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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오해 마세요, 인명 구조입니다.
마나 한 줌 안 느껴지는 일반인 서재하의 발언은 에스퍼들을 어이없게 만들었다. 오히려 마나를 못 느끼기에 용감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일반인과 서재윤 사이를 방벽처럼 막아선 2세대 에스퍼들은 등을 찌를 듯이 마구잡이로 튀고 있는 마나의 흐름이 무서웠다. 당장이라도 멀리 도망치고 싶은데도 해일이 재윤을 붙잡고 있기에 물러설 수 없었다.
에스퍼들이 망설이는 걸 알아챈 재하는 주저 없이 그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방벽처럼 늘어선 에스퍼를 지나쳐 안쪽으로 향하자 바닥에 누워 있는 재윤이 보였다.
해일은 재하를 보고 망설였다. 재윤의 상태를 보면 가이딩이 필요했지만, 그가 그토록 거부했던 재하와의 가이딩을 하게 둬도 될지 판단을 내리기 힘들었다.
“재하.”
재하의 이름을 부른 게 해일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형제간의 일에 한쪽 편을 들기엔 재윤도 재하도 둘 다 걱정됐다.
재하의 시선이 재윤의 목까지 이어진 새까만 흔적을 따라 움직였다. 팔 한쪽을 내놓은 절반짜리 탈의 상태에 다른 팔은 보이지 않았지만, 붕대에 감긴 장갑 낀 손은 안 봐도 뻔했다. 눈에 보이는 팔과 같은 상태일 터.
“가이딩 할게요.”
재하는 망설이지 않았다. 고민하던 해일은 그런 재하의 행동을 막을 수 없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재윤의 까맣게 변한 손에 재하가 손을 겹치자 전기라도 통한 것처럼 손끝이 튀었다.
‘아파.’
실제로 통증이 일 만큼 재윤의 상태는 처참했다. 이전에 폭주 직전의 지호와 맞닿았을 때보다 심했다. 그저 손을 잡은 것뿐인데도 속이 울렁거릴 만큼 거친 마나 파동이 느껴졌다.
이렇게 엉망이 될 때까지 가이딩을 거부한 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멍청이. 미련퉁이. 아파 뒈지겠네, 진짜.”
재윤을 향해 툴툴대는 재하에게 변명이라도 하려던 해일은 그의 얼굴을 보고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미친 거 아냐? 이렇게 될 때까지 뭔 생각으로 피해 다녔냐고. 정말…….”
구시렁대는 재하의 뺨으로 후드득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워낙 아무렇지 않게 투덜대는 바람에 우는 걸 알아채는 게 늦었다.
“이게 다 뭐야. 팔이 새까맣게 변했잖냐.”
“크윽…….”
“아, 아파? 정신이 좀 들어?”
화들짝 놀라 재윤을 불러 봤지만, 반사적인 신음인지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좀만 기다려 봐. 개호 오면 금방 데려가서 다른 가이드들도 도와줄 거야. 그러니까…….”
“흐으…… 큭…….”
갑작스레 몸을 웅크리는 재윤의 손이 재하를 꽉 붙들었다.
우둑.
손의 뼈가 으스러지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고통스러워 재하는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걸 알아챈 해일이 재윤의 손목을 붙잡자 재하가 고개를 저었다.
“괘, 괜찮아요.”
“다칩니다, 재하.”
“절대 안 놓을 거니까, 내버려 두세요.”
팔을 들어 눈물을 벅벅 닦아 낸 재하는 재윤의 어깨와 목 주변에 손을 얹었다. 가이딩을 할 때면 종종 여길 물어 대던 에스퍼로 인해 효율이 높나 싶어 손을 대 보았는데 손바닥끼리 맞닿은 것과 비슷했다.
맞닿은 손을 떼고 싶을 만큼 불편한 파동이 밀려오는데도 재윤에게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모니터가 없어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재윤은 익숙해진 고통을 삼키고 있을 뿐, 고통스러워한다는 걸.
다만, 재하는 보고 말았다. 동생의 눈물을.
사막에 물 한 컵 붓는 것처럼 티도 나지 않는 수준의 가이딩에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을 터. 부족한 가이딩이 이어지는 동안 동생은 울기 시작했다. 일그러진 눈가로 속절없이 차오른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의식조차 놓아 버린 고통은 재윤의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동생의 눈물을 본 순간, 재하의 이성은 날아갔다.
재윤이 마지막으로 울었던 건 그날, 회귀했다며 자신을 보고 매달릴 때였다. 수도꼭지가 되어 버렸던 재윤은 어느 순간부턴가 울지 않았다. 그랬던 동생이 지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울고 있었다.
“흐읏…….”
“괜찮아질 거야, 재윤아.”
고통 속에 허우적대고 있는 동생을 이대로 둘 수 없었다. 더 고민할 것도 없이 재하는 움직였다. 어깨와 손을 붙잡은 채 바닥에 쓰러진 재윤에게로 얼굴을 가까이 했다.
재하가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챈 해일은 빠르게 등을 돌려 혹여나 카메라에 비치지 않도록 막아섰다. 그러나 해일이 막아섰음에도 에스퍼들 사이로 이쪽을 지켜보던 기자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가십거리를 보는 것과 다른 순수한 놀라움에 해일 역시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빛 무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마치 재윤에게 숨을 불어 넣는 것처럼 보이는 재하의 주변으로 빛 가루가 흩어지며 일정한 움직임을 만들어 냈다.
에스퍼가 이능을 쓴다 해도 눈에 보이는 특수한 효과는 따로 없었기에 재윤이 아이템을 쓰거나 해일이 불꽃을 일으킬 때에야 시각 효과가 확실했다. 이처럼 재하가 가이딩을 하는 상황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빛 무리가 일어난다면 저절로 시선이 끌릴 수밖에 없었다.
“우와…… 되게 멋있다.”
“가이딩 처음 보는데 신기해.”
“저도 이능 쓸 때 저런 빛이 나오면 좋겠어요.”
홀리듯 바라보던 누군가에게서 흘러나온 감상에 저마다 한마디씩 보태기 시작했다.
정작 사람 하나 구하는 심정으로 본의 아니게 일생일대의 각오로 입술을 내던진 재하는 당황하고 있었다.
‘인정사정없이 죽죽 뽑혀 나가는구나.’
그동안 예상만 했던 점막 가이딩 효율을 실제로 경험해 보니 급류에 휩쓸린 것처럼 정신없었다. 맞붙은 입술이 전기라도 오른 듯 찌릿찌릿했다. 덕분에 감각보다는 통증이 앞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숨은 언제 쉬는 거지?’
차라리 진짜 인공호흡이면 숨을 불어 넣겠는데 가이딩일 뿐이라 그럴 필요는 없었다. 힘껏 얼굴을 붙이는 바람에 재윤의 뺨에 코가 눌려 숨 쉬기 힘든 것 같았다. 슬쩍 고개를 드는데 죽은 듯 반응 없던 동생의 손이 목을 끌어당겼다.
‘잠깐, 타임! 스톱! 항복!’
하지만 꽉 눌린 입술 사이로 어떤 말도 새어 나오지 못했다. 대신 꽉 다물린 입술이 벌어지며 가해진 새로운 자극이 입 안에 작은 폭죽을 터트린 듯 정신없게 했다.
‘아, 따갑, 따가워!’
부드럽고 말랑한 살덩이일 텐데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음식이라도 머금은 것 같았다. 목을 끌어당기는 통에 옴짝달싹할 수가 없어 유일하게 자유로운 손 하나로 재윤의 어깨며 머리를 쥐어뜯었지만, 소용없었다.
정작 주변의 반응은 이상하리만치 잔잔했다.
여기 사람 죽어요. 마음으로 외쳤지만, 들릴 리 없었다. 이러다 산소 부족으로 기절하게 생겼다. 사람 살려라, 진짜.
“재하!”
해일의 부름과 함께 재하의 몸이 들렸다. 해일이 어찌나 높이 안아 들었는지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 같던 동생이 저만치 아래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재하와 재윤을 감싸던 빛 무리가 따라 올라가며 자연스럽게 사그라지자 사람들이 감탄했다.
“안정되고 있어…….”
“와, 진짜…….”
“마나가 어떻게…….”
“이게 가능하다고?”
에스퍼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수군거리는 소리에 괜히 민망해진 재하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변명을 잊지 않았다.
“왜요? 인공호흡 하는 거 첨 봐요?”
이미 가이딩인 걸 다 아는 에스퍼에게 굳이 할 필요 없는 변명이었다. 게다가 나름 강하게 말하려던 의도와 달리 지친 재하의 목소리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재하.”
“아, 넵. 정신이 좀…… 없네요. 졸린 것…… 같기도…….”
“재하?”
산소 부족인 건지 급격한 가이딩 때문인지 몰라도 흐릿해지는 시야에 제 색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동생의 팔이 보였다. 썩거나 타들어 간 게 아니었구나 싶어 다행이란 생각과 함께 멀어지는 의식을 굳이 붙잡지 않았다.
뒤에 남은 사람들의 뻘쭘함이나 소란은 생각지도 못한 채.
* * *
2차 가이딩의 후유증으로 재하가 깊이 잠든 사이 많은 일이 벌어졌다.
개인주의가 강했던 대부분의 1세대 에스퍼가 주요 인물들의 활약을 본 후 마음을 고쳐먹고 마수 토벌에 합류했다.
또 의식을 찾은 재윤이 아이템 없이도 빠르게 황금 거북의 등껍질을 파괴하는 데 성공한 덕에 예상보다 피해가 적었다. 눈에 띄는 에스퍼들의 활약은 국민에게는 안정과 믿음을, 협회에는 데이터와 부산물이라는 큰 선물을 주었다.
도심지에서 발생한 게이트로 인해 에스퍼의 중요성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쏟아지는 인터뷰와 관심에 현장은 물론 협회까지 떠들썩했다.
하루 만에 식을 리 없는 관심에 모두가 정신없이 바쁜 시간. 느지막이 눈을 뜬 재하는 목이 말라 냉장고로 향했다. 물병을 입에 대다 말고 입술이 따끔거리는 게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목마름이 먼저였다. 작은 생수병 하나를 비워 내고 아무도 없는 거실을 지나 재윤의 방 문을 열자 그곳 역시 비어 있었다.
“아직 바쁜가…….”
그러고 보니 마지막 기억은 마수의 등껍질 위였다. 별일 없으니 숙소로 돌아와 잠을 자고 있었던 거겠지, 생각하면서도 TV를 켬과 동시에 핸드폰을 확인했다.
『참혹한 현장에서도 에스퍼의 활약은 빛이 났습니다. 생생한 중계 현장…….』
“뭐야, 더 부서졌잖아?”
화면에는 거대한 황금 거북이 건물 사이에 미동도 없이 쓰러져 있는 모습이 비쳤다. 수십 채의 건물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진 현장은 자신의 기억에 없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의식을 잃은 사이 피해가 늘어난 듯싶었다.
계속해서 황금 거북이의 가치와 피해 규모만을 반복해서 알려 주기에 다른 채널로 돌리자 에스퍼들의 인터뷰 모습이 지나갔다.
“크, 역시 잘생겼네, 해일 형.”
지친 기색이 역력함에도 그 모습조차 그럴싸해 인터뷰가 길어졌다. 여러 채널을 확인하다 보니 재윤의 모습도 비쳤다. 머리를 쓸어 넘기는 손에 장갑은 보이지 않았다. 거의 제 색으로 돌아온 피부에 재하는 안도했다.
따로 알려 주는 이가 없어도 쉼 없이 떠들어 대는 방송으로 인해 재하는 차고 넘칠 만큼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있었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인터넷 반응을 볼까 싶어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재하는 제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섬네일에 차마 누르지 못하고 손가락을 떨었다.
유튜버 강광의 어마어마한 조회 수를 기록한 영상, ‘오해 마세요, 인명 구조입니다.’에 재윤과 자신의 모습이 버젓이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