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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77화 (77/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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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가는 내내 재하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앞으로 지호랑 겹치지 않게 오시는 게 좋겠어요. 길마 형은 너무 정직해서 나쁜 물도 쉽게 드는 거 같으니까.”

“오해입니다. 재하에 대한 제 마음은 진심입니다.”

“저도 둘이 따로 오라는 거 진심이에요. 지호는 그나마 장난인 티라도 나지, 길마 형이 이러니까 진짜…… 아오, 저 닭살 돋은 거 보여요?”

재하가 팔을 내밀고 제복 소매를 끌어 올렸다. 소름 끼쳤다는 의미로 한 행동이지만, 해일의 눈에는 매끈한 피부밖에 보이지 않아 그는 솔직히 답했다.

“깨끗하고 부드러워 보입니다.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예? 아, 아뇨. 그냥 비유였어요.”

슬그머니 소매를 내리는 재하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어딘지 모르게 가벼워진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진지한 해일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곤란했다. 하지만 해일은 한결 친해진 것 같아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는 게 정답이라 여겼다.

“할 수 있다면 제가 재하의 가드가 되고 싶었습니다.”

“해일 형도요? 에스퍼 일이 많이 힘들긴 한가 봐요. 이천오 씨도 기껏 각성해 놓고 계속 가드를 한다는 거 보면.”

다시 호칭이 돌아온 재하에게 해일은 웃는 얼굴로 진심을 알렸다.

“재하와 함께 있고 싶어서입니다.”

“네네. 숙소에 가면 가이딩 해 드릴게요.”

함께하자는 말이 가이딩으로 연결되는 재하의 생각은 틀린 게 아니었다. 해일 역시 재하와 가장 가까워지고 싶은 이유에 가이딩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라면 다른 가이드도 존재했다. 오늘만 해도 가이드 테스트를 받기 위해 협회 바깥까지 줄을 섰다. 그들 중 해일과 맞는 가이드도 존재할 터.

하지만 해일은 다른 누구보다 재하와 함께하고 싶었다. 에스퍼 권해일도, 대성의 사생아도 아닌, 자신을 게임 속 길마로 대하며 장난스럽게 구는 재하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재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고 싶으니 노력하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징글징글한 동생 놈이 제일 가까이 사네요.”

언제나 핀트가 조금 어긋난 재하의 반응조차 귀엽게 느껴져 해일은 웃었다. 해일의 잔잔한 웃음은 재하를 안심시켰다.

“그런데 오후 일정도 있어요?”

“가이드 테스트 받으러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벼운 독려 연설을 해 주시면 됩니다.”

이번에도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었다. 소시민의 삶을 살아온 재하에겐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윽, 아까처럼 막 덤벼드는 분위기는 아니겠죠?”

“조금 전이 기자 회견이었다면 이번은 팬 미팅 분위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간접으로 연예인 체험을 하는 날이구나 싶어 재하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런데 가이드 검사를 받겠다는 놈들은 왜 이렇게 많아.’

많아 봤자 달려드는 수십 명의 기자보다야 적겠지 했던 재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계단식 원형 강의실 형태의 넓은 공간이 빈틈없이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 맨 뒤의 겹겹이 서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재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이 정도면 미리 연설문을 준비할 시간을 주든가.’

사실 시간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오후가 되기 전, 해일과 손을 잡고 가이딩을 하며 오후에 있을 가이드 테스트에 관해 대화를 나누기는 했다.

해일은 내내 괜찮다, 곁에 있겠다, 평소처럼 말하면 된다며 재하를 안심시켰다. 확실히 해일은 지나치게 신뢰를 주는 유형이었다. 그가 괜찮다고 하면 정말로 괜찮을 것 같았다.

지금도 단상으로 오르기 전, 긴장 탓에 연신 손을 쥐었다 펴는데 자연스럽게 잡아 오는 손은 가이딩을 하지 않아도 안정감을 주었다. 남자랑 손을 잡는 건 이제 일상이 돼 버려 거부감도 들지 않는다는 게 한편으로는 씁쓸하면서 든든하기도 했다.

남들 보는 앞에서 뽀뽀도 했는데 얼굴 보이고 말 몇 마디 하는 게 뭐 어떠냐, 하고 마음을 다잡으며 한 걸음 내디뎠다.

“서재하다.”

“서재하 가이드!”

“뭐야, 실물이 훨씬 귀엽잖아.”

웅성거리던 이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자신에게로 향하자 기껏 내디딘 한 걸음을 되돌리고 싶어졌다. 긴장해 머뭇거리는 재하를 위해 해일이 한 걸음 앞서자 더 큰 소란이 일었다.

“권해일 에스퍼다!”

“꺅! 오빠, 저 좀 봐 주세요!”

“와, 잘생겼다. 진짜 배우 아냐?”

“해일 오빠, 절 가이드로 삼아 주세요!”

어쩐지 가이드 테스트 지원에 여성 비율이 높다 했더니, 가이드 자체보다 에스퍼와의 접점에 더 관심이 큰 이들이 많아 보였다. 목적이 에스퍼라고 생각한 재하의 마음은 오히려 편해졌다.

해일을 따라 단상에 올라가자 교수님이 보던 학생들이 이런 모습이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떠올랐다.

해일은 먼저 올랐지만, 재하를 마이크 앞으로 이끌었다. 아무래도 가이드를 위한 자리이니 재하를 챙기는 게 당연했다.

재하가 마이크 앞에 서자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여전히 해일을 보고 손 하트를 날리거나 핸드폰을 꺼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가드에게 저지당했다.

사람들의 집중이 부담스러웠기에 재하는 빠르게 해치우자 싶어 시선을 내리고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서재하…… 가이드입니다.”

“안녕하세요, 가이드님!”

여전히 가이드라는 말은 입에 붙질 않아 어색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재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도 그의 가이드 영상을 닳도록 보고 협회 홍보를 통해 호감을 느낀 이들이 대다수였다.

해일의 말대로 팬 미팅 분위기에 가까웠다. 팬이라기에는 호기심과 가벼운 호감을 가졌을 뿐이었지만, 재하는 긴장이 아주 조금은 풀어져 살짝이지만, 웃을 수 있었다.

“귀여워요!”

“작고 소중한 가이드 지켜!”

“키 몇이에요?”

우르르 쏟아지는 질문에 재하는 살짝 발끈하며 마이크를 꽉 잡았다.

“저, 별로 안 작거든요. 평균인데 해일 형이 너무 큰 거예요.”

“맞습니다. 재하는 귀엽지만, 작은 건 아닙니다.”

“하하, 해일 형이 진지하게 말해서 그렇지, 농담하는 거예요.”

“전 언제나 재하에게 진심입니다.”

“형, 제발 좀.”

진지하게 팩트를 날리는 해일과 질색하며 손사래를 치는 재하는 지켜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영상을 통해 볼 때는 다른 세상 사람 같던 에스퍼와 가이드가 말장난하며 티격태격하니 보다 가깝게 느껴졌다.

항상 교과서적인 모습만 보였던 해일의 다른 면을 보게 된 가이드 지망생들의 눈빛이 더더욱 빛났다. 가이드가 되면 에스퍼와 친밀해지는 게 기정사실처럼 느껴졌다.

재하는 단상에서 너무 개인적인 수다를 떤 것 같아 마이크를 바로 했다.

“오늘 가이드 테스트 하러 오셨다고 들었어요. 여러분들을 응원하러 왔는데…… 제가 뭐라고 이런 자리에 서게 된 건지 민망하네요.”

재하가 진지해지자 장난스럽게 외치던 목소리도 잦아들었다. 그들의 동기가 무엇이든, 이곳은 가이드 테스트를 받으러 온 자리였고, 가이드의 기준이 된 인물이 직접 마이크를 잡은 상황이었다. 사람들이 진지해지자 재하 역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었다.

“혹시 질문 있으시면 아는 선에서 답해 드릴게요.”

“서재하 가이드님은 어떻게 각성하셨나요? 대성의 지원이 있었던 건가요?”

다행히 이번에는 농담 섞인 질문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질문에 재하는 해일을 힐끗 본 후 차분히 답하기 시작했다.

“전 어느 날 갑자기 가이드가 돼 있었기에 정확히 언제 각성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리고 가이드도 각성하는 건지 몰랐고요. 대성의 지원은…… 아, 여기 숙소가 정말 편안해요. 직원 식당도 매일 메뉴가 바뀌고, 고기도 자주 나와요. 김치가 진짜 맛이 진하고 시원해서, 음…… 김치말이국수가 잘 어울리는데…… 저녁은 그걸로 할까…….”

마지막 즈음에 혼잣말이 돼 버린 재하의 답에 경청하던 이들에게서 하나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행히 이후로도 답하기 어렵지 않은 질문이 이어졌다. 재하가 재윤을 가이딩 할 때 드러난 빛 무리에 대해서도 질문이 있었지만, 재하도 모르기에 정보가 생기면 알려 주겠다 답하고 지나갔다.

“가이딩 할 때 특별한 느낌이 있나요?”

꽤 시간이 흘러 마무리할 때가 되어 마지막 질문을 받자 해일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재하는 덤덤하게 답을 이어 갔다.

“평소엔 아무 느낌이 없어요. 하지만 가이딩을 처음 받는 에스퍼는 마나 파동이 뒤엉켜 있어서 그런지 손을 잡으면 전기가 오르는 것 같아요.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있긴 해요.”

“많이 아픈가요?”

“좀 아프긴 한데, 에스퍼가 받아 왔을 고통에 비하면 참을 만하다고 생각해요.”

웃고 떠들던 분위기가 조금 숙연해지는 듯하더니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가 질문을 덧붙였다.

“아는 에스퍼가 그러는데, 되게 이상한 기분 든다고 하던데요.”

“이상하긴 하죠. 전기침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아플 때도 있으니까.”

“아뇨, 그런 게 아니고요. 성적으로…….”

이상한 기분을 운운할 때부터 해일은 눈짓으로 가까이 있던 가드에게 신호를 보냈다. 가드는 재빠르게 후드 쓴 남자에게 다가가 귓속말했다. 머뭇거리던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이며 가드와 함께 밖으로 향했다. 불편해진 분위기에 재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상황을 마무리 지으려 애썼다.

“성적이요? 해일 형, 가이드 테스트에 성적도 매겨요?”

“……등급이 적용되기는 합니다. 이제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성적은 아니고 등급은 있다고 하네요. 답변이 도움이 됐길 바랄게요. 다들 힘내세요. 파이팅!”

갑자기 서두르는 해일의 행동에 재하는 빠르게 마무리 인사를 하고 단상에서 물러섰다. 다행히 사람들은 커다란 박수로 떠나는 재하를 배웅해 주었다.

몇몇 이들은 후드 쓴 남자가 하는 말을 이해했지만, 재하가 보인 순수한 반응에 호감과 더불어 의아함을 느꼈다. 그들이 인터넷을 통해 긁어모은 자료 중 꽤 신빙성 있는 가이딩 후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밀 엄수 조항에도 가이드 측에는 강제성이 없어 신입들이 유출한 후기들이 있었다.

가이딩 시 에스퍼만 야릇한 욕구를 느끼는 게 아니었다. 가이드 역시 영향을 받았고, 이에 불필요한 2차 가이딩까지 쉽게 이어질 수 있어 참관인이 주의를 시키는 일이 생겨났다.

재하만이 모르는 가이딩의 특별한 성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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