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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46화 (46/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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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딩은 상대의 기분이나 친밀도 따위 상관없이 억지로 행해지더라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렇기에 부러 없는 말을 끼워 넣었다. 처음부터 가이드를 조심히 대해야 하는 이유가 효율을 위함임을 알려 두는 건 최소한의 방어선이었다.

그리 길지 않은 짧은 인터뷰였음에도 넷상에서 가이드의 존재에 대해 열띤 대화가 이어졌다.

에스퍼, 만능은 아니다.

⤷ 가스 떨어진 라이터 되는 거임?

⤷ 중간부터 봤는데 왜 자꾸 가이드 찾음? 에스퍼 단체 여행 감?

⤷⤷ 여행 가이드 ㄴㄴ 다시 보기 확인요.

⤷⤷⤷ 가이드는 에스퍼의 연료 같은 건가 봐요.

⤷ 호적 메이트가 나만 보면 기분 더럽다는데 저 가이드 된 건가요?

⤷⤷ 방송 다시 보세요.

⤷ 오늘도 은혜로운 투 샷이네요

⤷⤷ 교회 오빠 같은 분도 끼워주세요

⤷⤷⤷ 주도준! 방어막 능력자!

⤷ 권해일☆서재윤☆주도준 합동 팬카페 ☞

에스퍼가 처음 등장했을 때에 비해 혼란스러워하지도 않았다. 가이드를 향한 관심은 가벼웠고, 이내 오늘도 제복 핏이 최고였다며 에스퍼에 관한 이야기로 불타올랐다.

이번 일은 에스퍼의 약점을 알리는 것과 같았기에 협회 측에서는 불만을 표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인터뷰할 때마다 가이드를 언급하며 대중에게 서서히 인식시킬 계획이었다.

‘그러면 예전보다 가이드를 구하기 쉬워지겠지.’

형에게만큼은 가이딩을 받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각성 후 우연이라도 형을 붙잡고 가이딩을 하게 되는 일을 피하고자 닿지 않으려 애써 왔다. 차라리 바쁜 일정 탓에 보지 못하는 편이 나았다.

다만 예상보다 형의 존재가 빠르게 드러난 것이 못내 아쉬웠다.

형이 가이드라는 사실을 주도준이 감출 것이라 생각해 따로 주의를 주지 않았다. 에스퍼의 독점욕을 믿고 시간을 벌 수 있으리라 여겼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동생 도림을 잃지 않은 도준은 독점욕보다 안위를 선택했다. 형으로 인해 힘을 쓸 수 있다는 걸 감추기는커녕 연구소와 공유했다. 이미 며칠 전부터 가이딩 테스트를 받으며 공개적으로 가이드인 형의 존재를 드러냈다.

‘안전을 위해 센터 숙소에 뒀더니 다른 놈 가이딩이나 하러 다니고.’

불쑥 고개를 드는 소유욕에 재윤은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형에게는 에스퍼가 필요했다. 그를 지켜 줄 만큼 이성적이고 능력 있는 존재라면 가이딩을 통해서라도 친분을 쌓는 편이 나았다. 그걸 알면서도 형이 위험에 빠질 뻔했다는 사실이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재윤의 상태가 예민하다는 걸 알아챈 가드는 조심스럽게 일정을 알렸다.

“수고하셨습니다, 서재윤 에스퍼. 일정이 조금 밀려서 오찬은 건너뛰고 다음 시현 장소로…… 어?”

재윤을 따라붙던 가드가 통신기 알람에 당황했다. 각종 행사와 방송을 쫓아다니느라 특정 상황이 아니면 알람이 울리지 않도록 설정해 둔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통신기를 확인한 가드가 크게 당황했다.

“무슨 일인데?”

“한강 게이트가 터졌답니다.”

“이 시기에 터질 리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이미 재윤이 알던 것보다 모든 게 빨랐다.

* * *

허공에 걸린 헬기를 에스퍼가 뜯어내는 장면이 방송을 탄 직후 주변은 봉쇄됐다. 대성에서 파견한 조사 팀이 며칠간 조사한 끝에 비활성 게이트로 판정이 나며 통제가 풀렸다. 아무래도 시민들의 불편함을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더욱 빠른 조치가 취해졌을 터.

통제 구역 표시가 주의 표시로 바뀌자 사람들의 경각심도 흐려졌다. 이후 연일 방송을 타는 에스퍼의 화려한 시현 장면에 사람들은 쉽게 접할 수 있는 한강을 떠올렸다. 그 탓에 한강 주변은 평소보다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마침 게이트 조사를 위해 일부 구조물이 치워진 덕에 다리 난간에서 쉽게 위치를 가늠할 수 있었다. 대다수 사람이 다리 위에서 한강 쪽으로 종이비행기를 날리거나 동전을 던졌다.

“쓰레기 무단 투기 하지 마세요!”

봉사자 몇몇이 주의시키고 다녔지만 소용없었다. 던진 물건이 허공에 걸리는 걸 목격한 사람들이 인증 사진을 찍어 대며 일종의 관광 명소처럼 되어 가고 있었다.

이런 핫한 콘텐츠를 놓칠 리 없는 스트리머들도 각자의 컨셉을 내세우며 한강을 찾았다.

스트리머가 된 지 얼마 안 되는 스무 살 강광 역시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붉게 염색한 머리에 모자를 꾹 눌러쓴 강광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실시간으로 시청자들과 소통을 이어 갔다.

“우리 광광 형님, 누님, 애기들, 달리는 강강 왔슴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하며 연신 핸드폰을 향해 인사하는 강광의 모습에 촬영 중임을 인지한 이들이 적당히 자리를 비켜 주었다. 덕분에 보이지 않는 게이트와 가장 가까운 곳에 서게 된 강광은 핸드폰을 앞으로 죽 내밀어 허공에 떠 있는 동전과 종이비행기를 비춰 주었다.

“와, 저거 봐요. 동전이랑 종이비행기가 허공에 떠 있고…… 오, 누가 빵을 던졌나 봐요. 크림빵? 슈크림 빵? 우리 광광 식구들은 어느 파?”

쓸데없는 농담을 섞어 가며 허공과 제 얼굴을 번갈아 비추던 강광은 갑자기 신발 끈을 동여맸다. 제자리 뛰기까지 하며 핸드폰을 가슴 포켓에 고정하는 행동에 주변 사람들은 설마 하면서도 기대에 찬 눈으로 비켜섰다.

“지금은 채팅 못 봐요, 우리 광광 식구들. 후원은 성공하면 쏘시고.”

실실 농담만 흘리던 강광의 목소리가 나지막하니 진지해졌다.

“지금은 달리는 강강에게 집중해.”

듣는 사람 민망해지는 멘트를 진지하게 날린 강광은 뒤로 물러섰다. 거리를 재는 행동에 사람들의 이목이 죄다 쏠렸다. 멀리 떨어져 있던 봉사자가 놀라 달려오는 걸 신호 삼아 강광이 내달렸다. 분명 벌금을 내게 되겠지만, 이번 일로 확실하게 인지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망설임 없이 미리 계산했던 그대로 달려 나갔다.

“달리는 강강! 채널 구독!”

“지, 진짜 뛴다!”

“꺄악!”

몇몇 놀란 사람들의 비명과 감탄 속에 강광은 난간을 박차고 뛰었다. 허우적거리며 쭉 뻗은 몸이 허공에 구르듯 착지하자 여기저기서 감탄이 튀어나왔다.

“우와, 저걸 뛰어서 넘어가네?”

“멀리뛰기 선수라도 되나?”

사람들의 수군거림 위로 강광의 명랑한 목소리가 퍼져 나갔다.

“미션 성공! 자, 다들 좋아요 한 번씩 누를 타이밍인 거 알죠?”

여기서 흥분하는 건 하수라 여긴 강광은 가슴 포켓에서 핸드폰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에구, 크림빵을 밟아 버렸네요. 비둘기 친구들한테 양보하는 걸로 하고.”

달리는 동안 마구 흔들렸을 화면은 현장감을 주고도 남았기에 곧바로 핸드폰을 짐벌에 장착했다.

“이제부터 고소 공포증 있는 광광 식구들은 눈 감고 보세요~ 짜잔~”

강광은 한참 아래 흐르는 한강을 비춰 보이며 장난스럽게 호들갑을 떨었다.

“으아~ 이거, 진짜 이상한 거 알아요? 발밑에 뭐가 있긴 있는데 보이는 건 그냥 허공이야. 진짜 이상해요, 이거.”

이리저리 주변을 비춰 보인 후에야 강광은 허공에 손을 뻗었다.

툭.

“오, 여기에 진짜 뭐가 있어요. 뭔가 느낌이 되게 이상한데?”

손바닥을 펼쳐 문질러 보고 주먹으로 툭툭 두드리자 둔탁한 소리가 둔하게 울렸다.

“되게 단단한데 안이 빈 것 같기도 하고. 아닌가? 오히려 꽉 찬 거 같기도 하고? 광광 식구들은 알겠어?”

핸드폰을 들이대고 소리를 들려주자 채팅 창이 폭발했다. 강광은 아닌 척하려 해도 순식간에 몰려든 시청자 숫자를 보며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감출 수 없었다. 허공에 등을 기댄 여유로운 모습으로 오는 중에 검색했던 내용을 읊으며 시간을 끌었다.

“전에 방송에서 안 보이는 게이트라고 했잖아. 그래서 게이트가 뭔가 하고 사전 검색을 해 봤는데…….”

⤷ 강강 님, 뒤!

⤷ 뒤 봐요, 뒤!!!

⤷ 뒤!!!!!

“에이, 우리 광광이들. 철 지난 귀신 드립 치는 거 아니야. 밤도 아니고.”

⤷ ㅁㅊ놈아, 뒤 좀 보라고!!

강광의 채널에선 금기인 단어가 튀어나왔다. 평소 매너 있던 아이디였기에 강광은 울컥한 마음을 감추고 웃음을 보였다.

“와, 내가 우리 광광이들 사랑해서 속아 준다. 뒤 보면 되……는…….”

과장된 동작으로 뒤를 돌아보던 강광은 허공이어야 할 공간에 생겨난 샛노란 구체에 그대로 멈췄다. 샛노란 구체 안에 가는 실선처럼 보이는 건 무언가를 연상시켰다.

“어. 이거. 꼭 뱀 눈깔 같…….”

강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란 구체가 사라지더니 정체를 알 수 없는 분홍색 물질이 튀어나왔다.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는데도 머리 위를 치고 지나가는 묵직함에 머리가 다 울렸다.

“뭐, 뭐야?”

⤷ 저게 뭐야?!

⤷ 도망쳐요!

⤷ 여기 도마뱀 채널이었나요?

“도마뱀? 으헉!”

습관적으로 채팅을 확인하던 강광은 정강이를 강하게 쳐 오는 무언가로 인해 넘어졌다. 순식간에 잡아당겨지는 동안 주변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정신없이 질질 끌려간 것도 잠시, 턱 하니 벽에 걸려 멈출 수 있었다. 정강이를 감은 채 허공의 틈새 안으로 잡아당기는 힘이 강하긴 했어도 공간이 좁아 성인 남성을 끌어 들이기엔 역부족이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공간이 허공에 생긴 상황이었다. 언제 더 커질지 몰라 강광은 진심으로 두려워졌다.

“저, 저기, 광광 님들, 이런 거 신고하는 번호 있지 않아요?”

⤷ 했어요!

⤷ 연결이 안 돼서 문자 신고 넣었어요!

⤷ 저거 도마뱀 혓바닥 아냐?

⤷ 아까 보인 눈알이 사람 머리통만 하던데.

⤷ 그럼 얼마나 큰 거야?

“여, 여러분, 제가 지금 좀 많이 멘탈이 흔들려서 그러는데 무서운 추측은 하지 말고, 다들 신고 좀 해 주세요오오.”

안에서 잡아당기는 힘이 아슬아슬해서 망정이지, 조금만 더 셌으면 정강이가 부러져서 끌려 들어갈 판이었다.

강광이 실시간 방송을 이어 가는 동안, 경찰을 비롯해 다른 언론 매체에서도 달려와 자리를 잡았다. 그중에는 영상을 보며 상황 파악을 진즉 끝낸 재윤도 있었다.

마침 가까운 곳에 있어 차량으로 빠르게 도착한 재윤과 해일이 다리 위에 올라서자 알아본 이들이 환호했다.

“권해일이다!”

“서재윤도 같이 있어.”

“세상에, 실물로 보게 되다니!”

“오빠, 여기 좀 봐 주세요!”

마수가 대가리를 내밀기 직전인 상황인데도 사람들의 반응은 태평하기만 했다. 에스퍼를 향한 호의를 불러오길 바라기는 했어도 이렇게나 위기감이 없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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