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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83화 (8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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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하의 손바닥 위에서 머뭇거리는 동안에도 재윤의 손가락 끝을 은근하게 잡아끄는 가이딩이 달달했다. 무의식 상태인 재하가 자연스레 방사 가이딩을 해 버린다면 보장되지 않은 장소에서의 수면조차 관리해야 했다.

형의 안전을 핑계로 너무 가둬 두는 것 같아 수면 위로 드러난 김에 그의 활동을 저지하지 않았다. 일정에 조금 손을 대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위험 요소가 없으면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도 또다시 이런 식으로 능력을 드러내고 자신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어째서 이렇게나 위태로울까.

아무리 제 형제라 걱정이 되는 게 당연하다 해도 형이 가진 불안 요소는 너무 많았다.

사람을 대할 때의 자연스러운 배려심. 작은 호의에도 쉽게 마음을 열어 버리는 천진함. 고등급 에스퍼를 누구보다 빠르게 정상화하는 능력. 그 모든 게 형을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바라보듯 계속 지켜보게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처음 각오했던 것과 달리, 형과의 가이딩에서 주변 사람들이 성애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는지 의문이었다. 견지호는 티 나게 달라붙으며 다른 감정을 드러내긴 했지만, 가장 걱정했던 주도준만 해도 담백하기만 했다. 다행이었지만, 원인을 알지 못하니 불안했다.

“아…….”

생각에 빠져 있던 동안 형의 손바닥 위로 손끝이 스쳤다. 고작 그것뿐인데도 닿은 손가락을 꼼짝도 할 수 없게 됐다.

“음…….”

잠결에 손바닥이 간지러웠는지 움찔거리던 손이 재윤의 손가락을 잡아 왔다.

닿는 것만으로도 은은한 가이딩이 이어지는 것에 재윤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가이딩이 필요해진 순간부터 그토록 닿지 않으려 노력했던 게 무색할 만큼 가벼운 접촉만으로도 재윤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끔찍한 기억을 덮어 버리고 현재를 보라는 듯 다정하면서도 포근한 가이딩에 재윤은 붙잡힌 손에 살며시 힘을 주었다.

“형, 이번에는 반드시 지켜 줄게.”

제법 긴 시간, 재윤은 재하가 들었다면 소름 끼친다며 도망쳤을 만한 다짐을 이어 갔다. 자신이 최우선으로 두어야 할 게 무엇인지 수없이 되뇄다.

* * *

어쩌면 가이딩을 시현할 때부터 예감했을지도 모르겠다.

숙소에 오지 않던 동생이 곧 돌아올 거라는 걸.

하지만 자고 일어났을 때 눈앞에 거대한 가슴팍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무리 밀어내도 꿈쩍하지 않는 동생의 쇳덩이 같은 몸에 재하가 낑낑대는 동안 평소에는 드문드문 오던 이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어? 선배, 어디 계세요?”

평소라면 아침 준비로 분주했을 재하가 보이지 않자 지호는 거침없이 재하의 방으로 향했다. 이미 활짝 열린 문으로 인해 방 내부가 모두의 눈에 여과 없이 드러났다.

혼자라면 적당한 크기였을 싱글 침대에 성인 남자 둘이 빠듯하게 껴 자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벽과 재윤의 사이에 낀 재하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바깥으로 빼내며 버둥거리고 있었다.

“왔으면 얘 좀 떼 봐.”

“동생분, 그동안 엄청나게 참더니 저럴 줄 알았지.”

“서재윤 씨에게는 가이딩이 필요합니다.”

“동생이 그간 많이 참았잖아. 오늘 하루는 이해해 줘.”

저마다 재윤을 옹호하는 말에 꽉 끌어안긴 재하만 답답해졌다.

매번 쓸데없는 질투나 하는 지호뿐이었다면 모를까, 이성적인 해일마저 재윤의 편을 들었다. 그간 재하에게 충분한 가이딩을 받아 왔던 에스퍼들은 재윤의 현재 상태를 이해하며 거실로 나왔다.

상황을 모르는 도림만이 도준의 손을 놓고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동생 오빠랑 오빠 자? 나도 잘래.”

“도림아, 밀가루 조물조물 놀이 할래? 냉장고에 밀가루 반죽 있어.”

“응, 할래.”

전날부터 재하가 준비해 둔 재료를 떠올린 도준이 도림을 달래 밖으로 나오게 했다. 시끌벅적한 소리에 재하는 어떻게든 얼굴을 들어 빠르게 지시했다.

“냉장고에 해물탕 준비해 둔 거 있으니까 냄비째로 불에 올리기만 하면 돼. 밀가루 반죽은 수제비처럼 뜯으면 되고, 끓으면 넣어. 밥은 잡곡 1. 쌀 3 비율로 하고…… 아니, 그 전에 동생 놈 좀 떼 주면 안 되겠냐?”

재하의 말에 각자 냄비를 꺼내고 쌀을 씻거나 밀가루 반죽을 꺼내 도림과 조물조물하면서도 마지막에 언급된 동생을 떼는 일엔 비협조적이었다.

“재하, 고춧가루는 어디에 있습니까?”

“싱크대 위에 열어 보세요. 오른쪽이요.”

“선배, 동생분 끝나면 다음 차례는 저예요.”

“다음 같은 소리 할 시간에 얘 좀 떼어 내든가.”

“도림아, 반죽은 얇게 펴야지. 토끼는 이따 찰흙으로 만들고.”

“히잉, 토끼 좋은데…….”

“괜찮아! 도림이 만들고 싶은 거 만들라고 해!”

거실의 혼잡한 상황이 보이지 않는데도 눈에 훤했다. 쌀을 씻지도 않고 밥솥에 넣던 지호가 도준에게 제지당하는 소리를 들으며 재하는 진심으로 동생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졌다.

“진짜 자냐? 이러고 잠이 와?”

그나마 자유로운 손 하나로 재윤의 뺨을 죽 잡아당기는데도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허리를 안은 손이 더 바싹 재하를 끌어당겼다. 안 그래도 재윤의 다리에 엉켜 쥐가 나기 직전이던 재하의 다리가 찌릿찌릿했다. 가이딩이 제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몸만 불편해 재하는 진심으로 짜증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가이딩 부족이라 눈 못 뜨는 거 맞냐?”

반응 없는 재윤의 뺨을 놓고 대신 턱을 붙잡았다. 손에 잡힌 턱이 살짝 경직되는 게 느껴져 재하는 승기를 잡았음을 눈치챘다.

“이런 이런~ 내 동생이 이렇게나 힘들어하는데 형이 돼서 눈치가 없었네. 제복 차림이라 피부가 닿는 것도 아니고 이대론 안 될 텐데.”

재윤의 턱이 더욱 굳는 게 손안에서 느껴지자 재하의 입꼬리가 장난스럽게 올라갔다.

“별수 없지. 2차 가이딩이라도 해서 깨울까나.”

이래도 버틸 거냐는 기세로 느릿하게 다가가는데 티 나지 않게 뒤로 물러서는 재윤의 움직임이 손 아래서 느껴졌다. 누가 이기나 보자는 기세로 재하가 눈을 부릅뜬 채 다가가는데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다가가는 만큼 뒤로 물러서던 재윤이 결국 침대 밖으로 굴러떨어지고 나서야 재하가 의기양양하게 일어섰다.

“거봐, 자는 척하는 거잖아!”

“아냐, 형. 그냥 일어날 타이밍을 못 잡아서…….”

“그게 그거지! 아오, 다리에 쥐 나는 줄 알았네.”

팔다리를 탈탈 털며 침대에서 내려오는 재하를 빤히 보던 재윤이 느릿하게 일어서며 풀 죽은 목소리를 냈다.

“그렇게 싫어하는 줄 몰랐어.”

“꼼짝도 못 하게 하는데 누가 좋아해?”

“미안……. 나, 갈게.”

“가긴 어딜 가? 바빠도 밥은 먹고 가.”

“아냐. 나중에 괜찮아지면 올게.”

나중에. 괜찮아지면.

재하는 재윤이 대놓고 던진 떡밥을 놓치지 않았다. 방을 나가려는 재윤의 팔을 붙잡아 멈춰 세운 재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너 이러고 잠수 타면 다시는 안 본다.”

대답하는 대신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재윤을 재하가 끝끝내 대답을 들으려 끌어당기자 그가 마지못해 의자에 앉았다. 이어지는 재하의 조곤조곤한 잔소리는 거실에 있는 에스퍼들에게 충분히 잘 들렸다. 다들 애써 못 들은 척하는 중에 지호만이 쌀을 설렁설렁 흔들며 진심을 드러냈다.

“뭐야, 왜 둘이 밀당하죠?”

“특별한 형제잖습니까.”

가이드와 에스퍼 형제니 특별할 만도 했다. 거기에 일반적인 형제와도 다른 관계였으니 특수한 상황으로 볼 수도 있었다.

“남들이 보면 연애하는 줄 알겠어요.”

지호의 말에 해일과 도준은 말을 아꼈다. 대충 씻은 쌀을 내려놓은 지호의 눈은 방 안의 형제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언제든 분위기가 묘해지면 끼어들기 위해 지켜봤으나 잔소리 중이던 재하의 입에서 반찬 편식하지 말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경계심은 한풀 꺾였다.

주변의 유혹에도 한결같은 재하의 태도에 평소와 같은 아침 풍경이 이어졌다.

아침부터 얼큰한 해물탕에 술 생각이 나기도 했지만, 다 같이 모인 김에 펼쳐진 푸짐한 상에 마음마저 따뜻해졌다.

묵직하지만 평온한 아침 식사가 끝나자 재윤이 앞으로의 계획을 언급했다.

“아이템을 구할 겁니다. 협회에는 비밀로.”

재하가 후식으로 썰어 둔 과일을 재윤의 입에 밀어 넣어 주자 그가 거절하지 못하고 오물거리는 통에 비장함이 한풀 꺾였다. 부럽다는 듯 입을 벌리는 지호에게는 참외 한 통을 썰지도 않고 물려 주었다.

“선배의 사랑이 너무 커서 힘드네요. 다른 거라면 얼마든지 물어…….”

“좀, 그 입 좀 다물고 과일이나 먹으라고.”

“참여할게. 지금은 동생 데려다주고 바로 다음 일정에 합류해야 해서 자세한 건 나중에 알려 줘.”

“앗, 잠깐. 사과라도 먹으면서 가.”

어린이집 갈 시간이 빠듯해 도준이 도림을 안고 일어나자 재하가 양손에 사과 반쪽을 나눠 들고 따라 일어났다. 에스퍼를 챙기는 가이드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지호 역시 통 참외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아침부터 에스퍼 택시 노릇 해야 해서 먼저 일어날게요. 물론 협회에 비밀로 하고 찾는다는 아이템은 아주 관심 많아요.”

재윤이 어떤 건지도 설명하지 않았으나 도준과 지호는 승낙하며 자리를 떴다. 재윤의 든든한 지지자인 해일은 말할 것도 없이 포크로 키위 한 조각을 콕 찍으며 수긍했다.

“서재윤 씨가 필요하다고 하면 모두가 움직일 겁니다. 다만, 고등급 에스퍼가 함께 움직이는 일이니, 명분은 있어야 하겠지요.”

“명분은 있죠. 골든 터틀로 인해 소진된 아이템을 복구시키기 위한 신규 던전 탐색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협회 몰래 취할 만큼 아이템 크기가 작은가 보군요.”

“네. 그리고 이번에는 형도 함께 들어갈 거예요.”

재윤의 선언에 재하보다 해일이 더 놀랐다. 게이트 안의 환경은 일반인이 들어가기엔 위험 요소가 많았다. 해일의 걱정을 읽은 재윤은 셋뿐인 자리이기에 편안하게 자신이 아는 정보를 언급했다.

“위험 요소는 평범한 수준인데 워낙 넓어서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형을 혼자 두고 며칠이나 자리를 비우느니 우리와 함께 있는 게 나을 거고요.”

이천오를 믿지만, 이영우가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데 자신이 게이트에 발이 묶인 상태로 형을 방치할 수는 없었다.

“에스퍼가 넷이나 되는데 형을 못 지킬 리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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