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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86화 (86/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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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친화적 환경에 마수가 튀어나오는 정글과도 같은 게이트. 그곳에서 얻은 아이템을 조합해 만든 카드의 존재는 이질적이었다.

보물과 관련된 것이라면 열쇠의 형태인 게 더 그럴듯했을 텐데 카드 형태의 키는 아무리 봐도 현대 문물이라고밖엔 생각할 수 없었다. 재윤은 당연하다는 듯 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의아함이 가시지 않았다. 결국, 재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른 건 다 원시적인데 그것만 너무 현대적인 거 아냐?”

“응. 그래서 처음에 드래곤 레어라든가 그럴싸한 이름을 붙이고 싶어 했는데 그건 아니지 않냐며 의견이 묵살됐어. 아무리 봐도 카드 키잖아. 그래도 수동이라 전기가 통하지 않아도 돼.”

크기나 복잡한 문양을 보아서는 수동형 키로 보이기는 했다. 질문의 의도와 다른 답이 나왔지만, 이제 재윤은 지호나 도준 앞에서도 회귀 사실을 숨길 생각이 없나 싶어 재하는 눈치를 봤다. 하지만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식의 재윤에게 익숙해졌는지 두 사람 다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지호가 두세 번씩 사람과 짐을 옮기자 주변 풍경이 확 달라졌다. 삭막한 게이트 입구와 달리 숲이 우거진 공간에 물기를 머금은 풀 냄새가 싱그럽기까지 했다.

이동 직후에는 침묵이 기본이라 재하가 입만 벌린 채 두리번거리는데 등 뒤에서 묵직한 돌이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자 온통 풀과 나무뿐인 공간에 뜬금없이 돌벽이 존재했다. 그나마도 이끼와 넝쿨이 뒤엉켜 움직이지 않았다면 알아채기 힘들 정도였다.

“각자 짐 챙겨서 안으로 이동할게요. 소요 시간은 짧으면 하루. 길면 이삼 일까지도 예상합니다.”

재윤의 말에 모두가 각자 짐을 챙겼다. 재하 역시 배낭을 메면서도 궁금한 걸 숨기지 않았다.

“지호가 가서 가져오면 되는 거 아냐?”

“이 안에서는 위치 지정이 안 되거든. 이능은 쓸 수 있는데, 공간 이동을 하려고 하면 입구로 돌아와 버려.”

“오, 그거, 비상 탈출이잖아. 길 잃으면 지호 잡고 나오면 되겠네.”

어찌 보면 지호의 능력이 이곳에서는 쓸모없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는데 재하가 바로 좋은 점을 언급했다. 평범한 반응일지 몰라도 상대의 장점을 보는 데 익숙한 재하의 모습이 보기 좋아 재윤은 저절로 웃음이 났다.

“응, 형 말대로야.”

“왜 날 주제로 둘이 훈훈한지 모르겠네요.”

툴툴거리는 척, 지호는 재하의 배낭을 가져가 어깨에 걸치고 대신 손을 잡았다. 아마도 이동하는 동안 지호와 재하가 할 일은 거의 없을 터. 힘이 세진 지호 쪽이 돕는 게 맞을지 모르나 재하는 다 같이 짐을 지는 상황에 자신의 것까지 두 배나 드는 걸 두고 보지 않았다.

“내 짐은 내가 들어.”

“저 원래 애인한테 짐을 들게 안 해요.”

“누가 네 애인인데? 손이나 놓고 가.”

“비상 탈출용으로 제 손 잡고 가세요.”

“형, 견지호 말이 맞아. 위험할 일은 거의 없을 테지만, 대비할 수 있으면 해야지.”

잡힌 손을 털어 내려는 재하의 행동을 재윤이 말렸다.

손은 어쩔 수 없어도 이미 짐이 있는 지호가 제 짐을 지고 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배낭을 뺏어 왔다. 부피는 커도 과자나 라면 따위가 절반 이상이라 그리 무겁지는 않았다.

재하의 고집에 지호는 별다른 말 없이 손만 꼭 잡았다.

“발밑 조심해요.”

“뭐 암것도 안 보이는데? 너희는 뭐가 보여?”

“네, 어렴풋이 보이네요.”

어두운 내부로 들어서자 습한 공기에 발밑이 미끄러워 지호의 손을 놓기는커녕 더 꽉 쥐게 되었다. 지호 역시 기꺼이 재하를 붙잡으며 속도를 맞춰 안으로 들어섰다.

맨 앞에 선 해일이 벽을 따라 불길을 만들어 내자 그제야 재하의 눈에도 내부가 보였다. 마치 동굴처럼 보이는 원형의 통로가 이끼투성이였다.

도준은 앞쪽으로 방어 막을 쓸어 내듯 보내 함정이 있는지 살피거나 숨어 있는 마수의 반응을 유도했다. 맨 뒤에 선 재윤은 주변의 마나 흐름에 특별한 점이 없음을 파악하고 안전함을 확신했다.

“목표는 보물 창고, 막다른 길이 나올 때까지 가면 나올 겁니다.”

앞서 걷는 해일과 이미 공유한 내용이었으나 모두에게 들리도록 다시금 언급했다. 이에 지호가 고개를 돌리고 재윤에게 물었다.

“이렇게 쉽게 찾는데 며칠이나 걸린다고 발표한 거야? 보물 찾고 나서 농땡이 치려고?”

“아니, 이런 던전이 여러 개 있거든. 어려울 건 없지만, 다 둘러보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오~ 동생분은 그런 걸 어떻게 다 아는 거야?”

그간 재윤이 많은 걸 아는 티를 냈어도 굳이 묻지 않던 지호의 가벼운 질문이었다. 아주 짧은 침묵 후 재윤이 입을 열려는 순간, 재하가 당연하다는 듯 답해 버렸다.

“얘가 어릴 때부터 똑똑했어.”

답을 하려던 재윤마저 굳어 버린 상황에 재하는 뻔뻔할 정도로 능청스럽게 답을 이어 갔다.

“요령 좋다는 게 나쁜 게 아니거든. 다른 애들이 죽어라 외울 때 재윤인 과목마다 출제 경향이랑 핵심만 파악해서 하루만 공부해도 성적이 잘 나왔어. 그게 수능에서 통하지 않았을 뿐이야.”

우리 애가 머리는 좋아. 공부를 못해서 그렇지. 그것보다 더한 팔불출처럼 보이는 재하의 동생 자랑이 이어졌다.

“운동도 잘해서 여기저기서 데려가려고 했다니까. 사춘기 때 갑자기 환경이 바뀌면서 잠깐 삐딱선을 타기는 했지만…… 다들 그런 시기는 있는 거고. 하여간 애가 똘똘한데 요령도 좋고 눈썰미도 좋아서 뭐든 금방 파악하더라고.”

재윤의 회귀 사실을 감추기 위해 꺼낸 재하의 말은 어느새 동생 자랑으로 끝이 났다. 듣고 있던 재윤의 귀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걸 본 지호가 재하의 손을 꾹꾹 누르며 잡아당겼다.

“선배, 저도 어릴 때 신동 소리 들었는데요.”

“그래서 어쩌라고.”

“우와, 저한테만 너무 차가우신 거 아니에요? 밀당이라고 해도 상처받아요.”

장난스럽게 눈물을 훔치는 척하는 지호의 행동에 재하는 머뭇거리다 잡은 손에 살짝 힘을 주었다.

“가이딩 안 하는데도 손잡고 가잖냐. 대충 넘어가자.”

농담인 걸 알면서도 조금 지나쳤나 싶어 재하의 목소리가 작아지자 지호의 눈이 반짝였다. 당장이라도 재하를 끌어안고 싶어 하는 기색이었으나, 그랬다가는 재하가 잡은 손을 놓고 도망쳐 버릴 것 같아 참아야 했다.

앞서 걷던 해일과 도준은 나아가는 데 집중하면서도 등 뒤가 신경 쓰여 한 번씩 걸음이 느려졌다.

미끄러운 좁은 길이 한참을 이어지다 멀리서 빛이 보이는 동시에 물소리가 들려왔다. 계속 내리막길이었던 것 같은데 빛과 물이라니, 의아해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갔다.

지호와 재윤의 도움을 받아 높은 턱을 밟고 올라선 재윤은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우와…… 굉장하다.”

좁은 길과 달리 작은 운동장 정도는 돼 보이는 공터였다.

천장에서 시작된 작은 폭포로 인해 떨어져 내린 물줄기가 강을 만들며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천장이 온통 빛을 내는 보석으로 가득해 폭포가 만들어 내는 물안개마저 빛났다.

“천장을 부숴서 가지고 나가면 되나?”

“방어 막을 펼칠게.”

“보물 창고는 막다른 곳에 있어요. 왜 이런 곳이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처음으로 재윤에게서 모르겠다는 말이 나오자 해일은 이미 밝은데도 불꽃을 일으켰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한 불을 본 도준 역시 사람들 주변으로 방어 막을 세웠다.

지호도 이미 잡고 있던 재하의 손을 더 확실하게 붙잡았다. 동굴 속 아름다운 풍경에 잠시나마 감탄하던 재하는 이들이 보이는 경계심에 덩달아 긴장했다.

“바닥과 벽을 확인해야 하니 불필요한 이끼를 태워 주세요. 방어 막 신경 써 주시고, 형 손 절대로 놓지 마.”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각자 해야 할 일이 확실했기에 재윤의 말대로 움직였다. 축축한 이끼마저 불태우는 해일의 불로 가려졌던 벽과 바닥이 드러났다. 재윤은 바닥과 벽, 폭포 뒤까지 꼼꼼히 살피면서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여긴 대체 뭐지? 딱히 특별한 파동은 없는데.’

게이트 안에 추가로 생성된 던전의 보물은 죄다 막다른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외의 경우는 접해 보지 못했기에 재윤은 당황스러웠다.

아이템을 조합해 입구를 열고 들어오는 형태의 던전은 대부분 보물 창고를 만날 수 있었다. 간혹 꽝이다 싶은 잡템만 있더라도 보물은 존재했다.

복잡한 형태의 열쇠를 보아 첫 시도부터 그럴싸한 아이템을 선점할 수 있으리라 여겼건만, 내부에 폭포와 강, 보석이 공존하는 장소라니.

‘게이트 공부할 때 분명히 이런 걸 본 것 같긴 한데.’

시간을 들여 생각하면 무언가 떠오를 것도 같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정보가 좀 더 필요했다.

재윤은 침착하게 행동했지만, 말없이 주변을 빠르게 살피는 모습에 지켜보는 이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재하는 자신에게 다가와 후드를 씌워 주는 도준의 행동에 더욱 긴장해 버렸다. 오랜 친구인 도준이 평소와 같은 상냥한 얼굴로 덤덤히 말을 꺼냈다.

“게이트가 처음이라 놀랐지? 자주 있는 일이야. 길이 막히면 쉬었다 가고 그래.”

“그래?”

“그럼요. 대부분 제가 망원경 대신 이리저리 날아갔다 오긴 하지만요.”

“어어, 그래.”

좀처럼 긴장을 풀지 못하는 재하를 위해 지호가 빈손을 펼쳐 보였다.

“여차하면 전부 다 붙잡고 입구로 튈 테니 걱정 마세요, 선배.”

“그건 정말 든든하네.”

그제야 조금 긴장을 푼 재하는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재윤이 찾는 게 뭔지는 몰라도 혹여나 특이한 게 보이면 알릴 생각이었다. 그렇게 주변을 살피던 재하는 연기가 바닥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걸 발견했다.

“연기는 보통 하늘로 올라가지 않나?”

이끼를 태웠음에도 내부의 공기는 여전히 쾌적했다. 모든 연기가 죄다 바닥으로 빨려 들어갔음을 확신했다.

“재윤아, 혹시 던전은 공기 흐름이 달라? 연기가 바닥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여서.”

“바닥?”

모두의 시선이 동시에 바닥으로 향했다. 시선이 모이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단단하던 바닥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며 모두가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찰나의 순간, 동요할 수밖에 없음에도 각자 자신의 이능을 필사적으로 사용했다. 도준은 모두에게 방어 막을, 해일은 바닥을 가늠하기 위해 불길을, 재윤은 염력을 이용해 벽을 뜯어내서라도 버티려 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이능을 사용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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