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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71화 (7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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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러분, 보십시오. 마수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인근 건물 옥상이 내려다보일 정도입니다. 대성 에스퍼 협회에서 발 빠르게 대처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큰 피해가 있었을지 짐작도 되지 않습니다.”

신인 배우 인터뷰하러 왔다가 얼결에 현장을 찍게 된 연예부 기자는 최대한 진지하게 상황을 전달하고자 했으나 카메라맨과 더불어 본능적으로 자극적인 장면만 화면에 담고 있었다. 무너진 건물과 사방에서 몰려드는 구급차에 혼란스러운 상황을 빙 둘러 담은 후 불타고 있는 등 뒤의 현장으로 방향을 돌렸다.

“마치 용광로를 방불케 하는 이 화력이 보이십니까? 이곳에 장비라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순수한 에스퍼의 힘, 이능이라고 합니다. 감히 다가가기도 어려울 만큼 뜨거운 불길이 이는데도 우리 자랑스러운 에스퍼는 물러서지 않고 마수를 퇴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기자는 연신 상황을 알리며 대기 중인 2세대 에스퍼에게 인터뷰를 요청하기도 했다. 오로지 한곳만 불태우고 두드리는 상황에 여유롭게 보이기까지 했다.

“물러서세요.”

하지만 그 모습도 잠시, 힘의 방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장갑을 내던진 재윤은 손끝까지 까맣게 변해 있었다.

그걸 본 재하의 숨이 턱 막혀 왔다.

“위험할 수 있으니 알아서 피하세요.”

손등을 타고 어깨까지 얽혀 든 은색 넝쿨 아이템을 착용한 재윤이 손을 뻗자 기묘한 울림과 함께 아이템이 푸른빛으로 빛났다.

콰가가강.

방금까지 네 명의 에스퍼가 모여 찔러 대고 두드려 대던 지점에 재윤의 힘이 쏟아져 내리며 눈에 띄게 파이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아이템을 착용한 탓에 재윤이 이능을 사용하는 내내 푸른빛이 일렁이며 신비로움을 더했다. 거기에 해일의 불꽃마저 가세하자 범접하기 힘든 분위기가 연출됐다.

지금까지 쉼 없이 입을 털던 기자조차 잠시 말을 잃을 만큼 화려하면서도 위험해 보였다.

“우와…….”

2세대 에스퍼들도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바라봤다. 재윤을 향한 감탄과 부러움이 섞이는 와중에 재하만이 불안한 얼굴을 했다.

모두가 재윤의 팔에 감긴 은색 넝쿨이 내뿜는 신비한 빛과 파동에 감탄할 때 재하는 새까맣게 변한 피부만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템을 착용하기 위해 붕대를 푼 동생은 손끝부터 팔 전체가 어둡게 변해 있었다.

‘붕대랑 장갑을 사용한 지 꽤 됐는데.’

재윤의 변한 피부를 보고 있자니 새까맣게 팔이 타 버린 채 쓰러진 에스퍼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마나 남용으로 인해 폭주 상태에 접어든 에스퍼와 재윤의 모습이 닮아 있어 불안감이 커졌다.

‘위험한 거 아닌가? 폭주 전조 증상이라며.’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재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에서부터 피어오르는 걱정은 막을 수 없었다.

‘지호 땐 안 그랬는데. 기분 나쁠 정도로 매끈한 피부였어.’

그렇다면 재윤의 상태가 더 심각하다는 거 아닐까. 겉으로 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재윤이지만, 그 속이 어떨지 몰라 재하는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나 에스퍼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과 카메라까지 집중된 상황에 재하는 섣부른 말을 입에 담을 수 없었다. 걱정하더라도 지금은 드러내선 안 될 일이었다.

재하는 진정하기 위해 심호흡했다. 그간 재하는 많은 가이딩을 해 왔다. 고작 세 사람이었지만, 그래서 더 재하는 막연하게나마 이들이 내뿜는 기운을 짐작할 수 있었다.

‘괜찮을 거야. 아마도.’

재윤에게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재윤과 가이딩을 해 본 적 없어서일지도 모르지만, 유마로의 폭주를 약간이나마 인지한 걸 보면 자신도 꽤 능숙해졌다고 볼 수 있었다.

보기에 화려하기까지 한 이능 사용 현장은 빠르게 소강상태가 됐다. 재윤이 아이템을 이용해 힘을 뽑아내고, 그에 맞춰 해일이 지나치게 마나를 쏟아 낸 탓에 둘은 휴식이 필요했다.

“체인지. 진액이 빈틈을 메꾸지 못하게만 유지해.”

“네, 넵!”

“맡겨만 주세요, 서재윤 에스퍼.”

재윤과 해일이 멀어지자 2세대 에스퍼들이 부서진 등껍질 앞으로 달려들었다.

“바람을 쓰면 진액이 마르지 않을까?”

“내가 얼리면 그걸 깨면서 같이 파내자.”

“야야, 진액 나오잖아. 빨리!”

어리바리하지만, 늦지 않게 이능을 사용하는 2세대를 보며 재윤은 한숨 돌렸다. 팔에 단단히 엉킨 넝쿨의 빛은 여전히 푸른색. 아직 쓸 만했다. 처음 유마로가 부숴 둔 위치가 정답인 덕에 일이 조금이나마 쉬워졌다. 어쩌면 협회에 남아 있는 가이드와의 상성이 좋아 저녁때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최악보다는 가능성 있는 일을 떠올리며 재윤은 널뛰려는 감정을 다스렸다. 마나를 사용하는 데 감정 역시 영향을 끼치므로 최대한 침착하려 애쓰며 고개를 들자 원하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제복 차림의 에스퍼와 몇몇 일반인들 사이에서 해일의 손을 잡고 가이딩 하는 형은 자신이 그토록 바라 왔던 평범한 가이드의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가볍게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머쓱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낯선 사람들 앞이라 어색해해도 가이딩 행위 자체는 자연스러웠다. 천시당하거나 비웃음받을 일이 결코 아니었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 왔던 일이 이루어졌다. 항상 신사답던 해일의 진중하던 눈이 더없이 부드럽게 재하를 바라보는 모습은 주변의 시선을 끌었다. 카메라 역시 놓치지 않고 담아내며 주변을 맴돌았다.

시간이 빠듯하기에 먼저 움직이려던 재윤은 툭 하니 발에 차인 구슬에 멈추어 섰다.

‘구슬?’

거북의 등껍질을 파괴하느라 이곳엔 자잘한 조각들이 이리저리 튀고 있었다. 하지만 파편이라면 구슬처럼 생길 리가 없었다.

손에 들어 보니 이영우가 사용하던 폭탄과 꼭 닮은 구슬이었다.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건지 모를 검은 구슬을 향해 재윤은 힘을 사용했다. 염동력처럼 물건을 세밀하게 움직이지는 못해도 후려치듯 떨어트리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재윤이 힘을 사용해 구슬을 멀찌감치 쳐 내고 안도할 때, 기다렸다는 듯 허공에서 검은 구슬이 비처럼 쏟아졌다.

“아야!”

“어? 이게 뭐야?”

사람들 사이로 떨어져 내린 검은 구슬에 재윤은 반사적으로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막 닫히고 있는 포털 틈으로 누군가가 사라지고 있었다. 미리 설치해 뒀어야 할 포털이 이곳에 있다는 건, 이 상황이 모두 계획된 일이었다는 의미였다.

재윤은 고민할 틈도 없이 곧장 아이템을 착용한 손을 내밀어 포털을 공격했다. 지금 출력이라면 무형의 포털마저 부수는 게 충분히 가능했다.

파앙!

공기가 터지는 소리에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뭐, 뭐야?”

큰 소리와 함께 쏘아진 힘이 건너편 옥상을 파괴함과 동시에 재윤이 튀어 나갔으나 이미 포털은 사라진 후였다. 재윤의 돌발 행동에 해일이 재하를 에스퍼들에게 맡기고 달려왔다.

“서재윤 에스퍼, 무슨 일입니까?”

“포털이 열려 있었어요.”

“예? 분명 측정기로는 나오지 않았었는데 어째서…….”

“다들 이쪽으로 모여!”

더 이상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재윤의 지시에 모두가 당황하면서도 한쪽으로 모였다. 재윤은 망설임 없이 바닥을 쓸어 내듯 모든 잔재를 모아 허공으로 날렸다. 포털로 사라진 게 이영우라면 곧 저것들이 터지고도 남았다.

모두가 긴장한 채 재윤이 날리는 잔재들을 바라봤다. 그러나 빈 건물 위로 내던져진 구슬들은 조용했다.

‘속임수인가?’

살펴보기에는 위험 부담이 컸다. 게다가 도준과 지호가 이상하리만치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상황은 좋아지지 않는데 변수만 늘어 갔다.

“이제 됐으니 각자 위치로. 아니, 내가 먼저 하죠. 다들 주변을 경계하고 조금이라도 수상한 게 보이면 나나 권해일에게 전하도록.”

동시에 생겨난 게이트가 인위적인 것임을 알게 된 이상 여유를 부릴 수 없었다. 시간 싸움 외에도 변수까지 챙겨야 했다.

복잡해진 재윤의 머릿속은 감정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이능을 쓰는 일에도 영향을 끼쳤다. 바로 곁에서 재윤을 지켜본 해일이 불안해했다.

“서재윤 씨, 이제 그만하고 쉬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금만 더요. 아이템 수명이 얼마 안 남아서 지금 멈추면 부서질 거예요.”

재윤의 말대로 푸른빛을 띠던 아이템은 이제 붉은빛을 내고 있었다. 중간에 한 번 멈추는 바람에 차오른 진액을 태우는 해일에게 재윤이 지친 목소리로 요구했다.

“1세대 에스퍼라도 불러야겠어요. 견지호나 주도준이 왜 오지 않는지도 알아봐 주세요.”

“그러겠습니다.”

“그리고 형 좀. 후우…… 데리고 가 주세요.”

재윤은 자신이 한계에 달했음을 진즉 인지하고 있었다. 형이 보고 있지 않았다면 주저앉았을 만큼 피로감이 한계에 달했다. 이를 악물고 참은 건 형이 지켜보고 있어서였다. 그러나 재윤의 인내에도 그의 마나를 게걸스럽게 빨아들이던 아이템이 최후까지 긁어 가는 감각엔 속절없이 무너졌다.

“윽!”

재윤이 무릎을 굽히며 무너져 내렸다. 팔을 새까맣게 물들였던 흔적이 어깨를 지나 목까지 침식하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심각한 상황에 해일은 다급해졌다.

“서재윤 씨!”

“당장, 아이템을…….”

아이템이라는 말에 해일이 곧바로 넝쿨을 잡아 뜯었다. 아직 더 마나를 흡수하겠다는 양 재윤의 팔에 들러붙던 넝쿨이 해일의 손에 잡히자 그쪽으로 엉겨 붙었다. 해일은 당황하면서도 재윤에게서 완전히 넝쿨이 떨어지자 빠르게 바닥에 내팽개친 후 불태웠다.

“모두 물러서세요. 2세대 에스퍼, 일반인들 챙기십시오.”

쓰러진 재윤을 대신해 해일이 빠르게 명령했다. 에스퍼의 망가진 모습이 방송을 타서 좋을 게 없다는 걸 모두가 알기에 카메라 앞을 막아섰다. 대성의 협조하에 이곳에 올라온 기자는 못내 아쉬워하면서도 기회를 보며 마이크를 내렸다.

“서재윤 씨, 내 말이 들립니까?”

“크윽…… 윽…….”

해일은 눈조차 뜨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재윤을 보며 이곳에서 해결할 수 없음을 파악했다. 도통 연락이 되지 않는 협회며 견지호에게 번갈아 통신을 넣으면서도 당장 재윤을 옮길 생각뿐이었다.

누구보다 강인해 보였던 재윤이 쓰러지자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 짧은 침묵은 한 사람으로 인해 깨어졌다.

“비켜 주세요.”

“가이드라고 일반인보다 나을 거 없어요. 위험하니까 떨어져 있어요.”

“상관없어요.”

재하는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었다.

“내 동생은 내가 지킬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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