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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47화 (47/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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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위험합니다. 물러서세요.”

다행히 미리 바리케이드를 쳐 준 경찰들의 지시에 사람들이 물러서기는 했다. 그 모습은 시민 의식이 발현된 것이었을 뿐, 마수에 대한 공포심은 보이지 않았다. 게이트 일부가 열리며 드러난 마수의 존재를 목격한 것치고 다들 너무 위기감이 없었다.

무언가 잘못됐다. 재윤은 자신이 해 온 노력의 방향이 잘못된 게 아닌가 걱정하면서도 당장 게이트에 집중했다.

“벌써 열리면 안 됐는데 이상하네요.”

차를 타고 오는 동안 가드가 있어 하지 못했던 말을 재윤이 꺼냈다.

“위험한 겁니까?”

“좀 더 시간이 흐른 후 당신이 클리어 할 게이트예요.”

“다행입니다. 지금은 둘이니 더 쉽겠군요.”

“아뇨, 원래대로라면 대형 거미와 곤충들이 보여야 해요.”

재윤이 꺼낸 정보와 달리 균열 사이로 보이는 건 파충류의 것으로 보이는 거대 눈알이었다.

“하지만 저건…….”

“이중 게이트가 터진 거죠.”

게이트 안에 또 다른 게이트가 열렸다. 거기서 나온 건 파충류 계열의 마수였을 터. 닫힌 문을 비집고 나올 만큼 가까운 곳에 새로운 게이트가 생성된 게 분명했다. 두 배 이상의 마수를 상대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서재윤 씨, 주의해야 할 게 있습니까?”

“도마뱀 같은 건 최대한 피하고 게이트 석만 파괴하죠. 거미 게이트만 닫으면 그 안의 이중 게이트도 못 나오니까요.”

“알겠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려던 해일을 재윤이 붙잡곤 씁쓸한 웃음을 보였다.

“그래도 퍼포먼스는 해야죠. 지금은 광대 짓이라도 해서 인지도를 높여야 하니까.”

재윤은 이 상황을 불편해했다. 남들 앞에 나서고 그럴싸한 이능을 내보이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 모든 건 오로지 단 하나의 목표 때문이었다.

재윤의 심정을 이해한 해일은 옅은 웃음을 보이며 손에 불을 일으켰다. 화려하게 피어오른 불길에 가까이 오고 싶어 안달이던 사람들이 뒤로 물러섰다.

“저도 재하를 지키고 싶습니다. 그러니 뭐든 이용하고 이용당할 겁니다.”

재하를 위해 자신을 이용해 달라며 해일은 진심으로 웃었다. 정말이지 배우를 했으면 대성했을 마스크였다.

“그러니 뭐든 요구하십시오. 서재윤 씨가 그린 미래는 제가 그린 것과 같습니다.”

사방에서 들이댄 카메라와 핸드폰을 의식한 재윤 역시 익숙해진 대외용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권해일답게 굴면 돼요.”

재윤이 가볍게 팔을 휘두르자 강광의 정강이를 감싼 질척이는 혀가 잘려 나갔다.

끄에에엑.

진흙탕이 끓는 듯한 소리가 기괴했다. 모두가 귀를 틀어막는 중에도 재윤은 가벼운 도움닫기만으로 허공을 날듯 게이트 앞에 도착했다.

염력 사용자의 능숙함에 모두가 감탄하는 사이, 마수가 사라져 텅 빈 균열을 재윤이 찢어 내며 해일과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벌어진 입구는 누구든 출입할 수 있기에 해일이 불을 붙여 활활 타오르게 했다.

“지…… 진짜 멋있다…….”

이 모든 걸 누구보다 가까이서 촬영한 강광의 채널은 터져 나갈 듯이 들썩였다.

게이트 안의 상황은 예상보다 좋았다.

우글거릴 거라 예상했던 마수가 눈이 닿는 곳에는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점점이 떨어진 녹색 핏물을 따라가니 가까운 곳에 게이트가 열려 있었다.

“역시 이중 게이트였네요.”

“임시 조처 해 두겠습니다.”

해일은 주저 없이 게이트 주변으로 불을 질렀다. 대부분의 생명체는 불을 두려워했다. 게이트 너머에서 이쪽으로 넘어오려다 열기와 불길을 보면 되돌아갈 확률이 높았다.

“좋네요. 덕분에 이번 게이트는 쉽겠어요.”

게이트 난이도는 예상대로 낮았다.

원래대로라면 몇 달 뒤 열린 게이트로 타란툴라처럼 생긴 대형 거미가 기어 나온다. 거미줄로 모든 게 정지된 한강 다리와 그 주변에서 권해일은 날아오는 거미줄을 불태우며 내달렸다.

다른 사람은 발을 내딛기만 해도 달라붙는 거미줄을 확실하게 태우며 마수마저 불태우던 권해일은 CG 효과를 입힌 것처럼 화려하게 보였다. 빌런 짓만 일삼던 에스퍼들 중 몇몇이 권해일만 보고 협회를 찾아갈 만큼.

전파를 탄 권해일의 영웅적인 면모는 능력에서부터 외모까지 완벽해 철없던 에스퍼들에게 새로운 자극이 돼 주었다.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도 좋지만, 게이트 밖에서의 모습도 좋은데.’

그 영상만큼 대단한 건 당분간 나오기 힘들었다. 죄다 게이트 안에서 이루어지니 영상이 찍힐 만한 상황이 못 됐다.

그렇다고 거대 타란툴라를 밖으로 모는 빌런 같은 짓을 할 수는 없었다. 한데 자신보다 앞서 걷던 해일이 순식간에 여러 마리의 거미들을 불태우는 걸 보고 재윤은 생각의 흐름이 달라졌다.

“……해 버릴까.”

어차피 자신과 해일이 함께 움직이는 이상 인명 피해가 일어날 리는 없었다. 거미줄은 사람을 붙잡아 둘 뿐이었다. 독니에 찔리면 죽을 수도 있지만, 그 정도는 자신의 능력으로 잘라 버리면 그만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재윤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힘이 있다고 내 멋대로 쓸 생각을 하다니.’

빌런과 같은 생각을 해 버린 자신에게 조금이지만 실망해 버렸다.

형을 지킨다는 이유로 못 할 건 없었지만, 굳이 효율을 좀 높이기 위해 사람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일에 거리낌 없이 생각이 굴러가는 게 당황스러웠다.

게이트 석을 향해 죽죽 걸어가던 재윤의 걸음이 느려졌다.

“형이 보고 싶어.”

팔다리가 무겁고 머리가 아팠다. 이미 며칠째 계속된 피로감은 밤새 가이딩실에 머물러도 그다지 줄지 않았다.

지속된 통증은 재윤의 감정과 감각을 둔하게 만들었다. 스스로도 위험 수위에 다다르는 게 머지않았음을 느꼈다.

‘이번 게이트만 끝내면 형을 만나야지.’

가이딩은 하지 않을 거지만, 형의 얼굴을 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그 생각만으로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재윤은 불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 * *

“다들 물러나세요. 최대한 멀리 피하셔야 합니다.”

“게이트가 열리면 마수가 출몰할 수 있습니다!”

“대피하란 말 안 들려요?”

협회가 보낸 인원과 경찰들이 모여든 사람들을 해산시키려 했으나 그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게이트에 유명한 에스퍼 둘이 들어간 이후 오히려 사람들이 더 늘어났다. 방송을 보고 구경 나온 사람들에 교통마저 꽉 막혀 버렸다.

전국에 균열 폭발이 일어난 지 고작 열흘도 채 되지 않아 사람들은 매력적인 에스퍼의 존재에 바뀐 세상을 쉽게 받아들였다. 게이트 주변에 모여들어 구경하는 사람들을 보면 현실감을 잃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 좀 줄겠거니 쉽게 생각했던 게 무색하게도 퇴근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더 몰려들었다. 아예 다리 위 통제가 시작되자 인근에서부터 걸어오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불 또 보여 달라고요? 안 돼, 안 돼. 진짜 뜨거워서 폰 녹을 거 같다니까요.”

이 와중에 가장 좋은 자리를 선점한 강광은 잠잠한 게이트 상황에 시청자가 떨어져 나갈까 전전긍긍하며 계속 주변 상황을 알렸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상황에도 시청자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 강강님, 불!

“에이, 불은 이제 그만 봐요. 나 좀 봐줘요, 광광이들.”

⤷ 아니, 불 꺼졌다고!

시청자들의 외침에 강광은 핸드폰을 든 채 뒤돌아 게이트를 확인했다. 정말로 활활 타오르던 불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남은 건 주변이 타들어 가 처음보다 훨씬 커진 게이트 입구였다.

“하하, 불이 왜 꺼졌을까요? 와, 근데 이거 너무 크지 않아요? 이러다 큰 게 튀어나오면…….”

강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게이트 안에서 검은 그림자가 쑥 튀어나왔다.

핸드폰으로 상황을 비춘 강광은 바닥에 쓰러진 해일을 보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항상 말끔한 배우 같은 모습을 화면을 통해 봐 왔고, 마지막으로 게이트에 들어갈 때도 화려하게 불을 피워 냈던 인물이 숨을 헐떡이며 무너졌다. 배우를 쓴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완벽했던 남자가 식은땀을 흘리며 힘겨워하는 모습은 어울리지 않아 두려움마저 불러왔다.

강광은 스트리머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핸드폰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괘, 괜찮으세요?”

“재…… 재하.”

“예? 잘 안 들려서 다시 한번…… 윽!”

강광은 등을 묵직하게 눌러 오는 무언가로 인해 바닥으로 넘어졌다. 그 덕에 비스듬하게 보인 핸드폰으로 스치듯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을 볼 수 있었다.

⤷ 방금 허공에서 나타난 거?

⤷ 저 존잘은 또 누구?

⤷ 에스퍼는 미남이다!!

강광은 그제야 자신과 권해일 뿐이었던 게이트 입구에 두 명의 남자가 새로 나타난 걸 볼 수 있었다. 달려오거나 뛰어내리는 건 보지 못했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남자 중 하나는 강광이 싫어하는 느끼한 미남 스타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길마 형!”

“재……하.”

“헉!”

⤷ 헉

⤷ 헉

⤷ 헉

강광의 현실 헉 소리만큼 채팅 창이 헉 소리로 도배가 됐다.

눈앞의 평범한 남자가 거의 달려들 듯 권해일에게 다가가자 바닥에 쓰러져 있던 그 역시 양팔을 벌려 맞이했다. 아주 조금 망설임이 보인 것 같았지만, 이내 보인 건 옷이 구겨질 만큼 강하게 끌어안긴 모습이었다.

강광의 눈에 마치 몇 년간 헤어졌다 간신히 만난 연인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건 담아야 한다. 강광은 바닥에 내려놓았던 핸드폰을 들었다. 이미 다른 쪽에서 줌인 해 대며 찍어 대고 있겠지만, 누구보다 가까운 위치였기에 그들의 작은 속삭임이 간간이 들려왔다.

“길마 형, 괜찮아요?”

“재하, 좀 더.”

“윽, 자, 잠깐…….”

신사적으로만 보였던 권해일에게 저런 격정적인 모습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채팅 창도 온갖 이모티콘으로 도배가 됐다.

강광이 뭐라도 멘트를 치려고 망설이는 사이, 느끼한 미남이 짐벌을 들어 가져갔다. 웃는 얼굴에 홀려 핸드폰을 뺏긴 강광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그가 먼저 멘트를 쳐 버렸다.

“이거 개인 방송인가? 안녕하세요.”

⤷ 눈이 정화된다!!!

⤷ 초면이지만 사랑해요....

⤷ 이름 좀! 존함! 성함!

“와, 채팅이 굉장히 빠르네요. 일단 이거 음 소거 좀 할게요. 위험한 소리가 들어가면 노딱 걸릴 수 있잖아요.”

윙크까지 하며 경고한 남자로 인해 채팅이 쏟아져 멈출 지경이었다. 게다가 교묘하게 남자의 몸에 가려져 해일과 그에게 끌어안긴 남자의 모습이 화면에 비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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