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59화 (59/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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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초대받지 않은 손님

이영우를 앞에 둔 재하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기억 아래 가라앉혀 두었던 폭발과 죽음의 공포가 되살아났다.

“만나고 싶었어, 재하야.”

재하의 굳은 얼굴은 안중에도 없이 그때와 같은 목소리로 반갑게 불렀다.

“재하는 나 안 보고 싶었어?”

턱까지 끌어 내린 마스크 위로 영우의 웃는 얼굴이 드러났다.

영우는 공포에 질려 아무 반응도 못 하는 재하를 빤히 보며 답을 기다렸다. 그러면서도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을 자연스럽게 내려 손바닥이 닿도록 겹쳐 잡았다.

그와 동시에 가이딩이 시작됐다. 맞닿은 손을 통해 무서운 속도로 힘이 빨려 나가는 감각에 재하는 영우가 그간 얼마나 많은 힘을 소모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다행히 익숙해진 감각 덕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영우 선배.”

“역시 재하 넌 달라. 손잡고 싶었어.”

가이딩인 줄도 모르고 영우는 자신과 손을 잡았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걸 특별하게 여겼다.

어느 날부터 영우는 자꾸만 자신의 손을 잡으려 했다. 이제 보니 본능적으로 가이딩을 받고 싶어 그리했던 게 아닐까. 어쩌면 다른 사람보다 먼저 각성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자신은 언제부터 가이드였던 걸까. 무엇보다 상대가 에스퍼라는 걸 인지한 순간 이곳에 다른 에스퍼도 수두룩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 에스퍼 중에는 동생도 있었다. 가족이 같은 장소에 있다는 사실에 재하는 두려움보다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커졌다.

공포가 사그라지자 영우가 무슨 낯짝으로 여기에 나타난 건지 어이가 없었다. 지금 몸을 사려야 할 건 자신이 아니라 영우였다.

“선배, 여기가 어디라고 와요.”

“날 걱정하는 거니?”

재하의 굳은 얼굴과 목소리에도 영우는 제 좋을 대로 해석했다. 뻔뻔한 그에게 재하는 마음에 담아 둔 말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선배가 잡혀가고 난 후 폭탄이 터졌어요. 저랑 도준이 가족까지 다칠 뻔했고요.”

재하의 원망에도 영우의 웃는 얼굴에는 변화가 없었다. 폭탄을 터트린 즐거움을 드러냈다기엔 재하를 만나 반가워하는 표정 그대로였다.

“왜 그랬어요?”

“터질 줄 몰랐어, 재하야.”

영우의 웃음 속에 약간의 미안함이 섞이자 진심처럼 느껴졌다.

“나도 그날이 처음이었잖니. 잡혀가는 동안 멀리서 폭탄 터지는 소리를 듣고 놀랐단다.”

“그게 무슨…….”

“나랑 멀어지면 폭탄이 자동으로 터지는 건 줄 몰랐어. 알았다면 폭탄을 회수하든지 방어 막이 있을 때 터트렸을 거야.”

영우의 말이 사실이라면 고의는 아니었다는 거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험에 처했던 게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고의가 아니었다는 게 진실이라면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복잡해진 마음에 아무 말도 못 하는 재하의 등 뒤로 협회장의 호탕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 이렇게 다툴 게 아니라 다들 궁금하신 A급 염동력과 B급 염력을 비교해 보면 어떻습니까? 훈련실을 개방할 테니 테스트까지 여유 있는 분들은 같이 이동합시다.”

“우와! 협회장 통 크다!”

“앞자리는 못 참지. 서두르자.”

아직 알려지지 않은 협회 시설 공개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다들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우르르 몰려가는 통에 재하의 몸이 휘청이자 영우가 품으로 끌어당겼다.

“윽, 선배?”

“내가 널 왜 다치게 해. 이렇게 손만 잡고 있어도 좋은데.”

그림 같은 미소. 계산적인 행동. 사람을 죽이고도 활보하고 다니는 게 가능한가.

재하는 퍼뜩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선배, 그때 그 사람들 경찰 아니라던데 어떻게 된 거예요?”

“재하 너는 정말…….”

환한 영우의 웃음 뒤로 또다시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전부 로비 안쪽으로 달리는데 영우만이 재하의 손을 붙잡고 반대로 이끌었다.

“어딜 가는 거예요?”

“일단 섬부터 갈까? 이번에 받은 건데 하도 터트려 대서 엉망이긴 하지만, 멀쩡한 곳도 많아.”

영우가 하는 말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선배, 잠깐만요.”

소란스러운 가운데 어떻게든 손을 빼 보려고 당겨 봤지만, 각성자의 향상된 체력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나 시간을 끌었는데도 도준의 개입이 없는 게 이상해 돌아보니 아직도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재윤 쪽을 보고 있었다.

소리를 지르면 충분히 들릴 것 같아 숨을 들이쉬는데 이 소란 통에도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란 듯이 영우의 손에서 굴러다니는 여러 개의 검은 구슬을 보니 차마 큰 소리가 나질 않았다.

“선배랑 안 갈 거예요. 여기 있을 거예요.”

먹히지 않을 걸 알면서도 일단 대화를 시도하자 영우는 곧잘 반응했다.

“왜? 나랑 가면 재밌는 것도 많이 보여 줄게.”

“아뇨, 전 집에서 게임하고 노는 게 젤 재밌어요.”

“그럼 신기한 거 보여 줄까? 게이트 구경 가자.”

“전 완전 일반인이라서 그런 데 가면 죽어요.”

“내가 있잖니.”

도준과 같은 말을 하는데 조금도 믿음이 가지 않았다. 재하는 어설프게 그를 설득하는 걸 포기했다. 통제 구역이라 쓰여 있는 수상해 보이는 문 쪽으로 향하는 영우를 보며 재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 먹힐 만한 말을 꺼냈다.

“여기에 제 가족이랑 친구가 다 있어요. 떠나지 않을 거예요.”

“나는?”

솔직히 지금 선배인 영우가 자신한테 무슨 의미가 있을 리 없는데도 그는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마구잡이로 걸어가던 영우의 걸음이 멈추며 그가 자신과 마주 봤다는 거였다. 자신에게 대답을 요구하는 순수하기까지 한 영우의 얼굴에 재하는 그가 이해할지 걱정하며 답을 내 주었다.

“선배가 여기로 오면 같이 지낼 수 있죠.”

“그건 아니지. 쓸모없긴 해도 사람을 죽였으니.”

상식은 있지만, 비상식적인 생각이었다.

“재하랑 같이 있고 싶은데…….”

영우는 고개를 기울이며 고민했다. 제멋대로인 것 같으면서도 나름대로 생각을 한다는 게 더 무섭게 느껴졌다.

“방해되는 게 가족이랑 친구니까…… 서재윤과 주도준이겠구나.”

영우의 가벼운 중얼거림에 재하는 말실수를 한 건가 싶어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주도준은 좀 까다로우니까…… 네 동생을 치우면 날 선택해 주겠니?”

안부를 묻듯 가볍기까지 한 질문에 어색하게나마 웃음을 짓던 재하의 표정이 사라졌다.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하겠다는 영우의 질문에 재하는 두려움이 아닌 분노가 치솟았다. 순식간에 감정 스위치가 바뀌며 이 상황을 어떻게든 좋게 끌어 보려 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했다.

“그 말, 절대로 용서 못 해.”

재하에게서 진심으로 적의를 느낀 영우가 놀란 얼굴을 했다.

혹여나 누군가 휩쓸리게 될까 봐 설득하려 했지만, 가족을 향한 위협이 된 상황에 재하는 이성을 지킬 수 없었다.

벽에 가까워진 재하는 영우에게 잡히지 않은 팔을 들어 힘껏 휘둘렀다. 퍽 소리와 함께 벽에 부딪친 손목에 저릿한 통증이 느껴지는 순간,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울리는 비상벨 소리에 사람들은 당황했다.

“뭐, 뭐야?”

“화재경보음 아냐?”

“진짜? 어디 연기 나?”

이게 무슨 행동인가 싶어 고개를 기울이던 영우는 재하의 손목에서 깨진 통신기를 보고 가는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미소 지었다.

“와, 이런 걸 가지고 있으면서 왜 이제야 쓴 거야?”

“선배가 내 가족을 위협했어. 이제 설득 같은 건 안 해.”

“설득하느라 안 썼어? 날 위해서였구나.”

또 제멋대로 해석하고 환하게 웃는 영우는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영우는 잡았던 손을 풀고 잔뜩 화가 난 재하의 얼굴을 쓰다듬을 듯이 닿아 왔다.

“날 무서워하면서도 걱정하고 기회를 주려고 하고. 이러니 재하가 보고 싶어 미치지 않겠니.”

“선배, 선 넘었어요. 가족은 건드리는 거 아니지.”

지금까지 보인 모호함이 아닌 확실한 거부에도 영우는 눈이 가늘어질 정도로 깊은 미소를 지었다.

“재하, 넌 정말 특별해. 아무래도 가져가야겠어.”

애착 물건 취급하는 영우의 집착에 끌려가던 재하는 어떤 소리를 들어 버렸다.

잘그락.

경보음과 수많은 사람이 내는 소음 속에서도 작디작은 폭탄 구슬 굴리는 소리가 귀에 들어와 박혔다. 영우의 손에서 구슬들이 후드득 바닥으로 떨어졌다. 재하는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어 받아 내며 도준이 있을 만한 곳을 향해 소리쳤다.

“주도준!”

친구의 이름을 부르자마자 정체불명의 굉음이 들려오더니 이내 주변 소음이 잦아들었다. 재하의 부름에 도준이 곧바로 무리하게 마나를 끌어 올려 방어 막을 펼친 덕이었다. 방어 막에 밀려난 영우의 행복하게 웃던 표정이 단번에 식어 버렸다.

“종알종알 수작 부리는 게 귀여워서 들어 주다 놓쳐 버렸구나. 아쉬워라.”

진심으로 아쉬워하며 물러서는 영우는 문 너머로 몸을 통과시키면서도 시선은 재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정작 재하는 시야가 차단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완벽한 방어 막 안에서도 긴장이 풀리지 않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형은 내가 있는데 저놈부터 불러야겠어?”

투정 섞인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리자 재하는 눈을 가린 게 재윤임을 알아챘다. 그제야 잔뜩 긴장했던 몸에 힘이 풀리며 주변을 살필 수 있었다. 손으로 받았던 폭탄은 어느새 방어 막에 싸인 채 허공에 떠 있었다.

“선배는?”

“문을 통과해서 사라졌어.”

“뭐? 빨리 쫓아가야 하지 않아? 너, 넌 말고. 경찰이라든가…… 아니, 더 강한 에스퍼.”

혹여나 재윤이 따라갈까 봐 제복을 꽉 붙들었다. 그런 재하의 행동에 굳어 있던 재윤의 얼굴이 풀어져 버렸다. 이미 재윤은 자신의 형을 보호하듯 양팔로 감싸 안은 상태였다.

“소용없을 거야. 저쪽 조직에 포털 능력자가 있거든.”

“포털?”

“응, 아마 건물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 이영우가 나오자마자 포털 닫고 튀었을걸.”

재윤의 어깨 너머로 간신히 확인하니 통제 구역이라 쓰여 있던 철문이 움푹 파여 있었다.

“영우 선배가 벽을 통과했다는 게 부수고 지나갔다는 거?”

“저건 내가 한 거고.”

“……마나 제어기는 뭐 하러 켜 놓는 건데?”

영우가 벽을 통과하거나 재윤이 염력을 이용해 문짝을 날려 버리는 건 전부 마나를 기본으로 했다. 자신과 재윤을 지켜 주는 방어 막 역시 마찬가지였다.

힘을 펑펑 써 대는 걸 보고 마나 제어기가 얼마나 무의미한 건가 싶어 황당해하는데 재윤은 편안하게 답했다.

“통제 구역으로 비상시를 대비해 마나 제어를 약하게 해 두었거든. 대외비인데 벌써 정보가 팔려 나갔나 봐.”

“너랑 도준이도 힘 썼잖아.”

“주도준은 마나가 넘쳐서 가능한 거고. 난 요령이 좋아서.”

뻔뻔한 재윤의 말에 어이없다기보다 한결 안심됐다. 마음이 놓이자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시끄러운 경보음에 직원과 가드가 뒤늦게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발에 무언가 차여 날아가는 게 보였다.

“어?”

방어 막 앞까지 굴러와 툭 부딪쳐 멈춘 건 또 다른 검은 구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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