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60화 (60/142)

60

유마로는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서재윤의 속임수를 까발리려고 사람들의 동조를 얻고 있는 와중에 높은 사람이 나타나고, 훈련실에서 대결해 보라며 판이 깔릴 때만 해도 일이 흥미롭게 흐르리라 여겼다.

시끄러운 경보음이 울리자 누군가가 S급 에스퍼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동시에 앞에 있던 서재윤이 사라졌다. 무형의 힘을 휘둘러 순식간에 튀어 나간 서재윤이 반대편의 ‘통제 구역’이라 쓰인 강화 문을 반파시켰다.

갑작스러운 파괴 행위도 당황스러웠지만, 다른 쪽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마나 파동에 유마로는 섬뜩함을 느꼈다. 현재까지 발표된 에스퍼 중 유일한 S등급, 수호자 주도준이 서재윤을 빤히 쳐다보며 힘을 사용하고 있었다.

로비에 마나 제어기가 작동 중이라 했는데 저 둘은 쉽게 힘을 사용했다. 혹시나 해서 자신 역시 힘을 끌어 올려 봤지만, 검사실에서와 달리 마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폭탄이다!”

조금 전 ‘주도준’을 불렀던 다급한 목소리가 이번에는 폭탄을 외쳤다. 소리친 이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삽시간에 멀어졌다.

공간이 확보되자 유마로도 볼 수 있었다. 서재윤이 끌어안은 평범한 남자가 바닥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소리치고 있었다.

“선배가 폭탄이랑 멀어지면 터진다고 했어. 빨리 피해야 해.”

‘까만 구슬이 폭탄인가?’

자신의 염동력이면 모조리 찾아내서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용할 수 없었다. 마나 제어만 풀어 주면 자신도 저들처럼 도울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지켜보자 검은 구슬들이 한곳으로 구르기 시작했다.

‘염동력? 누가 한 거지?’

염동력이 이렇게나 흔한 능력인가? 특별한 능력이라 여겼는데 흔했던 걸지도 모른다. 게다가 자신과 달리 마나 제어 상태에서도 능력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다니, 부러워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안심하세요. 구슬마다 이중으로 방어 막을 쳤으니 터져도 괜찮을 거예요.”

긴장으로 모두가 침묵한 가운데 일상 대화 하듯 평온한 주도준의 목소리가 상황 종료를 알렸다.

주도준은 권해일과 서재윤에 비해 늦게 대중 앞에 나타났다. 게다가 주도준의 외모는 준수한 편이긴 했어도 배우상인 권해일과 거친 날것의 느낌인 앳된 서재윤에 비해 임팩트가 약했다.

셋이 서 있으면 흐릿해 보일 첫인상이었다. 권해일과 서재윤의 시현으로 터지고 타오르는 혼란 속에 주도준은 처음 힘을 선보였다.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풍선과 곰 인형을 품에 안고 나타났을 때는 세계 평화 홍보 대사라도 걸어 나오는 줄 알았다. 누군가 그런 그를 수호자라 불렀고, 너무도 잘 어울리는 별명은 모두의 머릿속에 각인될 정도였다.

절대 방어라 불러도 무색하지 않을 능력은 수십 개의 폭탄에 이중으로 방어 막을 생성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모두 물러서 주세요.”

사람들이 물러서 텅 빈 통제 구역 앞으로 걸어간 주도준은 서재윤이 안고 있는 사람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곤 바깥으로 향하더니 대기 중이던 견지호와 함께 사라졌다.

에스퍼 셋이 사라지자 대기자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이에 협회장이 빠르게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다.

“신청자분들의 편의를 위해 일부 구역에 풀어 둔 제어기를 재가동하겠습니다. 더불어 센터 제어 단계도 올라가니 마나에 민감하신 분들은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별일 아니란 듯 태연하게 말하는 협회장의 분위기에 홀린 사람들은 이대로 괜찮은 건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가드 숫자도 두 배로 늘어나 모든 벽과 문 앞을 막아서 안내자가 아닌 경비처럼 보였다.

“보시다시피 우리에겐 S급 수호자가 있습니다. 더불어 A급에 준하는 에스퍼들이 여러분을 위해 바쁜 시기에도 이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부서진 철문과 협회장에게로 모였다.

“그래도 불안하다면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다만, 3차 테스트는 지금보다 더 많은 인원이 대기 중이란 것만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보다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커졌다.

“신청자 여러분, 에스퍼라면 위험에도 노출될 수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빌런의 공격이 있을 수도 있지만, 게이트가 생겨나며 마수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일입니다. 각성자라면 보다 빠르게 피할 수 있겠지요. 훈련받는다면, 마수를 물리치고 안전과 부를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두려움에 이어 부와 명예를 손에 쥘 기회. 이미 새로운 힘을 손에 쥔 자들도 섞여 있었다. 사람들의 눈에 기대감이 차오르는 걸 본 협회장은 기다렸다는 듯 선언했다.

“그 모든 걸 저희 대성에서 지원합니다. 최상의 프로그램을 통해 누구보다 앞설 기회입니다.”

“오오, 대성!”

“대기업은 역시 믿을 만해.”

“그, 그렇지. 어차피 각성하러 온 건데.”

위험은 이미 사방에 도사렸다. 이미 도망친 빌런과 통제된 폭탄이 무서워 피하기엔 바깥세상에 더 위험한 일이 언제든 터질 수 있었다.

각성했거나 각성에 가까워진 이들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대부분이 협회장의 말에 설득당해 다시 줄을 서기 시작했다. 거기에 직접 눈앞에서 본 에스퍼의 활약도 한몫했다. 조금 움직인 것뿐인데도 바닥이 패고 문이 부서지는 능력과 폭탄을 무효화시킬 만큼 강력한 방어 막을 손쉽게 만들어 내는 모습은 다시 생각해도 굉장했다.

“유마로 에스퍼,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갑자기 정리되는 분위기에 직원이 유마로를 안내했다. 하지만 유마로의 머릿속엔 협회장의 뻔한 연설이 아닌 평범한 남자가 떠나질 않았다.

서재윤이 온몸으로 끌어안아 지키고, 주도준은 폭탄을 제어하는 중에 다가가 손을 잡아끌던 존재. 폭탄을 빠르게 이동시키기 위해 나타난 견지호 역시 주도준이 아닌 평범한 남자를 향해 눈을 맞추고 호의를 보였다.

‘낯익어. 아마도 그 사람이 맞는 거 같은데.’

“저기, 아까 서재윤이 지키던 사람 누군지 알아요?”

“서재윤 에스퍼의 형제일 겁니다. 연구소에 자주 출입하는 걸로 압니다.”

서재윤의 형제라는 말에 유마로는 최근 검색하며 알게 된 이름을 입에 담았다.

“혹시 서재하?”

“아,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유마로가 예상한 답이 돌아왔다.

화면에 잠깐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서재윤과 관련된 영상은 수없이 돌려 본 유마로의 기억에 남아 있는 인물.

한강 게이트 때, 권해일이 쓰러진 상황에 허공에서 나타난 견지호와 함께 있던 일반인이었다. 현장 중계 이후 재차 방송될 때 견지호 에스퍼라고 표기된 것과 달리 그자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도 실리지 않아 오히려 신경 쓰여 인터넷을 뒤졌었다.

<한강 게이트>, <권해일 부상>, <권해일 포옹>

심각하면서 사소한 것까지 다양한 정보를 몇 번 클릭한 것만으로 ‘권해일 포옹남’이란 타이틀과 함께 아는 사람이라며 댓글이 달렸다.

거기에 학연, 지연으로 일반인인 남자를 알아본 지인의 댓글이 이어졌다.

서재하. 일반인으로 보였지만, 쓰러진 권해일이 그와의 포옹 후 스스로 일어날 수 있을 만큼 빠르게 회복했다. 힐러 능력자라면 에스퍼를 홍보 수단으로 써먹는 대성이 그대로 둘 리 없었다.

바로 직전에 했던 인터뷰의 ‘가이드’라는 존재가 아닐까. 인터넷상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직은 확실하지 않지만, 대중에게 노출된 에스퍼들이 싸고도는 걸 직접 보고 나니 거슬렸다.

신경이 쓰인다 한들 딱히 어쩌겠다는 건 아니었지만, 영상 속 항상 느긋하기만 하던 서재윤의 긴박한 모습은 좀 통쾌했을지도 모르겠다.

* * *

무사히 격리실에 폭탄을 옮기고 안전한 장소로 빠져나오자마자 재윤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첫 타깃은 당연히 형인 재하였다.

“형이 왜 로비에 와 있어? 사람 많고 위험하다고 했잖아.”

“그거야 니가 A급 각성자한테 발리고 있다니까 걱정돼서…….”

“그런 소릴 들었으면 더더욱 오질 말았어야지. 진짜로 누군가 힘을 썼으면 형은 날아가고도 남았어.”

“그래서 도준이랑 같이 움직였잖냐.”

“같이 다니면 뭐 해. 결정적일 때 혼자 떨어져 있었잖아. 그 새끼가 형 입을 막았거나 기절시켜서 데려갔으면 어쩔 뻔했어?”

“하지만…….”

구구절절 맞는 말에도 재하는 억울해져 도움을 청하려 돌아봤다. 눈이 마주친 도준이 친화력 높은 선한 미소를 지으며 대신 변명해 주었다.

“그래도 재하가 소리치자마자 곧바로 방어 막을 써서 다들 무사하잖아.”

“능력을 써 준 건 고맙지만, 형이 혼자 돌아다니게 둔 건 실수한 거예요. 실제로 그 새끼한테 형이 끌려갈 뻔했잖아요.”

“으응, 그건 나도 반성하고 있어.”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가이딩 하지 마세요. 남들이 보면 다 큰 남자끼리 손잡는 거 수상하게 여기니까.”

잠시나마 재하와 함께 반성하려던 도준의 선한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깃들었다.

“……재하 동생이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아기 새 품듯 완전히 품 안에 가두기까지 했잖아.”

“전 가이딩 하려고 한 게 아니잖아요. 보호한 거지.”

왜 변명처럼 들리는 걸까.

재하도 비슷하게 생각하는지 어색하게 목덜미를 긁으며 슬금슬금 물러섰다. 도준도 마지못해 재하와 손을 풀고 가볍게 항변했다.

“사람들이 봐서 수상한 건 손잡기보다 포옹 아닐까?”

“형제끼리 포옹하는 게 뭐가 수상해요.”

정말로 모르겠다는 재윤의 뻔뻔한 태도에 재하와 도준는 애매한 웃음을 지었다. 어색한 분위기에 이번엔 지호 쪽에서 답이 튀어나왔다.

“형제끼리 누가 포옹을 해요? 썸 타는 사이면 모를까.”

물러서 있던 재하를 뒤에서 끌어안은 지호는 당당하기만 했다. 지호의 뻔뻔한 스킨십에 재하는 슬슬 익숙해지면서도 여전히 싫은 기색이 역력했다.

“아오, 개호 짓 좀 하지 말라고.”

밀어내는 재하의 손에 머리를 가져다 댄 지호는 보조개가 폭 파일 만큼 진하게 웃었다.

“선배, 동생분도 있는데 정식으로 소개해 주세요.”

“뭘 정식으로 소개해? 귀 옆에서 종알대지 말고 좀 떨어져.”

“와, 뽀뽀도 해 주지 않으면서 포옹도 못 하게 하고. 먹이 정도는 주셔야 참죠.”

“짐승 새끼냐? 먹이는 무슨. 그리고 참긴 뭘 참냐고, 대체.”

재하는 연신 툴툴대며 자신을 끌어안은 지호의 팔이며 손등을 찰싹찰싹 때리기는 해도 진심으로 밀어내지는 않았다. 그런 재하의 반응을 지켜본 재윤은 형이 가이딩을 하며 접촉에 익숙해졌음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와 달리 무의미하게 달라붙는 지호에게 가볍게 조언했다.

“견지호 에스퍼도 가이딩 할 때 아니면 지나친 접촉은 주의해 주시죠. 일도 아닌데 그렇게 치근거리면 여친들이 싫어해요.”

“싫어할 여친 없는데.”

지호에게 관심 없는 도준조차 알고 있는 문어 다리 카사노바의 거짓말에 모두가 침묵한 순간, 지호는 눈매가 휠 정도로 진심인 웃음을 지으며 재하를 양팔로 끌어안았다.

“정리했어요, 여친들.”

폭탄선언이 떨어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