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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70화 (7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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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윤이 자리를 뜬 직후, 먼지와 비명으로 정신없는 와중에 유마로는 개 짖는 소리를 들었다. 부모가 아이의 부름에 예민하듯 개를 키우는 유마로는 소란 통에도 익숙한 소리를 듣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멀찌감치 개 한 마리가 보였다. 목줄이 끼었는지 도망치지 못하고 서럽게 짖고 있는 개를 향해 염동력을 쓰려 손을 뻗었으나 거리가 멀어 닿지 않았다.

“아씨, 멀잖아.”

다행히 권해일의 불길이 몇 번 더 이어진 후 미사일 공격도 멈춘 것 같고, 흥분했던 황금 거북의 움직임도 느릿해졌다. 시간이 충분하다고 여긴 유마로는 건물에서 빠져나가 내달렸다. 계속 손을 뻗으며 염동력을 조금이라도 빨리 닿게 하려 애썼지만, 상당히 가까워졌음에도 듣지 않았다.

‘뭐야? 벌써 마나가 털렸다고?’

떨리는 다리로 휘청이며 달려왔는데도 고작 개 한 마리를 움직이지 못하자 짜증이 치솟았다. 저보다 더 엉망진창인 서재윤은 날아오는 미사일을 폭파하기까지 했다. 그와 비교해 부족한 자신의 능력을 인정할 수 없었다.

“대체 왜 안 되냐고!”

유마로의 분노에 주변 사물들이 한꺼번에 치솟았다. 정확히 개의 주변까지 퍼져 나간 힘은 보이지 않는 막에 가로막힌 것처럼 보였다.

“뭐…….”

주도준의 방어 막이었다. 방어 막 너머로 유마로의 힘이 통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견지호는 몇 번이고 넘나들었던 방어 막이었건만, 자신의 힘은 통과하지 못했다. 못난 감정이 불쑥 솟으려 했으나 오히려 그만큼 튼튼한 방어 막이란 믿음이 생겼다. 거기에 사람뿐 아니라 개에게까지 방어 막을 써 준 것에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다.

하지만 황금 거북이가 계속 나아간다면, 아무리 방어 막을 만들고 대피를 시킨다 해도 전부 지키긴 힘들 수 있었다.

유마로는 서재윤이 자리를 뜨기 전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약점은 등껍질 안쪽의 심장이라고 했지?’

유마로는 제 몸에 염동력을 써 순식간에 허공으로 떠올랐다. 물건을 다룰 때보다 심리적 저항감이 있어 마나 소모가 심하긴 했지만, 빠르게 원하는 위치로 올라섰다.

황금 거북이의 등에 발을 디디니 어찌나 단단한지 안정감마저 들었다.

“심장이면 마력이 가장 높은 곳이겠지?”

황금 거북이의 심장을 본 적은 없지만, 이곳에서 가장 강한 마나를 뿜어내는 곳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방어 막 안에 자신의 힘이 통하지 않았듯 두꺼운 등껍질에도 마나가 흐르는지 닿지 않았다.

‘괜찮아. 뜯어내면 돼.’

거북의 몸이 기울어져 있는 걸 보면 아직 발아래 방어 막은 견고하다는 의미였다. 1세대 S급 에스퍼의 능력은 믿음직스러웠다. 물론 금세 깨어지긴 하겠지만, 아직은 잘 버텨 내고 있었다.

“빨리 좀 돼라.”

유마로는 서둘러 힘을 쏟아 냈다. 처음에는 등딱지 한 조각을 뗀다는 생각으로 힘을 쓰다가 미동도 하지 않아 조각끼리 이어진 틈을 벌리는 걸로 작전을 바꿨다. 조직과 조직을 떼어 내고, 작은 균열이 있다면 거기서부터 뜯어낸다는 감각으로.

마음이 급해 순식간에 쏟아 낸 마나가 아주 미세한 틈을 만들어 냈다. 차라리 아무 반응 없었다면 포기했을 텐데 허공으로 튀어 오른 손톱만 한 파편에 희망이 보였다.

힘을 쓸 때마다 더해지던 두통이 이제는 머리통을 쥐어짜는 것같이 심해졌다. 후들거리는 다리는 의식도 못 한 사이 주저앉아 버렸다.

한 번에 이만큼의 힘을 쏟아 낸 적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온 힘을 다했다. 계속해서 파편이 튀어 올랐다.

‘조금만 더. 조금만.’

이미 한계를 넘어선 걸 느꼈지만, 통하는 걸 확인한 이상 멈출 수 없었다. 바닥까지 끌어 올리는 감각으로 힘을 밀어 넣었다.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얇게 갈라진 등껍질 틈으로 끈적한 진액이 흘러나왔다.

예상보다 빠른 결과에 유마로 역시 놀라워했다.

“이, 이게 되……네?”

스스로 해 놓고도 믿기지 않았다. 뒤집어썼던 먼지를 털고자 고개를 흔들자 후드득 코피가 쏟아져 내렸다.

힘을 쓰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했지만, 단단하던 등껍질에 균열이 생기고 피같이 보이는 진액이 흘러나오니 희망이 보였다. 그러나 진액이 흘러나오며 벌어진 틈을 메꾸는 걸 본 유마로는 크게 당황했다.

“뭐, 뭐야?”

설마 자가 치유라도 되는 건가 싶어 당황했다. 재빨리 염동력으로 진액을 걷어 내자 다시 흘러나와 균열을 채웠다.

“누가 이기나 해 보자는 거…… 우욱!”

유마로는 갑자기 치솟는 구토감에 참지 못하고 그대로 쏟아 냈다. 시뻘건 핏덩이가 바닥에 떨어졌다. 손끝 하나 움직이기 어려울 만큼 피로감이 몰려오더니 온몸이 불타오르는 것 같은 고통이 이어졌다.

“아악! 아아악!”

몸속을 불태우는 통증에 유마로는 자신이 비명을 지르는지도 몰랐다.

설마 이게 교육 시간에 배웠던 폭주 증상인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이어지는 감당하지 못할 통증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 * *

어렵지 않게 황금 거북이의 등에 오른 재윤은 힘을 남용한 대가로 바닥을 구르는 유마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악! 아아악!”

재윤은 유마로가 뒹굴고 있는 지척의 등껍질이 파괴되었다 수복된 흔적을 발견했다. 짧은 시간에 이만큼이나 해낸 유마로는 역시 A급다웠지만, 불을 함께 사용해야만 진액을 태워 막을 수 있다는 걸 모르기에 무의미한 결과가 나와 버렸다.

“왜 혼자서 이런 짓을…….”

“아파! 악! 아악!”

유마로의 상태는 심각했다. 당장 폭탄이 되지는 않겠지만, 이대로 두면 고통에 더욱 빨리 마나가 뒤엉켜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다.

통증에 못 이겨 스스로 옷을 쥐어뜯는 유마로를 보며 재윤은 항상 들고 다니던 약을 꺼냈다. 가사 상태에 빠지게 하는 약으로, 자신이 끝끝내 버티지 못하는 순간 삼키려고 챙겨 두었던 걸 유마로에게 억지로 먹였다.

“쿨럭쿨럭!”

“잠깐 자고 있어요. 이대론 폭주만 가속화됩니다.”

“이게 뭔……데…….”

유마로는 말을 다 마치지도 못하고 일그러진 얼굴 그대로 기절했다. 이 시기엔 구하기 힘든 포션은 유마로를 고통 대신 잠에 빠지게 했다.

삑.

다행히 영문 모를 통신 제한이 풀렸는지 통신기가 반응했다. 재윤은 바삐 상황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지시를 이어 갔다.

“견지호, 내 쪽으로 주도준과 함께 이동해. 권해일, 히드라 태워 버리고 에스퍼 전원 집합시켜 주세요.”

유마로가 리타이어 됐으니 주요 공격 수단이 하나 빠지는 셈이었다. 2세대에게 경험이 될 수 있어 넘겨준 하급 마수까지 빠르게 처리하고 전원 등껍질에 달라붙어야 할 판이었다.

“동생분, 우린 무전기라도 따로 가지고 다녀야 하는 거 아닐까? 통신기 먹통 되니까 너무 불편해.”

투덜대며 나타난 지호의 말에 대꾸하지 않은 재윤은 함께 왔을 도준에게 지시를 이어 나갔다.

“주도준, 유마로에게 방어 막을 씌우고 견지호와 함께 격리실에 다녀와 주세요.”

“이 사람, 팔과 어깨가 타 버린 거 같은데 치료는 안 해?”

“폭주 전조 증상 중 하나라 치료는 무의미해요. 그래도 가사 상태로 만들어서 시간은 벌었으니까 격리실에 가면 가이딩 준비해 줄 거예요.”

“방어랑 이동이 끊기는 건데 우리 둘이 자리를 비워도 괜찮아?”

“골든 터틀의 이동 속도는 느리고, 몇 분 정도는 방어 막 없이도 괜찮아요. 여긴 방어보다 공격력이 필요하니 두 사람은 협회에 다녀오…… 형?”

쓰러진 유마로와 등껍질의 균열을 살피며 도준의 질문에 답하던 재윤은 고개를 들자마자 보인 형의 창백한 얼굴에 당황했다. 형이 왜 여기 있는 건지 몰라도 딱히 보이면 안 될 상황이나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심각한 형의 얼굴을 보면 자꾸만 변명해야 할 것 같았다.

“후딱 갔다 올게요. 선배, 다른 사람 가이딩 해 주지 말아요. 질투 나니까.”

지호가 장난스럽게 재하에게 말을 걸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재하가 무어라 답을 할 틈도 없이 지호가 사람들을 데리고 사라지고, 이내 몸에 열기를 품은 해일이 나타나자 자연스레 그쪽으로 시선이 옮겨 갔다.

“인근에 다른 위험은 없는 걸로 보입니다.”

재윤이 따로 물어볼 것도 없이 히드라를 단숨에 전소시킬 만한 화력을 뽐내고 돌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해일의 손에는 협회에 보관 중이던 일회성 아이템이 들려 있었다. 마치 쇳덩이로 만든 넝쿨이 엉켜 있는 것 같은 하나의 덩어리를 받아 든 재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거, 협회장이 내주지 않으려고 했을 텐데요.”

“그래서 덤이 붙어 버렸습니다.”

해일의 말대로 그를 따라 간신히 등껍질 위에 도달한 에스퍼들 중 카메라를 든 일반인이 섞여 있었다. 협회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될 만하다 싶으면 어떤 상황에서든 노골적으로 홍보를 신경 쓰는 협회장이었다.

어차피 이해관계가 얽힌 일이었기에 재윤은 신경을 껐다. 그보다 당장 눈앞의 일부터 해결해야 했다.

이번에 받아 낸 아이템은 마나를 증폭시켜 본래 가진 힘의 배 이상을 끌어 올릴 수 있으나 일정량 이상 사용하면 부식돼 버리는 일회성 물건이었다. 거기에 착용자가 가진 마나를 끝까지 빨아들이려는 속성 탓에 자칫 폭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여러모로 위험하지만, 위기 시엔 이만한 것도 없었다. 이 시기에 보유하고 있다는 게 행운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유마로에게 넘겨 해일의 불과 함께 사용하게 하려 했다. 물론 폭주까지 가지 않도록 여차하면 아이템을 파괴해서라도 뗄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이곳에 남은 이 중 사용하기에 가장 적합한 이는 자신이었다.

“외피가 가장 단단하고 까다로우니 최대한의 출력으로 빠르게 부숴 둘게요. 2세대 에스퍼들에겐 이능을 쓰든 마나를 두른 무기를 쓰든 쉬지 말고 같은 장소를 공략하라고 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재윤이 손에 든 아이템에 마나를 불어 넣자 기다렸다는 듯 넝쿨이 풀리며 재윤의 팔을 잡아먹을 듯이 게걸스럽게 휘감았다.

그 모습조차 멋있다며 탄성을 흘리는 에스퍼들과 달리 지켜보는 재하는 저런 괴상한 게 동생 팔에 달라붙는 게 걱정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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