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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하의 가이딩 영상이 퍼져 나간 후 사람들 사이에선 장난처럼 가이딩 시도가 이루어졌다.
혹시 네가 각성했고 내가 가이드라면? 이라는 가정하에 회식 자리에서나 친구 사이에 장난스럽게 악수했다가 정말로 가이딩이 돼 버려 에스퍼와 가이드임을 자각한 경우마저 생겨났다. 챌린지처럼 인증 영상을 찍기도 하고, 학교에선 악수가 유행하기도 했다.
전 국민 사이에 빠르게 퍼지며 가이드에 대한 화제가 끊임없이 파생되자 협회 소속이 된 몇몇 가이드가 경험담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거기엔 은밀한 이야기 역시 섞여 있었다. 영상 인증 한다며 실시간으로 방송하던 스트리머가 연인과 가이딩을 시도하다 수상한 신음을 흘리기도 했다.
체력적으로 우위에 선 에스퍼가 평범한 가이드 손에 흐트러지는 모습은 일반인 사이에 즐거움과 공감을 불러왔다. 에스퍼를 연예인처럼 여기는 많은 이들이 팬심까지 더해져 가이드 테스트를 받으러 몰려들었다.
그런 이들의 질문에 엉뚱한 답을 한 서재하는 능숙한 거짓말쟁이거나 일반적이지 않은 가이드였다.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으나 사람들의 오해가 커지기 전, 실제 가이딩 시현 소식에 가이드 지망생의 관심은 최고조에 달했다.
기자 회견에 이어 가이드 지망생과의 짧은 만남 이후 심적으로 지친 재하는 저녁도 거른 채 잠들었다. 그 탓에 자신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퍼져 나가는 걸 모른 채 아침을 맞이했다.
전날의 피로 탓인지 밥할 의욕이 생기지 않아 과자 봉투를 뜯던 재하는 어두운 얼굴로 들어서는 이천오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오늘 일정은 장관급 인사와의 가벼운 면담과 내부 가이딩 시현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정작 이천오가 알린 일정은 재하가 듣기에 별것 아니었다. 장관급이라면 높은 사람일 텐데, 그것 때문에 저렇게 어두운 얼굴을 하나 싶기도 했다.
“많이 무서운가요? 장관이라는 분.”
“공식적인 만남에선 무서워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무서워할 것 없다면서 표정은 그렇지 못했다. 과자 하나를 바사삭 씹던 재하는 두 개뿐인 일정 중 남은 하나도 마저 확인했다.
“시현이라면 사람들 앞에서 가이딩을 하는 거죠?”
“네, 1차 가이딩 시현입니다.”
답을 하는 이천오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그런 이천오의 반응에 재하는 고개를 기울이며 의아해했다.
“이천오 씨, 뭔가 걱정되는 게 있나요?”
“사람들 앞에서 서재하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강요하는 게……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천오는 재하가 높으신 분을 만나는 것보다 가이딩을 하는 게 걱정인 듯했다.
바삭바삭 과자 씹는 재미에 두 개를 한 번에 입에 넣은 재하가 가볍게 물었다.
“몇 명이나 해야 하는데요?”
천진하기까지 한 재하의 질문에 이천오의 표정이 더 안 좋아졌다.
이천오는 가이드인 재하를 잘 보필하고자 매일 연구실에 들러 추가된 자료를 확인했다. 재하의 정보는 받을 수 없었지만, 2차 각성자 모집 때 가이드로 각성한 이들의 데이터는 얻을 수 있었다. 가이딩 시 에스퍼와 가이드가 성적인 자극을 받는다는 건 기정사실화돼 있었다. 가이딩실을 외부에서 볼 수 없게끔 만든 이유가 있었다.
“아마도 오후에 참여 가능한 에스퍼와 시현한 후, 시간이 된다면 지원자와 짧은 가이딩이 있을 듯합니다.”
“그 정도면 충분히 가능하죠. 잠도 충분히 잤고.”
“서재하 가이드님은 사람들 앞에서 가이딩을 해도 괜찮으십니까?”
아무래도 다 큰 남자끼리 수많은 사람 앞에서 손을 잡는 건 쑥스럽긴 했지만, 비상시에 동생과 2차 가이딩을 해 버려서 그런지 이 정도는 할 만하다 싶었다.
“아무래도 좀 부끄럽죠.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요. 에스퍼에겐 가이드가 필요하니까요.”
재하가 타인을 위해 많은 걸 양보하는 모습을 이천오는 곁에서 여러 번 목격했다. 재윤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주도준의 가족을 재하가 보살피고 있었을 것이다.
이천오는 그런 재하가 안쓰러우면서도 존경스러웠다.
“지켜 드리겠습니다.”
“든든하네요. 참, 과자 드실래요?”
“괜찮습니다.”
평온한 오전이 지나가고 점심이 가까워질 때쯤.
국방부 장관과 더불어 국가 기관의 높으신 분들이 협회를 방문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주요 에스퍼들은 외부에 나가 있어 그들만큼 최근 언급이 잦아진 재하가 제복을 챙겨 입고 밖으로 향했다. 협회 내부뿐 아니라 외부까지 마나 억제기를 설치한 덕에 안전을 걱정하지 않고 오랜만에 스스로 걸어 나갈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서재하 가이드.”
“아, 네. 안녕하세요.”
“오늘도 힘내세요, 가이드님!”
“네, 넵.”
다만 로비를 걸어 나가는 짧은 시간조차 재하를 알아본 많은 이들의 인사에 그의 고개가 쉼 없이 숙어졌다. 게다가 바깥으로 나가자 펼쳐진 풍경에 여기가 협회인지 시장통인지 구별이 되질 않았다.
“로비 개방 시간까지 한 시간 남았답니다. 번호표 없는 분들은 내일 다시 방문하세요.”
“기다리기 지루하시죠? 출출한 속을 강원도 옥수수로 달래 보세요.”
“시원한 생수가 천 원~ 콜라는 2천 원~”
“에스퍼 배지 팝니다. 단돈 5천 원!”
성수기 관광지를 방불케 하는 장사치와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이 공터 바깥까지 이어졌다.
“이…… 이게 다 뭐야?”
마수에 대한 불안과 에스퍼에 대한 동경, 상대적으로 안전해 보이는 가이드의 존재까지. 사람들의 관심은 협회 방문으로 이어졌다. 이미 가이드 테스트를 위해 많은 이들이 협회를 방문한 상황에 내부로 들어갈 수 없는 이들은 가끔 오가는 에스퍼나 협회 건물 구경에 흥미를 느껴 떠나지 않았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장사치가 빠질 수 없으니 당연히 여기저기 좌판이 벌어졌다. 협회는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지 단속조차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마수 열쇠고리 하나 들이세요. 행운이 굴러 들어올 겁니다.”
“앗, 골든 터틀 하나 주세요.”
“저도 거북이요!”
황금 거북이 열쇠고리를 들고 흔드는 상인의 텐션은 최고에 달했다.
“상술 미쳤네…….”
흔해 빠진 거북이 열쇠고리가 마수 열쇠고리랍시고 팔려 나가고 있었다.
몰려드는 사람 때문인지 협회 입구에 덧문이 생겨 있었다. 덕분에 바깥을 구경하기 쉬웠으나 시간이 다 돼 가는데도 장관 일행은 보이지 않았다.
바쁜 일정 탓에 늦을 수도 있지 여기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하늘의 헬기가 눈에 들어왔다.
“아, 설마.”
그제야 통신기를 통해 왜 아직도 옥상에 오지 않냐며 재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애초에 마중을 나가라고 하면서 장소를 지정 안 한 게 누구냐 싶으면서도 재하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내달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발을 동동 구르다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 나갔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도 긴장한 탓인지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재하가 숨을 몰아쉬며 옥상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전해진 소식과 달리 여러 명이 아닌 차관 혼자뿐이었다.
“우리 장관님께서 워낙 바쁘신 분이라…… 제가 대신 온 걸 어찌 아시고 마중도 늦어졌나 보군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자신의 귀에도 똑똑히 들린 비꼬는 차관의 말에 재하는 황급히 사과부터 박아 넣었다. 이미 올라와 있던 가드와 직원들이 동시에 돌아봤다. 한꺼번에 쏠린 이목이 부담스러웠지만, 날렵한 인상의 중년인이 호의 가득한 웃음을 보이자 잠시 멈췄던 재하의 걸음이 빨라졌다.
“이야~ 소문의 가이드가 직접 마중을 오셨군요.”
어떤 소문인지 몰라도 호의적인 미소를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됐다.
“뺨이 발간 게 아주 보기 좋네요.”
“제가 장소를 착각해서,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아직 체계가 잡히지 않아서 그런지 상식이 조금 부족한 거 같군요.”
누가 장관급은 무조건 헬기로 날아다니는 걸 상식으로 안단 말인가. 게다가 도착한 건 예정과 달리 차관이었다.
거기에 호의적인 미소는 꾸밈이었던 건지 차관의 살살 긁는 태도는 거만하기 그지없었다.
‘그럼 이쪽은 모르쇠로 나가지, 뭐.’
“네, 제가 모르는 게 많아서요. 잘 아는 에스퍼나 협회장이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필 저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가이드가 나와 버렸네요. 부족한 저 때문에 일이 꼬인 거니까 오해는 말아 주세요.”
어차피 차관이든 장관이든 두 번 볼 사람도 아니었다. 생긴 것만 보면 깐깐한 교수님 스타일이었기에 그저 납작 엎드리자 싶었다. 그런 재하를 유심히 지켜보던 차관이 손을 내밀었다.
“주제를 아는 사람은 좋아합니다. 반갑군요.”
“하하, 네.”
아마도 이 자리에 재윤이나 해일이 있었으면 자신을 뒤로 감추며 불쾌함을 드러냈을 만큼 차관의 태도는 거만했다. 차라리 자신이 나와 다행이다 싶었던 재하는 차관과 악수했다.
“호오…….”
가볍게 악수하려던 재하는 상대가 조금 강하게 잡아 오는 통에 손을 뺄 타이밍을 놓쳤다. 원래 악수가 좀 긴가 싶어 가만히 있는데 엄지손가락으로 손등을 쓸어 오는 감각에 소름이 끼쳤다.
“자, 장관님?”
“차관입니다. 아직은.”
“아, 넵. 그런데 손 좀…….”
“급이 높은 에스퍼만 상대한다죠?”
“네?”
악수한 채로 차관이 한 걸음 다가오자 거의 맞붙을 만큼 가까워졌다. 친한 친구가 아니고서야 이만큼 가깝게 설 이유가 없었기에 거부감이 들어 고개를 젖히자 차관의 뱀처럼 차가운 눈이 재하를 들여다보았다.
“각성은 진즉 했는데 시간이 나질 않아서 오늘 각성 등급 테스트도 받을 겸 장관님 대신 방문했지요. 그런데…….”
점점 목소리가 작아져 비밀이라도 말하려는 것 같아 재하는 거부감이 드는데도 귀를 기울였다.
“가이드랍시고 들이댄 잡것들이랑 다르게 아주…… 진하네요. 제대로 먹어 보고 싶을 만큼.”
명백한 의도가 담긴 속삭임에 재하는 불쾌감을 느끼며 뒤로 물러났다. 그 와중에 의도적으로 숨을 불어 넣은 건지 목덜미를 따라 소름이 오소소 올라와 견딜 수가 없었다.
게다가 상대가 일반인인 줄 알고 가이딩을 관리하지 않고 있던 터라 빠르게 차단했다. 갑자기 사라진 가이딩에 차관의 웃음이 지워졌다.
“뭐 하는 거지? 당장 다시 시작해.”
“이거, 놓으세요.”
재하가 필사적으로 손을 털어 내려 했지만, 각성자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이천오가 나서 차관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자 차관의 뒤에 서 있던 경호원 역시 나서 이천오를 붙잡았다. 사람들이 한데 엉킨 상황에 이천오가 빠르게 경고했다.
“가이드에게 위해를 끼치면 특별법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아직 통과도 안 된 법 말인가? 내가 법무부 장관과 무슨 사이인지나 알고 하는 소린지 모르겠군.”
“여기는 에스퍼 협회입니다. 법보다 무엇이 더 가까운지 말씀드려야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