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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황금 거북
무겁게 터져 나가는 굉음과 함께 폭발한 미사일의 효과는 미미했다. 질긴 가죽 위에서 터진 미사일 잔해가 사방으로 튀는데도 황금 거북이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얼굴을 향해 쏘아진 미사일은 마수의 신경을 거슬렀다.
끄륵. 끄르륵.
목 안쪽에서 긁는 듯한 소리가 예민하게 울리더니 황금 거북의 목이 죽 앞으로 빠져나왔다. 미사일이 머리와 눈알 근처에서 터졌는데도 껍질 속으로 숨기는커녕 길게 뻗어진 머리가 빠르게 휘둘러졌다.
“으악!”
“도, 도망쳐!”
거대한 황금 거북이 내려선 범위보다 더 멀리까지 여러 채의 건물이 부서져 내리며 사방으로 잔재가 폭탄처럼 떨어져 내렸다. 이미 사람들의 대피가 끝났으나 거북이처럼 생긴 마수가 이런 식으로 기민한 움직임을 보일 거라 생각 못 한 몇몇 사람들이 휩쓸렸다.
“견지호, 골든 터틀 앞쪽에 민간인 둘! 주도준, 해당 장소 방어 막!”
어쩐 일인지 통신기에서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다행히 방어 막이 생겨났는지 넘어진 일반인 둘에게 떨어지던 파편들이 튕겨 나가는 게 보였다.
재윤은 다시 통신기 채널을 협회장 쪽으로 돌렸으나 여전히 먹통이었다. 핸드폰은 새 제복에 있을 리 없었다.
“유마로 에스퍼, 핸드폰 있어요?”
“개인 물품은 지참하지 말라며…….”
삐딱하게 굴면서도 지킬 건 또 지키는 유마로였다. 1세대에게는 빡빡하게 굴지 못하면서 2세대 에스퍼에게는 꽤 많은 제약을 거는 게 아닌가 싶었다.
“미치겠네, 진짜.”
현대 화기 따위 무의미한 공격이었다. 그걸 알 텐데도 포기하지 못한 다른 전투기가 다시 미사일을 쏘아 댔다.
“등껍질 안쪽의 심장이 아니면 어딜 쳐도 소용없는데.”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재윤이 벽을 박차며 황금 거북 쪽으로 내달렸다. 재윤의 무모한 행동에 유마로는 얼결에 염동력을 써 이동을 도왔다.
순식간에 황금 거북이의 머리 위에 도달한 재윤은 미사일 앞에 정통으로 자리 잡게 됐다. 둔해 빠진 마수는 머리 위에 에스퍼가 올라타든 말든 관심도 없었다. 그보다 자꾸만 얼굴을 두드리는 따끔거리는 수준의 미사일에 짜증을 내며 하지 않았을 행동을 이어 갈 뿐이었다.
“그만 좀 해!”
재윤은 다른 전투기가 쏘아 낸 미사일을 향해 힘을 날려 공중에서 폭발시켰다. 도준과 연락은 되지 않았지만, 재윤을 지켜보고 있었는지 그의 앞에 방어 막이 생겨 폭발의 영향은 받지 않았다.
시끄러운 소리에 마수의 머리가 거슬린다는 듯 다시 휘둘러졌다. 느릿한 앞발 짓에 바닥이 파이고 주변이 흔들렸다.
마수의 머리가 바닥과 가까워졌을 때 재윤이 뛰어내렸다. 가까운 곳에서 불길이 하늘까지 치솟으며 전투기를 향해 경고하듯 불타올랐다.
다행히 미사일을 향한 재윤의 공격과 해일의 불꽃에 상황을 파악했는지 더 이상의 공격은 이어지지 않았다.
비선공인 황금 거북을 잘못 건드리면 일대가 초토화된다. 움직이는 모든 걸 적으로 삼고 파괴 행위를 시작한다는 걸 재윤은 알고 있었다. 감각이 없는 등껍질을 파괴해 단숨에 심장의 핵을 뽑아내는 게 유일한 공략법이었다.
재윤은 해일을 만나자마자 자신이 아는 지식을 빠르게 전했다. 어떻게 알고 있는지 물을 필요가 없었기에 해일은 곧바로 수긍한 후 현재 상황을 알렸다.
“협회 측에서 상황을 알아보고 연락해 주겠다고 합니다. 일단 전투기 건은 공문은 전달된 것 같으나 재난 상황에 기존 방식을 따른 듯합니다.”
다행히 해일은 다른 연락 수단을 가지고 있었는지 협회와 연락이 되고 있었다. 재윤은 자신이 지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제 몫을 해 주는 해일이 고마웠다.
“견지호 에스퍼에게 연락 좀 넣어 주세요. 일단 제 쪽에 왔다 가라고.”
“잠시만, 서재윤 씨.”
해일은 핸드폰을 꺼내 들면서도 재윤에게 바싹 다가갔다. 주변에 사람이 없긴 해도 에스퍼의 청력은 일반인보다 뛰어났기에 최대한 작게 속삭였다.
“가이딩을 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해일은 누구보다 많은 임무를 함께 해 온 재윤의 마나 파동이 그 어느 때보다 거칠어졌음을 알아챘다. 눈으로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날아들던 미사일을 반파시킨 재윤의 마나 파동은 이미 한계치에 도달했다.
“의미 없다는 거 아시잖아요.”
현장 학습에 따라 나온 예비 가이드는 고작 두 명. 나머지는 돌아올 2세대 에스퍼를 위해 협회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나마도 전부 미미해서 없는 것보다 나은 수준이었다. 그들로는 재윤의 마나 한 줌도 정화하기 힘들다는 걸 해일이 모를 리 없었다. 해일이 물러서지 않고 침묵이 이어지자 재윤의 지친 얼굴에 일그러진 미소가 그려졌다.
“내가 어떻게 형한테 가이딩을 받아요.”
누구도 모르는 과거가 돼 버린 미래에 재윤이 느낀 참담함을 누가 알아줄까. 권해일에게조차 제대로 털어놓지 못했다. 그저 막연하게 제멋대로고 파렴치한 에스퍼에 대해 알려 주었고, 가이딩을 겪어 본 해일이 어느 정도 상황을 유추할 뿐이었다.
“재하는 착취당하고 있지 않습니다. 필요하다면 지금부터 서재윤 씨가 안정될 때까지 누구도 가이딩을 받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해일이 제법 본질에 가까운 답을 꺼냈으나 재윤이 가진 트라우마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각성 전에는 실컷 끌어안았던 형에게 손댈 수 없게 된 이유를 아무리 해일이라 해도 말할 수 없었다.
“당신이나 가서 받고 와요. 지금부터 무식하게 힘으로 부숴야 하니까.”
해일 역시 상당히 무리하고 있어 잠깐씩이라도 가이딩을 받고 오는 편이 나았다. 견지호 덕에 가이딩을 받으러 오가는 일은 매우 편리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해일은 좀처럼 연락하지 못하고 계속 재윤을 설득했다.
“아니면 지금이라도 가이딩실에 다녀오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서재윤 씨 말대로라면 어차피 에스퍼들이 총력을 다해 등껍질을 부수는 것뿐이니, 그들이 지칠 때까지 가이딩을 받아도 되지 않을까요?”
해일의 말은 꽤 괜찮은 제안이었다. 어차피 등껍질 일부만 파괴해야 해서 에스퍼들이 동시에 공격할 수는 없었다.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황금 거북은 느릿하게 전진하며 한 번씩 머리를 털어 냈다. 머리만 안 움직여도 주변 피해가 덜할 텐데 쓸데없이 건드린 탓이었다.
“그렇게 하죠. 그럼 견지호 에스퍼를…….”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던 재윤의 시선이 허공에 머물렀다. 해일 역시 그 시선을 따라 돌아보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유마로 에스퍼가 왜 저기에…… 따로 지시한 겁니까?”
“아뇨, 저도 올라가 봐야겠네요.”
해일이 핸드폰으로 지호에게 연락하는 짧은 시간.
재윤과 해일은 동시에 불길한 마나 파동을 느꼈다. 게이트가 열리는 수준의 마나 파동이었으나 명백하게 익숙한 에스퍼의 것이었다.
“이게 무슨?!”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유마로!”
“이상하네요. 저 난리가 났는데 동생분이 절 안 써먹는 게.”
미사일이 날아들던 순간, 견지호는 조용한 통신기를 대신해 빠르게 판단해야 했다. 혹여나 빗맞으면 뒤편에 있는 현재 위치는 방어 막이 있다해도 불안했기에 재하와 함께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전투기와 황금 거북이의 중간쯤 되는 위치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 곳으로 이동한 후에도 미사일이 터질 때마다 몇 번 더 장소를 옮겼다. 지호와 함께 옮겨지는 동안 재하는 멀리서 볼 때보다 더 심각하게 훼손된 현장을 보고 굳어 버렸다.
“선배, 정말 이래도 안 돌아가실 거예요?”
“다들 저기에 있는 거잖아.”
“저희야 엄청 튼튼한 에스퍼고, 선배는 보통 사람이랑 똑같잖아요.”
“나 혼자 두느니 함께 움직이는 게 낫다고 했어.”
“그건 그렇죠.”
이영우가 협회에 몰래라기엔 너무도 대놓고 들렀다 갔던 날, 지호는 당연히 그의 위치를 특정하려 했다. 그러나 몇 번이고 시도해도 이영우에게로 공간 이동을 할 수 없었다.
재윤이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의 말에 따르면 빌런 본거지에 인식 저하 시스템이 활성화돼 있기에 힘들다 했다. 타당한 말이기도 했고 딱히 다른 방법도 없었기에 지호는 더는 이영우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선배, 우리 중 누구한테라도 꼭 붙어 있어요. 납치당하면 미칠지도 몰라.”
“안 그래도 그러고 있잖냐.”
먼지가 풀풀 날리고 굉음이 울리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귀에 바싹 붙어 속삭이는 지호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잘 들렸다.
“여기 먼지도 너무 날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게요.”
“잠깐만.”
평소라면 지호의 팔을 때려서라도 털어 냈을 재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거대한 발이 내디디며 생겨난 먼지가 피어오르는 동안에도 황금 거북의 등껍질은 고요했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장소에서, 이 소란 통에서 이상하리만치 누군가의 비명이 귀에 꽂히는 것 같았다.
“저기, 누가 있는 거 같아.”
“네, 있어요.”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어야 사람을 찾을 수 있는 재하와 달리 지호는 마나 파동을 통해 각성자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다. 날뛰는 파동은 지호 역시 겪어 봤기에 확신할 수 있는 폭주의 징조였다. 재하를 데리고 피하고 싶었으나 그는 마나도 느끼지 못하면서 시선만은 정확히 보이지 않는 이에게 향해 있었다.
“신경 쓰이세요?”
“뭐가 뭔지도 안 보이는걸.”
가이딩 할 때가 아니면 마나의 흐름이나 파동은 느끼지도 못하는 재하가 이렇게나 신경 쓰는 걸 보니 신기했다.
“누가 힘을 과하게 썼나 봐요. 저 폭주할 뻔했을 때랑 비슷한 걸 보니까.”
“뭐? 누군데?”
“저야 모르죠. 지금 가장 힘을 많이 쓰는 사람이 아닐까요?”
태연한 지호와 달리 재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에스퍼들의 세계는 잘 몰라도 연일 바쁘게 움직이던 세 사람이 필연적으로 떠올랐다.
도준이나 해일, 어쩌면 재윤일지도 몰랐다.
불안해하는 재하의 모습에 지호가 먼저 움직였다.
“궁금하시면 제가 갔다 올게요.”
지호가 다녀올 기세로 떨어지자 오히려 재하가 풀리려는 팔을 붙잡았다.
“나도 데려가 줘.”
“에이, 그건 안 되죠. 선배는 안전한 곳에 있어야…….”
거절하려던 지호의 목을 재하가 끌어당겼다. 갑작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지호에겐 너무도 익숙한 일에 그가 눈을 감고 고개를 기울였으나 이어진 건 뺨에 닿았다 떨어지는 부드러운 감촉이었다. 그마저도 스치듯 짧아 불평이라도 하려 눈을 뜬 지호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의 재하가 발끈하며 삿대질하는 걸 보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서, 선수금이야. 가이딩이 필요하면 어차피 내가 있어야 하잖아.”
“네, 대신 위험하면 바로 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