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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84화 (8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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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윤의 말을 듣고만 있던 해일이 손을 들었다.

“질문이 있습니다.”

“질문이요?”

형을 위해 움직일 때라면 의문이 있을 리 없다고 은연중에 믿고 있던 재윤이 해일의 질문에 의아해한 것도 잠시.

“마수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까?”

너무도 당연한 질문에 오히려 재윤은 당황했다. 새로운 게이트를 공략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내용조차 공유하지 않은 채 형을 데려가는 것만 강조했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유독 더 심해진 재윤의 재하 걱정에 해일은 자신이라도 중심을 잡아야 함을 깨달았다.

“주도준 에스퍼는 방어를, 견지호 에스퍼는 이동을 담당하니 나중에 설명하더라도 공격 위주인 저는 사전에 정보를 주셨으면 합니다.”

“아, 네. 드려야죠, 정보.”

자신의 실수를 자각한 재윤이 얼굴을 붉힌 채 마수에 관해 설명하려는데 재하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얼 하나 봤더니 배낭을 가져와 라면이며 통조림을 바리바리 챙겨 넣고 있었다.

“옷도 챙겨야 할까?”

“게이트에서 입는 전투복은 기본적으로 오염에 강해서 따로 챙길 필요 없어.”

“그 전투복 나도 입어?”

“아, 미안. 정확하게는 방어 슈트라서 전부 입을 거야. 먹을 것도 비상식량이 준비돼 있기는 한데, 형이 챙긴 건 별식으로 먹으면 되겠어.”

게이트 안에서 냄새를 풍기는 일은 주의해야 했지만, 처음 참여하는 토벌에 소풍이라도 가듯 가벼운 형의 모습을 지켜 주고 싶었다. 게다가 지금의 조합으로 간다면 설령 바비큐 파티를 벌이더라도 낙승이었다. 오히려 마수들이 냄새에 끌려 오면 편히 사냥할 수 있을 만큼 화력과 안전이 보장된 파티였다.

상냥하다 못해 철없는 어린애 보듯 하는 재윤의 시선을 알아챈 재하가 배낭을 풀어내려 하자 해일도 한마디 보탰다.

“며칠이나 걸린다면 비상식만 먹기 괴롭습니다. 재하 덕에 이번 사냥은 먹는 즐거움도 있을 것 같아 기쁩니다.”

“엇, 정말요?”

“네, 사냥 후 지친 몸에 따뜻한 라면 한 그릇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그럼 버너도 챙길까요? 그래도 되냐?”

해일과 재윤에게 번갈아 가며 묻던 재하는 두 사람의 무한 긍정에 의심을 거두고 이천오를 향해 달려 나갔다. 숙소에 없는 물건을 조달하는 들뜬 재하의 모습에 재윤은 안도했다. 혹여나 게이트에 대해 두려워한다면 설득해야 했는데, 그럴 필요도 없이 가볍기만 했다. 형이 저렇게나 편안하고 가볍게 지낼 수 있다는 게 기뻤다.

‘하지만 영상으로 봤을 때 형은 정말 놀라고 슬퍼했어.’

자신이 의식이 없는 동안 형은 자신을 위해 거침없이 달려와 가이딩을 시작했다. 티가 날 정도로 피했던 자신의 태도를 떠올렸다면 망설일 수 있었는데 형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렇다고 2차 가이딩을 해 버릴 줄은 몰랐지만.

‘아니, 모르지 않았지.’

자신을 위해 더한 짓도 했던 형이었다. 이제는 사라진 미래였기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지만, 재윤은 잊지 않았다.

게이트에 간다는데 먹을 것부터 챙기는 재하의 천진함은 전부 재윤의 노력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혹시 안에 자동차 아니면 자전거라도 들고 갈 수 있나? 짐이 너무 늘어날 거 같아서.”

“견지호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하긴. 그럼 참치 캔도 몇 개 더 챙겨야겠다.”

공간 이동 능력자를 짐꾼 취급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러웠다. 첫 공략을 앞둔 이들이 보일 만한 여유가 아니었다.

해일은 이 여유로움이 재하를 위해 재윤이 만들어 온 것임을 알았다. 평화로운 형제의 일상은 해일에게도 안정을 주었다.

매일 마수의 체액을 뒤집어쓰며 마나 파동이 뒤엉켜 돌아올지라도 형제와 함께할 때면 무거운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다. 모든 게 다 쉬울 것 같은 긍정적인 분위기는 두 사람이 함께할 때 만들어졌다.

둘을 향한, 해일의 흐뭇함이 듬뿍 담긴 미소를 본 재하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배우 뺨치게 잘생긴 남자가 할머니가 손주 보듯 하니 민망해진 탓이었다.

재윤의 게이트 공략은 쉽게 이루어질 것처럼 보였지만,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전담 팀의 상황은 달랐다.

무려 가장 주목받는 고등급 에스퍼 전원이 투입되는 게이트 공략이었다. 서재윤 에스퍼가 직접 찾아낸, 이제 막 열린 신생 게이트라 정보조차 없었다.

“조사 팀이 B급이라고 했지?”

“C급 정도로 안전하다던데요. 내부 규모가 워낙 커서 임시로 B등급을 적용했다고 합니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만 해도 얼마나 위험한 게이트가 나타난 건지 두려워질 지경이었으나, 다급히 조사 팀을 보내 측정한 결과 최대 B등급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그것도 입구에서 잡히는 파동은 C등급도 아슬아슬했다. 안쪽까지 들어가 확인한 후에야 워낙 넓어 B등급으로 임시 측정 해 둔 상태였다.

“하여간 서재윤 에스퍼는 재주도 좋아. 산책하다 게이트를 찾아냈다는 게 말이 되냐고.”

“그 재주 좋은 에스퍼가 바로 공략 들어간다고 S급이랑 A급을 죄다 끌어가는 바람에 오늘부터 일정 다 재조정해야 해요.”

시민들의 두려움을 덜어 주기 위한 에스퍼 시현이라든가, 언론과의 인터뷰, 몇몇 게이트의 조사 팀과 합류하는 일정들이 줄줄이 취소됐다.

“게이트 주변 경계 인력도 배치해야 합니다.”

“아무나 보낼 수 없으니 2세대 중 B급 에스퍼에게 연락 넣어 봐.”

“B급 에스퍼가 문지기 따위를 하려고 할까요?”

“요령 없긴. 게이트 내부 상황에 따라 추가로 투입될 수 있다고 적당히 둘러대.”

최근 도심에 열린 게이트가 A부터 F까지 등급이 다양했던 걸 떠올리면 고등급 에스퍼 네 명이 B급 게이트에 들어가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B급 에스퍼가 합류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문지기쯤은 얼마든지 하려 할 것이다.

거기에 가이드까지 동행한다는 소식에 전담 팀은 더욱 바빠졌다.

“권해일이다. 해일아, 사랑해!”

“수호자 절대 방패! 사인해 주세요!”

“견지호 잘생겼다!”

“재윤 오빠, 여기 좀 봐 주세요!”

“서재하, 귀여워!”

협회장의 강력한 요구로 센터 차를 타고 현장에 도착한 다섯 명은 방탄 차량의 탁월한 방음 기능에 당황했다. 바깥이 이렇게나 소란스러운 줄 알았다면 견지호가 구시렁대더라도 그를 붙잡고 게이트 앞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가드들이 주변을 막아선 덕에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오지는 못했지만, 번잡스러운 상황이 못마땅했다. 특히 게이트 앞에 보란 듯이 전시된, 대성에서 만든 각종 비상용 물품은 대놓고 홍보하는 모양새였다.

이런 게 나쁠 건 없었다. 다만 사전에 준비할 수 있는 걸 보란 듯이 늘어놓고 에스퍼들이 다시 챙겨 가게 만든 상황이 짜증 날 뿐이었다.

빈 배낭에 비상식과 필요한 물품을 채워 넣자 그때마다 카메라 소리가 요란했다. 고등급 에스퍼가 착용한 검은 방어 슈트의 매끈한 재질이 조명 아래 빛이 나는 가운데 밝은색 후드 티에 커다란 배낭을 멘 재하가 되레 눈에 띄었다.

“서재하 가이드만 방어 슈트가 아닌데, 이유가 있나요?”

“이거, 방어 슈트 맞아요.”

“에스퍼분들이 착용한 것과 달라 보이는데요.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이미 짐을 챙겨 온 터라 에스퍼들과 달리 한가했던 재하는 저를 향한 질문에 얼떨떨해하면서도 곧잘 대답했다.

“아, 제가 체력이나 근력이 여기 계신 분들하고 비슷하거든요. 에스퍼 슈트를 입으면 팔다리를 구부리지도 못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재하가 팔을 들어 보이며 웃자 사람들의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탄성은 약하지만, 대신 충격을 받을 때 굳는 재질의 방어복은 겉보기엔 평범한 후드 티처럼 보였다. 재하가 직접 후드를 쓰고 목까지 조여 보이며 옷소매를 당겨 얼굴을 가렸다.

“대충 이렇게 하면 날아오는 돌 정도는 방어가 되더라고요.”

“여기서 시범을 보여 주실 수 있으실까요?”

“시범이요?”

머리라도 테이블에 박아야 하나 잠시 망설이던 재하는 재윤이 다가와 안 그래도 당겨 놓은 옷소매를 죽 잡아 빼자 당황했다.

“야, 야.”

“신축성은 이렇고.”

팔뚝 길이만큼 길어졌지만, 어깨가 드러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팔랑이는 옷자락 위로 재윤이 주먹을 내리치자 테이블이 부서지며 무너져 내렸다. 괜히 뭔가 보여 주겠다며 재하가 엉뚱한 짓을 하기 전, 재윤이 최대한 안전하면서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

사람들과 기자의 시선이 재하의 딱딱하게 굳은 옷소매로 몰려들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모양 그대로 허공에 떠 있는 옷의 모습은 천이 가질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저희가 아는 건 이 정도이니, 자세한 건 협회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재윤의 발언에 오늘도 협회에 문의 전화가 빗발칠 것이다.

어차피 협회장이 벌인 판에 재하의 방어 슈트도 포함돼 있을 게 뻔했다. 일반인에게 팔기에 적절한 디자인으로, 하루 만에 뽑아 온 걸 보면 그 속이 뻔히 보였다.

적당히 어울려 주며 빠르게 배낭을 채운 재윤은 가드 사이로 마이크를 들이대는 기자와 눈이 마주쳤다.

“서재윤 에스퍼, 게이트 발견 하루 만에 공략하는 건 너무 무모한 거 아닌가요?”

“그럼 게이트가 터진 후에 방어나 할까요?”

다른 때라면 적당히 웃는 얼굴로 받아 줬을 재윤의 퉁명스러운 반문에 기자가 당황했다. 공격은 기자가 하는 거였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줘야 하는 에스퍼가 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이 아무리 강한 힘을 가졌어도 소수였고, 이 나라에서 살아가려면 절대다수인 보통 사람들의 지지가 필요했다. 그렇기에 계속 수많은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이고, 불필요한 시현을 몇 번이고 해 왔으리라 여겼다.

“골든 터틀이 나온 게이트가 A등급입니다.”

갑자기 왜 마수의 이름을 언급하는가 싶어 기자가 본질을 흐리지 말라고 대꾸하려는데 재윤이 더 빨랐다.

“센터에 있던 아이템의 상당량이 소진됐습니다. 다시 같은 등급의 게이트가 열린다면, 이전처럼 제압할 수 없을 겁니다.”

아마도 생중계될 영상을 보고 있을 협회장은 뒷목을 잡을 것이다. 장점만 말해도 아쉬울 마당에 약점을 떠벌리고 있으니 속이 터질지도 모른다.

“지키기 위해 서두르는 겁니다. 게이트란 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터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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