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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어 힘 무슨 일이냐고.’
다 죽어 가던 지호가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에 재하는 쓸데없는 생각부터 떠올랐다. 회피성 딴생각일지도 모르나 지호의 얼굴이 목에 닿자마자 손이 닿았을 때처럼 빨아 당기는 감각이 생생했다. 정확하게는 정말로 빨리고 있었다.
“야, 너, 뭐 하는……!”
화를 내려던 재하는 모니터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양손을 붙잡고 있어도 여전히 뾰족하던 그래프의 선이 곡선으로 바뀌어 있었다. 여전히 들쑥날쑥 거칠기는 했어도 최악의 상태에서 한 단계 낮아진 것처럼 보였다.
― 지금 상태를 유지한다면 12시간이면 충분하겠어요.
문제 있는 거 아니면 말하지 말랬는데도 연구원은 빠르게 정보를 전했다. 정작 목을 깨물리고 빨리는 감각이 소름 끼친 재하는 상체를 들어 피하려 했지만, 되레 다른 곳이 맞붙어 허리를 들어야 했다.
“아오, 진짜. 너, 자꾸 이러면 그만할 거라고.”
타인의 고통을 두고 협박하는 건 비겁할지 몰라도 당장 목에서 느껴지는 낯설고 민망한 데다 징그러운 감각을 털어 내는 게 급했다. 거기에 닿아 있는 모든 곳을 통해 빠르게 힘이 빠지는 감각은 재하의 이성을 흐리게 했다.
“그만, 하라니까.”
심각한 지호의 상태를 생각하면 참아야 하는데 피부가 닿는 곳에서부터 속절없이 빼앗기는 감각이 불쾌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짜증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아…… 죄송해요, 선배.”
지호는 본인이 힘든 상황인데도 재하가 진심으로 싫어하는 걸 알아채자마자 입술을 떼고 순한 목소리를 냈다. 행동은 빨라도 타인의 감정에 민감한 견지호다웠다.
“으, 찝찝해. 10초만 손 놓자.”
축축해진 목을 닦고 싶어 손을 놓으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지호는 재하가 정말로 싫어하는 것과 불편해도 참아 주는 선을 구분할 줄 알았다.
“선배, 저희 24시간 이렇게 있어야 하는 거죠?”
“그래. 아무리 네가 뭐라고 해도 난 손만 잡을 거니까 포기하고 잠이나 자.”
“음…… 그럼 저, 가이딩에 대한 설명 좀 들어도 돼요?”
지호는 가이딩이 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저 본능적으로 자신과 닿으면 편해지니까 더 닿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필요한 지식이기는 하지만, 굳이 지금 자신에게 불리해질 이야기를 해 주고 싶지 않았다.
“알아서 뭐 하게. 이 이상은 안 할 거라니까.”
“아무것도 모르니까 자꾸만 이상한 상상을 하게 돼요. 선배랑 더 닿고 싶어요. 이대로 허리를 끌어당겨서 선배를…….”
“연구원님! 가이딩 설명 좀 해 주세요!”
지호가 꺼낼 말이 두려워진 재하가 포기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연구원은 차근차근 가이딩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단계별 가이딩 효과에 대한 가설을 언급할 땐 어떻게든 못 듣게 훼방 놓고 싶었지만, 알 권리를 주장하는 지호의 요구에 민망함을 참고 손만 꽉 쥐고 있었다.
모든 설명을 들은 지호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재하를 올려다봤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데?”
“재하 선배, 입술로 하면 30분 만에 일어날 수 있대요.”
“일어나서 뭐 하게. 누운 김에 24시간 푹 자고 일어나.”
“키스 한 번이잖아요, 선배.”
“한 번 같은 소리 하네. 30분 동안 숨 막혀 죽을 일 있냐?”
재하의 퉁명스러운 반응에 지호가 의아해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배, 설마 첫 키스인 건 아니죠?”
“그게 너랑 무슨 상관…… 아니, 그런 도발에 넘어갈 것 같냐? 애도 아니고.”
이미 잔뜩 예민하게 반응한 재하의 태도에 답이 있었다. 이에 지호는 고개를 까닥이며 가볍게 굴었다.
“아쉽네요. 첫 키스를 이런 분위기에서 뺏을 순 없죠.”
“첫 키스가 아니라 백 번째 키스라도 마찬가지니까 꿈도 꾸지 마라.”
“역시 선배는 귀엽…… 윽…….”
툴툴대던 재하는 손을 꽉 잡아 오는 지호로 인해 짜증을 내려다 모니터의 소음에 고개를 들었다. 다시금 파동이 흐트러지며 위험 수위를 넘나들었다.
대체 왜 이렇게 안정이 안 되는 거냐 따지자니 최초의 그래프보다는 확실히 나아졌다. 순식간에 식은땀을 흘리며 이를 악무는 지호를 본 재하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침 발린 거, 해라, 해.”
중얼거린 재하는 한숨을 쉬며 목을 내주었다. 상체를 숙이고 헐떡이는 지호의 입술 앞에 대 주자 그는 괴로운 와중에도 입을 벌려 삼킬 기세로 깨물어 왔다.
“야야, 물지는 말고. 아오, 진짜 이게 다 무슨 짓인지.”
입술보다는 낫다, 입술보다는.
몇 번이고 밀어내고 싶은 걸 꾹 참고 버텨 내자 몸이 닿아 있는 것도 익숙해졌다. 무엇보다 실시간으로 에너지가 빨려 나가는 상황에 지쳐 몸을 떼고 버티기가 힘들어졌다. 돌바닥에 누웠다 생각하고 힘을 빼니 단단하기는 해도 돌보다야 훨씬 낫다 싶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목을 핥고 깨물어 대는 통에 간지럽고 징그러워서 신경이 쓰였다.
축축해질 정도로 목을 내줄 정도면 그냥 30분 뽀뽀해 버릴까 싶다가도 그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궁극의 선택이냐고. 이걸 할 사람이 나밖에 없냐, 진짜.’
* * *
어느새 불편하고 찝찝한 상태로 잠들어 버렸던 재하는 익숙한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허리에 둘린 묵직한 팔에 습관처럼 툭툭 두드리며 치울 것을 요구했다.
“하암…… 무거워, 새꺄.”
아침에 일어날 때면 종종 도준의 팔이 허리를 감싸 안고 있을 때가 있었다. 오늘도 그런 건가 싶어 팔을 치워 내는데 도리어 바싹 끌어안겼다.
“뭐냐? 귀찮게 왜…… 어?”
눈을 뜬 재하는 숙소가 아닌 새하얀 방에 당황했다.
“재하 선배, 잘 잤어요?”
“어? 뭐, 뭔…….”
어리바리하던 재하는 양팔로 허리를 끌어안고 어깨에 턱을 기댄 지호를 보고 어제 일을 떠올렸다.
양손을 붙잡고 목을 내준 채 가이딩을 하다 피곤해 죽겠다 투덜댔던 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야, 너 손.”
구속당했던 양 팔다리가 언제 풀렸는지 자신을 끌어안은 채 싱글거리는 지호의 얼굴은 배부른 짐승처럼 여유로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능글맞았다.
“너 뭐냐, 그 징그러운 표정은.”
“저요, 다 들었어요.”
“뭘?”
“선배가 절 위해 달려와 줬다는 거.”
은혜를 입었으니 갚기 위해 왔을 뿐이었다. 그걸 지호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른하게 말하자 특별한 의미라도 있는 것처럼 들렸다.
“안 달렸는데. 평범하게 걸어왔어.”
“고마워요. 선배 아니었으면 저, 폭탄이 됐을 거예요.”
어깨와 목에 얼굴을 비비며 어리광을 부리는 지호의 말에 재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폭주의 의미가 터져 죽는다는 거였나?’
진실을 알기 위해 테스트할 때마다 봐 왔던 익숙한 연구원을 찾았으나 비상 상황이 해제된 탓에 격리실 안은 연구원들로 가득했다.
이 많은 사람 앞에서 남자 후배에게 끌어안겨 있었다니. 재하는 새삼 얼굴에 열이 올랐다. 하지만 지호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에게 매달려 고양이처럼 얼굴을 비벼 왔다.
피부가 닿을 때마다 찌릿찌릿할 정도로 불편했던 감각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확실히 안정됐구나 싶어 안심할 수 있었다.
“이제 됐지? 난 간다.”
지호를 밀고 일어서자 의외로 순순히 팔이 풀렸다.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표정은 처량하기 그지없으면서도 억지로 붙잡지는 않았다.
어제 어떻게든 뽀뽀는 안 하고 버텼지만, 차라리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지분거렸던 지호가 이리도 순순히 떨어져 주니 의아했다.
밖으로 나가자 어제 올 때만 해도 텅 비었던 복도가 오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평소라면 힐끗거리고 지나쳤을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인사해 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은 푹 쉬세요. 무리하시면 안 돼요.”
“감동했어요.”
“화이팅!”
걱정에 이어 의미 모를 응원까지, 모두가 호의를 보였다.
머쓱해하며 복도를 빠져나가려는데 어제 통제실에서 봤던 나이 지긋한 팀장이라는 남자가 앞을 가로막았다. 키가 작아 눈높이가 낮음에도 머리통만 한 팔뚝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재하가 인사하듯 허리를 숙이는데 팀장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솥뚜껑만 한 손에 손을 겹치자 가볍게 쥐고는 놓지 않았다. 아무 느낌도 없는 걸 보면 에스퍼는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한참 손을 잡나 싶어 쳐다보자 팀장의 눈이 감격으로 일렁였다.
“고맙소.”
“아, 네. 감사합니다……?”
지호를 구하긴 했지만, 왜 팀장이 감사를 하나 의아해하는데 이어진 말이 묵직했다.
“이 방에 들어간 에스퍼는 전부 형체조차 남지 않아 빈 관으로 장례를 치렀지. 서재하 군 덕에 처음으로 에스퍼가 이곳을 걸어 나갈 수 있게 됐소.”
단단히 붙잡으며 재차 감사를 표하는 팀장의 태도에 재하는 당황스러웠다. 더 빨리 끝낼 수 있는데도 자신이 부끄럽고 징그럽다며 최대한 밀어냈던 일이었다. 민망하기만 했던 가이딩이 무척이나 숭고한 일처럼 느껴졌다. 심장이 간질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거듭되는 팀장의 감사를 받고서야 숙소로 돌아온 재하는 거울을 보고 분노했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목 주변이 얼룩덜룩해진 걸 보고 온갖 짜증을 냈지만, 그래도 한번 느낀 고양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손을 잡고 끌어안았을 뿐인데 사람을 살렸다. 믿어지지 않았지만, 그래프가 증거였고, 팀장의 감격한 눈은 진심이었다.
“좀 찝찝하긴 하지만 도움이 됐다니 나쁘진 않네.”
뿌듯함을 느끼며 아직 덜 풀린 피로를 풀고자 다시 잠자리에 누운 재하는 열두 시간 만에 돌려보내졌음을 자각하지 못했다.
* * *
재하가 떠난 격리실에서 연구원들에게 둘러싸인 지호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지난밤. 재하를 향한 갈증에 그가 기절하듯 잠들자마자 구속을 풀어 달라고 요구했다. 양팔이 자유로워진 뒤로는 양껏 재하의 몸을 끌어안고 피부를 어루만졌다.
바깥에 드러나지 않은 예민한 피부와 맞닿을 때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같이 요동치던 마나가 제자리를 찾아 갔다. 그 감각은 안정감 이상의 특별한 자극이었다. 그간 수없이 경험해 본 기억이 없었다면, 한순간의 쾌락에 눈이 멀어 그 자리에서 잡아먹고 싶을 만큼 간절한 감각이었다.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건 문제 되지 않았다. 자신이 그 순간을 인내한 건 재하가 진심으로 싫어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노력하면 될 일이었다. 정조 관념이 뚜렷한 대상을 유혹하는 것 또한 즐거움이었다. 무엇보다 저를 살리겠다고 제 발로 걸어온 재하가 그 어떤 존재보다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테스트는 누구랑 한 걸까…….”
지호에게서 흘러나온 음습한 목소리에 모니터를 체크하던 연구원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