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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57화 (57/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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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로는 아침부터 짜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에스퍼 협회 앞은 사람들로 가득해 들어서기도 전에 질렸다.

“어휴, 각성하지 않은 것들까지 다 몰려들어서 이런 거지. 1차 때 왔어야 했는데.”

균열과 함께 각성한 이들은 1차 각성자라 불렸다. 기존의 에스퍼는 1세대라고 하니 이번 각성자는 2세대의 1차 각성자로 불렸다. 어차피 1세대도 아닌데 특별 취급 받을 이유는 없지 않나 싶으면서도, 1차를 놓쳐 2차에 합류하게 된 게 짜증스러웠다.

1차 각성자는 진즉 협회를 통해 빠르게 각성 검사를 받고 교육에 들어갔다. 유마로도 같은 시기에 각성했으나 개인 사정으로 이제야 센터에 방문할 수 있었다. 그 탓에 2차 각성 검사와 맞물려 버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에이씨, 개 새끼가 다친 것만 아니었어도 진즉 받았을 건데.”

대격변의 날.

유마로는 바쁜 누나를 대신해 강아지를 산책시키던 중 균열을 만났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지나가는 걸 보아 제 눈에만 보인다는 걸 깨닫고 모른 척 다른 길로 들어섰다가 더 큰 균열을 코앞에서 만났다. 갑자기 나타난 균열은 더 크고 불길한 일렁임을 보였다.

본능적으로 저게 터질 거라는 걸 알았다. 당연한 공포심에 유마로는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다행히 손은 움직여 줄을 놓고 강아지를 멀리 보내려 손을 휘저었다. 누나가 장난스럽게 제 이름과 비슷하게 지은 강아지 이름을 입에 담을 생각은 없었다.

좀 꺼지라고, 멍청한 개 새끼라고 욕을 하는데도 꼬리만 흔들며 옆에서 떠나지 않는 강아지를 향해 크게 손을 휘젓는 순간 강아지가 붕 떠올라 날아갔다. 마치 장풍이라도 맞은 것처럼.

멍하니 쳐다보는데 강아지가 바닥을 구르며 깨갱 소리를 냈고, 그제야 당황한 유마로의 다리가 움직였다. 어딜 다쳤는지 일어나지 못하는 강아지를 안고 내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등 뒤에서 폭탄 터지는 소리를 들었지만, 머릿속엔 동물 병원 위치만이 급하게 떠올랐다.

깁스한 강아지를 혼자 둘 수 없어 2주간 수발을 들다 보니 2차 각성 검사 시기가 다가왔다. 인파를 보면 싹 다 날려 버리고 싶을 만큼 짜증은 났지만, 집에 처박혀 있는 동안 자신에게 생긴 능력에 익숙해진 건 만족스러웠다.

예상과 달리 유마로의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사전 접수한 내용을 통해 각성자로 분류된 신청자는 우선순위를 받는 덕이었다.

각성자로 신청한 사람도 상당수였지만, 줄이 눈에 보일 정도인 데다 무슨 수를 쓴 건지 사람들이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직원이 나와 각성자만 쏙쏙 골라 검진 센터로 안내했다.

유마로 역시 로비의 대형 전광판을 잠깐 보는 사이 직원에게 안내받을 수 있었다.

대형 전광판을 통해 등급과 반쯤 가려진 이름이 떠오르는 걸 보아 각성 현황을 실시간으로 알리는 모양이었다.

‘급이 올라가면 이름을 더 공개하는 식인가.’

“이런 식이면 내 이름은 다 나오겠네.”

짜증스러워하는 말투였으나 표정에는 숨기지 못한 기대감이 드러났다.

검사실 앞에 먼저 와 있던 수다쟁이는 침묵하는 유마로에게 제 능력을 자랑했었다. 결과는 B급. 검사실 복도에 설치된 작은 모니터에도 로비의 전광판과 같은 내용이 떠올랐다. 고작 사람이 밀릴 정도의 바람을 일으키는 능력이 B급씩이나 된다면, 다양한 물건을 움직일 수 있는 자신 쪽이 훨씬 더 대단하다고 생각됐다.

‘B급은 흔한가 보군.’

이제 오전인데 벌써 둘이나 등장했다.

유마로는 긴장이 사라지고 기대감만 차올랐다. 곧 호명될 자신의 이름을 기다리는데 다음 검사를 받을 사람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와, 역시 센터 오니까 에스퍼도 보고 신기해.”

“서재윤 잘생겼더라. 키도 크고. 에스퍼 되면 잘생겨진다더니 정말인가 봐.”

“그럼 우린…… 각성 안 한 걸지도 몰라…….”

잔뜩 들뜬 바보 삼총사의 대화에 유마로는 한숨이 나오는 걸 참기 힘들었다. 고개를 돌리고 어서 직원이 나오길 기다리는데 무시하기 힘든 이야기가 들려왔다.

“멋있긴 하더라. 너도 봤지? 차양 설치하는 데 방해된다고 불법 주차 한 벤츠 바로 날려 버리는 거.”

“아니, 좀 미친놈 같던데. 에스퍼니까 돈 좀 버나?”

“장난 아니더라……. 컨트롤이 진짜…… 대단했어…….”

“그래 봤자 B급이지.”

참다못해 툭 튀어나온 유마로의 짜증에 세 사람의 대화가 멈췄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데 검사실 문이 열리며 직원이 나타났다.

“유마로 님, 각성 검사실로 들어와 주세요.”

불쾌함을 지우고 기대에 부풀어 들어간 검사실 안에서도 듣기 싫은 이름은 계속해서 들려왔다.

“유마로 님, 이능이…… 오, 염력이시군요. 서재윤 에스퍼와 같은.”

“아뇨, 염동력인데요. 정체 모를 힘이 아니라 정확하게 지정한 물건을 움직이는 힘이요.”

기대 가득한 연구원의 얼굴에 대놓고 인상을 찌푸리며 정정해 줬다.

곧바로 마나 검사를 하는데 수치가 상당히 높게 나와 검사하던 연구원이 눈에 띄게 기뻐했다.

“A등급은 무조건 나오시겠어요.”

“그럴 거 같았어요.”

유마로는 자신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여겼다. 강아지를 돌보며 TV에 쉴 새 없이 등장하는 에스퍼들에 대해 달달 외울 정도로 영상을 보고 또 봤다. 그중 B급 에스퍼인 서재윤의 영상은 상당히 파괴적이었다. 다들 불을 사용하는 권해일의 화려함에 취했지만, 서재윤이 보이지 않는 힘으로 벽을 부수고 자동차를 압착해 버리는 장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각성 후 집 안의 모든 물건을 들었다 놨다 반복하던 유마로는 창밖으로 보이는 차량을 허공에 띄우는 데에 성공했다.

숨 쉬듯 쉬운 일에 더 큰 걸 들어 보고 싶어졌다.

서재윤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이 곧 저를 향하리란 확신이 들었다. 게다가 그자는 파괴하기만 할 뿐이었다. 온전하게 제자리에 차량을 내려놓으며 자신의 능력이야말로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했다.

시기만 빨랐어도 저 자리에 자신이 있었을 텐데. 혹은 서재윤과 친구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작 B급. 힘 사용 빈도가 자신보다 현저히 낮았다. 몇 번 시현한 후에는 돌발 상황에 대비해 이능 사용을 자제하겠다고 했다.

유마로의 마음속에 서재윤을 향한 호감은 빠르게 지워졌다. 되다 만 에스퍼와 콤비를 이뤄 마수를 해치우는 상상을 했다는 게 부끄러웠다. 고작 B급 에스퍼를 잠시나마 동경한 것도 불쾌했다.

대성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다. 어차피 다 짜고 치는 거 아닌가. 얼굴 반반한 에스퍼를 골라 앞에 세운 티가 났다.

부조리한 세상에 불만이 많았던 유마로는 짜증이 치밀었으나 그보다 훨씬 나은 자신이 센터에 가면 달라질 거라 믿었다.

그런 짜증과 기대감이 뒤섞여 각성 검사를 위해 도착한 센터에서도 수시로 들려오는 서재윤에 관한 이야기가 거슬렸다. 이미 자신의 아래로 여기는 서재윤을 빗대어 칭찬하거나 곧 그를 따라잡겠다며 치켜세워 주는 게 어이가 없었다.

이능 테스트까지 끝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구원이 결과지를 들고 와 감탄했다.

“유마로 씨. 아니, 유마로 에스퍼. 이능은 염동력 테스트 결과 B. 마나 측정 결과 A급 확정되셨습니다.”

“이능이 B요?”

얼굴을 찌푸리며 불만을 드러내는 유마로에게 연구원이 오해하지 말라며 덧붙였다.

“이능에 대한 이해도와 사용 가능 횟수를 합쳐 내는 등급입니다. 마나 등급과 별개로 이능 테스트는 각성 초기에 C도 받기 힘들어요.”

“……서재윤은요?”

“앗, 역시 같은 계열이라 관심이 가죠? 아직 정보 오픈 전이지만, 어차피 A급이시니 정보 열람이 가능하실 테니까…….”

연구원이 작게 속삭인 내용은 별것도 아니었다.

이능 이해도 A급 이상으로, 고작 C등급 마나 양에도 힘을 사용하는 게 능숙해 A급 못지않은 출력을 보인다 했다. 그래 봤자 절대량인 마나가 고작 C급이었다. 잘도 B급으로 홍보하며 얼굴을 팔고 다녔구나 싶어 유마로의 비웃음이 짙어졌다.

어차피 시현만 해 대던 서재윤이나 집에서 혼자 연습한 자신이나 마찬가지라 여겼다. 현장에 투입되면 급의 차이를 확실히 보여 줄 것이다.

단순하지만 확실한 계획이 세워지자 유마로의 마음에 여유가 돌아왔다. 들어온 길로 돌아가자 복도를 지키고 있던 직원 중 한 명이 다가와 함박웃음으로 맞이했다.

“유마로 에스퍼, A급으로 각성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앞으로의 교육 일정과 센터에 대한 안내를 위해 제가 모시겠습니다.”

“저 혼자 가도 되는데요.”

“아닙니다. 사실상 1차 각성자이신 데다가 A급이신데 사람들이 몰려 피곤하실 수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에 유마로는 들뜬 기분으로 안내받았다.

직원을 따라 로비로 나서며 무심한 척 웃음을 지웠으나, 사람들의 관심은 다른 쪽에 있었다. 여전히 북적거리는 로비 한가운데에 유난히 인구 밀도가 높은 곳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가운데 머리 하나가 쏙 나와 있는 서재윤이 사람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해 주고 있었다.

“염력으로 사람도 들어 올릴 수 있어요? 해 주시면 안 돼요?”

“제 능력과는 좀 달라서 힘듭니다. 그리고 센터 안에는 마나 제어기가 설치돼 있기에 이능 사용이 불가합니다.”

“마나 제어기는 어디 있어요?”

“위치는 기밀이라 양해 부탁드립니다.”

“권해일은 안 와요?”

“권해일 에스퍼는 게이트 조사 중입니다.”

TV로만 보던 에스퍼가 친절하게 대응하자 답하기 어려울 만큼 한꺼번에 질문이 쏟아졌다.

애인 있냐부터 시작해 팔씨름해 달라는 요청까지, 온갖 쓸데없는 질문에도 서재윤은 불편한 기색도 없이 담담했다. 중간중간 답을 해 주며 몰려든 사람들이 줄을 서도록 유도했다. 서재윤의 행동은 상대가 기분 나빠하지 않을 만큼의 능숙함이 있었다.

유마로는 그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C급밖에 안 되는 능력을 요령 피워 B급으로 등록한 사기꾼이면서 모두의 호감과 신뢰를 받으며 웃을 수 있다니.

대형 전광판에 여전히 당당하게 홀로 떠 있는 를 보는 이는 드물었다. 유마로는 계속해서 자신의 신경을 긁어 대는 서재윤의 존재가 너무도 거슬렸다.

“에스퍼가 줄이나 세우고. 역시 B급이라 이런 일이 어울리네요.”

대놓고 시비를 거는 말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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