭇가지를 지날 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게슴츠레하게 뜬 눈이 아니었다면 움직이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블루 맨티스는 곧장 발목으로 향했다. 길게 늘인 후드 티에 가려 보이지 않아도 피 냄새를 맡는지 앞발로 바위와 후드 티 사이를 긁었다.

날기까지 하는 맨티스를 쫓아갈 재주는 없었기에 재하는 침착하게 기다렸다. 블루 맨티스의 머리가 후드 티 아래로 쑥 들어오는 순간 팔을 휘둘러 몸통을 눌렀다.

서두르는 바람에 풀숲을 굴렀지만, 얼굴을 스치는 가지 따위 아무것도 아니었다.

키엑―.

“가만 좀, 있어 봐라!”

버둥대는 맨티스의 목에 나뭇가지를 찔러 넣다 몇 번이고 실패했다. 후드 티 안에서 발을 휘두르는지 날카로운 통증이 이어졌지만, 체중으로 누르며 팔꿈치로 머리 아래를 눌러 짓이겼다.

우둑하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블루 맨티스의 움직임이 멈췄다. 방어 슈트의 단단함 덕에 기어코 머리 아래를 끊어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아슬아슬했네.”

하나뿐이라 다행이었다. 후드 티를 툭툭 두드리자 원상태로 돌아와 너덜너덜해진 발목이 드러났다.

“아오, 이게 웬 난리냐.”

그나마 마비 효과 덕인지 피투성이가 된 것에 비해 통증은 줄었다. 찢어진 바지 자락으로라도 눌러 지혈하려고 웅크리는데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눈앞이 핑 돌았다. 쓰러지면 안 되기에 정신을 차리려 애쓰던 재하의 귀로 묵직한 게 떨어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형?”

“선배, 어딨어요? 여기, 재하 선배 위치가 맞을 텐데.”

“바닥에 피가 있습니다. 머리가 분리된 맨티스도.”

아주 짧은 순간, 세 사람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내 해일이 숲을 태워서라도 자신을 찾아낼 기세로 불길을 일으켰다. 지호는 내려놓으려던 도준을 다시 둘러메며 공간 이동을 시도하려 했다. 그중 유일하게 고요한 재윤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차가운 눈을 하고 있었는데, 던전의 모든 맨티스를 멸종시킬 것 같은 기세였다.

이들이 얼마나 자신의 안전에 예민한지 알기에 재하는 서둘러 수풀에서 손을 들었다.

“그런 거 아냐. 다들 진정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