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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75화 (75/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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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들부들 떨리는 손에서 국자를 내려놓으며 자신도 인내심이 많이 늘었구나 싶었다.

“뭔 개소리를 사람 말처럼 하냐?”

“2차 가이딩이요. 저랑 먼저 하는 거 아녔냐고요.”

질투하는 것처럼 투덜거리면서도 끌어안고 있을 뿐이라 장난에 가까웠다. 굳었던 재하가 아무렇지 않게 국그릇을 내밀자 지호는 툴툴하면서도 식탁으로 옮겼다. 지호가 떨어지자 한결 편안해진 재하가 평소처럼 가볍게 굴었다.

“비상사태였잖냐.”

“그럼 지금이라도 해 주세요.”

“너 바쁘다며. 밥이나 먹고 빨리 가라.”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밥을 가득 퍼서 내 주는데 정작 지호는 받지 않고 눈을 흘기며 서운한 티를 냈다.

“선수금만 주고.”

여자들한텐 먹힐지 몰라도 재하 입장에선 주걱을 날리고 싶은 걸 참는 게 최선이었다.

“야, 위급 상황이었잖아. 인공호흡 한 거야.”

“누가 인공호흡을 그렇게 해요? 선배는 그렇다 쳐도 동생분, 의식 없는 척 대놓고 선배한테 키스…….”

“악! 말하지 마! 간신히 뇌에서 삭제해 둔 걸 되살리게 하지 말라고!”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부정하는 재하의 행동에 지호가 손바닥을 가볍게 치며 다가섰다.

“선배, 잊고 싶으신 거면 제가 방법을 아는데요.”

“뭔데? 머리를 세게 쳐서 기억을 날리는 거면 소용없어.”

차마 벽에 머리를 박아 봤다고 이실직고하지는 못하고 재하가 이마를 문지르자 지호는 생긋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다른 기억으로 덮으면 되죠. 제가 제대로 새로운 기억을 새겨 드릴게요.”

잠시나마 개호에게서 정상적인 답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경멸을 고스란히 드러낸 재하의 눈빛에 풀 죽은 지호는 얌전히 식탁 앞에 앉았다. 까불다가도 선을 넘기 전에 알아서 물러서는 지호였기에 쫓겨나는 건 간신히 면했다.

이후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고 이야기 나누러 온 해일에게도 가이딩을 한 후 밥을 먹여 보냈다. 도준과 도림은 저녁에 함께 불러서 먹이고, 짧은 가이딩 후 간식까지 들려 보냈다. 종일 거절하던 이천오에게마저 퇴근할 때 붙잡아 야식으로 먹였다.

주변 사람 모두 밥을 먹였는데 정작 챙겼어야 할 동생만이 보이지 않았다.

“와, 정말 이래도 안 온다고?”

이러다 또 가이딩 부족으로 힘들어지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불안해졌다. 본인이 재윤을 피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건 까맣게 잊은 걱정이었다.

재윤이 숙소에 돌아오지 않는 건 그만큼 바쁘다는 의미였다. 잠은 자나 싶을 정도로 TV에선 재윤의 새로운 모습을 시도 때도 없이 보여 주었다.

『서재윤 에스퍼에게 위험한 순간이 있었다는 건 인터넷 방송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부족한 모습을 보여 드린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아닙니다. 저도 영상을 봤는데 눈물이 다 찔끔 났지 뭡니까. 그 덕에 막연하게만 알려졌던 가이드와 가이딩에 대해 국민의 관심이 지대한데요.』

“으아, 관심 좀 그만.”

가끔 가이딩에 관한 질문이 나올 때면 재하는 귀를 막고 쥐구멍에 숨고 싶어졌다. 그러나 덤덤한 재윤의 인터뷰 모습에 자신만 민망해하는 건가 싶어 조금씩 어색함이 풀렸다.

무작정 피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자 자신도 무언가 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특히 시민 인터뷰나 협회 주변의 북적이는 현장을 보여 줄 때면 그들이 보이는 호의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언제까지 숙소에서 친한 사람들만 만나며 지내면 안 될 것 같았다.

재하의 이런 초조함은 서류와 새 제복을 들고 문을 두드린 이천오로 인해 사그라들었다.

“서재하 가이드님.”

“……뭔가 호칭이 길어졌는데요.”

“오늘부터 가이드로 참여하실 일정이 있습니다. 대외 활동 시 호칭에 주의하라는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손에 든 거 제 건가요?”

“네, 갈아 입고 참석해 주시면 됩니다.”

이천오는 여전히 무표정했으나 상기된 뺨은 숨길 수 없었다.

“저기, 뭔가 이천오 씨가 제 개인 비서처럼 행동하시는 거 같은데요.”

“전담 가드는 일종의 매니저와 같다고 하더군요. 개인 비서 역시 맞다고 봅니다.”

어찌 보면 기뻐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이천오의 이해 못 할 호의에 재하는 다시금 물었다.

“D급 에스퍼가 되셨는데 정말 이대로 지내는 거 괜찮으세요?”

재하는 진심으로 이천오가 아까워서 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에 이천오의 상기된 얼굴에 풀 죽은 기색이 드리웠다. 제가 한 말 때문에 분위기가 처지는 것 같아 재하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와, 제복 다시 봐도 멋있네요. 입고 나올게요.”

“네, 아직 여유 있으니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재하는 자신의 일정을 꿰고 있는 이천오에게 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문은 열어 두었다. 들어오라고 해도 밖에서 지키고 있으니 아예 열어 둔 거였다.

방으로 들어가 흰색 제복을 제대로 입어 본 재하는 거울에 비친 모습이 제법 그럴싸해 슬쩍 포즈를 잡아 보았다. 어깨에 왜 달려 있는지 모를 케이프의 존재는 좀 민망했지만, 견장이나 배지는 그럴싸했다. 소매의 단추 하나까지 협회 문양이 들어가 있어 신경 쓴 티가 났다.

모자도 써야 하나 이리저리 만져 보다 일단 머리를 어떻게 해야 하지 않나 고민하며 거실로 나오자 검은 제복을 입은 멋들어진 뒷모습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울을 보며 차올랐던 자신감이 삽시간에 사라질 만큼 너른 등판과 각진 어깨에 가자미눈을 하고 있자니 상대가 곧바로 뒤돌아섰다. 언제봐도 끝내주게 잘생긴 해일이 완벽한 세팅을 갖추고 있었다.

“재하, 데리러 왔습니다.”

“이천오 씨가 있는데요?”

이천오도 각성자이니 굳이 이동할 때 다른 에스퍼가 붙지 않아도 되지 않나 싶어 꺼낸 말에 해일은 은은한 미소로 답했다.

“대중 앞에 나서는 게 처음이니 혼자는 곤란할 겁니다. 제가 돕겠습니다, 재하.”

“윽,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해요? 횡설수설할 거 같은데요.”

“답하기 힘든 건 제가 하겠습니다.”

든든한 해일의 제안에 재하는 용기를 얻었다.

에스퍼가 쓰러지고 가이딩 후 일어난 걸 수많은 사람이 보았을 터. 가이드와 가이딩에 대한 호기심을 협회가 풀어 줬다 하더라도 당사자가 나서야 진정성이 느껴질 것이다.

재하는 믿음직한 해일을 따라 숙소를 나섰다. 등 뒤에는 조용하지만, 재하를 위해 언제든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일 이천오가 따라붙었다.

“안전을 위해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정식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면 그들의 호기심이 해소될 거고, 그렇게 되면 이런 식으로 재하까지 나서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겁니다.”

“인터뷰도 해야 하나요?”

“어려운 건 제가 답하겠습니다. 재하가 힘들다면 인사 후 숙소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후아, 긴장은 되는데 든든하네요.”

항상 인터뷰와 연설을 도맡던 해일이었기에 그를 향한 믿음은 당연했고, 굳건했다. 다만, 그 모든 일이 재하의 존재 여부에 따라 달라질 거라곤 오늘이 되기 전까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드넓은 강당 같은 공간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사회자로 보이는 사람이 에스퍼 협회의 이념과 대성에 대한 홍보를 줄줄이 읽던 것을 멈추고 ‘가이드 서재하’를 소개하는 순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해졌다.

단상으로 오르기 위해 계단 몇 개를 밟아 올라가는 소리가 울려 퍼질 만큼 모두가 집중했다.

정식으로 사람들 앞에 나선 최초의 가이드를 보고자 집중하느라 숨소리를 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단상에는 그간 보이지 않던 재윤이 먼저 올라갔고, 그 뒤에 해일이 재하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혹여나 발이 꼬여 넘어질까 봐 걱정하던 재하를 위한 배려였으나 마치 에스퍼가 가이드를 에스코트하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권해일의 신사적인 태도가 더욱 그런 분위기를 만들었다.

다른 때였다면 재윤을 보자마자 어디서 또 외박하냐며 쿡쿡 찔렀을 텐데 많은 사람 앞에 서려니 긴장되어서 앞만 쳐다보는 게 최선이었다.

해일이 자연스럽게 소개를 이어 갈 수 있도록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바쁘실 텐데 귀한 시간 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모두가 궁금해하시던 가이드를 소개하고자 마련한 자리입니다.”

마이크 앞으로 자신을 끌어당기는 대신 스탠드를 끌어 내려 높이를 맞춰 주자 긴장했음에도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자신이 실수해도 해일이 도와줄 거라는 믿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게 했다.

“안녕하세요, 서재하입니다. 그…… 제가 가이드 맞아요.”

최선을 다해 평범하게 쥐어짜 낸 목소리는 앞서 진중했던 해일의 것과 극명하게 비교됐다. 재하의 살짝 흔들리기까지 한 목소리에 흰색 제복과 빛 무리를 일으키던 가이딩 장면, 거기에 해일이 번쩍 안아 들었을 때 가벼이 들리던 모습까지 겹치며 작고 무해한 데다 순해 보이기까지 했다.

먹잇감을 발견한 기자들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서재하 가이드! 이쪽, 이쪽 좀 봐 주세요!”

“네, 넵.”

“손 좀 흔들어 주세요!”

“손이요? 이렇게요?”

“저희가 받은 자료에 따르면 가이딩에 단계가 있다고 하는데 직접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처음에는 순서나마 지킬 것 같던 기자들은 재하가 어리바리하게 답을 해 주는 순간 개떼처럼 달려들어 질문을 쏟아 냈다.

“서재윤 에스퍼와 권해일 에스퍼 사이에 서 주세요!”

“혹시 질병에도 효과가 있나요?”

“친밀도에 따라 가이딩 효율이 다르다는데 누구와 가장 효율이 높으십니까?”

대답할 틈도 없이 질문이 몰아쳤다. 인터뷰고 뭐고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었다.

아무리 기자들이 달려들어 봤자 단상 아래였고, 이미 이천오를 비롯해 다른 가드들이 막아서고 있었다. 흉흉한 기운을 풍기는 가드를 뚫고 올 기자는 없었으나 해일 역시 이미 재하를 끌어당겨 언제든 뒤로 빼낼 수 있도록 보호했다. 그러면서 재하를 대신해 다시 마이크 앞에 섰다.

“무례하게 구신다면 이대로 종료하겠습니다.”

“권해일 에스퍼! 국민은 알 권리가 있습니다!”

“저에겐 이 사람의 보호가 최우선입니다.”

국민을 위한, 국민의 에스퍼였던 권해일의 갑작스러운 폭탄선언에 모두가 정지했다. 재하 역시 놀란 표정 그대로 굳어 해일만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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