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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62화 (6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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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우에게 재하가 납치당할 뻔했던 2차 각성 테스트 날, 재윤은 진지한 얼굴로 에스퍼 둘에게 제안했다.

재하의 가이딩 제어 훈련에 동참해 달라고. 더불어 당분간은 재하를 혼자 두지 않게 하자는 의견이었다. 하도 진지해서 큰일이라도 부탁하나 싶었던 도준과 지호는 재하의 일이라면 얼마든지 돕겠다며 흔쾌히 받아들였다.

제안받은 당일은 로비의 상황이 정리되지 않아 모든 에스퍼가 이리저리 불려 다녔지만, 반드시 한 명은 재하와 함께 있었다.

“형, 오늘은 견지호가 올 거야. 아무래도 견지호만으로는 걱정인데…… 호신용품 좀 챙겨 줄게.”

“아니, 여기서 문제 터지면 그런 거로 되겠냐?”

“하긴. 제어기는 제대로 돌아가고 있으니 괜찮겠지. 그래도…… 뭔가 더 대비해 두면 좋겠는데.”

에스퍼 숙소는 안전하다더니, 재윤이 하는 행동을 보면 그렇지도 않아 보였다. 특히 지호의 경우 숙소 안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기에 재윤의 걱정이 심해졌다. 도준과 본인을 제외하면 대부분 힘을 못 쓰건만, 재하의 안전이 걸리자 그는 좀처럼 안심하지 못했다.

“형, 잠깐만.”

바쁘게 외출 준비를 하던 재윤은 설거지하려던 재하의 손을 붙잡아 손목을 확인했다. 옷소매에 가려 보이지 않던 팔찌가 드러났다. 예전에 채워 준, 방어 기능이 들어 있는 아이템이었다. 다만, 이전처럼 단순히 끌고 가는 수준의 가벼운 접촉에는 아무 소용도 없기는 했다.

“팔찌는 빼지 마. 조만간 다른 아이템도 구해다 줄게.”

“가죽 장갑 같은 거?”

씻을 때 빼고 벗기는 하는 건지 밥 먹는 내내 끼고 있던 가죽 장갑을 째려보자 재윤은 웃음으로 답을 흘렸다.

“금방 견지호가 올 거야. 그때까진 문 열지 말고.”

“알았어.”

재하가 대충 손을 흔들자 팔찌가 흘러내리며 비어 있는 손목이 보였다. 이에 다시 불안해진 재윤은 팔찌 고리에 힘을 주어 뭉개 버렸다.

“그럼 다녀올게, 형.”

“어.”

자의로 풀 수 없게 만든 팔찌에 떨떠름해진 재하의 반응에도 재윤은 안심하고 밖으로 향했다.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서던 재하는 금세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한숨이 나왔다.

“선배, 저 왔어요.”

“너, 안 바쁘냐?”

벽에 귀라도 대고 있었던 게 아닌가 의심될 만큼 지호의 빠른 방문에 탐탁지 않은 티를 내는데도 그는 마냥 활기차기만 했다.

“바쁘죠. 지금부터 선배랑 가이딩 훈련 해야 하잖아요.”

“그거 오늘은 대충 했다 치고 각자 쉬면 안 되겠냐고.”

“에이, 동생분 출근했으니 선배 혼자잖아요. 이제 저랑 있으셔야죠. 빨리 오세요, 선배.”

“하아…… 알았다, 알았어. 기다려.”

재하는 마지못해 핸드폰을 챙기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지호는 열린 문으로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문 사이로 연신 말을 걸어왔다.

“선배, 우리 이웃사촌이네요.”

“어, 그래.”

“안 그래도 로망이었는데 선배가 제 꿈을 이루어 주시네요.”

“네 로망은 다른 데 가서 이뤄라.”

재하의 불퉁한 반응에도 지호는 꿋꿋하게 들이댔다. 열린 문 사이로 킁킁거리는 척을 하더니 문턱에 아슬아슬하게 발을 걸쳤다.

“선배, 이거 김치찌개 냄새죠? 저 밥 좀 주시면 안 돼요?”

“식당 가, 식당.”

“에이, 선배. 동생분이 틈날 때마다 연습하랬잖아요. 그래서 저보고 이사 오라고 했고.”

그렇다. 이 모든 게 다 재윤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도준의 경우 S급 타이틀이 워낙 막강해 여기저기 얼굴을 비쳐야 했고, 다양한 테스트에 보호 장치처럼 끌려다녔다. 재윤은 노출 빈도를 줄였으나 재하와 가이딩을 하지 않겠다며 선을 그었고, 권해일은 오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나 재윤이 빠지면서 바빠졌다.

그에 비해 지호는 일전에 폭주 위험을 경험했기에 휴식이 필요하다는 협회의 이해가 있었다. 택시 노릇 할 게 아니면 긴급 상황이 아니고서야 숙소에 머무르기 적당한 능력이었다.

“저 들여보내 주시면 안 돼요? 선배 방 구경하고 싶은데.”

“너, 그거 여친 꼬실 때 레퍼토리 같은데 네 방이나 여기나 똑같거든.”

“선배가 이런 식으로 질투심 드러내는 거 귀여워요. 요리 솜씨도 정말 취향이고요.”

“하아…… 냄비째로 줄 테니 갖고 가라, 가.”

차라리 동생이 달라붙는 게 낫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시커먼 사내놈이 일상생활에까지 따라붙는 건 영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재윤이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숙소에 타인을 들이기 싫어한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숙소에 머무는 동안은 숨 돌릴 틈이 생겼으나 그것도 잠시, 지호는 이사 첫날부터 자신을 찾아와 가이딩 훈련을 하자며 제집으로 이끌었다.

애초에 재윤이 지호든 도준이든 믿을 만한 에스퍼와 꼭 함께 있으라고 했기에 당분간은 어쩔 수 없었다.

“선배, 제 방에 오신 걸 환영해요.”

“그냥 평범하게 좀 하면 안 되겠냐.”

들뜬 기색이 역력한 지호를 따라 들어간 그의 방은 자신이 머무는 곳과 사뭇 달랐다.

주방 시설 없이 도준의 숙소와 비슷한 형태였다. 다만 도준이 머무는 층이 좀 더 방 개수가 많고 고급스러웠다.

어쩌면 이곳에서 주방 설비가 돼 있는 건 자신이 머무는 곳뿐일지도 모른다. 재윤이 자신을 위해 힘을 썼을 확률이 높았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취업 걱정을 했던 동생이 대기업이 운영하는 숙소를 입맛대로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재하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지호가 그를 등 뒤에서 끌어안았다.

“앉아서 시작하지?”

“네, 앉을게요.”

대답과 동시에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 지호의 무릎 위에 재하가 앉는 자세가 돼 버렸다. 끔찍하다 싶은 자세에 재하는 손을 뒤로해 맞닿은 몸을 밀어냈다.

“손만 잡아도 되는데 자꾸 오바할래?”

“그렇지만, 손만 잡아선 거부를 안 하시잖아요.”

바쁜 재윤과 도준 대신 종일 지호의 손을 붙잡고 가이딩을 거부해 보려고 했다.

마음속으로는 남자 손 따위 잡고 싶지 않으니 그만하고 싶다고 수십 번을 되뇄지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가이딩은 멈추질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요. 선배가 정말 싫다고 느끼면 가이딩을 멈출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정말 싫어. 뒈지게 싫어. 끔찍하게 싫다, 진짜.”

“에이, 그렇게 싫지 않으시잖아요. 가이딩이 이렇게 잘되는데요.”

“와, 내가 진짜 오늘 어떻게든 가이딩 거부한다.”

앉은 자리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허벅지의 감촉 따위 절대 알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바위에 앉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 손은 손깍지를 끼고, 허리에 감긴 손은 자연스레 맨살을 더듬는 데다 목덜미에 닿은 건 축축하니 정체를 알고 싶지 않았다. 전부 불쾌한 감각뿐인데도 가이딩을 멈추는 일은 좀처럼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저요, 어제 동생분 때문에 꽤 긴장했잖아요.”

“집중 좀 하자.”

지호가 말할 때마다 목덜미의 축축한 것도 함께 움직여 소름이 끼쳤지만, 손이든 허리든 목이든 어디라도 좋으니 가이딩이 멈추길 바라며 정신을 집중하려 했다.

“동생분 B급이라고 들었는데 다시 검사받아야 할 거 같아요. 마나 파동이 어찌나 거센지 긴장 탔다니까요.”

“입 좀 다물지?”

방에만 있느라 얇은 셔츠 한 장만 입은 상태에서는 닿은 몸에서까지 가이딩이 스멀스멀 이어지려 했다.

어찌 된 게 닿으면 닿을수록 가이딩은 쉽기만 했다. 지호 역시 손쉽게 이루어지는 가이딩을 느끼며 느긋하게 재하를 밀어붙였다.

“선배도 보셨잖아요. 동생분 분위기 장난 아니더라고요.”

계속되는 지호의 수다에 재하는 눈을 감고 가이딩의 흐름을 느끼려 했다. 그만 빠져나가라, 멈춰라 끊임없이 생각했다.

“가이딩 제어하려면 진심으로 거부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선배가 다소 싫어하더라도 억지로 밀어붙이면 어떨지…… 의견 좀 냈다가 눈빛만으로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 전에 내가 널 죽일 거다.”

신경질적으로 몸을 틀던 재하는 소파에 눕혀진 자세를 뒤늦게 눈치채고 인상을 찌푸렸다.

“아오, 하여간 손 빠른 새끼.”

“이대로 계속 가이딩이 되면 너무 멀쩡해져서 일하고 와야 할 거 같아요.”

“내 동생은 구르고 있는데 너 노는 꼴은 못 보지.”

“네. 그러니까 거부 좀 해 보세요, 선배.”

마음 같아서는 재하와 이대로 달라붙어 있고 싶은 지호였다. 하지만 재윤은 경고했다. 이대로라면 스치는 에스퍼마다 재하를 탐내게 될 거라고.

재하가 계속해서 가이딩을 조절하지 못하면 믿을 수 있는 몇 명을 제외하곤 경호를 맡길 수도 없었다.

이번에 찾아온 이영우의 경우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납치 시도였다. 그건 상대가 재하를 지나치게 쉽게 본 탓이었다. 말로 꼬드겨 데리고 갈 수 있으리라 여긴 오만함이 어설픈 결과를 낳았다. 다음번에는 다르리라.

“좀 더 진심으로 가 볼게요.”

“뭐? 뭔 진심?”

소파에 마주 보고 누운 자세가 돼 버린 탓에 보게 된 지호의 얼굴은 한껏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보조개가 팰 만큼 생글거리며 질색하는 재하의 얼굴에 바싹 다가갔다.

“선배, 키스하는 거 정말 싫어하잖아요.”

“미친. 너 주둥이 안 치우면 진짜 다신 가이딩 안 해 준다.”

긴급 상황도 아닌 연습 중 과도한 스킨십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다. 재하의 진심 어린 짜증에 지호는 자세를 바꿨다. 이미 소파에 눕혀진 재하의 양손을 잡아 올려 한 손으로 누르고 다른 한 손은 재하의 입술 위에 올려 두었다.

“야, 견…….”

양팔을 잡힌 것도 문제였지만, 지호의 가볍게 얹어진 손가락과 싱글거리는 눈에 재하는 불안해졌다. 지호가 아무리 달라붙어도 짜증을 좀 냈을 뿐 얌전히 있었던 건 선을 넘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어서였다. 폭주 직전에도 선을 지켰던 상대가 이제 와서 지나치게 달라붙는 게 불안했다.

잔뜩 긴장한 재하의 표정에 지호는 웃어 보였다.

“안 해요, 진짜로는.”

재하의 입술을 누른 지호의 손가락 아래로 입술이 닿았다. 손가락 두께만큼의 거리가 있었지만, 코가 스치고 속눈썹이 스치는 감각에 어깨가 움츠러들 만큼 놀랐다. 타인이 이렇게나 가까이 달라붙은 적이 있었던가 떠올려 보면 축구나 농구를 하다 몸싸움으로 박치기했을 때 정도였다. 그때조차도 정면으로 이렇게 다가오진 않았다.

무엇보다 분위기가 달랐다. 스멀스멀 피어오른 긴장감에 굳어 버린 어깨가 펴지질 않았다. 눈을 감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아 부릅뜨고 있자 지호 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손가락을 사이에 두고 울리는 작은 진동에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입을 누르듯 얹어진 손가락이 살짝 벌어지는 게 느껴지자 이젠 무서울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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