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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80화 (8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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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못 한 재윤의 감사에 재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갑작스레 훅 하니 치고 들어온 진심에 민망함을 넘어서 가슴이 욱신거렸다.

‘뭐야, 이거. 수학여행 때 촛불 켜고 어머니를 부를 때랑 비슷한 울컥함인데?’

아니나 다를까, 다정하고 감수성 넘쳐 보였던 교사가 눈시울을 붉히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귀한 말씀까지 잘 들었습니다. 바쁘신 두 분을 계속 세워 둘 수 없지요. 인사를 나누셨으니 착석해 주시겠어요?”

교사의 권유에 재윤이 자연스레 의자에 앉자 재하 역시 남은 의자로 향했다. 편하게 등을 기댄 재윤과 달리 재하는 어정쩡하게 걸터앉았다.

“준비되셨으면 손을 올려 주시겠어요?”

무슨 준비인가 싶어 재하가 힐끗 재윤을 쳐다보자 재윤의 손은 얌전히 무릎 위에 올려져 있었다. 재하가 망설이자 교사 쪽에서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알려 주었다.

“가이딩을 할 수 있겠다 판단되면, 가이드 쪽에서 먼저 손을 올려 주시면 돼요.”

“판단의 기준이 뭐…… 너 왜 옷을 벗냐?”

교사에게 질문하던 재하는 재윤이 제복 단추를 풀어 내리는 걸 보고 본능적으로 의자 바깥쪽으로 몸을 물렸다. 어둠 속에서 작은 비명과 박수 소리가 들려왔지만, 가슴까지만 열어 젖힌 재윤의 상반신에 교사가 순식간에 전극 패치를 부착했다. 그제야 조용했던 모니터가 소리를 내며 그래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움직임이 격한 그래프를 본 재하의 입이 벌어졌다. 저러고도 또 멀쩡하게 돌아다닌 동생이 답답하고 속상했다.

“판단은 가이드의 몫이랍니다. 에스퍼가 먼저 강요하거나 불편한 요구를 한다면 참관인에게 바로 말하면 됩니다. 지금은 제가 참관인이니 가이딩에 부적합한 상황이라 여겨지시면 저한테 말해 주세요, 서재하 가이드.”

그래서 재윤이 손을 올리지 않고 얌전히 기다리는 거였구나 싶어 테이블 위에 빠르게 손을 올렸다. 다른 때라면 미루고 싶었겠지만, 재윤의 마나 파동이 좋지 않은 걸 본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재윤은 재하의 손만 빤히 볼 뿐 자신의 손을 올리지 않았다.

“왜? 여기까지 와서 가이딩 안 할 거야?”

“형이 허락해야지.”

“손 올렸으면 됐지. 공손하게 양손으로 바쳐 올리랴?”

재하의 불만에 여기저기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민망하긴 했지만, 재윤의 옆에 설치된 모니터가 가파른 곡선을 그리는 걸 보자 마음이 급해져 손을 까닥거렸다.

“빨리 잡으라고, 손.”

재하의 재촉에도 재윤은 정면을 보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가이드 시현인데 나쁜 예시가 될 것 같아 걱정이네요. 가이드분들은 꼭 지침서대로 진행하셔야 합니다.”

“네~!”

가이드들이 입을 모아 답하자 재윤은 흡족한 웃음을 보였다.

애가 바깥으로 인터뷰하며 나돌더니 사람들한테 말 거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그래 봤자 맨날 가이딩을 피하며 이리저리 도망 다니던 수줍은 동생이었다.

가이딩 하느라 이 남자 저 남자 손을 꽉꽉 잡았던 경험을 살려 동생 손쯤이야 팍팍 잡아 줄 마음으로 손을 펼쳤다. 그제야 재윤이 천천히 장갑을 벗었다.

“뭐냐, 너. 손이 얼룩소가 됐네?”

“형이 소 좋아하니까 잘됐지, 뭐.”

이게 무슨 개소린가 싶어 황당한 눈으로 쳐다보자 동생은 천연덕스럽게 웃을 뿐이었다.

절대 닿지 않으려 피하던 애가 맞나 싶을 만큼 순순히 손을 올려 왔다.

드디어 손이 맞닿자 교사가 가볍게 박수를 치며 집중시켰다.

“1차 가이딩 시현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모니터를 집중해서 봐 주세요.”

재윤은 재하와 손을 잡을 때 견지호처럼 손가락 사이사이마다 제 손가락을 넣는다거나 손등을 쓸어 만지는 애먼 짓은 하지 않았다. 손바닥이 마주 닿고 상대의 손가락이 손등을 살짝 덮어 오는 평범한 접촉이었다.

손바닥을 통해 묵직한 파동이 밀려왔다. 그간 연습을 많이 해서 그런지 손을 통한 가이딩도 상당히 빠르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모니터의 그래프 역시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여러분도 공부해서 알겠지만, 현재 서재윤 에스퍼의 마나 파동은 상당히 위험한 수치랍니다. 보통은 이렇게 되기 전에 가이딩을 해야 했지만, 워낙 업무가 바쁜 데다 등급 재검사를 하느라 마나 사용량이 많아 이런 그래프를 보이는 거지요. 이럴 때 1차 가이딩은 효율이 낮답니다.”

교사의 설명에 재하는 애써 시선을 바닥으로 보냈다. 애초에 1차 가이딩 시현만 하기로 한 데다 멀쩡한 정신으로 2차 가이딩은 절대 할 생각이 없었다. 목을 내주는 것 역시 남들 앞에서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상대는 동생이었다. 그날처럼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면 손을 잡는 것만도 충분히 낯부끄러웠다.

당연히 교사 역시 다른 가이딩을 요구하는 게 아닌, 예비 가이드를 위해 다양한 정보를 언급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래프를 보면 다들 뭐가 다른지 알겠나요?”

“마나 파동 수치가 빠르게 좋아지고 있어요!”

누군가 대답하자 교사는 방긋 웃으며 질문을 이어 갔다.

“그렇죠. 왜 그럴까요?”

“친밀도가 가이딩의 효율을 결정한다고 했어요.”

“바로 그거랍니다. 여기 서재윤 에스퍼와 서재하 가이드가 친밀한 만큼 1차 가이딩인데도 2차 가이딩 못지않은 효율을 보이는 거랍니다.”

이후에 이어진 정보는 재하가 귀를 막고 싶어 할 만한 내용이었다.

황금 거북이의 등껍질 위에서 벌어졌던 짧은 2차 가이딩으로도 재윤이 빠르게 회복하고 바로 이능을 쓸 수 있었던 건 이례적인 상황이라며 에스퍼와 가이드의 친밀도에 대해 강조했다.

“하지만, 친해지라는 거지 착취당하라는 건 아니에요. 대부분은 동일한 가이딩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답니다. 흥분한 에스퍼가 힘으로 덤벼들면 가이드가 위험해질 수밖에 없지요. 가이드 역시 순간의 감각에 취해 선을 넘는 일이 없도록 당분간 참관인이 함께하게 됩니다.”

후유증 이야기에 쪽팔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재하가 교사를 쳐다봤다.

“가이딩에 후유증이 있나요?”

천진하기까지 한 재하의 질문에 애매한 웃음을 보인 교사는 마이크를 손으로 감싸며 작은 목소리로 답해 주었다.

“서재하 가이드는 워낙 바빠서 이후 개정되거나 추가된 가이딩 정보를 모르실 수 있죠. 신입 가이드를 대상으로 후유증에 대한 정보가 새로 갱신되었답니다.”

“그게 뭔데요? 후유증이면 저도 알아야 하지 않나요?”

“아…… 방금 말씀드렸듯이 에스퍼가 흥분하는 것처럼 가이드도 같은 증상이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흥분이라면……?”

재하가 이런 건가 싶어 주먹을 쥐어 보이자 교사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성적 흥분을 보이고 있습니다.”

“……네?”

“물론, 서재하 가이드는 예외라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현도 부탁드릴 수 있었고요.”

“……네에?”

재하의 얼빠진 대답에 당황한 교사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재윤을 보자 그쪽도 할 말이 없는지 입만 달싹이고 있었다.

“제가 너무 늦은 게 아니었으면 좋겠군요.”

“앗, 주도준 에스퍼!”

어색한 분위기에 나타난 도준이 구세주처럼 느껴진 교사가 열렬히 그를 반겼다. 가이드들 역시 도준의 이름과 수호자를 외치며 그를 맞이했다.

재윤이 자리에서 일어나 재하의 뒤에 서고 도준이 자리에 앉자 교사가 패치를 들고 다가왔다. 재윤과 달리 도준은 셔츠만 살짝 당겨 교사가 다소 힘들게 패치를 붙여 주었다.

도준의 조심스러운 행동에 재하는 재윤에게 눈짓했다. 남들 앞에서 가슴팍을 팍팍 풀어 헤치던 동생이 못마땅해서 보낸 시선이지만, 재윤은 재하의 시선을 오해했는지 어깨에 손을 얹어 토닥여 주었다.

마치 괜찮다고, 긴장 풀라는 듯한 손길에 매일 하는 가이딩인데 새삼스럽다 싶기도 했다. 교사의 안내대로 도준의 손을 잡고 가이딩을 시작하며 모니터 소리만 들려오자 재하는 그제야 조금 전 나눈 대화가 신경 쓰였다.

‘후유증이 흥분? 쾌감? 그게 뭔데? 그냥 쪽팔린 게 다 아니었어?’

방금 가이딩 한 재윤이나 가이딩 중인 도준만 봐도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조금 전 마주쳤던 차관이 했던 행동과 말이 후유증과 관계된 내용과 연관 지으면 더욱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제야 재하는 몇몇 가지 일들이 머리를 스쳐 갔다. 가이딩 테스트 때 제 손을 놓지 않고 욕설을 퍼붓던 에스퍼라든가, 얼굴을 노출하지 않고 계속해서 테스트를 이어 갔던 상황들.

왜 그동안 이런 무시무시한 후유증을 알려 주지 않았느냐 따지기에는 매일 가이딩 하는 지인들과 자신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재하가 생각에 빠진 사이 도준의 가이딩이 끝났다. 도준은 정말 바쁜 시간에 짬을 내서 온 건지 곧바로 자리를 떴고,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교사는 가이드들 쪽 조명을 다시 켜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가이드와 에스퍼 간의 상성은 대부분 급을 따라간다고 배웠지요? 하지만 여기 계신 서재하 가이드는 A급 에스퍼는 물론, S급 에스퍼의 가이딩에도 뛰어난 결과를 보일 만큼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답니다. 여러분들도 노력해서 다른 등급의 에스퍼와도 가이딩을 할 수 있도록 힘내 보아요.”

“네!”

“감사합니다, 서재하 가이드님!”

갑자기 시야가 환해져 잠시 찡그렸다 눈을 뜬 재하는 초롱초롱한 가이드들의 눈을 보고 어색해져 재윤을 쳐다봤다. 재윤은 아무렇지도 않은지 작게 부르는 소리에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거나 고개를 까닥여 아는 척해 주었다.

‘아주 연예인이 다 되셨어.’

좋게 말하면 의연한, 고깝게 보자면 멋진 척하는 동생의 모습에 재하의 눈이 점점 가늘어졌다. 제 형제의 대외적인 모습이 보기 괴로워 고개를 터는 재하의 반응에 또다시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예비 가이드들은 준비해 둔 질문을 하지 못하고 함께 웃어 버렸다. 가이드 시현이 예고됐을 때만 해도 그들은 재하에게 꼭 듣고 싶은 답이 있었다.

S급 에스퍼의 유일한 가이드, 페널티가 없는 가이드로 알려진 재하의 소문이 진실인지 물으려 했었다.

그러나 어디로 보나 형제로밖에 보이지 않는 재하와 재윤이 친밀하다가도 거리감을 유지하는 모습에 그 어떤 이상 기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상황에 가이딩 시 생기는 야릇함에 관해 묻는다면 패드립이 돼 버릴 분위기였다. 실제로 두 사람은 엄청난 가이딩 효율을 보이면서도 표정 변화조차 없었다.

질문이 쏟아질 기세였지만, 교사가 능숙하게 정리하며 재하와 재윤이 나갈 수 있도록 도왔다.

실습실 겸 강의실을 빠져나와 한산한 복도로 나온 재하는 곧바로 재윤의 손을 다시 잡으려 했다. 그러자 예전처럼 빠르게 피하며 한 걸음 멀어지는 재윤의 모습에 재하는 기가 막혔다.

“너, 뭐 하냐?”

“형이 갑자기 다가오니까 놀라서.”

“느려 터진 내 손을 놀라서 피했다고?”

재하가 손을 들어 손목의 힘을 빼고 흐느적거리며 움직이자 재윤이 조금 웃다가 뒷걸음질 쳤다.

“급하게 들렀던 거라, 아직 일이 남아서 먼저 가 볼게.”

“등급 재검사하러 온 거라며?”

“게이트 조사하다가 검사받으러 온 거였어서. 진짜 바빠서 그래, 형.”

수상해 보이는 행동에 재하가 지그시 쳐다보자 어디선가 나타난 해일이 재윤의 어깨를 두드렸다.

“늦었습니다, 서재윤 씨. 서둘러야 합니다.”

“엇, 해일 형. 그럼 둘 다 오늘 저녁은 같이 못 먹어요?”

“아쉽지만, 확답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아, 넵. 어서 데리고 가 보세요.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요. 너도 내일은 가이딩 받으러 들렀다 가고.”

곤란해하는 해일을 본 재하는 빠르게 수긍하며 재윤을 향한 잔소리도 잊지 않았다. 이천오가 등을 지켜 주는 재하를 눈에 담은 재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해일과 함께 빠르게 멀어졌다.

얼마 가지 않아 빈방을 찾아낸 해일이 문을 열어 주자 재윤이 빠르게 뛰어든 후 벽에 기대섰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가쁜 호흡을 하며 괴로워하는 재윤의 상태를 걱정한 해일이 거리를 두고 선 채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너무 무리했습니다. 주도준을 경계하는 건 서재윤 씨만 아는 일이니 묻지 않겠지만, 재하와의 가이딩을 피하고 싶어 하면서 직접 나서는 건 부담이 크지 않습니까? 미리 저를 부르셨으면 달려왔을 겁니다.”

“그런 게 아니에요.”

재윤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려 손으로 쓸어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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