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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64화 (6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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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수상한 게이트

돌발 게이트 발생 하루 전.

연일 늘어나는 업무로 밤늦게 귀가하는 일이 잦아진 재윤은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어졌다.

늦은 기상으로 멍한 재윤의 귀에 도마 위를 통통 두드리는 칼질 소리가 들려왔다. 몸은 피곤해도 재하가 만들어 내는 일상 소음에 기분 좋게 눈을 떴다.

“이거지. 이런 걸 바라고 돌아온 거니까.”

마나의 흐름은 민감하게 알아채고 바로 일어날 수 있지만, 형이 내는 작은 소음들은 오히려 자장가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이미 달달하고 매콤한 냄새가 나는 걸 보아 한창 요리 중인 듯했다.

최근 재하는 가이딩 연습을 위해 옆방에 들를 때 빼고는 이곳에 머물렀다. 이영우가 폭탄을 사용하게 되고 빌런 쪽에 붙게 되면서 형에게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다행히 형은 그다지 답답해하지 않았다. 가끔 과할 정도의 요리를 하기는 했지만.

“음, 좀 심하게 피곤한데.”

늦은 밤까지 2세대 각성자들의 교육과 훈련을 돕느라 잠자는 시간까지 줄어 하루하루가 버거웠다. 이럴 때 블랙 피그를 먹어 주면 체력이 훅 오르기에 한 마리 잡아 오고 싶었지만, 일전에 새끼 블랙 피그를 보고 온 형이 귀여워 했던 것 같아 망설여졌다.

“일어났으면 후딱 나와.”

형은 소리도 없이 일어난 자신을 어째서인지 매번 알아챘다. 오늘도 집밥을 먹겠구나 싶어 기분 좋게 주방으로 향한 재윤은 곰솥에서 부풀고 있는 밀 떡을 보고 당황했다. 식당을 해도 이렇게 많이는 안 할 것 같았다.

“형, 이거 직원 식당에서 팔려고?”

“좀 많나?”

“좀이 아니고 엄청.”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도 많은 양이었다. 재하는 머쓱해하면서도 국자로 솥 안을 휘저었다.

“떡볶이떡 주문했더니 대용량이 왔더라고. 여긴 냉장고도 작아서 따로 보관하기도 힘드니까 다 끓여서 나눠 줄까 했지.”

원체 손이 크기도 했지만, 주변에 나누는 게 익숙한 재하였다. 작은 냄비를 꺼내 도준에게 가져다줄 몫을 퍼낸 후 지호에게 덜어 줄 그릇을 찾으며 해일에겐 어떻게 줘야 하나 고민했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재윤이 두 손 들었다.

“오라고 해.”

“어? 진짜? 너, 도준이가 오는 거 싫어하잖아. 그래서 지호도 못 오게 한 거고.”

지호는 옆방이라 거의 문턱만 안 넘었다 뿐이지 매일 보고 있었고, 해일만이 출입을 허락받았다.

재윤이 유달리 타인의 출입을 경계하는 이유가 사실상 도준 때문임을 재하 역시 알고 있었다.

“괜찮아. 여긴 형이 지내는 곳이기도 하니까. 자주 보니까 좀 괜찮아진 거 같기도 하고.”

“그렇지? 역시 얼굴을 봐야 불편한 것도 풀어지고 그런 거지.”

재윤의 덤덤한 말투에 재하는 신이 나서 여기저기로 연락을 보냈다. 최근 들어 자신의 안전을 위해 협력하면서 자주 마주쳐서 그런지 재윤의 태도가 유해졌구나 싶어 안심이었다.

대략 한 시간 후.

각자 일이 있었을 에스퍼들이 하나씩 재하와 재윤의 숙소에 도착했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재하.”

“딱 맞게 오셨어요. 앗, 근데 해일 형도 떡볶이 먹어요?”

“네, 음식 안 가립니다.”

가장 먼저 도착했음에도 사과하며 들어오는 해일.

“정말 들어가도 돼?”

“응, 들어와. 우리 까칠이가 달라졌거든.”

재윤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건 알지만, 이유를 짐작만 하기에 조심스러운 도준.

“와, 이게 무슨 냄새예요? 엄청 맛있는 냄새 나요.”

“학교 앞 분식집 떡볶이.”

아무 고민 없이 천연덕스러운 지호까지.

아직은 평화로운 때. 그간 돌아가며 재하를 혼자 두지 않기 위해 애썼던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2세대 각성자 교육 때문에 바빠졌지만, 현장 인력이 늘어났기에 스케줄 조율만 잘하면 기존 에스퍼들에게 이런 여유도 생겼다. 지금은 재하의 부름에 열 일 제치고 달려왔을 확률이 더 높았지만.

지호의 소매에 묻은 마수 체액만 봐도 그가 어딜 다녀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어떤 티도 내지 않고 재하에게 달라붙어 요리를 구경했다.

“어? 밀 떡이네요?”

“학교 앞 분식집 떡볶이는 밀떡이지. 그치, 도준아?”

“응, 맞아. 많이 달고 달걀도 들어가고.”

원조 이웃사촌인 도준의 수긍에 재하는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쪽 말이 맞는다는 식의 장난스러운 행동에 지호는 마냥 귀엽다는 듯 웃으며 대화를 이어 갔다.

“우리 학교 앞 분식집은 쌀떡이었거든요. 방앗간도 같이 하셔서 막 뽑은 가래떡을 바로 입에 넣어 주시는데 떡이란 게 그렇게 말랑말랑하고 고소한지 처음 알았다니까요.”

방앗간의 갓 나온 떡이란 말에 재하의 상상력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으아…… 그건 진짜 맛있었겠다. 다음엔 쌀떡으로 해 줄게.”

“역시 선배는 이런 면이 귀여워요.”

“이 대화 흐름의 어디가?”

“와, 선배의 귀여움을 찬양해 달라는 거예요? 그럼 나 못 참을 텐데.”

“아오, 그냥 입 다물고 있어.”

금세 재하에게 달라붙는 지호, 시키지 않아도 옆에서 삶은 달걀 껍데기를 벗기는 도준, 네 사람이 앉을 자리를 위해 식탁을 옮기는 해일까지, 각자의 성격과 관계가 드러났다.

재윤은 해일이 좀 더 적극적이었으면 했다. 하지만 지난 며칠간 형에게 들어 온 소소한 이야기 속 해일은 그답기만 했다.

가이딩 제어를 핑계로 형에게 심하게 달라붙는 지호와 달리 손만 잡는 해일은 누구보다 가이딩 제어에 진지하게 임했다. 그래서인지 형과 한결 가까워진 지호와 다르게 친밀해진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해일 형, 솥 좀 옮겨 주세요.”

“선배, 저도 들 수 있어요.”

“넌 좀 떨어지라고.”

다행히 형 쪽에서 해일을 좀 더 의지하는 모습이 보였다. 차근차근 신뢰를 쌓고 있으니 이대로도 나쁘지 않을지 모르지만, 가이딩이란 건 결국 최후의 선을 넘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었다.

오히려 신뢰가 너무 쌓이면 권해일과는 힘들지 않을까. 형의 메인 에스퍼로는 처음 생각대로 견지호가 나을지도 모르겠다. 여친들을 정리할 정도로 가이딩과 제 감정을 구분 못 하는 건 걱정이지만, 찰싹 달라붙어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나드는 지호의 행동 덕분인지 손만 잡아도 불편해했던 형이 웬만한 스킨십에는 무뎌졌다.

“달걀 다 깠어, 재하야.”

“오오, 역시 깔끔하네. 참, 도림이 거 안 맵게 따로 해 뒀으니까 갈 때 가지고 가. 어린이집 끝나고 오면 간식 찾더라.”

“응, 그럴게.”

자신이 가장 경계했던 주도준은 담담했다. 회귀 전 일이 믿기지 않을 만큼 그는 담백했다. 가이딩 할 때가 아니면 누가 봐도 친구로밖에 보이지 않을 만큼 거리를 지켰다. 초반만 해도 자신을 도발하고 형을 손에 넣을 것처럼 굴어 놓고 갑자기 얌전해지더니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세 명의 에스퍼와 한 명의 가이드가 이처럼 평범한 일상을 공유한다는 게 재윤은 보면서도 믿기 힘들었다.

‘정말이지 보기 힘든 모습이야.’

회귀를 결심했을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금의 조합도 신기했지만, 무엇보다 제 손으로 끝장내고 싶었던 존재와 협력하는 관계가 됐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전부 내가 부족해서지만…….’

재윤은 이도 저도 하지 못하는 제 처지가 답답했다.

누구보다 가까이서 형을 지키고 싶었는데 차선이라 여긴 일들은 가장 멀리하고 싶었던 인물을 가까이 두게 했다.

회귀 후 각성하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은 형의 곁에서 조금도 떨어질 생각이 없었다. 돌아온 집에서 다시 만난 형의 온전한 모습에 기뻤고, 따뜻한 체온이 반가웠다. 열에 들떠 있거나 차갑게 식지 않은 형의 투덜거림이 기꺼웠다.

그러나 각성 후 어떻게든 빠르게 입지를 다져 형의 안전을 확보하려던 노력 탓에 마나는 금세 고갈됐다. 뒤엉키고 무거워지는 감각은 익숙했기에 버틸 수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가이딩을 해 오는 형의 접근에 저도 모르게 물러서고 말았다.

회귀 전, 형에게 가이딩을 받은 기억은 없었다. 없었지만, 빌어먹을 이영우의 수많은 실험 영상에서 일부만 건졌음에도 여러 차례 언급됐었다.

형을 빌려주겠다던 도준의 저열한 웃음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하지만 현재의 도준은 그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선량한 미소를 지었다.

형과의 관계도 절친 그대로였다. 몇 번이고 형을 위험에서 구했다. 자신만 기억하는 끔찍한 일을 모르기에 형은 도준과 함께할 때 편안하고 즐거워 보였다. 형의 밝은 모습을 볼 때마다 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이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기에 회귀 전 일을 상세히 전하지 않은 것에 안도할 정도였다.

그러나 자신이 모두 실제로 겪었던 일이었다. 도준이 형을 대할 때 배려심을 보이고 신뢰를 주는 데도 불구하고 역겹게 느껴졌다.

그렇다 해도 이영우라는 변수가 생긴 이상, 주도준이 최선이었다.

‘알아. 알지만…… 굳이 우리의 영역에 들였어야 했을까.’

형이 기뻐하는 걸 보고 싶었다. 도준과 선을 긋고 그의 접근을 불편해하는 자신의 눈치를 보는 형에게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상황이 바뀌었으니 조금은 도준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알량한 기대감을 가졌다.

“못 견디겠어…….”

역시 무리였다. 형과 자신의 공간에 도준을 들인다는 건 소름 끼치게 괴로운 일이었다. 다른 공간에선 어찌어찌 버텨 냈으나 여기서만은 무리였다.

이영우의 위협에서 형을 구해 낸 이가 도준임을 알면서도 부족한 가이딩에 예민해진 신경으로 버텨 내기 힘들었다.

재윤의 불편함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챈 건 재하였다. 수저라도 놓겠다며 주변을 맴돌았을 동생이 벽에 붙어 서서 눈을 감고 있으니 걱정이 됐다. 가까이 다가간 재하가 동생의 얼굴에 손을 대려 했다.

“너, 얼굴이 왜 이래? 파랗게 질려서…… 아!”

“미, 미안.”

다가오는 걸 반사적으로 쳐 낸 장갑 낀 손이 다급히 재하의 손을 살폈다. 에스퍼의 힘을 자각 없이 휘두르다간 일반인이 다치기 십상이었다. 다행히 붉은 기만 있을 뿐, 크게 다친 건 아닌 걸 확인한 재윤의 굳은 얼굴이 조금 풀어졌다.

“미안해, 형. 잠깐 딴생각하다가.”

“야.”

짧은 부름에 재윤이 눈치를 보자 재하의 고개가 삐딱하게 꺾였다. 그동안 계속 봐줬지만, 동생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참기 힘들었다.

“손잡는 게 쪽팔린 건 나도 인정. 그런데 이마 좀 짚어 보겠다는데 이렇게까지 오버할 일이냐?”

“일부러 피한 거 아니야.”

장갑 낀 손을 붙잡은 손에 살짝 힘을 주자 재윤이 화들짝 놀라 떨어지려 했다. 말도 안 되는 경계심에 재하는 인내심이 순식간에 휘발됐다.

“이게 일부러 피한 게 아니라고?”

“형, 잠깐.”

도망치는 손을 꽉 붙잡으며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서자 등 뒤가 막혀 도망칠 길 없는 재윤이 벽에 바싹 붙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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