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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54화 (5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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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한 소리나 해 대는 동생에게 절대 손대고 싶지 않아졌다. 슬금슬금 물러나 엘리베이터 벽에 바싹 붙어 거리를 둘 정도였다.

자신이 피하는데도 슬쩍 웃는 재윤의 반응에 뭔가 속은 기분이 들었다. 계속 가이딩을 피하더니 재하 쪽에서 알아서 피하는 상황을 의도한 건가 싶기도 했다.

‘얼빵한 동생이 영악하게 군다고?’

“너, 회귀를 몇 살 때 한 거야?”

“……공공장소에서 꺼낼 만한 주제는 아닌 거 같아, 형.”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기에 재하는 입을 다물었다. 잠시 대화가 끊겼다가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재윤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따 방에 가서 말해 줄게.”

“가이딩 테스트 저녁은 돼야 끝날 건데. 저녁에 다시 오려고?”

“아니, 계속 같이 있을 거야.”

태연한 재윤의 대답에 재하는 의아해했다. 며칠 전만 해도 잠깐 얼굴만 보고 가야 할 만큼 바빴던 재윤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함께 온 비서 같은 사람도 안 보이고 항상 밖에서 대기하던 이천오도 보이지 않았다.

“너 엄청 바쁘잖아.”

“바빴지. 이제 권해일이 더 바빠질 거야.”

“설마 해일 형한테 다 떠넘기려고? 지금도 바쁜데 그러다 사람 죽어.”

“형.”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재하의 모습에 지금까지 여유롭기만 하던 재윤의 표정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목소리마저 묵직해져 가볍게 대화를 이어 가던 재하 역시 조금 긴장했다.

“어제 D급 에스퍼 새끼 때문에 형 다칠 뻔했다며.”

그걸 어떻게 알았지 싶어 빤히 쳐다보자 재윤 역시 눈을 맞춰 왔다. 뒷조사했냐 장난스럽게 따지기에는 동생의 굳은 표정에 진중함까지 더해져 서늘한 느낌마저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어진 재윤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가드란 것들은 일 터지기 전에 제대로 막지도 못하고.”

“그건 아니지. 약속과 다른 사람이 왔던 게 문제고, 다들 최선을 다했어.”

“형을 다치게 두는 게 최선이면 필요 없어.”

재윤이 재하의 손을 붙잡아 올리자 멍 자국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인상을 찌푸린 재윤의 반응에 재하가 더 안절부절못했다.

“이제 그런 일 없을 거라고 했으니까 괜찮아.”

“애초에 이런 테스트는 의미도 없어. 형이 다른 놈들 가이딩 같은 걸 해 줄 시간에 체력을 아끼는 게 낫지.”

가이딩 테스트가 의미 없다는 말에 재하는 발끈했다. 자신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실제로 가이딩을 하고 가이드 수칙을 읽으며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야, 에스퍼는 힘 쓰면 계속 몸이 안 좋아진다며. 손만 잡아 줘도 되는 건데 너무 이기적인 생각 아냐?”

“형이 그렇게 말할 거 같아서 내가 온 거야.”

“뭐?”

“하고 싶으면 해. 대신 이제부턴 내가 형을 지킬 거야.”

어느새 가이딩실 앞에 도착한 재윤이 문을 열어 주며 웃어 보였다. 재하가 들어가지 않고 쳐다보자 재윤은 후회를 곱씹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했어야 했어. 조금 느려도 형을 지키는 걸 최우선으로 뒀어야 했는데.”

“손에 멍 좀 들었다고 여기서 대기 타겠다고? 완전 비효율인데.”

“형도 비효율적인 일을 하잖아. 효과도 적은 에스퍼를 상대로 힘이나 빼고.”

“그건 친밀도가 낮아서랬어. 니가 그렇게 말했다며.”

지지 않고 받아치는 재하에게 재윤이 가까이 다가섰다. 열린 문 안에서 이쪽을 보고 있는 연구원에게 들리지 않도록 재하의 귓가에 바싹 다가선 재윤이 속삭였다.

“그거 거짓말이야. 친밀도가 아닌 등급이랑 상성이 중요한 거라서.”

“그게 무슨 소리야?”

“이것도 방에 가면 설명해 줄게. 궁금하면 지금 바로 다시 올라가든가.”

재윤은 여기까지 와서도 재하를 은근히 설득했다. 그러면서 장갑 낀 손으로 재하의 멍 들지 않은 쪽 손을 살며시 잡아끌었다. 강제하지는 않지만, 못마땅해하는 게 여실히 느껴지는 행동이었다.

이때 안쪽에서 이유리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흠흠, 오늘은 좀 늦으셨군요.”

“죄송해요. 알람도 못 듣고 늦잠을 자 버렸어요.”

“가이드님이 사과할 일이 아닙니다. 가이딩 후유증으로 기록할 수 있으니 무리하지 마시고 시간 체크만 부탁드립니다.”

“그럴게요.”

늦은 게 미안했기에 재하는 빠르게 가이딩실 안쪽으로 움직였다. 자연스럽게 재하의 손이 빠져나가자 재윤은 손을 흔들며 웃어 주었다.

“오늘은 아무 일 없을 거야. 편하게 해, 형.”

“당연하지. 너나 좀 편하게 쉬고 있어라.”

가이딩실 문이 닫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출을 받은 가드와 에스퍼들이 찾아왔다. 가이드의 존재를 가드에게도 노출하지 않기 위해 시간 차를 두고 호출한 것이다.

“엇, 서재윤 에스퍼?”

“안녕하십니까, 서재윤 에스퍼!”

에스퍼를 안내하듯 앞서 걷던 가드들이 재윤을 보고 빠르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낯선 얼굴들이었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재윤의 표정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이들은 테스트의 중요성을 듣고도 E급인 자신들이 가이딩을 받을 일이 없음에 가이드의 존재를 귀하게 생각지 않았다. 오로지 에스퍼들을 향해서만 선배나 선임을 대하듯 깍듯했다. 어제의 불미스러운 일도 가드들이 에스퍼를 제압할 의사가 없어 벌어진 일이었다. 일반인인 이천오가 가이딩실의 에스퍼를 제압한 건 다른 가드들의 비협조 탓이었다.

그나마도 에스퍼가 어느 정도 통제되는 상황이라 가능했지 아니었다면 재하의 손이 부서졌을 수도 있었다. 가정한 것만으로도 잠잠하던 재윤의 마나가 들끓었다.

“윽……!”

“저, 저희가 무슨 실수라도…….”

마나 억제기 탓에 이능을 사용하지 못할 뿐, 힘의 차이를 명백히 드러내는 마나의 움직임에 에스퍼와 가드들은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저자세로 나왔다.

재윤이 대답 대신 벽에 기대 쳐다보기만 하자 각자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로 이동했다. 가드는 문 앞을 지켜 섰고, 첫 번째 테스트 상대를 제외한 에스퍼들은 옆방으로 들어가 대기했다.

덩치가 크고 순박한 이미지의 에스퍼는 재윤이 지그시 노려보는 것에 졸아 땅만 쳐다봤다. 몇 초간의 침묵에도 어쩔 줄 몰라 하며 숨을 고르는 에스퍼는 가이딩실 문이 열리자 살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테스트 시작하겠습니다. 고민재 에스퍼?”

“네, 네. 감사합니다.”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에스퍼 고민재는 감사하다며 꾸벅 허리를 숙였다. 마스크를 쓴 연구원은 에스퍼의 신상과 사진을 꼼꼼히 확인한 후 다른 문을 통해 가이딩실로 들어갔다. 그 뒤를 어제는 이천오가 따라 들어갔지만, 오늘은 그를 대신해 재윤이 따라 들어갔다.

패치를 붙이기 위해 셔츠 단추를 풀려던 고민재는 화들짝 놀라 옷을 여몄다.

“가, 가드가 함께 들어오는 거 아니었나요?”

“에스퍼가 규칙을 어길 시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이 참관하는 겁니다.”

침묵으로 노려보는 재윤을 대신해 연구원이 설명하자 고민재가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규칙만 잘 지키면 문제없겠지 싶어 긴장을 풀려 노력했다. 그 방법으로는 가벼운 대화를 시도했다.

“연구원님, 가이드님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해도 될까요?”

“규칙 1. 가이드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서늘한 목소리가 고민재의 귀에 꽂혀 들었다. 정면에 서서 양팔을 가볍게 터는 재윤의 모습은 언제든 제압을 위해 달려들 기세였다.

“아, 아직 말을 건 건 아닌데요.”

“규칙 2. 가이드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건 규칙 5번…….”

“규칙 3. 지금부터 조용히. 연구원의 지시에 따른다.”

규칙을 제멋대로 읊던 재윤은 상대 에스퍼가 입을 꾹 다물자 딱딱한 말투를 조금 부드럽게 바꿨다.

“협조. 해 주실 거죠?”

눈은 건조한데 입만 웃어 보이는 재윤의 태도는 조금의 허튼짓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보였다. 고민재는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후의 가이딩은 전부 비슷했다. 재윤이 눈으로 협박하면 에스퍼는 알아서 조신하게 가이딩을 받았다. 가이딩을 받는 동안 얼굴이 붉어지거나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이도 있었지만, 재윤과 눈이 마주치면 곧은 자세로 얌전해졌다.

어제와 달리 몇 초라도 더 잡고 싶어서 실랑이하는 일도 없이 종료와 동시에 빠릿빠릿하게 가이딩실을 빠져나갔다.

덕분에 빠르게 테스트를 끝낸 재하는 문을 열고 기다리는 재윤과 함께 귀가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 빠른 속도를 보아 재윤이 뭔가 한 것 같기는 했지만, 굳이 동생에게 묻지는 않았다.

재하는 가이딩 테스트를 하는 동안 귀로는 음악을 들으면서 머리로는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정신없이 재윤과 내려오면서 동생을 위해 가이딩을 하려다 실패하고 회귀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정작 들은 건 가이딩의 효율이라든가 에스퍼들에게서 자신을 지키겠다는 재윤의 각오였다.

오랜만에 재윤과 평범하게 대화를 하는데 비일상적인 대화를 한 게 전부였다. 재하는 어쩐지 그게 꺼림칙했다. 그래서 가이딩에 대해 궁금한 걸 묻는 대신 평소처럼 일상 대화를 이어 갔다.

“아, 배고파. 넌 밥 먹었냐?”

“출출하긴 해. 형은 급하게 나오느라 배고프겠다. 레스토랑 갈까?”

“레스토랑은 무슨. 라면이나 끓여 먹으면…… 아, 여기선 안 되지.”

숙소에는 수면과 휴식을 위한 시설이 갖춰져 있으나 주방 시설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차피 식당도 따로 있고 룸서비스나 세탁 서비스도 받을 수 있어 불편할 일은 없었다. 도준과 도림 남매에게 슬쩍 물어봤을 때도 집보다 편하다며 좋아했었다.

하지만 재하는 이곳이 은근 불편했다. 시켜 먹는 음식이 편해도 몇 번 먹다 보면 물리듯, 집밥이 그리웠다. 손에 익은 식칼로 재료를 손질하고 그립감 좋은 프라이팬에 양념한 고기를 잔뜩 볶아 매콤한 제육볶음을 만든 후 전자레인지로 쉽게 만든 계란찜과 함께 갓 지은 쌀밥을 먹는다면.

“와, 못 참겠다.”

돌아가고 싶었다.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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