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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67화 (67/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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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으로는 형을 걱정하면서도 재윤의 눈은 빠르게 현장을 살폈다. 이곳의 웨어울프는 전부 짐승 형태였다. 에스퍼에게는 손쉬운 상대였으나 덩치가 워낙 커 일반인에게는 위협이 됐다.

재윤이 나타남과 동시에 눈이 닿는 곳의 웨어울프가 전부 쓰러지자 구석에서 떨고 있던 감색 제복의 에스퍼가 울먹이며 다가왔다.

“서재윤 에스퍼, 저희를 구하러 와 주셨군요.”

겁을 먹고 일반인들 사이에 섞여 있던 2세대 에스퍼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재윤은 그들을 향해 단호하게 지시했다.

“너희는 인명 구조를 최우선으로 하되 히드라를 상대한다.”

“느, 늑대들이 돌아다니는데 저희끼리 어쩌라고요.”

“2세대 A조. 정렬.”

재윤의 목소리는 서두르는 기색이나 감정이 섞이지 않았다.

담담하나 정확하게 내려진 하나의 지시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에스퍼들이 뛰어나와 재윤 앞에 줄을 섰다. 사방으로 흩어져 1/3도 안 되는 인원 중에는 피를 뒤집어쓰거나 손에 철근을 든 이들도 있었다.

“당황하지 마. 너희 모두 이능을 쓸 수 있는데 써먹질 못하고 있잖아.”

“아…….”

“그, 그렇죠.”

그제야 철근을 든 에스퍼는 손에서 칼날을 뽑아냈고, 피를 뒤집어쓴 이는 바람을 움직여 털어 냈다.

“교육 시간에 들었잖아. 웨어울프 출현 시 인간형이 섞이지 않으면 하급이라고.”

이론 수업을 떠올리자 겁을 집어먹었던 이들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멀지 않은 곳에서 비명이 들려와 신경 쓰였지만, 재윤은 2세대 에스퍼를 내버려 두면 이대로 그만둘 확률이 높기에 최소한의 조언을 던졌다.

“설령 이능을 못 쓰더라도 각성자의 향상된 체력이면 충분히 가능해. 너희들 몸은 일반인과 달리 튼튼하니까. 한두 번 물리더라도 3인 이상 함께 움직이고 정신만 차리면 승리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한번 겁먹은 에스퍼들은 선뜻 그러겠다고 답을 하지 못했다. 특히 집합 소리에 절뚝이며 걸어온 신입은 튼튼한 에스퍼의 몸으로도 발을 접질릴 정도로 정신없이 도망쳤었는지 여전히 눈에 공포가 깃들어 있었다.

재윤은 그들과 눈을 마주한 채 통신기를 통해 들리도록 지시를 내렸다.

“낙오자 인솔 요청합니다.”

“오케이. 몇 명 데려갈까?”

재윤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곁으로 견지호가 나타났다.

표정을 굳힌 서재윤의 차가운 분위기와 달리, 갑작스럽게 나타난 지호의 장난스러운 움직임에 곱슬기 있는 그의 머리카락이 살랑였다. 자신에게 시선을 뺏긴 몇몇 에스퍼에게 서비스 차원의 윙크까지 해 대는 여유에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지시를 따를 수 없는 에스퍼는 전원 이동시켜 주세요.”

지호가 누굴 데려가야 하나 휙 둘러보는데 몇몇은 슬쩍 손을 들려다 말고, 몇몇은 정자세로 서 있었다. 재윤은 시간을 길게 주지 않았다.

“일단 저부터 타란툴라 위로 이동시켜 주시죠.”

“네네~”

지호의 손이 재윤의 어깨에 닿자마자 그들은 훅 하니 에스퍼들 앞에서 사라졌다.

갑작스럽게 보호자이자 상급자를 잃은 그들은 건너편 건물 위에 매달린 타란툴라가 휘청이는 걸 목격했다. 무슨 상황인지 판단할 틈도 없이 지호가 다시 나타났다. 에스퍼 앞에 선 지호는 양손에 묻은 끈적한 진액을 털어 내며 찌푸린 얼굴로 웃어 보였다.

“와, 올려 주자마자 타란툴라 등을 터트려 버리네요. 무서운 동생분이야, 진짜.”

지호의 웃는 얼굴 뒤로 타란툴라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아마도 권해일의 능력이리라.

“그래서. 누굴 피난시켜 주면 돼요?”

1세대의 활약에 에스퍼들의 눈에서 공포가 지워지고 열망이 깃들었다.

“빨리 결정하세요. 당신들 망설이는 동안 인명 구조를 못 하는 거라서요.”

“호, 혹시 우리가 위험해지면 구하러 와 주시나요?”

발목을 접질린 에스퍼의 질문에 지호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서재윤이가 시키면 하겠죠? 그러고 보니 어쩌다 동생분 명령을 듣고 있네요.”

“저기, 치료만 받고 복귀해도 될까요?”

“그건 보호소에서 판단하시고. 이분만 옮겨 드리면 될까요?”

“네, 저희는 사람들을 인솔해 볼게요.”

“저도 해 보겠습니다.”

“신입분들, 파이팅~”

에스퍼들의 다짐에 지호는 가볍게 응원한 후 다친 에스퍼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발목을 다친 에스퍼는 갑자기 바뀐 시야에 어리바리했다. 그러나 곧 눈앞에 보인 참상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도착한 보호소에는 피투성이의 사람들, 울부짖는 이들을 비롯해 미동 없는 이들도 더러 보였다.

“다, 다리, 내 다리가…….”

“저희 엄마 못 보셨어요? 저랑 같이 계셨는데 안 보이세요.”

“대체 저게 다 뭐야? 에스퍼 협회니 뭐니 니들은 뭘 하길래 저런 게 돌아다니는데?”

흥분한 사람들을 말리느라 협회 측 사람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다친 분들만 들어오세요.”

“실종자는 흰색 천막으로 가서 접수하시고, 부상자는 인근 병원에서 지원 올 겁니다.”

고작 발목 좀 다쳤다고 도망쳐 와도 됐던 건가 망설여졌다. 절뚝이는 감색 제복의 에스퍼를 본 직원이 빠르게 방향을 알려 주었다.

“아, 에스퍼? 에스퍼는 간이 천막으로 가세요.”

“네, 네…….”

이미 지호는 사라졌고, 에스퍼 혼자 간이 천막으로 향했다. 감색 제복을 확인한 직원이 천막 앞을 비켜 줘 들어가니 외부로 나가는 소리를 차단하는 기능이 있었는지 앓는 소리로 가득했다.

진액을 뒤집어쓴 상반신이 처참하게 찢겨 있거나 잘린 다리를 덤덤히 붙잡고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이도 있었다. 한쪽에서는 기분 좋은 파동이 흘러나와 홀리듯 시선이 갔는데 그곳에 오늘 가이딩을 실습하기로 했던 몇 명이 땀을 뻘뻘 흘리며 에스퍼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아파, 아프다고.”

“죄송해요. 시간이 걸릴 거예요. 조금만 힘내세요.”

“흐으…… 고, 고마워요. 하지만 너무 아파서…….”

“아니에요. 느려서 죄송해요.”

방춘재나 고민재가 말하던 가이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아직 테스트 단계이기도 했지만, 등급과 매칭률이 맞지 않아 벌어진 현상이었다.

데이터 부족으로 미처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이들은 짧은 사이 과다하게 이능을 사용한 부작용을 털어 내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사이,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고 있었다.

두 번째 타란툴라의 등까지 터트린 재윤은 추락을 대비해 방어 막을 펼친 도준에게 다시금 확인했다.

“방어 막 유효 거리는 얼마나 되죠?”

“100미터까지는 해 봤는데, 내가 인식하고 있으면 될 거야. 그렇다고 여기 전원을 커버하는 건 무리고.”

“필요한 곳에만 써야죠. 형에게 사용하는 건 절대 풀지 마시고요.”

“그거야말로 1순위로 체크하고 있어.”

현재 형의 위치는 이곳이 보이기는 해도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는 고층 건물 위였다.

형에게 이런 끔찍함을 보일 생각은 없었다. 방송이나 매체를 통해 알게 될지도 모르지만, 굳이 현장의 참혹함을 형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도준 역시 공감하는 바였다.

“혹시 모르니 방송국 옥상에 방어 막 쳐 둘게. 위험해지면 그쪽으로 피해.”

새삼 도준이 가진 마나 양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대형 타란툴라가 추락하는 걸 방어 막으로 튕겨 내고도 여전히 능력을 사용하는 게 쉬워 보였다.

“통신기 채널 공유할게요. 견지호 에스퍼는 지금처럼 제가 단독으로 지시합니다.”

― 오케이~ 일단 충전 좀 할게요.

여기서 충전은 가이딩을 말했다.

사람들을 수없이 공간 이동 시킨 지호의 파동이 불안정해지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제대로 가이딩을 받지 못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재윤의 마나 파동도 점점 더 거칠어졌다. 곁에서 지켜본 도준의 눈에는 너무도 잘 보였으나 정작 당사자는 고통을 못 느끼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태연했다.

“너도 가이딩 좀 받아야 하지 않아? 상태가 너무 안 좋은데.”

“끝나고 가이딩실에 들어가면 돼요. 하나 더 잡을 테니 주변 피해 없게 부탁해요.”

“응, 믿고 갔다 와.”

도준이 말하는 믿음은 재윤에게 영 와닿지 않았으나 개인감정은 접어 둘 때였다.

재윤의 시선이 건물에 매달린 마지막 타란툴라에게로 가는 동선을 좇았다. 지호가 있다면 이동이 편리하나 없다고 못 움직일 것도 없었다.

“그래도 웬만하면 네 형한테 가이딩 받…… 벌써 가 버렸네?”

도준이 잠시 방어 막을 펼치느라 눈을 뗀 사이, 벽을 타고 달려 올라가는 재윤의 움직임은 마치 평지를 달리듯 능숙했다.

저렇게 계속 힘을 써도 되는지 걱정이면서도, 지금 저 말도 안 되는 움직임에 마나가 거의 쓰이지 않음에 경악했다.

“사기 재능러가 딱 저 앨 두고 하는 말이겠어.”

한편, 재하에게 돌아온 지호는 순간 이동 중에 미리 카페에서 주문한 아메리카노와 달달한 디저트를 권하고 있었다.

“선배, 목마르지 않아요? 이것도 드세요.”

조각 케이크에 마카롱이며 빵 같은 걸 어디서 들고 온 테이블 위에 착착 올려놓았다. 멀리 보이는 건물에 매달려 있던 타란툴라는 불타오르고 있었다.

“디저트가 달아서 음료는 달지 않은 걸로 받아 왔어요.”

“……너랑 있으니까 영화라도 보러 온 것 같다.”

“저도요. 전 4D 같아요. 말 나온 김에 영화 보러 갈래요?”

“넌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소리가 나오냐?”

주도준의 방어 막은 재하에게 완벽한 안전을 선사했다. 그 안팎을 자유롭게 오가는 유일한 견지호는 여유롭기까지 했다.

견지호는 사람들의 비명이 난무하는 현장과 안전이 보장된 공간을 오가며 재하를 면밀히 살폈다.

아직 이 사람은 공포를 모른다. 다행이었다. 유일한 연애 대상으로 보이기 시작한 재하가 감정적으로도 다치지 않았으면 했다.

재하를 끌어안으며 그의 손에 어울리지 않는 반지에 시선이 갔다.

“선배, 반지 누가 준 거예요? 저랑 커플링 맞추면 더 예쁜 걸로 해 줄 텐데.”

“누가 주긴. 아이템이니까 끼고 있는 거지.”

“그럼 나중에 제 선물도 껴 주세요.”

대답도 안 하는 재하에게 찰싹 달라붙자 바로 가이딩이 시작되며 무거웠던 몸이 가벼워졌다. 재하 역시 지호가 힘들었다는 걸 눈치채고 얌전히 마카롱 하나를 입에 밀어 넣었다.

“맛있네.”

“네, 저도요.”

“아오, 진짜 욕 나오게 할래?”

“에이, 선배 가이딩이 맛있는 걸 어떡해요.”

“징그러운 놈. 질리지도 않냐, 진짜.”

딱딱거리면서도 재하는 밀어내지 않았다. 이런 점이 참 무르고 귀엽다고 느끼며 실컷 목선에 뺨을 비비고,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몸이 가벼워지면 다른 감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에 그 전까지만 가이딩 할 생각으로 몸을 붙이고 있었다. 소리를 죽여 둔 통신기에서 울리는 알람도 무시한 채.

“저거…….”

품 안의 재하가 긴장한 것처럼 굳자 지호 역시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통신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 견지호, 형 대피시켜!

“저, 저게 뭐야?”

타란툴라 따위 집거미로 보일 만큼 거대한 앞발이 허공에 열린 게이트를 통해 느릿하게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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