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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도착한 유마로는 불만이 가득했다.
첫 실전 투입이라고는 하나 현장 실습에 가까웠다.
겉으로는 2세대 각성자 팀만이 브리핑받은 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선생 노릇을 해 왔던 익숙한 얼굴들이 군중 속에서 따라붙고 있었다.
선생이라고 해 봤자 B, C급 에스퍼로, F등급 던전조차 직접 들어간 횟수도 몇 번 안 됐다.
‘지식은 나쁘지 않았지만.’
며칠 되지 않는 교육 기간 동안 배운 거라곤 일부 던전의 생태계와 몇몇 마수에 대한 정보가 다였다. 처음에는 흥미로웠지만, 협회가 보유한 정보 자체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애초에 에스퍼의 존재를 감추다시피 해 왔으니 조사가 원활할 리 없었다. 그렇게 따져 보니 이 정도면 꽤 상세한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에 비해 꼴 보기 싫은 서재윤이 교육해 준 쪽이 알차고 흥미진진했다. 서재윤은 분명 경험이 많았다. 자료도 보지 않고 대화하듯 평범하게 내뱉는 말 속에 교육 담당보다 많은 정보가 담겨 있었다. 자료에 없는 마수를 언급하고 곤란해하는 모습도 보였다.
‘어쩌면 B등급은 정체를 숨기기 위한 게 아닐까?’
그런 거라면 그를 일방적으로 미워했던 마음이 조금은 바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 현대 문물에 대한 마수의 저항성에 대한 것이었다. 마수의 가죽에 총을 쏘았을 때 그리 두껍지 않았는데도 뚫리지 않았다. 그에 비해 자신이 들고 있던 볼펜으로 염동력을 이용해 빠르게 찌르자 꿰뚫기까지 했다. 벽에 닿은 볼펜은 부서졌지만, 이능의 힘이 더해지자 상황이 달라졌다.
총알에 마나를 덧씌울 수 있다면 일반인도 마수에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연구원들은 꿈에 부풀었다.
정작 유마로는 그 발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에스퍼가 되어 손에 넣은 이능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일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에스퍼에게 총기 사용이 허가되지 않았다. 논리대로라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염동력 이능을 가진 자신에겐 지급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러니 유마로는 하루하루 분노가 쌓여 갔다.
“유마로 에스퍼는 아직 가이딩 안 받아 봤죠?”
능글거리며 말을 걸어오는 방춘재를 무시했다. 아까부터 계속 가이딩에 대해 저급한 말만 하는 터라 귀가 썩을 것 같았다.
뭐라고 계속 말을 거는데도 무시하는데 중요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마수 냄새가 나는데, 게이트 열린 거 아닌가?”
부러 혼잣말처럼 흘린 방춘재의 말은 흘려들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이제 개 새끼보다는 좀 쓸모 있어 보이나요?”
조금 전 한 말이 있다 보니 유마로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 침묵하는 유마로 대신 자신만만한 방춘재가 선두에 서서 에스퍼를 이끌었다.
그가 가는 방향은 애초에 예정되었던 장소와 달랐다. 발현하지 않았지만, 존재하는 게이트를 마나 파동 측정기로 체크하고 안전함을 확인하기 위해 방문한 장소였다. 방춘재는 건물 하나를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저 뒤에서 비린내가 진동하니 한번 가 보시죠. 전 추적 전문이라 백업이나 할 테니.”
“당신…… 진짜 허접하네요.”
유마로의 잔뜩 굳은 얼굴에 방춘재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어린것이 잘난 척하는 것도 꼴 보기 싫었지만, 확인도 하지 않고 허접 취급하니 억울해졌다.
그러나 유마로가 그를 허접이라 부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마나 파동이 이렇게 선명한데 여유를 부리다니.”
유마로 주변의 사물들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건물 뒤에서 생생하게 느껴지는 수많은 파동에 대응하기 위해 그가 동시에 컨트롤할 수 있는 최대치의 개수를 띄우자 바리케이드 밖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군중 속에 숨어 있던 선생 중 마나에 예민한 이는 벌써 알아채고 어딘가로 연락을 넣고 있었다.
곧 1세대 에스퍼가 나타나 상황을 해결하고 2세대로 각성한 자신은 기회조차 얻지 못할 게 빤히 보였다. 판단은 빨랐다.
“유마로 에스퍼?!”
망설이지 않고 마나 파동이 들끓는 건물 뒤편으로 내달렸다. 장사를 공친 카페 모퉁이를 지나 미리 띄워 둔 사물들을 날릴 생각으로 뛰어든 유마로는 건물 벽 뒤에 빼곡하게 달라붙은 히드라를 보고 당황했다.
“말미잘?”
방춘재와 같은 소리를 하면서도 무해해 보이는 그것들을 쳐다보는데 흐느적거리던 촉수가 주욱 길어지며 고개를 내민 카페 주인을 낚아챘다.
“으악!”
그제야 유마로는 히드라들의 촉수 사이로 새파랗게 질린 사람들이 엉켜 있는 걸 발견했다. 어쩐지 건물 벽에 저런 게 붙어 있는데 조용하다 했다.
“사, 살려 주세요.”
“수…… 숨이 안…… 끄윽…….”
순간 당황하긴 했지만, 어려울 것 없었다. 주변에 널린 사물로 촉수를 잘라 내고 염동력으로 사람을 옮긴다. 그거면 충분했다.
다만 그러려면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촉수를 막을 게 필요했다.
일단 건물 안으로 들어가 안전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움직이던 유마로는 머리 위에서 들리는 굵직한 짐승의 으르렁거림에 반사적으로 야외 테이블 서너 개를 동시에 움직여 밀쳐 낸 후 장식용 동상을 움직여 내리쳤다.
깨갱!
예상대로 사람보다 큰, 늑대처럼 생긴 마수가 세 개의 눈을 까뒤집고 쓰러져 있었다.
“하필 짐승형 몬스터가 나오냐고.”
개를 다치게 하는 건 질색이었다.
유마로가 호불호를 생각할 여유나마 있을 때, 사방에서 비명과 짐승의 울음소리가 뒤섞였다. 본능적으로 주변 사물을 끌어 바리케이드를 만들며 주변을 살폈다.
“늑대랑 말미잘, 그리고 대형 거미 같은 게 나왔다!”
방춘재가 비명처럼 던져 준 정보에 유마로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교육 시간에 들었던 웨어울프. 히드라. 그리고 타란툴라.
전혀 다른 지역에 사는 마수들이 세 종 이상 동시에 나타났다. 여러 게이트가 한꺼번에 터진 긴급 사태였다.
* * *
응급 상황이 생겼을 때 공간 이동 능력자가 있다는 건 무척 편리했다.
기동성을 갖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대체 뭔가 싶었다.
“협회장님께서 안쪽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긴급 호출이 와서 바쁜데요.”
“그 일로 보자고 하십니다.”
네 사람의 호출 알람이 울리고 연이어 날아든 긴급 메시지에 로비까지 내려오는 데 재하까지 포함해 3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내부에서 이능을 쓸 수 없기에 밖으로 나가 바로 이동하려던 그들을 직원이 급히 막아서며 안쪽으로 안내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거의 달리다시피 해서 안내를 받은 곳은 회의실이었다.
상석에 앉은 협회장의 양쪽으로 늘어선 마네킹에 척 보기에도 광택이 다른 고급스러운 제복들이 입혀져 있었다.
“어서 오시게, 우리 자랑스러운 에스퍼 군단. 드디어 주요 인물들을 다 함께 보는군.”
소름 끼치게 느끼한 호칭이었으나 시간이 지체되는 상황을 끝내는 게 우선이었다.
“게이트가 최소 세 개 이상 터진 상황에 한가하게 얼굴이나 보자고 부른 겁니까?”
“그럴 리가. 최악의 사태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렇게 부른 거지.”
위기는 기회다. 최악의 상황에 모든 이목이 몰려 있고, 손쉬운 영상 매체들을 통해 이미 모두가 현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광고 효과 역시 최대 효율을 뽑아낼 수 있다는 의미였다.
“우리 대표 에스퍼들이 모양 빠지게 티셔츠 쪼가리로 뛰어나가서야 쓰겠나.”
결국, 협회장 권해성이 긴급 출동 중이던 이들을 불러들인 이유는 신상 제복이었다. 화면에 더 잘 받고, 에스퍼의 특별함을 부각해 줄 아이템. 그렇다고 과한 장식이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이 기막힌 상황에 항상 묵묵히 따랐던 해일이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서려 하자 재윤이 먼저 빠르게 마네킹으로 다가갔다. 재윤은 상의만 벗겨 세 사람에게 정확히 던져 주었다.
“다들 걸쳐요. 이런 게 에스퍼 이미지에 도움이 되는 건 맞으니까.”
“전부터 생각했지만, 서재윤 군은 나랑 잘 통한다니까.”
“에스퍼의 지위가 높아지면 저에게도 좋은 일이죠.”
“그렇지. 사람이 승부욕도 있고 권력도 좀 노려 주고 해야지. 등급만 조금 더 높았으면 좋았겠네만.”
협회장 권해성을 적당히 상대한 재윤은 유일한 흰색 제복을 재하에게 내밀었다.
“나, 나도 입냐?”
“특수 처리 돼서 튼튼해. 걸치고라도 있어.”
방탄복 대신인 건가 싶어 얼결에 걸쳐 입은 재하는 우르르 빠져나가는 것에 휩쓸려 함께 밖으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현장은 개판이었다.
허공에 열린 게이트에서는 초대형 늑대가 튀어나오고, 건물 외벽에 생긴 게이트에서는 대형 히드라가 꾸역꾸역 밀려 나와 바닥까지 침범하고 있었다. 타란툴라는 대체 어디서 또 튀어나온 건지 위치는 모르겠으나 지난번 한강 게이트 때보다 크기가 배는 컸다. 건물을 다리로 찍어 누를 때마다 부서져 나가는 게 실시간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재윤에게는 익숙한 마수였지만, 그것들이 동시다발로 도심에 풀려 있는 상황은 처음 접했다.
게이트에서 각각 따로 만났다면 문제도 될 게 아닌 마수가 힘없는 사람들을 먹잇감으로 삼는 현장에 재윤이 빠르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권해일은 건물에 붙은 타란툴라부터, 주도준은 추락에 대비해 주변 건물 케어, 견지호는 타란툴라 왼쪽 다리 박힌 곳의 인명 구조 후 통신기 신경 쓰세요.”
외부 인물도 없는 자리라 이름만으로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재윤의 실력을 잘 모르는 도준과 지호조차도 확신에 찬 지시에 의심 없이 따랐다.
“오케이, 다녀올게요~”
“건물 하단에 방어 막 쳤어. 저 말미잘 같은 건?”
“히드라는 2세대 각성자들에게 맡길 겁니다.”
에스퍼들이 각자 제 역할을 위해 움직이자 재윤 역시 웨어울프와 사람들이 한데 엉켜 있는 혼잡한 현장으로 뛰어내렸다.
“저, 저리 가.”
“아빠, 위험해! 들어와!”
한 가정의 아버지인 중년 남자는 등 뒤에서 들리는 자식의 울음소리에 손에 든 우산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그래 봤자 성인 남자보다도 훨씬 큰 늑대가 입을 벌리면 그걸로 끝이었다.
“으악!”
“사, 살려 줘!”
중년 남자를 노리는 늑대 뒤로 이미 신체 일부를 잃었거나 비명을 지르는 이들이 다른 늑대의 먹이로 전락하고 있었다. 거기에 건물에 매달린 대형 거미는 또 뭐란 말인가.
천재지변과 같은 재앙에 중년 남자는 공포에 질렸다. 흐느끼는 자식의 부름이 아니었다면, 알량한 우산 따위 집어 던지고 차라리 늑대의 아가리에 머리를 밀어 넣고 싶을 지경이었다.
다른 늑대보다 유달리 큰 놈은 느긋하게 기다란 주둥이를 쩍 벌렸다. 자식의 비명에 우산을 쥔 손을 더욱 빠르게 휘둘렀다.
“군대든 뭐든 사람 좀 살려 주라!”
펑 퍼펑!
뭔가가 연달아 터지는 소리에 중년 남자가 놀라 나뒹굴었다.
건물 위에서 상황을 파악한 재윤이 뛰어내림과 동시에 염력을 휘둘러 세 마리를 동시에 해치웠다. 인간 따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던 늑대들이 터지고 날아가자 벌벌 떨던 피투성이의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으악! 머, 먹힌다!”
“아빠, 괜찮아! 우리 살았어!”
“어? 내, 내 팔 멀쩡하네?”
“잠시 건물 안에 숨어 계세요. 구조대가 곧 올 겁니다.”
빠르지만 덤덤한 재윤의 말에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이 절뚝이며 자리를 피했다.
“서재윤 아냐?”
“어? 맞는 거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도 건물 곳곳에 숨어 여유를 부리는 이들이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고 있었다. 재윤은 그들의 부름을 신경 쓰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아악! 살려 줘!”
“저리 가! 악!”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일반인들 사이에는 감색 제복을 입은 이들도 섞여 도망치고 있었다. 현장의 끔찍함을 처음 겪은 2세대 각성 에스퍼들은 일반인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는 재윤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였다. 재윤의 최대 걱정거리는 시야가 닿는 비교적 안전한 곳에 두고 온 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